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컬쳐포유
최강문의 영화이야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며                                                최강문(요술피리대표작가)


1. 사람들은 왜 영화를 볼까?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못한 삶의 지혜를 영상 속에서 발견하기 위해?
문학작품의 감동을 다시금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이도 저도 아니면 원두커피 끓이다 남은 찌꺼기 같은 스트레스를 배우들의 멋들어진 몸매를 보며 툴툴 털어버리기 위해서? 그저 남는 시간을 어떻게든 처리하기 위해서?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극장을 나서며 사람들은 한 마디씩 던지기 마련이다.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어”라거나, “웃겨 죽는 줄 알았네” 혹은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어” 등등. 스스로 일반 관객보다는 한 발짝 더 나갔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인트로의 구성은 탄탄했지만, 중반부에서 스토리 라인이 흐트러졌고, 클라이맥스에서의 사운드까지 루스해지는 단점이 보였지만 배우의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 엔딩 영상은 퍼펙트했어.”
에이, 무슨 말일까? 어쨌든, 그건 관객으로서의 느낌에 불과하다. 물론 그 느낌을 위해 관람료를 지불하고 극장 문을 들어서는 것이겠지만. 어딘가 이런 말이 있다.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글은 읽는 자의 것이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 감독의 손을 떠난 영화는 … 관객의 것이거나, 영화제작자 혹은 영화배급자의 몫이 된다. 요즘 들어서는 뜸해졌지만, 과거 군사독재시절에는 감독의 동의 없이 장면장면을 마구마구 잘라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검열의 이름으로, 또는 수익의 이름으로.



2. 그럼, 감독은 왜 영화를 만들까?


감독의 손을 떠난 영화라지만, 그래도 영화를 만든 자의 의도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불행하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문제는 그 의도를 어떻게 찾느냐는 것이다. 장면 장면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 포스터에 제대로 밝혀두지도 않는다. 그저 영화를 곱씹고 또 곱씹어 찾아내는 수밖엔. 이럴 때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로 그 감독이 이전에 무슨 영화를 만들었는지 보는 수가 있다. 지금까지의 이력을 살펴보며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예측하는 것. 뭐, 그다지 새롭지도 않고 생뚱맞지도 않는 방식이자, 가장 널리 쓰이는 잣대이기도 하다.
임순례라는 감독이 있다. 처음 듣는 사람이면 열에 아홉 ‘누구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름이다. 영화 『세 친구』를 만들었다고 해도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거론하면 그제서야 “아하, 그 영화~!” 하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감독에 대해서는 여전히 ‘누구지?’ 하는 반응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가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전작들과는 달리 유명 배우들도 출연했다. 문소리, 김정은…. ‘2004 아테네올림픽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감동 실화’라는 부제가 붙은 이 영화가 이번 영화이야기의 주인공이다. 2008년 1월 10일 개봉될 예정이니, 이 영화가 어떤지를 직접 감상하기보다는 지금까지 그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왔는지 살펴보며 개봉될 새 영화의 윤곽을 그리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번 영화 이야기는 보지 않은 영화에 관한 허풍 혹은 과장이다.




3. 나에게 한 친구가 있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포스터사회주의가 붕괴하고서 훌쩍 모스크바로 영화공부를 하러 떠났다. 몇 년이 흘렀을까.
무너진 사회주의 이념만큼이나 스산한 흑백 영화를 한 편 들고 돌아왔다. 그의 영화가 종로의 한 극장에서 개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일주일만에 달려갔지만, 이미 간판이 내려진 상태. 뒤늦게 비디오를 구해 본 영화에서는 1980년대의 꿈이 무너진 사람, 혹은 집단이 쇠락한 귀족의 저택에서 모여 서로 상처를 할퀴고 덧내고, 다시 어루만진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줄거리. 그러나 관객은 무척이나 냉혹했다. 평단의 반응 또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않으랴?
그래서 그 친구는 두 번째 영화를 기획하던 중 선배감독을 만났다. 둘 사이의 대화가 대충 이러하지 않았을까?

“김감독, 요즘 어떤 영활 준비하고 있어?”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한길을 가는 것에 대한 비애랄까…. 남들은 멋있다, 훌륭하다 하면서도 정작 돌아서면 손가락질하잖아요. 무능한 녀석, 세상 물정도 모르는 놈 운운 하면서.”
“어떤 이야긴데?”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를 하다 계속 그 길을 가는 한 사람의 인생이 있다면, 그 주변에 다른 길을 가는 친구들이 있지요. 이들의 삶은 비슷하게 출발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교차하기도 하고, 때론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하고….”
“꿈과 희망이 좌절된 친구들 이야기인가?”
친구 녀석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이 시대에서 한길을 가는 일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토로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꿈꾸는 삶이 고단하다면 꿈꾸지 못하는 삶 또한 지리멸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어쨌거나 친구의 기획의도를 간파한 선배 감독은 말했다.
“자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야. 나한테 메가폰을 넘겨.” 그렇게 해서 친구 녀석이 기획, 그 선배가 감독을 맡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배급사들이 무슨 영화를 알랴? 그저 흥행하느냐, 쪽박을 차느냐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당연히 이 영화는 흥행하지 못할 영화로 분류되었고, 한달 남짓 만에 극장에서 죄다 막을 내렸다. 하지만 배급사보다 안목 있는 관객들로 인하여 ‘영화 다시보기 운동’ 비스무리 한 일이 벌어졌다. 대형 멀티플렉스들은 여전히 외면했지만, 지방의 작은 극장들마다 이 영화를 찾은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바로 『와이키키 브라더스』다. 임순례 감독을 다시금 눈여겨보게끔 만든.




