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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 장 애 운 동 사 번역/ 윤삼호(한국장애인인권포럼 정책위원)

 이 글은 Doris Zames Fleischer와 Frieda Zames가 함께 지은《The Disability Rights Movement》를 요약 번역한 것이다. 편의상, 주석은 모두 생략하였다.

  < 글싣는 순서 >

제1장 장애와 이미지: “휠체어에 묶인”, “포스터 아이”
제2장 촉감으로 보고 손짓으로 듣고
제3장 탈시설과 자립생활
제4장 장애권 법률의 효시: 재활법 504호
제5장 변화를 향한 투쟁: 길거리에서, 법정에서
제6장 미국장애인법(ADA)
제7장 노동 접근권과 보건
제8장 “NOT DEAD YET”와 의사조력자살
제9장 장애와 과학기술
제10장 상이군인들의 권리 요구
제11장 교육: 최소제약환경으로의 통합
제12장 정체성과 문화

제9장 장애와 과학기술

 리처드 트리너(Richard B. Treanor)는 장애운동을 “과학기술 혁명의 부산물”이라고 했다. “획기적인 의학의 발전, 청각 및 언어 손상자가 전화를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의 개발, 그리고 전동 휠체어가 진보하면서 더 많은 중증 장애인들이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일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고, 더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했더라도 장애운동이 없었더라면 장애인들에게 이 같은 과실이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

 선구적인 디자이너이자 소아마비 휴유증으로 휠체어를 사용했던 로널드 메이스(Ronald L. Mace)는 “이 세상이 장애물로 가득 찬 채로 발전하자”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는 획기적인 개념을 고안해냈다. 노스캐롤리나주립대학에 다닐 당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들려서 계단을 오르내렸을 뿐 아니라 휠체어를 탄 채로는 기숙사 방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 그는 1966년에 그 대학을 졸업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인을 비롯한〕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 생애에 걸친 편의를 제공하는 디자인을 창출하기 위해 최소 규정과 기준을 초월하는” 접근 가능한 환경에 대한 “전체론적 접근(holistic approach)”이었다. 휠체어 디자이너인 랠프 호치키스(Ralf Hotchkiss)는 환경 개선을 위한 기반시설을 재설계하고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는 발명가, 예술가, 건축가들이 노력한 덕분에 진화하고 있는 “인간 상호작용의 혁명”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물에 대한 물리적 설계 방법의 일대 변화가 없다면,〔장애인을 통합하기 위한〕정신의 변화는 더욱 더딜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주로 기존 제품 및 환경을 창조적으로 개조하고 디자인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실용적이고 경제적이다. 이를 테면, 어린 아이나 휠체어 사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높이로 카운터(counters)를 만든다거나 시력이 약한 사람이나 노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큰 라벨(labels)을 부착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비싸지도 않다. 하지만 장애운동가 프랭크 보우(Frank Bowe) 교수는 기술적으로 실현 불가능할 경우가 너무 많은 게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이 강력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 비난을 받는 실질적인 이유는 통합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탓일 것이다. 아니면, 좀 더 은밀한 이유를 들자면 아마도 공중을 보호한답시고 비용 핑계를 대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한 가지 들자면, 1992년 뉴욕시는 길거리에 첨단 유료 간이 화장실을 시범 운영하면서 휠체어 접근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화장실 제조업체 JC데콕스(JCDecaux)는 이전에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도시에 판매했던 것과 똑 같은 화장실을 미국 전역에 공급하고 싶었다. 그런 나라에는 ADA 같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었다. JC데콕스는 모든 길거리 간이 화장실을 ADA와 “유니버설 디자인”에 부합하도록 동일한 모델로 설치하는 대신 별도의 장애인용 화장실 모델을 공급한 이유를 설명했는데, 당시 <뉴욕타임즈> 사설은 그의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그대로 지면에 실었다. “모든 화장실이 휠체어 사용자가 들어갈 정도로 넓으면 불가피하게 매춘과 마약 남용 같은 불미스러운 행위를 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 그래서 제조회사가 접근 가능한 화장실을 별도로 만들어 열쇠 카드를 가진 장애인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6개월 뒤, 시사 잡지 <뉴욕>은 “화장실 전쟁”이라는 제목과 “장애권을 둘러싼 전투 때문에 무고한 보행자들이 길거리를 다닐 수 없다”는 부제가 붙은 기사에서 JC데콕스가 일반 대중을 걱정하는 척하는 펼치고 있는 캠페인을 두둔하고 나섰다. 이 보다 두 달 전에 방영된 ABC의 시사 프로그램 <20/20>은 “좋은 계획이 또 다시 물거품이 되다 There Goes Another Good Idea”라는 제목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 <뉴욕타임즈>처럼 <뉴욕>과 <20/20>은 장애인 사회가 과학기술의 진보를 방해한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상식의 죽음 The Death of Common Sense>(1994년)에서 필립 하워드(Philip K. Howard)는 오도된 관념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뉴욕시에서,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려던 것이 예상치 못하게 길거리 간이 화장실을 사실상 금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위선으로 가득 찬 JC데콕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과학기술은 접근 가능한 화장실의 크기 때문에 발생한 사회 문제에 대처하는데 무용지물이다.

