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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소통
무자년 새해, 소망을 비는 이유
戊子年 새해, 소망을 비는 이유                                         안진환(장애인공약만들기공동행동)


어느새 새해다. 2007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사다난했고, 그런 만큼 길게 느껴졌던 한 해였다. LPG지원제도 폐지와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자격 독점제도의 위헌 판결 등 마냥 뒷걸음질만 치는 장애인복지정책으로 일 년 내내 가슴 한 켠을 먹먹하게 차올랐던 답답하고 고약스런 감정의 앙금도 가셔내지 못한 채 맞은 무자년 새해는 동장군을 등에 업은 채 불쑥 찾아왔다. 수은주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진데다 강바람까지 불어대는 통에 문 밖을 나설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새해 아침이었다. 게다가 충청, 호남 지방은 폭설로 천지사방 길이 막혔고, 농작물 피해도 제법 크다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해맞이 행사장에는 신년 소망을 빌기 위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경찰청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개최된 해돋이 행사에 모두 183만 7000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해 발표했다. 지난해보다 무려 9.7%가 늘어난 숫자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예년에 비해 춥기도 했거니와 폭설마저 쏟아지는 등 좋지 않은 날씨임에도 오히려 해맞이 인파가 늘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기습 한파의 맹위를 뚫고 기어코 해맞이 행사장을 찾아가도록 사람들을 부추긴 간절한 소망은 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불안정한 일자리와 조기은퇴, 무섭게 치솟기만 하는 기름값, 그리고 들먹거리는 물가 걱정 따위, 새해에는 꼭 떨쳐버리고 싶은 걱정거리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떠오르는 신년 첫 일출을 향해 빌었던 소망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람들의 새해 소망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듯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승리가 확정된 직후 “국민의 뜻에 따라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경제, 반드시 살리겠다.”고 일갈했다. 사실, 이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경제대통령’이미지를 내세웠다. 대선공약 분야별 정책 92개의 절반이 경제 활성화 정책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집권 5년 동안 연평균 7% 성장과 10년 후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7대 경제 강국 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747 구상'은 경기 침체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특히 임기 중 300만개 일자리 마련과 현재 7%대인 청년 실업률을 절반으로 낮추며,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을 60%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약속은 고용창출이 지상 과제로 떠오른 우리나라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알기로 역대 정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경제를 강조했다. 다만, 이명박 당선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실용주의가 더 한층 경제주의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기를 빈다. 보수 세력이 제시하는 시장만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상생 발전, 좋은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 사회적 약자 배려, 인권 신장 등과 같은 산적한 과제들을 풀 해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비는 흔하지만 사람은 귀하다


또한 이 당선인은 장애인 및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공약으로 <생애 희망 디딤돌 7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중에서 일곱 번째인 <장애인 희망 프로젝트>의 내용을 살펴보면, ① 중증장애인에 대한 기초장애연금 도입, ② 장애인, 저소득층 일자리를 위한 <사회적 기업> 육성, ③ 장애아동을 위한 연금제도 도입 및 특수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 ④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대중교통시설 개선, ⑤ 장애인 의료예방체계 구축, ⑥ 기초자치단체별 장애인복지관 설치 등이다. 이러한 사업은 장애인이 기본적으로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장애인이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매우 기초적이며 필수적인 사업이다. 무엇보다 이 당선인의 약속이 인상적인 것은, <생애 희망 디딤돌 7대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포함되는 폭넓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보편적 복지 :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이하의 일반 국민 대다수를 국가의 복지정책의 직접적 수혜계층으로 설정하고 있다. 둘째, 예방적 복지 : 빈곤과 질병이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충분한 고통을 주고 난 후에 국가가 개입하여 각종 지원을 하는 것이 기존의 제도였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삶의 고통을 치유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실직이나 교육사각지대에 처하기 전에 절실한 도움을 제때에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복지수혜계층을 줄여 복지비용을 줄일 것으로 예측되며, 질병과 빈곤을 예방하는 복지지출은 장래에 몇 배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셋째, 맞춤형 복지 : 기존의 사회복지 정책은 지원대상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혜택을 부여하다가, 기준에서 벗어나면 일시에 지원을 중단하는 구조였다. 그 결과 자립기반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지원이 단절되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이는 사람들이 복지체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주하려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 당선인의 복지정책 밑그림은 교육, 의료, 주거, 직업훈련, 노후생활 기반 등 한 개인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각각의 요소에 대해서 개인별 맞춤형 지원, 완전히 문제를 해소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도록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획기적인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장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중증장애인 기초연금 도입을 약속하면서, 18세 이상 중증장애인으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의 150% 이하인 자에게 중증장애인기초연금을 지급,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장애아동을 위해서 장애아동 특별보호 연금 가입 시 국가가 납입액의 30%까지 지원하는 장애아동 특별보호 연금제도 도입 등을 구체적으로 공약하였다. 장애인의 교육 분야에서는 타 후보와 비교될 정도로 괄목한 만한 공약을 내놓았는데, 이 당선인은 장애아동 보육에 대한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며, 구체적으로 중등교육에 대한 의무교육 적용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장애인 희망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스스로 제시한 복지철학을 정책에 일치시키고 제도로 확립하려는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책이나 제도의 목적에 적합한 시행기준을 만들어 일선에서 일관성 있게 반영되도록 해야 하고, 정책집행 과정에서 일체의 재정낭비 요소를 배제하는 효율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선인의 진실한 태도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어느 한 학자가 강연회에서 1000명의 청중에게 “1년 전 무엇을 고민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억난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민’이다. 그런데 ‘고민’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1년 후에는 기억조차 못할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부디, 1년 후에 이 당선인 스스로 약속했던 <장애인 희망 프로젝트>가 한낱 국정의 고민거리로 전락해 뇌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장애인의 참여 · 개방 증진과
장애인을 위한 단체에 편중된 국가 지원의 불균형 바로잡아야



