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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호의 장애학 이야기
세번째 이야기마당 장애란 무엇인가?
세번째 이야기 마당. "장애"란 무엇인가?                                       윤 삼 호 (한국DPI 정책팀장)


정의의 중요성


어떤 대상을 ‘정의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대상을 사전적 의미로 설명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현실 속에서 어떤 대상이 어떤 것으로 정의되면, 사람들은 그 정의에 따라 자신들의 행동을 그 대상에게 맞추기 마련이다. 정의가 물화(物化)되는 순간이다. 예를 들면, 여성을 ‘아름다움’과 ‘연약함’으로 정의하면 여성들은 예쁜 치마를 차려입고 퇴근하는 남편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할 것이다. 또 흑인을 ‘야성’과 ‘일탈자’로 정의하면 흑인들은 운동선수나 사회 부적응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질 것이다. 그래서 부정적 정의는 부정적 결과를 낳고 긍정적 정의는 긍정적 결과를 낳는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이를 두고 토마스(Thomas)는 ‘만약 사람들이 상태들을 현실적으로 정의하면, 그들의 논리적 귀결에 따라 그것들은 현실이 된다’고 했다.

장애 개념도 마찬가지다. 장애를 ‘개인적, 의료적 대상’으로 정의하느냐 ‘정치적, 사회적 대상’으로 정의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장애인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출발선이 될 수 있다. 또한, 장애를 누가 정의하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성매매의 정의를 남성이 하느냐 여성이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장애에 대한 정의를 당사자가 하느냐 관련 전문가들이 하느냐에 따라 장애인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장애 개념을 둘러싸고 전문가들과 장애인 당사자들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장애 정의의 국제적 변천


< ICD와 UPIAS의 장애 정의 >


국제적 의료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WHO(세계보건기구)는 1952년에 질병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ICD(국제질병분류)를 만들었다. (ICD는 그 뒤 계속 수정되어 지금은 10번째 개정판인 ICD-10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당시, ICD는 질병을 ‘의학적으로 비정상이고 사회적으로 일탈한 것’으로 정의하였는데, 이것은 모든 장애인들의 건강 상태에도 적용되었다. 즉, 이때까지는 장애와 질병이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것으로 간주된 셈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유럽과 북미대륙을 중심으로 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장애인들은 자신의 장애를 질병과 같은 상태로 바라보는 ICD의 정의에 반발했다. 장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은 당사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UN은 1975년에 ‘장애인권리선언’을 내놓았는데, 여기서 장애인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ㆍ정신적 능력이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적 또는 사회적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자기 자신으로서는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정의하였다. 이 정의는 장애를 질병으로만 인식하던 시각에서 일보 전진한 측면은 있지만, 여전히 장애를 개인의 ‘결함’으로 바라보았다.
UN의 장애 정의는 당연히 장애인 당사자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그 선봉에 선 단체가 UPIAS(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 분리반대신체장애인연맹)였다. UPIAS는 영국의 정치적 장애운동 단체였는데, 1976년에 다음과 같이 독자적인 장애 정의를 제출했다.


손상(impairment) - 사지의 전체 혹은 일부분이 없는 것, 혹은 사지, 기관 혹은 신체 구조에 결함을 가진 것

장애(disability) -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거의 혹은 완전히 무 시함으로써 그들을 사회 활동의 주류로부터 배제시키는 동시대 사회 조직에 의한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약

위 정의에서 보듯이, UPIAS는 ‘손상’과 ‘장애’를 명백하게 구분하고, 장애는 차별과 배제로부터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UPIAS는 당사자 조직으로는 처음으로 ‘사회적 장애’ 개념을 제출한 셈이다.


< ICIDH와 DPI의 장애 정의 >


장애 정의를 둘러싸고 장애인 당사자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UN은 1976년 12월 총회에서 1981년을 ‘장애인의해’로 선포한다. 그러자 WHO는 잽싸게 새로운 장애 분류표를 발표하는데, 그것이 ICIDH(손상ㆍ장애ㆍ핸디캡에 관한 국제 분류)이다. ICIDH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주장을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장애를 정의하였다.

손상(impairment) -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손상이란, 정신적, 육체적 혹은 해부학적 구조나 기능의 상실이나 비정상을 일컫는다.

장애(disability) -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장애란, (손상 때문에) 한 인 간으로서 정상적인 방법이나 범위에서 행위를 할 능력을 제약받거나 상실한 것을 일컫는다.