 JC데콕스가 이 같은 딜레마에 대처하는 방식은 두 가지 모델 - 일반 공중을 위한 “우아한 간이 화장실”과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접근 가능한 화장실 - 로 분리된 불평등한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접근 가능한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장애인들은 특별한 카드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화장실 주변에 하루 종일 보조인이 붙어 있어야 했다. 일반 간이 화장실과 달리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자동 물내림 및 세척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워드는 사실 관계의 복잡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일반 간이 화장실은 한 달에 평균 3,000번 정도 물을 내리는데 이는 파리의 평균 물내림보다 50% 이상 많은 횟수다. 그런데 장애인을 위해 넓게 제작한 화장실은 거의 사용되지 않을뿐더러 풀타임 보조인을 고용하느라 비용을 낭비한다.”

 하워드의 주장처럼 장애운동가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모두 사용하지도 않을 과학기술을 요구하는 “비이성적인 광신자들”이라는 게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고 쳐도, 장애인 사회가 넉 달 동안 시범적으로 운영된 길거리 간이 화장실을 거부한 까닭은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였다. 사실, 접근 가능한 길거리 화장실은 적절한 편의시설을 갖춘 화장실을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던 휠체어 사용자 특히 장애 여성에게 아주 편리했다. 그럼에도 장애운동가들이 시위를 한 것은 이류 시민의 지위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에 따르면, 휠체어 사용자를 비롯한 이동 보조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어린 아이, 유모차와 동행하는 사람, 큰 짐이나 가방을 가진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이 이 같은 “넓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

 뉴욕시가 JC데콕스 시범 사업을 마무리한 직후에 샌프란시스코는 ADA에 부합하는 길거리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기 위한 사업 제안서를 공모했다. 샌프란시스코 장애운동가들은 뉴욕시 같은 대도시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더 컸다. 또 뉴욕시와 달리 샌프란시스코의 공무원들은 JC데콕스 같은 유명한 기업뿐 아니라 다양한 간이 화장실 제조업체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그러자 심지어 독일과 이스라엘에서도 제안서가 답지했다. 이 업체들은 모든 화장실을 ADA 규정에 부합하도록 단일 디자인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화장실 넓이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JC데콕스도 뉴욕시 거리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일 디자인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적 문제를 곧바로 해결할 수 없을 때조차도 해법을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창조성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결단력이 부족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법이다.

