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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소통
하성준의 유학일기(3) 미국의 장애인등록제도
미국의 장애인등록제도                                         하성준(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팀장)


“저는 시각장애 1급 1호로 등록된 등록시각장애인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독자 여러분 중에는 이 사람의 장애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1993년에 장애인등록을 하고 당시에는 장애인수첩이라는 것을 받았었다. 그 뒤에 장애인수첩이 장애인등록증으로, 다시 장애인등록증이 복지카드로 그 명칭과 형태가 변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장애를 가진 개인은 장애인복지법의 규정에 따라 장애인등록절차를 거쳐 장애인으로 등록해야 한다.
국가가 장애를 가진 국민에게 등록절차를 통하게 하는 것은 법률이 정하는 장애인의 수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등록제도는 특별한 조사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장애인의 수, 장애정도, 거주 지역 및 성별 그리고 연령 등 다양한 정보를 쉽고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이렇게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는 장애인을 위한 국가정책의 수립과정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장애인등록제도가 좋은 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을 등록하도록 하는 그 자체가 장애를 가진 개인에게 사회적 낙인이 될 수 있고 비록 장애가 영구적 혹은 반영구적인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라고 할지라도 상태가 변화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제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 등록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정책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장애인의 장애정도를 어떻게 판정하고 어떤 사람이 장애인인지 아닌지를 구분할까? 오늘은 미국의 장애인등록제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누가 장애를 판정하는가?


미국에서 장애를 판정하는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공식적으로 의사이다. 실제로 미국국민의 소득보장제도인 SSI, SSDI 그리고 Worker's compensation의 경우 장애인과 관련하여 지급되는 일체의 급여는 우선 의사로 부터의 진단이 우선하여 실시된다. 의사는 장애를 가진 개인의 장애를 각종 급여의 지급기준에 규정된 장애판정기준에 따라 의학적 소견을 작성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산재급여와 유사한 Worker's compensation의 경우 장애로 인한 소득감소분과 함께 의사의 근로능력상실 정도를 나타내는 소견서가 장애인에게 지급될 급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요소이다. 여기서 주목할 내용은 의사는 단지 대상자의 신체적 정서적 장애의 정도와 진행상황을 기술할 뿐이고 급여의 지급수준은 worker's compensation을 주관하는 기관의 담당자가 결정한다. 다시 말해. 의사는 급여 신청자의 장애정도를 객관적인 의학적 검사와 진단을 거쳐 소견을 작성하고 이렇게 작성된 소견에 따라 급여결정을 담당하는 기관의 담당자가 일정한 절차에 따라 급여의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실제 SSDI를 지급받기 위해 절차를 밟은 분의 어머니를 한 분 알고 있는데 그 분의 말씀을 빌려 보면,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은 뒤에 그 소견이 지방사회보장청으로 전달되면 급여지급담당자, 재활상담가, 특수교사 등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여 장애인 본인은 물론 가족들과 면담을 거친다고 한다. 더욱 놀랄 사실은 이러한 방문이 1회에 그치지 않고 3회 이상 지속되며 이 과정에서 의사의 소견이 얼마나 정확한지, 가정의 소득이나 경제적 여건은 어느 정도인지, 지역에서 활용 가능한 재활기관은 어떤 곳이 있는지를 알려 주고 적절한 재활프로그램을 추천한다고 한다. 즉, 장애의 판정이 일시적이지도 않고 의사가 내린 의학적 기준의 장애판정에 완전히 의존하지도 않으며 지역사회와 가족 그리고 재활기관이 SSDI라고 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매개로 유기적 협력관계를 맺어주는 통합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의사만 장애를 판정하는가?


SSDI와 같은 사회보장제도 외에 대학에서 운영하는 장애학생지원센터나 여타의 사회서비스에서는 장애를 어떻게 판정할까? 특히 등록 제도를 사용하지 않는 지역의 경우 장애인의 장애유무를 판정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등록 제도를 사용하고 복지카드와 같은 별도의 증명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회서비스의 이용에 있어 복지카드의 제시가 필수적이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각종 요금을 할인받기 위해서도 복지카드의 제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심지어 장애인복지관에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도 복지카드를 제시해야 하고 장애인복지관은 이렇게 확인한 복지카드를 기준으로 소위 실적을 증명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는 다른 체계를 이용한다. 필자의 경우 앞서 소개한 글에서와 같이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처음 방문했을 때, 재활상담가와 필요한 서비스에 대해 상담했고 상담내용을 기초로 계약(contract)을 체결했다. 별도의 장애진단이나 증명서의 제출을 요구받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필자의 경우 장애사실이 명백하고 특별한 의학적 소견이 없이도 충분히 장애정도를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활상담가에 의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 받았다. 만약,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학생이 저시력인이나 외관상 장애유무를 쉽게 판정하기 어려운 장애를 가졌다면 재활상담가에 의해 의학적 검사를 제안 받았을 것이다. 하여튼, 재활상담가(Rehabilitation Counselor)는 주정부 혹은 연방정부로부터 그 자격을 인정받아야 하는 전문 인력으로써 일정부분 장애인의 장애를 판정하여 증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소견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실제 미국시각장애인연맹(National Federation of the Blind: NFB)의 시각장애학생장학제도의 경우 신청자의 장애를 확인하는 절차에서 의사의 진단서가 아니라 특수교사, 재활기관에 소속된 재활상담가의 증명서(Certification)가 신청인의 장애유무를 증명할 수 있는 요소 중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실제 미국은 의료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석사과정 이상의 높은 전문 과정을 공부한 전문 인력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운영될까!