지난 2007년 장애계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특히, LPG연료지원제도의 폐지는 차량소유자에게만 국가의 지원이 한정된다는 형평성 위배논리를 제도폐지 이유로 들고나온 정부에 대해 장애계를 대표한다는 메이저 기득권 단체들은 ‘곳간’이 차있어서인지 구체적이고 선명한 반박논리로 대응하지 못한 채 간헐적인 반대성명과 보여주기식 집회로 무기력하게 정부의 논리를 수용하고 말았다. 안이한 판단과 실책으로 소중한 장애인 제도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슬픈 자화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장애계 전체의 환골탈태와 장애인당사자를 중심으로 하는 장애인단체에 의해 장애대중의 의견이 올곧게 반영되는 민주적 구조를 주문한다. 이는 장애인당사자운동의 이론적 틀을 정교하게 만드는 활동과 장애인당사자주의의 재정립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필요하다면 당장이라도 장애인당사자의 정체성 논쟁에 불을 붙여야 한다. 애매모호한 출발점과 지향점을 다시 한번 걸러내 분명한 좌표를 설정해야 장애인 당사자들의 경험과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장애인들을 대상화시켜 적절하게 통제하는 ‘오만과 독선’의 재활 프레임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향후 전개할 장애인당사자 단체에 의한 장애운동은 <재활>에서 <자립>으로 변화되는 장애인정책의 패러다임에 ‘이념과 행동’에 입각한 능동적 대처와 ‘개인의 정치화’를 탈피하기 위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전한 ‘장애인의 정치세력화’를 가일층 강화해야 하며, 정책결정 과정에 장애인사회의 목소리를 폭넓게 반영하여 참여의 증진을 유도하고 장애인의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효율적인 제도적 장치를 보장해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다는 단체에 국가의 지원이 편중되는 심각한 불균형을 시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공정한 게임의 룰’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이제 이러한 행정 편의주의적인 지원정책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장애인 당사자들은 조직적인 저항을 준비해야 한다.

올 4월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하 장차법>의 경우, 법 자체가 장애운동의 목적이기보다는 수단으로 이해해야 하며, 장차법은 장애인의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활동의 공간을 확보한다는 차원일 뿐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장애인의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운동은 단기간의 어떤 입법을 통해서 일거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속적인 사회운동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당선인은 구랍 30일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의미의 ‘시화연풍(時和年豊)’을 선정했다고 한다. 내년 새해 아침, 떠오르는 해를 향해 올해와 똑같은 소망을 되풀이해서 빌게 될 지, 아니면 <장애인 희망 프로젝트>로 인해 우리나라의 모든 장애인이 시화연풍하게 될 지 두고 아무튼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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