 뉴욕시가 넉 달 동안이나 시범 사업을 하고나서도 장애인들 때문에 간이 화장실 도입에 실패했다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실패의 원인은 JC데콕스가 무례하게 광고가 부착된 간이 화장실 디자인 2~3가지 모델을 제시하자 뉴욕시 지역사회위원회(community board)가 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반대하는 주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JC데콕스가 자사 디자인을 사용하면 관리 비용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지역사회위원회는 광고 때문에 동네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접근 가능한 간이 화장실 문제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오류는 장애인들의 관심사에 대한 의료 전문직의 무감각함에 비교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휠체어 접근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건축된 병원들이 많아 장애인들은 출입문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 의사들의 진료실 안에 있는 화장실에는 아직도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많다. 탁자를 “유니버설 디자인”에 맞추려면, 이동성 손상자를 비롯하여 노인과 어린 아이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높낮이 조절 장치 같은 비교적 간단한 기술적 개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의료 시설에서 이런 유형의 탁자를 보기 어렵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이 시력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컴퓨터나 복사기를 이용하여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큰 활자로 된 서류를 제공하는 경우도 아주 드물다. 맹인들이 문자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녹음 테이프를 제공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의료진과 청각 장애인이 의사소통을 하려면 극장에 비치한 것과 같은 청력 보조도구가 필요하지만, 그런 장비를 제공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ADA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농인들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수화통역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거의 없다. 실제로, 마운트시나이의료센터는 라마스 분만 교실에 참여하는 임신한 청인 아내에게 수화통역사를 제공하라는 농인 제프리 브라빈(Jeffrey Bravin)의 요청을 묵살했다. 그 센터는 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주와 연방 법률을 위반하고 불법적으로 남편을 차별했다. 이 부부의 변호사 앨런 리치(Alan J. Rich)는 이렇게 말했다. “출산 과정이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인〕‘마르크스 형제(Marx Brothers)의 영화’ 같았다. 브라빈 부인은 브라빈 씨가 해야 할 일을 단음절로 해석해 주느라 무진 애를 썼다.”

 버스에 리프트가 장착되면서 장애인의 욕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방식, 즉 더욱 평범한 과학기술을 통해 의료시설 접근성을 제고해야 한다. 1990년 뉴욕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으로부터 상당한 기부금을 받아 지역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고, 특히 장애인들이 완전히 접근할 수 있는 1차 케어 시설을 설립하였다. 이렇게 하여 1995년 8월에 다운타운패밀리케어센터(Downtown Family Care Center)가 문을 열었다. 장애인 서비스와 자립생활센터 같은 권익지원단체가 기부금을 받아 유니버설 디자인에 부합하는 환경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이 센터가 처음이다. 이 센터가 이례적이었다는 사실은 1990년대까지도 많은 의료 시설들이 접근성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접근 가능한 택시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택시를 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일부 대도시는 이처럼 중요한 과학기술을 거부하고 있다. 접근 가능한 택시로 탈바꿈한 미니밴 후미에는 주로 높이를 낮춘 바닥, 수동 조작 경사로, 유압식 “닐링(kneeling)” 현가 장치가 구비되어 있다. 이렇게 개조된 미니밴을 운전하는 휠체어 사용자를 보면 이런 차량을 접근 가능한 택시로 이용하는데 기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2000년대 후반까지도 기술적인 문제를 핑계로 미국에서 택시가 가장 많은 뉴욕을 비롯한 많은 도시들이 접근 가능한 택시를 운영하지 않는다.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택시를 위한 기계적 개념은 이미 오래 전부터 확립되어 있다. 이 개념은 접근 가능한 버스에 적용된 기술과 비슷하다. 장애운동가들의 압력 때문에 1970년대 후반에 버스에 장애인을 위한 과학기술 - 제품을 트럭에 싣고 내리는 유압식 리프트와 비슷한 기술 - 이 적용되었다. 일부에서 수익 구조 악화를 우려하지만, 택시에 이런 과학기술이나 경사로를 설치하여 휠체어를 접근 가능하도록 하는데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접근 가능한 택시의 도입과 관련하여 업체와 정부는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선입견을 한사코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텔레타이프라이터와 중계 시스템

 1934년 통신법(Communication Act)은 표면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전화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실상은 청각장애인들은 이런 과학기술을 이용할 수 없었다. 텔레타이프라이터(teleprinter, TTY)는 물론이고 전화 증폭기 같은 현대적인 통신 수단이 개발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또는 어린 나이에) 농인이나 난청인이 된 사람들과 나이가 들면서 청력을 상실한 사람들의 수를 감안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전화기에 보조공학 장치가 없어서 전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TTY가 개발되고 난 이후에 비로소 1934년 통신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 특히 1971년 저렴한 소형 모델이 출시되자 TTY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였다.