그런데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비단 장애인의 장애정도나 장애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어떤 절차가 아니더라도 각종 증명서나 확인서의 발급과정이 매우 간소하고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미리 밝히지만 미국의 그런 모습이 우리나라보다 더 좋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와의 차이를 알고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 보자는 의미에서 언급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유학생의 운전면허응시에 관해 언급하면, 우선 유학생은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학교 내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소득을 얻으면 사회보장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사회보장번호가 없다. 사회보장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유학생은 일리노이 주에서 실시하는 운전면허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두 가지 서류를 면허시험장에 제출해야 하는데 첫째로 일리노이 주 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거주증명서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거주증명서를 굳이 발급받지 않더라도 은행이나 이동통신회사 아니면 인터넷이나 유선방송서비스회사에서 받은 고지서만 있어도 거주증명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 거주증명서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주체에게 해당 주소지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서류에 담당자 사인만 하면 끝이다. 사실 필자가 우리나라에서 일하면서 허위서류나 위조서류에 대한 경계심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것에 비한다면 미국의 서류는 한 마디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위조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미국대학에서 발급된 것으로 조작한 허위서류를 통해 학력을 위조한 사람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필자가 만약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은 덕에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겉으로는 매우 허술해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제도가 운영되지만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사실을 중요하게 여긴다. 거주사실, 장애유무 혹은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할 뿐, 서류 자체의 신빙성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음으로 허위나 조작이 일단 드러나면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 특히 어떤 형태로든 룰을 어기면 절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 한 때, 펄펄 끓는 냄비같이 떠들다 어느새 슬그머니 용서하는 우리네 풍토와는 전혀 다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미국은 최대로 자유롭게 풀어놓은 상태에서 선을 넘으면 용서하지 않는 식이고 우리나라는 선을 애초에 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미리 마련해 두고 있지만 막상 선을 넘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선처를 베푸는 식인 것이다. 좋은 예가 시위모습이다. 미국은 일단 시위가 벌어지면 경찰이 노란색 줄로 경계를 표시하고 주변을 통제한다. 시위대는 이 노란색 선으로 구분된 범위 내에서 어떤 말을 하건 어떤 형태로 시위하건 경찰에 의해 제제 받지 않는다. 하지만 흥분한 나머지 경계선을 벗어나면 가차 없이 체포되거나 제압당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위는 이와 다르다. 일단 경찰이 중무장한 상태에서 진압을 대기하고 심심치 않게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다. 또 어느 정도 충돌하더라도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사례는 절반도 안 될 것이다. 장애도 마찬가지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사실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미국은 장애를 판단하고 증명하는 일을 언제나 의사만이 할 수 있도록 묶어 두지 않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전문 인력이 장애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고려해 볼 때, 일부 주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장애인등록절차도 공적으로 장애를 손쉽게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정확한 예산의 수립과 집행을 목적으로 하는 일연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필자는 1년 가까이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두 차례 장애를 증명 받았다. 모두 학교 내에 위치한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받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또 장애가 어느 정도인가 보다 장애가 있는가에 대해 더 많은 비중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와 같이 장애는 정도와 유무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장애인등록제도를 살펴 볼 때, 너무 일본의 제도를 모방한 나머지 등록제도 자체의 어떤 원칙을 찾아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 1급과 3급은 명백히 시력과 시야의 손상정도에 차이가 확연하지만 실제 정부의 정책이나 사회적 서비스에 있어 차이가 없다. 이 말은 곧 시각장애의 경우 1급이든 3급이든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장애의 정도는 구분할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희기병이나 만성질환은 명백히 장애를 유발하지만 장애인등록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는 등록제도의 경직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몇 년 전 장애인차량에 대한 LPG세제지원제도개선 당시 많은 장애인차량이 장애인 본인이 아닌 그 가족(장애가 없는)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만 보아도 우리나라가 제도의 실시에 있어 도덕적 회의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결론적으로 장애인의 장애는 반드시 의사에 의해서만 이루질 필요는 없으며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특수교사, 장애인복지관과 같은 장애관련전문인력 또는 각급 대학이 운영하고 있는 장애학생지원부서에서 충분히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때, 우리는 상황을 고려한 신축성 있는 대처가 요구된다. 아직은 실시되고 있지 않고 있지만 장애연금제도같은 국가적 차원의 공적 부조에 있어서는 보다 정확하고 정밀한 조사가 요구될 것이고 대학이나 복지관의 서비스제공과 같은 영역에서는 현장전문가의 판단만으로도 서비스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덕적 회의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도 좋지만 일단 발생한 도덕적 회의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장애인본인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건전성과도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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