핸디캡(handicap) -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핸디캡이란, 손상이나 장 애 때문에 주어진 특정 개인이 받는 불이익 - (나이, 성별, 사회적ㆍ 문화적 요소에 걸맞게) 그 사람의 정상적 역할을 충분하게 할 수 없 도록 제한하거나 가로막는 것 - 을 일컫는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ICDH는 ICD가 장애를 ‘질병’으로만 분류했던 것과는 달리 ‘사회적 장애’(즉, 핸디캡) 개념도 일부 수용했다. 하나씩 살펴보면, ‘손상’은 뇌성마비나 시력 상실과 같은 의학적 손상 혹은 신체 일부의 기능 부전 그 자체를 뜻하며, ‘장애’는 손상으로 야기된 신체적 기능의 제약이다. 그리고 ‘핸디캡’은 개인의 사회적 여건이나 일상적 환경 탓에 발생하는 불이익을 뜻한다.
  이처럼 ICIDH는 사회적 장애 개념을 수용하였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ICIDH는 장애의 원인을 손상으로 본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즉, ICIDH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 행위 능력의 ‘장애’를 야기하고, 또 이 때문에 사회적 불이익인 ‘핸디캡’이 생긴다고 봄으로써, 장애인의 사회적 불이익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적 장벽을 없애는 것보다 개인의 손상부터 치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중증인 뇌성마비인의 있다고 하자. 그(녀)는 뇌성마비로 인한 ‘손상’ 탓에 걸을 수가 없어서 훨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장애’이다. 이러한 손상과 장애 때문에 그(녀)는 이동하기 어렵고, 교육에서도 불이익을 받고, 직장도 가질 수 없는데, 이것이 ‘핸디캡’이다. 따라서 그 뇌성마비인의 핸디캡을 없애려면 그(녀)의 손상부터 치유해야 한다. 물론, 치유하는 사람은 의료 전문가여야 한다. 따라서, ICIDH는 결국 전문가주의를 강조하는 논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문가 집단의 논리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손상에서 장애로 장애에서 핸디캡으로
 


이런 한계 때문에 ICIDH는 또 다시 장애인 당사자들의 저항에 부딪친다. 이번에는 DPI(Disabled Peoples' International)가 나섰다. 1982년, DPI는 장애를 환경적, 사회적 억압으로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장애 정의를 내놓았다.

손상(impairment) - 신체적, 정신적 혹은 감각적 손상으로 야기된 개 인 내부의 기능적 제약

장애(disability) - 물리적, 사회적 장벽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 게 공동체의 정상적 생활에 참여하는 기회의 상실 혹은 제약


DPI는 UPIAS의 장애 정의를 그대로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976년에 UPIAS는 신체적 손상과 장애만을 정의하였다면, 1982년에 DPI는 신체적, 정신적, 감각적 손상까지 확대하여 장애 개념을 확대하였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UPIAS는 장애인 ‘배제’나 ‘활동 제약’을 강조한다면, DPI는 ‘참여’를 강조한다는 점도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DPI와 UPIAS는 WHO의 장애 정의와 반대로 손상과 장애는 직접적인 내적 연관이 없으며, 사회적 환경이 장애를 규정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 당사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손상부터 치유할 것이 아니라 사회부터 변화시키야 된다. 손상은 장애와 직접적 관련이 없지만, 사회적 차별과 장애는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손상과 장애, 사회에서로부터 영향


이처럼 장애인 당사자들은 전문가들의 견해와는 완전히 다른 장애 정의를 내놓았다. 즉, 당사자들은 전문가들과 달리 장애 정의에서 ‘개인’보다 ‘사회’와 ‘환경’을 더 강조한다. 따라서 장애가 ‘문제’라면 그것은 장애를 가진 개인 탓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질 부분이다. 장애의 인과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 ICIDH-2와 ICF >


이렇게 장애인 당사자들의 장애 정의가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자, 전문가들도 다급해졌다. WHO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장애 개념을 대폭 수용한 새로운 장애 분류표인 ICIDH-2와 ICF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1997년에 제출된 ICIDH-2는 손상 그 자체 보다 그로 인한 결과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만성질환과 그 후유증이나 손상보다는 그 결과로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제약을 더 중요하게 본다. 그래서 ICIDH-2는 기본적으로 환경과 개인이라는 맥락/상황 요인들을 고려한 장애 개념을 채택하고, 장애를 ‘손상’, ‘활동’, ‘참여’로 구분하여 정의하였다. ICIDH는 손상, 장애, 핸디캡을 일직선상으로 계열화하여 장애의 궁극적 원인을 손상에 귀결시켰다면, ICIDH-2는 장애를 손상, 활동, 참여 각각에 영향을 끼치는 상황 요인들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정의한 것이다.