 TTY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과 소통이 되자 않아 이 신기술의 이름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졌다. 1979년에 TTY가 농인 텔레커뮤니케이션 장치(telecommunication device for the deaf, TDD)로 명칭이 한 차례 바뀌고 1990년에 다시 텍스트 전화기(text telephone, TT)로 바뀌었다. TDD가 농인뿐 아니라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는 게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농인 사회는 미국 수화에서 TT는 화장실을 의미하는 손동작과 비슷했기 때문에 TTY라는 명칭을 고집했다.

 TTY는 자판과 스크린으로 구성된 “전화기”인데, 점멸등으로 “전화 벨”을 표시한다. 농인들은 메시지를 자판으로 쳐가면서 전화로 대화를 할 수 있다. 중계 시스템이 TTY와 일반전화기를 연결해주기 때문에 농인과 청인이 서로 대화할 수 있다. 농인이든 청인이든, 숫자 800을 누르면 누구나 전화를 먼저 걸 수 있다. 그러면 전화 교환원이 농인에게는 스크린에 글자를 찍어주고 청인에게는 음성으로 전달하는 중계 역할을 한다. ADA 제4장이 1993년 12월까지 미국 전역을 하나의 중계 시스템으로 연결하도록 규정하기 전까지 몇몇 주에서만 이런 시스템을 갖추었는데, 그 가운데 캘리포니아주가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버스에 리프트를 장착하도록 규정한 법률이 유용한 과학기술을 도입하도록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면, TTY는 1934년 통신법의 실질적인 이행의 가능성을 열었다.

 문화 충돌

 테레사 수녀가 1989년에 뉴욕시 노숙자를 위한 쉼터 설립을 계획하면서 자신의 금욕주의적 신앙 정신에 따라 식기 세척기와 세탁기 같은 현대적 기구의 사용을 거부했을 당시, 그녀는 그 도시의 건축조례가 자신이 거부했던 기계적 장치 즉 엘리베이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테레사 수녀는 이동성 손상자들의 위험과 굴욕을 도외시하고 그들을 들어서 계단을 오르고 내릴 작정이었다. 필립 하워드는 엘리베이터 설치를 강제하는 법규를 조롱하였고 수많은 노숙자들을 위한 전통적인 과학기술인 엘리베이터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 누구도 테레사 수녀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법이다. 그런데 이 법이 요구하는 것은 상식의 전복이다.” 저소득층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계단은 끔찍한 장애물이다. 엘리베이터는 하워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중산층 표준”을 만족시키는 시시한 장비가 아니라 장애인들에게는 필수품이다.

 더욱이 테레사가 주도하는 자선의 전도(Missionaries of Charity)가 엘리베이터 문제 때문에 뉴욕시 노숙자 쉼터 건립 계획을 단념했다는 하워드의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 사실, 그들이 뉴욕시에서 철수한 것은 엘리베이터 논란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기금을 미국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에 더 많이 사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제에 대해 타협을 하지 않았던 장애인 사회의 결정은 타당했다. 계단을 오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엘리베이터는 시간과 노력을 아끼는 편의시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독립, 존엄성, 평등을 의미한다.