4. 잘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 별 볼일 없이 그저 그런 사람들.


난세에 태어나도 영웅이 되지 못하고, 태평성대에 태어나도 호걸이 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 그런 이들의 이야기에 임순례 감독은 주목한다. 동화 속 왕자님을 만날 운명도 아니고, 무협소설 속 엄청난 내공을 연마할 비책도 없는 필부필부들에게도 꿈은 있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세 친구』의 무소속이나 그녀를 위해 작곡한 악보를 들고 달려가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성우처럼.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임순례 영화 속의 필부필부들은 만화가가 되지 못하고, 음악가로 성공하지 못한다. 어느 날 자신에게 던져진 “너 하고 싶은 일 하니 행복하니?”라는 질문은 비수와도 같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상황. 미로를 끝없이 헤매다 문득 드는 생각, ‘모든 출구가 다 막혀있는 건 아닐까?’ 갑작스레 엄습하는 정체모를 불안감. 나는 왜 이 일을 하려 하는가….
한결같이 말수가 적다. 왠지 우수에 잠겨있다.(물론 관객들은 짐작한다. 우수에 잠긴 이유는, 평소 말이 없는 이유는, 바로 패배자이기 때문이라고.)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히지도 못한 채 적당히 굽히고 적당히 둘러간다. 세상 또한 이들을 굳이 감싸 안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따스한 마음만은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순례 영화의 특징이다. 단지 이 한 가지 요소로 인하여 영화는 마냥 우울하지도, 끝내 시큰둥하지도 않다. 오히려 보는 이들의 심금에 파고든다. 별 볼일 없는 주변부 인생 속에서 건져 올린 따스한 마음이 희망인 것이다. 쭉쭉빵빵 미인의 연애질 이야기나, 근육질 남성의 때리고 부수는 숨 가쁜 영상도 없이 극장가를 달궈내는 임 감독 영화의 장점이다.




5. 그런 그가 만든 새 영화라니, 기대가 간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한장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4 아테네올림픽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감동 실화.’ 그래, 어렴풋이 기억난다. 4년 전,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아줌마들이 일을 낸 사건. 피겨의 요정 누구는 어느 대기업에서 후원을 하고, 천재 골프소녀 누구는 세계적 스포츠용품회사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댄다지만, 볼거리가 시원찮아 관객이 없고, 그런 까닭에 광고효과마저 없는 스포츠는 그저 스포츠일 뿐이다. 그런 스포츠 종목에서 올림픽 메달을 두 번 따내봤자 대형마트의 점원이거나, 설렁탕집 종업원 신세를 면치 못한다. 비인기 종목 스포츠뿐만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우여곡절 속에서 아줌마 선수들은 다시금 뭉친다. 그렇다고 의기투합만으로 단박에 일을 낼 수 있다면 그건 무협 아니면 동화다. 세상을 너무 얕잡아본 거다. 현실은 결코 그렇게 녹록치 않다. 일본 프로팀의 잘나가던 감독은 이혼녀라는 이유로 대표팀 감독에서 쫓겨나고, 선수들끼리의 갈등도 거세어진다. 고등학생 선수들과 벌인 평가전에서조차 졸전을 벌이며 비인기종목 여성 선수단의 설움은 날로 커져만 간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임순례 감독은 말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과 호흡까지 쏟아내며 최선을 다한 자에게 진정한 승리가 찾아온다는 진실을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주변부 삶에서 건져 올린 희망은 오래 지속된다.
주연 문소리, 김정은, 엄태웅 / 감독 임순례 / 128분 / 1월 10일 개봉



6. 그래, 관객과 감독은 그런 이유로 영화를 보고, 영화를 만든다고 치자.


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에서 영화를 이야기하려고 할까? 음, 사실 잘 모르겠다. 대신 잡소리나 한 마디 더 늘어놓겠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서 받은 청순하면서도 강력한 이미지의 문소리도 훌륭한 배우임이 분명하지만, 외국 언론에서 ‘개가 나와도 당선된다’고 폄하했던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나니 배우 김정은에 대한 인상이 확 달라졌다. 지난 대선 와중에 일단의 연예인들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드라마 『대조영』으로 다시금 인기몰이에 나선 최수종,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한다는 『무한도전』의 정준하, 건들건들 ‘밥 먹을 때가 됐는데…’ 하며 고추장 광고에 나온 장동건을 비롯, 유진, 에릭, 신동엽 등등. 이덕화도 당연히 끼어있다. 물론 지지 선언 장소도 한나라당 기자회견장.
‘저렇게까지 안해도 당선이 유력시되는데, 줄 서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야?’ 하며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고 있을 때 후속 보도가 나왔다. 김정은은 이명박 지지를 한 적이 없다는 해명이었다.
정치의 계절,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것이 더 어려우리라 짐작한다. 더구나 그 특정후보가 사실상 당선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배우 김정은, 대단하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개봉이 더욱 기다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다.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