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인권리포트 :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비애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비애 안진환 상임대표(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중증장애인을 죽음의 문턱으로 모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장애인활동‘저지’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예고된 참사였다. 인공호흡기가 빠져서, 화재로 인한 질식사로 고귀한 장애인의 목숨이 줄줄이 버려졌다. 장애인 남동생을 화마에서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누이의 최후는 비정한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냈다.
활동보조서비스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2005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상남도 함안에서 중증장애인이 수도관이 터져 집에서 동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장애계는 분노했고, 대대적인 대정부 전면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저항의 결과물이 2년 뒤, 2007년 3월을 기점으로 활동보조지원이 전국적으로 확대일로를 걷는다.


[ 사진1 - 불길 속에서 동생(뇌병변장애 1급)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누나의 영정 ]


 2011년 10월,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본격 시행되었으니, 1년도 채 되지 않아 문제점과 한계점이 속속 나타난 것이다. 국정지지도가 곤두박질치던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사회 지지와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돌파구가 절실했던 마당에 ‘활동지원제도’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기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정책’ 중점추진과제에 과감하게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포함(‘10. 9월)시켰지만, 충분한 논의와 준비 없이 급조를 거듭한 끝에 불과 3개월만인 2011년 1월3일에 제정하였으니 어쩌면 비참한 결과를 잉태하면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활동지원제도는 자립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정책이다. 중증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촉진하는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많은 보완과 개선책도 필요하다. 뭐가 필요할까.

 첫째, 심사기준의 최고구간에 있는 중증장애인에게는 ‘활동보조시간 상한선 폐지’를 과감하게 꺼내야 한다. 이는 자립생활 진영이 법안 제정 당시부터 꾸준하게 요구한 내용이기도 하다.
현재 최중증장애인이면서 독거장애인, 이른바 국가가 최고로 적용하는 서비스 시간인 183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장애인은 전국적으로 1,600명 선으로 추정된다. 이들에게는 개별적인 심층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장애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급여와 시간 적용은 애당초 사회참여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상부터 취침까지 거의 하루 종일 맨투맨 지원이 있어야 평범한 그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발판이 마련된다.
예산도 넉넉잡아 년 850억원 가량이면 떡을 친다. 그래야 장애인의 비참한 죽음을 방지할 수 있다. 그래야 장애인의 ‘최소한의 삶의 질’을 운운할 수 있다. 현재의 시간으로는 연명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현행 ‘활동지원 인정점수 조사표(조사표)’를 대폭 수정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을 35만명 선으로 파악했으나 뚜렷한 근거도 없이 대상자를 5만명 가량으로 잘라냈고, 그나마 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하는 장애인당사자는 36,000명 정도 내외다. 매월 이용률이 70~74%에 그치고 있다.
 현재 적용하고 있는 조사표를 계속 고집할 경우 장애인활동지원 대상자들에 대한 등급 재판정이 있는 2013년 5월이면 ‘활동보조대상자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체기능상태 위주의 엄격한 지원등급판정에만 정신이 쏠려 있어 소비자의 욕구, 개별적 사회복지급여 기준의 산출, 서비스별 장애사정 기준 등이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 대상자를 솎아내는 감점 위주의 조사방식은 뜯어고쳐야 한다.

 셋째, 활동보조지원 공급자간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일 텐데, 필시 소비자 유치를 위한 지나친 마케팅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 공급자간 소비자 확보를 위한 경쟁은 이미 주위에서 자주 목격하고 있으나, 종국에는 자본력과 조직력, 교섭력이 큰 공급체 중심으로 바우처 공급이 집중될 뿐, 경쟁을 통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리가 만무하다.
 영세기관이나 비영리 민간기관의 경우 빠른 시일 내에 ‘줄도산’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공급체간 과열경쟁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직력을 가지는 공급체가 축소되거나 명맥조차 유지하기가 힘들 지경으로 빠질게 자명해 보인다. 영리 민간단체의 진입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고, 향후에는 활동지원기관의 유형도 가급적이면 장애인복지관이나 지역자활센터는 배제하는 것이 맞다 하겠다. 아예 일괄적으로 정부가 관리하든지.