 원스텝 운동

 장애인과 노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과학기술을 도입하려는 노력의 또 다른 사례는 1993년 뉴욕시에서 시작된 원스텝 운동(One-Step Campaign)이다. 뉴욕시는 아파트, 상점, 식당 같은 건물을 지을 때 출입구 앞에 계단을 하나 설치하는 전통이 있었다. 보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계단 하나쯤은 대수롭지 않지만 대다수 휠체어 사용자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모욕을 당하지 않고서는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다. 이럴 경우 대개는 경사로를 설치하여 단차를 없애는 것이 ADA 규정을 “손쉽게 준수하는” 조치다. 이렇게 접근 가능한 설비를 갖추면 유모차나 쇼핑 카트를 끌고 가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많은 고객들이 편리하기 때문에 사업주에게도 유리하다.

 계단 하나를 경사로로 대체하는 것은 저렴하고 손쉬운 조치이기 때문에 ADA나 지방 정부의 법률에 의해 의무적으로 이런 정도의 개조를 해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원스텝 운동이 장애 운동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 필요한 개선 조치를 어떻게 취하느냐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첫째 많은 사업주들의 사고를 바꾸는 게 어려웠고, 둘째 계단을 경사로로 대체함으로써 고객과 사업주에게 생기는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휠체어의 발달

 이동성 손상자들에게는 건축물 환경의 변화 뿐 아니라 정교한 휠체어 디자인도 필요하다. 1937년 에베레스트 & 제닝스(Everest & Jennings, E&J)의 휠체어 특허품은 이전 모델을 개선한 것이지만 당시에는 E&J가 휠체어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서 더 나은 제품의 출시가 억압되었다. 1977년 미국 법무부가 반독점 소송을 벌이고 때마침 신흥 휠체어 제조사들이 등장하면서 휠체어 생산과 유통을 둘러싸고 미국과 전 세계의 목을 조르던 E&J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더욱이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장애인 당사자 재활 공학자들이 거의 없어서 휠체어 현대화가 성공하지 못했다. 1980년대까지 경쟁이 없었기 때문에 휠체어 사용자들이 혜택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재활 공학자들이 급증하고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휠체어 디자인 혁명이 시작되었다.

 땅이 거칠고 자원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분쟁, 질병, 부적절한 의료 같은 재앙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창조적으로 휠체어를 제조하고 보수하려는 사고의 원천이 되었다. 랠프 호치키스의 주장을 들어보자.

 제3세계의 많은 자전거 제조업자와 대장장이들은 일정한 수준의 실무적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기계적으로 최적화된 새로운 휠체어 모델을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우리는 신형과 구형을 혼합해야 한다. ... 도로가 울퉁불퉁하고 자동차가 별로 없기 때문에 개발도상국 휠체어 사용자들은 어떠한 지형에서도 탈 수 있는 휠체어를 훨씬 더 많이 이용한다. 신형 휠체어를 구매할 돈이 훨씬 적기 때문에 많은 휠체어 사용자들이 휠체어를 수리, 개조, 개선하여 이용한다. 우리는 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개발 경험을 공유하도록 도움으로써 새로운 휠체어 디자인이라는 금광을 개척하고 있다.

 미국 최고의 휠체어 발명가 겸 디자이너이면서 휠체어 기술을 전 세계로 보급한 랠프 호치키스는 1989년에 맥아더상을, 그리고 1994년에는 헨리베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받았다. 호치키스는 장애인 보조공학의 창시자의 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개발한 이동 보조도구로 특허 신청을 하지 않고 일반 대중에게 개방하기로 유명하다. 창조적인 프로세스가 지속되도록 장려함으로써 E&J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호치키스는 하이테크의 매력에 현혹되지 않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실용적인 디자인을 선호한다. 이를 테면,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척수손상자를 위한 컴퓨터 보행기구 같은 고가의 과학기술이 아니라 저렴하고 쉽게 수리할 수 있는 맞춤한 휠체어와 무장애 환경 덕분에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그는 모든 나라에서 극도로 고용율이 낮은 인구 집단인 휠체어 사용자의 이동성을 제고해야 장애인의 고용 기회가 확대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에드 로버츠와 쥬디 휴먼이 세계장애연구소(World Institute on Disability)에서 이룬 업적을 계승하고 휠체어 사용자의 보편적 관심사를 존중하는 호치키스는 장애 쟁점을 국제화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호치키스는 1989년 샌프란시스코스테이트대학 안에 휠드모빌리티센터(Wheeled Mobility Center)를 설립하고 대학 내 장애 학생들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학생들을 위한 국제휠체어프로그램(International Wheelchair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과업을 수행하는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걱정하지만 집안에서 쉽게 조종법을 익혀 비포장 도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휠체어를 고안하려고 노력한다. 휠체어 사용자가 다른 휠체어 사용자의 요구를 잘 알기 때문에 재활공학에 장애인 당사자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호치키스는 촉구한다. 아울러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장애인들은 자신과 비슷한 손상을 가진 기술자들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목격하였다. 휠체어가 필요한 사람들이 2천만 명에 달한다 - 개발도상국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 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호치키스는 휠체어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전문 기술자 6만 명을 양성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그의 창조성은 그 이전에 폐쇄적인 생각으로 융통성 없는 휠체어를 만들었던 제조업자들과는 정반대다.