ICIDH-2의 장애 개념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ICIDH-2에 의한 장애 개념
구 분 손상 유형 활 동 참 여 상황 요인
기능의 수준 신체
(신체의 부분)
개인
(전체로서의 개인)
사회
(사회와의 관계)
환경적 요인(기능상의 외부적 영향)
개인적 요인(기능상의 내부적 영향)
특 징 신체 기능
신체 구조
개인의
일상 활동
상황에서의 관련 신체적, 사회적, 태도적 환경
긍정적
측 면
기능적,
구조적 통합
활동 참여 촉진자
부정적
측 면
손상 활동 제한 참여 제한 장벽, 어려움
< 출처 : WHO. 1997 >
 

위의 도표에서 나타난 것처럼, ICIDH-2는 ‘손상’을 신체 구조나 물리적, 심리적 기능상의 상실이나 비정상으로 정의한다. 이에 해당하는 세부 분류로는 신체 기능과 신체 구조를 제시한다. ‘활동’은 일상의 과업(task)에서 기대되는 개인의 총체적 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단순한 행위(action) 차원 이상을 뜻한다.

예컨대, ‘활동’의 영역에는 보기ㆍ듣기ㆍ인지하기 / 학습ㆍ지식 적용ㆍ과업 완수 / 의사소통 / 운동 / 이동 / 일상생활 / 대인 관계 / 상황에 대한 반응과 대처 능력 / 보조 도구나 기술적 지원 등이 포함된다. ‘참여’는 상황 요소들 속에서 환경과 개인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뜻한다. 여기에는 개인의 유지와 보호에 대한 참여 / 이동성에 대한 참여 / 정보 소통에 대한 참여 / 사회적 관계에 대한 참여 / 교육ㆍ노동ㆍ여가ㆍ정신적 영역에 대한 참여 / 경제 활동에 대한 참여 / 지역 사회에 대한 참여 등이 있다.

따라서 ICIDH-2는 의료 모형과 사회 모형의 개념적 차이를 통합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즉, 장애를 ‘손상’, ‘활동’, ‘참여’라는 세 범주로 구분한 다음, 손상과 활동은 의료모형으로 참여와 상황/맥락 요인들은 사회모형으로 설명한다. 점점 전문가들의 장애 정의가 진화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장애 개념의 변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WHO는 2001년에 새로운 장애 개념인 ICF(기능ㆍ장애ㆍ건강에 관한 국제분류)를 발표한다. ICF는 ICIDH-2를 계승한 분류체계지만, 더 긍정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특히 환경적 측면을 강조한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ICF의 장애 정의
신체 기능 신체 기능 - 신체의 생리적 기능
손상 - 신체 일부의 심각한 변형이나 손실 등 신체 기능의 문제들
신체 구조 신체 구조 - 장기, 사지 및 그것의 구성요소 등 해부학적 부분들
손상 - 신체 일부의 심각한 변형이나 손실 등 신체 기능의 문제들
활동과 참여 활동 - 개인의 과업 수행이나 행동
참여 - 생활 상황에 관계하는 것
활동 제약 - 한 개인이 활동을 수행할 때 겪는 어려움들
참여 제약 - 한 개인이 생활 상황에 관계할 때 겪는 문제들
구 분 환경 요인 - 사람들이 생활하고 삶을 영위함에 있어서 물리적,
사회적 환경과 태도
< 출처 : WHO. 2001 >
 

위 도표에서 보듯이, 개인의 기능은 신체 기능과 구조, 활동과 참여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의 기능들은 환경적 요소(인식, 태도, 턱, 배제 등)와 개인적 요소(성, 나이, 피부색, 습관, 성격 등)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달리 말하자면, 호흡기 손상 때문에 호흡기의 기능이 제약되면 활동이 제약당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 참여도 제약 당하는데, 이 모든 것들은 기능적으로 서로 연관되어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때, 각각의 기능은 호흡기 손상이라는 건강 상태와 대기 오염이라는 환경적 요인, 환자의 개인적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된다.

하지만 문제는, WHO가 장애인 당사자들의 압력에 밀려 장애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을 받아들여 ICIDH-2나 ICF를 만들었지만 의료적 시각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손상이나 질병을 장애의 원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 집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손상을 장애 범주에 끌어들이려 하고(그래야 먹고 살지!), 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장애를 사회적 범주에 집어넣으려 한다(그래야 인간답게 살지!)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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