 넷째, 서비스의 질을 소비자가 쉽게 판별할 수 있는 장치나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서비스정책의 결정권이나 서비스 상품 개발권을 정부가 독점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아래서 공급자들의 경우 이 표준 지침에 준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정부의 정책결정의 기준은 수요자와 공급자의 관계를 고려하기보다는 예산 중심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수급자의 사회적 욕구의 수요나, 이를 적극 제공하는 공급체 수준은 중요한 정책 결정 요소가 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서비스제품들을 시장에 출시해야 구매력을 촉발할 것이고 입맛에 맞는 최고의 상품을 고를 수 있어야 '서비스의 질' 얘기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다섯째, 활동보조서비스 사용의 제한이 까다롭고 단가가 턱없이 낮다. 바우처 사용의 제한은 서비스 이용자들의 보편적 이용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바우처 단가의 비현실성은 활동보조인들에게 저임금, 저평가, 높은 이직율을 촉진하는 것이며, ‘나쁜 일자리’ ‘기피 직종’으로 평가받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남성 노동자들의 유입이 절실한데, 현재의 단가로는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시장 유인책이 될 수 없다.


[ 사진2 - 활동보조 24시간 제공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모습 ]


 여섯째, 활동보조서비스의 노동 강도를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 단가’ 적용에 있다. 고된 육체적 노동인 신변처리나 단순한 이동지원이나 동일 단가를 적용하고 있다. 최소 단가는 10,000원에서 책정되어야 하고, 노동 강도에 따라 서비스별로 20% 정도의 차등 단가를 적용하여야 한다.

 일곱째, 활동보조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최취약 노동자 계층이라 할 수 있는 활동보조인은 노동시간과 보수가 천차만별이다. 때로는 가사로, 저임금으로, 불안정한 직군으로, 경시하는 사회 풍조 등으로 ‘돌봄 노동자’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여성 노동자들이 90%에 육박하는 현실은 대개 가사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되, 아르바이트 형식의 노동을 제공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소위 정규적인 직장으로 인식하고 ‘올인’할 수 없는 ‘구조적 장벽’ 내지 ‘심리적 장벽’ 구조가 내재되어 있는 꼴이다. 2011년 9월 기획재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일자리 제공이 최선의 복지라는 기치 아래 취업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지원예산을 9조원에서 2012년 9조4천억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면서 말이다. 문제는 취업 취약계층에 활동보조?보육과 가사?간병 등 이른바 ‘사회서비스 일자리 계층’을 등한시하거나 누락시킨 것인데, 기획재정부는 ‘돌봄 노동자’ 그룹에게도 4대 보험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인 일자리, 괜찮은 일자리로 각광받을 수 있다.
 현재 근로자와 사업주가 건강 보험료와 국민연금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하던 것을 노사정이 각각 3분의 1씩 부담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한 보험료 지원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면서 최저임금의 120% 수준(월 124만원 이하)을 받고 있는 주당 근로시간 15시간 이상인 근로자가 대상인데, 대상 업종을 비영리 민간 기관으로 넓혀 ‘파견직 돌봄노동자’인 활동보조인에게까지 스며들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인부담금(자부담)’의 비율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활동보조서비스의 주요 대상자는 최중증애인 계층이다. 마땅한 소득원이 없기도 하거니와 장애인사회문제의 최저편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는 계층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애인이 보편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책임의 보편적 서비스제공이 활동보조서비스의 주된 목적으로 설정되어야 하고 특히, 기초생활수급자 뿐만 아니라 소득보장이 취약한 사각지대 그룹에 대해서는 국가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활동보조 이용 시간에 따라 소득을 산정하여 최대 15%를 적용하고 있는데, 가난의 왕인 장애인에게는 ‘자부담 폭탄’ 내지는 활동지원제도 ‘접근 금지’와 다름 아니다.
하여 현행 본인부담금은 완전 폐지가 대원칙이겠으나, 급진적이라고 판단하거나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가 그렇게도 걱정된다면, 적용 비율을 한 자리수로 대폭 낮춰야 한다. 기본급여는 전액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해야 하고, 추가급여 부분만 1~4%로 과감하게 하향 조정하는 것이 보편적 서비스의 첫 걸음이다.
주야장천 장애인당사자는 애창곡 부르듯이 “활동보조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쳤지만 그놈의 예산 타령 때문에 장애인의 존엄이, 인권이, 생명이 짓밟히고 있는 비극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장애인복지정책을 조금이라도 든든하게 만들고 싶다면, 지역사회 참여를 위한 자립생활 환경 조성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민생예산, 친서민예산은 바로 우리 사회의 가장 허술한 부분부터 손을 대야 한다. 지금 당장!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