 호치키스가 실현한 새로운 휠체어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오늘날 휠체어 운동선수나 댄서가 사용하는 공기역학을 감안한 유선형 휠체어 같은 개별 사용자들의 욕구에 꼭 맞는 모델이 없었다. 오늘날 전동 휠체어와 컴퓨터 탑재 휠체어는 과학기술을 소비자에 맞게 접목시킬 뿐 아니라 장애 정도와 유형이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와 같은 보조기구가 발명되기 전에는 혼자 힘으로 휠체어를 조작할 수 없었던 많은 전신마비인들이 정말로 휠체어에 “묶이고” “구속”되었다. 휠체어가 독립적인 이동이라는 자유를 전혀 보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많은 노인들이 전동 스쿠터를 사용하면서, 그리고 스쿠터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감소하면서 이제 더 이상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주류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게다가 모듈로 된 디자인을 채택하는 휠체어 제조업자들이 점차 증가하면서 분리되는 유닛(units)이나 부품으로 제조된 휠체어가 주목을 받는다. 모듈 디자인을 채택한 휠체어와 스쿠터는 가격이 합리적이고 수리가 손쉽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자신의 보조기기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없는데도 모듈로 된 접이식 전동휠체어가 많이 생산되지 않아서 아쉽다. 모듈로 된 접이식 전동휠체어와 스쿠터는 자동차에 싣기가 편리해서 사용자의 이동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모듈 디자인은 중요한 공학 기술이다.

 앤드류 와이스(Andrew Wyeth)가 1942에 그린 유명한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 Christina's World>를 보면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된 젊은 여자가 맨땅에 주저앉은 채 시야가 좁은 경치를 바라보고 있다. 존 호켄베리(John Hockenberry)는 1995년에 쓴 자서전 <교통 위반 : 전장, 휠체어, 그리고 독립 선언 Moving Violations : War Zones, Wheelchair, and Declaration of Independence>과 1996년에 쓴 <바퀴살 사내 Spoke Man>에서 휠체어를 타는 언론인으로서 전 세계에서 겪은 일들을 묘사했다. 아이어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자의 제한된 시야와 호켄베리의 책에 나오는 자유로운 시각은 아주 대조적이다.

