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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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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절벽’ 사태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정보접근권 심상득 (사회적기업 웹와치 경영지원부 부장)
웹접근성이란?

 웹접근성이란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정보통신 기기나 서비스를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2000년대 들어 그 개념이 도입되었으며,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을 비롯하여 장애인 단체들의 노력으로 2009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에 명시되었다. 장차법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들로 하여금 웹, 모바일, 소프트웨어, IT기기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장애인 접근성을 의무화 하였으며, 접근성 의무화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올해 4월 13일 전면 의무화에 이르렀다.

민간자율인증에서 국가인증으로

 웹접근성 품질인증은 웹사이트 등이 한국형 웹콘텐츠 접근성 지침 2.0을 준수하는지 여부와 실제 장애인 사용성 여부를 평가해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웹사이트 등에 인증마크 또는 인증서를 부여하는 것으로 장차법 등 접근성 관련 법?제도의 도입에 따라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정보화진흥원과 장애인단체 및 그 부설기관 등 7~8개 기관이 자율적으로 실시해오고 있었다. 민간자율인증은 웹접근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한편 실질적으로 접근성을 개선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던 반면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품질인증기관이 부실하거나 지나친 상업적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품질인증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품질인증의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5월 23일 『국가정보화기본법』을 개정하였다. 그간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던 품질인증을 국가가 지정하는 기관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법은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11월 23일 시행에 들어갔다.

인증절벽 사태

 웹접근성 품질인증과 관련한 국가정보화기본법 개정법의 주요 내용은 접근성 관련 주무기관인 한국정보화진흥원(이하 진흥원)으로 하여금 미래창조과학부를 대신해 인증기관을 심사, 지정, 관리하는 감독기구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정법 시행일인 11월 23일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지정을 받은 품질인증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11월 23일 이후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지정을 받은 기관만 품질인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민간인증기관들은 인증심사를 할 수 없다. 지정 기관은 존재하지 않고, 기존 민간인증기관은 품질인증을 할 수 없는 인증공백상태, 즉 ‘인증절벽’ 상태가 발생하였다. 장애인들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민간인증기관들은 품질인증 중단에 따른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고, 연내 품질인증을 계획하고 있던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들(홈페이지 운영자 등)은 아닌 밤중에 홍두께라고 낭패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선의’로 포장된 ‘무지’ 또는 ‘무책임’

 ‘인증절벽’사태에 대해 미래창조과학부는 인증기관 지정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존 민간인증기관들이 인증심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경과규정을 시행령에 담으려 하였으나 법제처 심사에 걸려 삭제되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실제로 11월 초순까지 미래창조과학부 담당자들이 그렇게 안내했으니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기존 민간인증기관들을 배려하려한 선의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선의’로서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때론 ‘선의’가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한 달 후에는 꼭 갚을게’라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낭패를 보는 장삼이사들의 상사(常事)가 여기에 해당한다. 갚겠다고 약속하는 순간 그는 진심이었을 것이고, 실제 꼭 그리하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상황이나 능력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그 약속을 믿었던 상대는 더 큰 수렁에 빠지게 되는 ‘나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미래창조과학부 담당자들은 6개월 동안 이 제도를 준비할 수 있는지 법 개정 시점에서 면밀히 따져 그 내용을 법률조항에 반영했어야 했다. 법률체계를 잘 모르는 민간인이라면 모르겠지만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법률의 위임이 없는 시행령 규정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선의’로 포장된 ‘무지’나 ‘무책임’은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인증절벽 사태의 원인은 ‘소통부재’

 법 개정 초기 단계부터 민간기관들은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하 당국자)에 지속적으로 대화와 의견수렴을 요청했다. 민간기관들의 대화 요청에 당국자들은 ‘법이 만들어지고 나면 부르겠습니다. 이해관계자들을 접촉하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인증기관들 중 누구는 만나고 누구는 안 만나면 문제가 됩니다.’라면서 소통을 거부했다. 민간기관들은 실제 인증시장을 모르는 분들이 어쩌려고 저러시나 하면서 걱정했지만 한사코 만나지 않겠다는 분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소통부재’는 결국 민간인증기관들에겐 ‘인증절벽’에 따른 극심한 경영난을, 연내 인증을 계획하고 있던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들에겐 계획차질이라는 손해를 안겼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하 당국자)은 지난 12월 13일 한국정보화진흥원 등촌청사에서 <웹 접근성 품질인증기관 지정 및 품질인증 등에 관한 고시> 설명회를 개최했다. ‘인증절벽’사태에 대한 각계의 문제제기와 비판을 수용하여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물론 법 개정시점부터 시행일까지 6개월간 저런 태도로 준비했으면 오늘 같은 ‘인증절벽’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국자들은 왜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반복할까?