 접근 가능한 교실과 실험실

 호치키스의 임기응변을 연상시키듯, 뉴저지테크놀로지연구소의 이라 코친(Ira Cochin)과 프레스노퍼시픽대학 생물학자 벤 반 와그너(Ben Van Wagner)는 혁신적인 교실과 실험실을 만들었다. 맹인이자 농인인 코친은 1977년에 이른바 매크로랩(Macrolab)이라는 장치를 고안하여 감각 및 언어 손상자들이 학교와 기업에서 비장애인들과 통합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코친은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를 마이크에 연결하여 스크린을 통해 음파를 보여줌으로써 (청인뿐 아니라) 농인 학생도 전류의 변화 양상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코친이 만든 실험도구 덕분에 맹인 학생들은 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분광기를 사용하여 특정 제품의 화학적 구성 요소들을 확인하고, 정밀한 저울을 사용하여 밀리그램 단위까지 중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뉴저지테크놀로지연구소 매크로랩 관리자이자 맹인 화학자인 윌리엄 스카빈스키(William Skawinski)는 실험실에 있는 음성 합성기 “설계”를 예를 들면서,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이런 장치의 도움을 받는 학생들이 모든 실험도구의 개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와그너는 꼼꼼한 연구와 많은 의료 상담을 거친 뒤에 “빌딩질환증후군(sick-building syndrome)” 염려가 없는 환경을 고안했다. 과학교육학과 교수인 와그너는 자신이 화학물질과민증(multiple chemical sensitivity) 진단을 받았을 때 받았던 느낌을 이렇게 설명한다. “1990년대 화학물질의 독성 때문에 결국 내 몸의 면역 체계가 약화됐다.” 그 결과, “피로감, 현기증, 관절염이 너무 심해 걸어다닐 수조차 없었다.” 그는 포름알데히드 알레르기가 생기고 난 이후로 교수직을 계속 수행할 수 없을까봐 두려웠다고 한다.

 지금도 당당하게 살고 있는 와그너는 실험을 거듭한 끝내 마침내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나는 인근 어물전에서 구한 해부용 물고기, 비-포름알데히드 대용 시료, 그리고 컴퓨터 공학을 활용하여 동물학 과정을 마쳤다. ... 우리 대학은 내가 과학관 밖에 “무독성” 교실을 새로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을 뿐 아니라 밀폐된 사무실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여닫을 수 있는 창문이 달린 멋진 사무실까지 마련해 주었다. ... 내가 환경병 문제를 꾸준히 연구해 본 결과, 이렇게 환기를 시키는 것이 학생과 성인의 건강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편의를 이용할 수만 있자면, 감각 및 언어 손상과 화학물질과민증이 있는 사람들을 비롯한 장애인들도 훌륭한 학생과 직원이 될 수 있다.

 편의시설로서의 컴퓨터

 컴퓨터는 화학물질과민증과 이동성 손상이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TTY와 중계 시스템보다 더 나은 새로운 “정보 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덕분에 전화기에 대화용 스크린만 장착하면 농인들도 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면 농인들은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 즉 수화를 사용하여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형 과학기술이 농인의 귀가 되어 준다면 쿠르츠웨일 리더(Kurzweil reader)와 음성 합성기, 점자 자판 같은 컴퓨터 부속 기기들은 맹인들의 눈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피터 토페이(Peter Torpey) 박사는 제록스사에서 점자 컴퓨터 자판으로 일한다. - 그는 이 회사에서 17년 동안 이상적인 칼라 복사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동안에 시력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또 컴퓨터는 자폐증 뿐 아니라 인지 및 학습 장애를 가진 사람들한테도 유용하다. “많은 자폐인들에게 인터넷은 곧 점자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Thinking in Picture : And Other Reports form My Life with Autism>의 저자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은 인터넷과 웹이 “자신의 사고 방식을 대표하는 가능한 한 최상의 은유”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어느 비판자가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을 두고 “간헐적으로 보이는 자폐증의 기호들, 돌발적인 전환, 갑작스러운 사고의 비약 때문에 독자들이 종잡을 수 없다”고 비평한 것에 대하여, 그랜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연합적 사고(associative thinking)〔비약적 사고〕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또 다른 책을 집필 중에 있다.”

 사지마비 또는 심한 반복운동으로 인한 손상 때문에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IBM의 드레곤 딕테이트(Dragon Dictate) 같은 소프트웨어를 장착된 음성 조종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뉴욕 뉴스데이 New York Newsday>의 베테랑 기자 수전 해리건(Susan Harrigan)은 오랫동안 컴퓨터 자판으로 일한 탓에 심한 수근관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이 생겼다. 해리건은 ADA의 “합리적 편의제공” 규정에 따라 음성 조종 컴퓨터를 사용하여 자신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말에서 떨어져 전신마비인이 된 뒤에 드레곤 딕테이트 프로그램 덕분에 컴퓨터를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루게릭병을 가진 브라이언 디켄슨(Brian Dickenson)은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컴퓨터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아이게이즈(Eyegaze) 시스템을 활용하여 지금도 <로드아일랜드 프라비던스 저널-불레틴 Rhode Island Providence Journal-Bulletin>의 칼럼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그는 루게릭병 때문에 “말하고, 삼키고, 팔다리를 움직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머리를 돌릴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또 원격 통신이 발달하면서 이제 장애인들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가령 컴퓨터 공학을 활용하여 자기 집에서 직장이나 교실에서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는 쌍방향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장애 학생들은 몸은 집안에 있으면서 원격 학습 시스템을 활용하여 교실 수업에 참여할 수 있고, 장애 근로자들은 직업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게다가 장애인들은 가상현실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실제 삶에 대비할 수 있다.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캠브리지 컨소시엄이 운영하는 국제웹접근성프로그램(Web Accessibility Initiative International Program) 책임자인 쥬디 브루어(Judy Brewer)는 장애인들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배워야할 뿐만 아니라 그런 과학기술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애인 사회와 접근 가능한 웹 페이지 작성을 위한 기술지침을 개발하는 개인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컴퓨터가 공정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고, 따라서 장애로 인한 제한적 결과를 최소화한다는 증거가 1998년 5월 뉴올리언스에 열린 대통령 산하 장애인고용위원회 회의에서 제시되었다. 연구자들은 척수손상 장애인들의 문제부터 시작하였다. 척수손상 장애인들 가운데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3명 중 1명에 불과했는데, 이는 전체 장애 인구의 고용 통계와 일치하는 수치다. 하지만 부상을 당하기 전에 컴퓨터를 다룰 수 있었던 척수손상자들이 컴퓨터 기술이 없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일자리를 구했다. 척수손상 근로자 3명 중 2명은 직장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을 경우, 척수손상 근로자와 비장애인 근로자 사이에 임금 격차는 없었다. 컴퓨터를 활용할 수 없는 척수손상 근로자는 비장애인 근로자보다 임금이 36% 낮았다.

 브루어는 산업계, 정부, 연구기관, 웹 접근성과 관련된 장애인 사회의 협력 관계가 점차 돈독해지고 있다고 보지만 컴퓨터 그 자체의 개발만 놓고 보면 장애인 사회와 협력한다고 해서 산업계 전체의 이익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자면, 장애인들이 컴퓨터를 활용하는데 필요한 접근성과 비용이 여전히 중요한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 시카고에 있는 미국맹인재단(American Foundation for the Blind)이 운영하는 전국과학기술프로그램(National Technological Program) 책임자인 폴 슈레이더(Paul Schrader)는 우리 사회가 뒤늦게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각 기반 운영 체계인 윈도우(Window)가 열리면서 맹인들을 위한 문은 닫혀 버렸다고 지적한다.

 컴퓨터의 가격이 내렸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이 구매하기에는 비싸서 많은 장애인들이 실업 상태에 있거나 얼마 안 되는 수당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 장애 운동가들은 미국 기업에서 컴퓨터가 너무 빨리 구형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최첨단 컴퓨터를 활용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정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맞춤하게 개조된 웹사이트가 다양하게 존재한다면 인터넷은 그런 장애인들에게 아주 좋은 자원이 될 것이다. 다양한 손상을 가진 장애인들이 컴퓨터에 접근하는데 필수적인 부속 기기의 가격이 컴퓨터 가격보다 하락세가 완만하여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의 가격을 배가시킨다. 건축물 설계 단계부터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이 나중에 개조하는 것보다 더 간단하고 비용도 저렴하듯이,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할 때 접근성을 고려하면 나중에 부속 기기를 추가하는 것보다 더 쉽고 비용도 저렴하다. 또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적용하면 장애인을 위해 개발한 많은 컴퓨터들이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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