민간인증 vs 국가인증

 12월에 <웹 접근성 품질인증기관 지정 및 품질인증 등에 관한 고시>가 공포된다. ‘요령’이 남아있지만 고시의 공포로 품질인증제도와 관련한 법령 정비는 큰 틀에서 마무리되는 셈이다. 고시 공포 직후 품질인증기관 지정 공고를 내고 신청 접수에 들어갈 것이다. 민간인증에서 국가인증으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대한민국은 행정부의 권력이 막강한 나라다. 그리고 문화적으로 획일화된 기준을 좋아한다. 민간의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기준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정부가 법과 제도로 ‘표준’을 정하는 것을 선호한다. 웹접근성 품질인증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시 개정법률안의 검토보고서는 “웹 접근성 품질인증은 2007년부터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장애인인권포럼,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등 6개 단체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해 왔으나, 국가표준, 국제표준, 자체제작 기준 등 각기 다른 인증기준을 적용함에 따라 웹 접근성 품질인증의 신뢰성 및 안정성이 다소 미흡”해 “장애인 등의 정보접근성 제고를 위해 웹접근성 준수여부를 점검할 수 있는 공통의 인증기준이 필요할 것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사실과 약간 다르다. 대부분의 기관은 공통적으로 <한국형 웹콘텐츠 접근성 지침 2.0>(KWCAG2.0)을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용성과 관련해서는 약간씩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사용성의 경우 정성적 평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사실 하나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획득하는 기관이 기준을 선도할 수밖에 없다. 공통의 인증기준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형식논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비현실적이다. 민간 자율에 맡겨 인증기관들이 공동 연구나 세미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준을 다듬어가고, 시장경쟁을 통해 변화하는 기술적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기업이 기준을 선도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인증은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국가인증 하에서 ‘시장 경쟁’을 대신할 수 있는 ‘사용성 관련 품질인증 기준의 지속적 진화 기제’를 찾아내는 것은 숙제다. 접근성 분야와 관련이 있는 모든 기관, 전문가, 당사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면허시험장 방식 vs 종합운전학원 방식

 지금까지 인증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왔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하던 시험방식과 민간인증기관들이 하던 진단?컨설팅 후 졸업방식이다. 비유하자면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인증심사 방식은 ‘면허시험장 방식’이고, 민간인증기관들의 인증심사 방식은 ‘종합운전학원 방식’이라 하겠다. 각각의 방식이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기준을 정해 놓고, 그에 달하면 합격, 그렇지 못하면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시험방식은 매우 심플하다. 하지만 시험을 본 측에서는 무엇 때문에 탈락했는지 알지 못한다. 항목별로 가부를 표시하고 점수를 매기더라도 컨설팅 없이는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종합운전학원 방식’은 응시자가 궁극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문제점을 진단해주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안내하기 때문에 응시자에게 친절한 방식이다. 물론 학원과 응시자간 유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두 방식의 장단점을 비교 계량하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인증제도의 도입 취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 방식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필자는 장애인 접근성을 갖춘 홈페이가 많아져『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정보접근권’이 향상되고, 확대되도록 하는 것이 ‘웹접근성 품질인증 제도’의 도입 취지라고 생각한다. 인증제도 따로, 접근성 따로가 아니라면. 이런 측면에서 보면 종합운전학원 방식이 더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종합운전학원 방식’에 대한 오해

 혹자는 웹접근성 진단?컨설팅과 인증의 관계를 건설의 시공-감리 관계에 비유하면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다. 딱맞는 것은 아니지만 건설의 시공-감리 관계를 굳이 IT에 대입하면 그것은 개발-인증의 관계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시공-감리 관계에 기초한 ‘공정성 문제제기’는 적합하지 않은 비유다.

 또 다른 혹자는 진단?컨설팅과 인증심사를 동일한 기관으로부터 받는 것은 개인교습 교사가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것과 같다면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웹접근성 품질인증이 국가표준지침에 근거한 절대평가라는 점에서, 교사에 따라 시험문제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험문제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품질인증은 자동차 운전면허 기능시험과 유사하다. 기능시험에서 교습은 시험의 공정성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정 공정성이 의심스러우면 감독기관이 품질인증 마크를 받은 사이트들을 무작위로 뽑아 적정성 여부를 체크한 후 문제가 있는 인증기관에 대해 주의, 경고, 인증심사 중지, 지정 해지 등의 페널티를 부여하면 될 것이다.

웹접근성 품질인증 제도의 목적은 정보접근권 향상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품질인증제도의 목적은 정보취약계층의 정보접근권 향상이다. 인증제도에 관한 모든 논의는 이 기준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인증제도를 기술적으로 분리해 그 자체의 완결성을 논하는 것은 ‘영혼이 없는 지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웹접근성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 접근성 자체는 의무화되어 있지만 품질인증이 의무화되지 않은 상태를 감안할 때, 인증제도 활성화까지는 상당한 험로가 예상된다. 작은 욕심과 단견에 빠져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과도한 욕심으로 밥상을 엎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품질인증제도를 정착시키고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민간인증기관들이 주도적으로 관계기관을 설득하고, 장애인단체 및 장애인 당사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모두에게 편리한 웹?모바일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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