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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소통 : 장애민중을 들러리로 세우는 정치권 줄서기에 반대한다.


장애민중을 들러리로 세우는 정치권 줄서기에 반대한다. 윤두선 대표(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장애인들, 장애인 정치가 때문에 잘 살게 됐다고?


장애인의 정치 진출은 좋기는 한데

 “장애민중을 들러리로 세우는 정치권 줄서기에 반대한다!”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장애인단체에서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시 진보적인 정당에서 장애인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없었던 상황이어서 그런지 다른 정파의 장애인 국회의원들이 미워서 그랬는지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장애인이 정치에 진출한다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로만 알고 있었는데 요상한 소리를 한 것이다. 장애인의 문제를 국회라는 국가 최고의 입법기관에서 알리고 챙기고 해결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장애인이 정치가, 특히 국회의원이 되어서 대체 나쁜 것은 뭐란 말인가. 우리 헌정 사상 최초로 장애인 몫으로 비례대표로 1996년 국회에 진출한 이성재 씨는 국회에 들어가서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권리법이라고 간주되는 ‘장애인 · 노인 · 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법률’을 만들어냈다. 장애인이 들어갈 수 없는 건물 때문에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법을 만들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그 후로 선거 때마다 장애인은 비례대표라는(물론 지역구 의원들도 있지만 이들은 예외로 하고) 명목으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그러니 이제 얼마나 좋은가? 장애인들은 푸념이라도 할 국회의원이 생겼다. 우리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픈 곳을 쓰다듬어 줄 분들이지 않는가? 장애인을 대변하고 대리할 수 있는 입법부의 통로가 생긴 것이다.
이 분들도 소임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무조건 법은 하나씩은 만들어야했다. 물론 장애인에 관한 법이지 않겠는가. 참 잘도 만들었다. 사실 동료의원들이야 장애인에 관한 법을 만들겠다는데 차마 반대를 하겠는가. 그래서 장애인 국회의원이 생길 때마다 법은 하나씩 만들어진 것 같다.
근데 어라? 법치국가라는 나라에서 법이 만들어졌는데 장애인의 삶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싸한 생각이 우리들에게 흘렀다. 별로 좋아질 것도 없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사회는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장애인은 근본적으로 열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계속 열악한 것이다. 이 사람들을 믿다가는 큰 일이 나겠다는 걱정이 끊이지 않고 생겼다.

장애인 정치가는 장애인의 관리자?

 왜 장애인이 국회의원이 끊임없이 되고 있는데 세상은 변하지 않을까? 대체 장애인 정치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장애인 국회의원의 태생적 한계를 생각해보면 이런 제한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해서 국회의원이 됐을까? 일단 기성 정당의 지도급 인사들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럼 뭐가 마음에 들까?
선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약하고 헐벗은 장애인들을 위해서 열심히 도와주는 정당입니다. 이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장애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지. 바로 이것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이미지만 먹히면 된다. 그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 장애인이 국회의원이 돼도 힘이 없는 것이다.
웃기는 것은 가장 완고한 보수주의 정당에 비례 대표가 사회적 약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의 출신들이 많다는 것이다. 외국인 출신, 청년 출신, 장애인 출신 등. 다들 백화점식으로 진열하기 위해 구비한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보인다. 우리들이 우리의 대변자라고 대리인이라고 생각했던 당당하다고 사람들이 오히려 간택을 받아 감사하게 국회에 들어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이 힘을 쓸 수 있겠는가? 또 사실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300명이 되는 국회의원들 중에서 한, 두 명의 의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151명은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는 한, 두 명의 의원들로 한정되어야 한다. 우리의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장애인 전문으로 가라고 한다. 전문성? 좋다. 그러나 전문성이라는 것은 보편성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우리는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장애인을 이해시키고 장애인을 위해 행동해달라고 부탁하려고 하는데 전문가에게만 가라고 하니 죽을 맛이 아니겠는가? 알고 보니 정부나 정당에서는 장애인 정치가를 장애인의 대변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담당 관리자로 여기는 것 같다.
장애인의 문제가 생기면 장애인 국회의원이 나서야 한다. 정부와 정당에? 아니다. 장애인이나 장애인단체에 나선다. 이해해달라고. 힘써보겠다고. 장애인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한다. 아하! 이것이 담당자의 몫이구나.
이러니 정부와 정당은 편하다. 우리는 장애인에 관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왜냐? 장애인 담당 정치가가 있으니까. 장애인의 문제가 보편적인 차원에서 논의되고 접근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하고 편협한 차원에서 논의되어지는 것이다.
왜 장애인도 똑같은 국민인데 나머지 정치가들은 다 남의 일이고 남의 문제냐 말인가? 허울 좋은 전문성이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밖에 더 되는가 말인가. 장애인 담당자가 있다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별의별 법이 다 만들어져도 세상은 바꾸어지지 않는 것이다. 장애인 아닌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겨도 장애인은 계속 차별을 받는 것이고 장애인연금법이 생겨도 쥐꼬리만 한 연금에, 받는 사람도 몇 안 되는 것이고 활동지원법이 생겨도 장애판정에서 떨어질까 봐 벌벌 떨면서 활동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장애인 정치세력화가 혹시 장애인 정치가 세력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장애인 정치 참여가 한, 두 사람의 스타플레이어에게 의존해서 일어난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팀플레이를 해야하는데 스타선수만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다 이 스타들이 컨디션이 나쁘면 그 게임은 완전히 망쳐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불안한 게임인가. 한, 두 선수만 쳐다보면서 경기를 치뤄야 하는 것은 경기가 아니다.
장애인의 정치세력화. 좋다. 꼭 필요하다. 억압받고 차별받는 장애인들이 서로 뭉쳐 정치적 힘을 기르고 세상을 바꾸고 말겠다는 그 정신이 너무도 좋다. 그러나 이것이 한, 두 명의 정치인 만들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누구를 위해 장애인 정치세력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근데 실상은 몇 사람을 위한 장애인 정치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줄서기가 심해졌다. 이 분이 뭔가가 될 것 같으니까 그 앞에 가서는 뒤집어지고 눕고 별 짓을 다한다. 다 사랑받기 위해서이다. 장애인이고 뭐고가 없다. 오직 출세할 것만 같은 장애인을 향해 사랑과 애정을 팍팍 보낸다.
이러다보니 장애인단체가 장애인이 정치가가 되는 코스가 됐다. 장애인단체장이 되면 정치로 갈 수 있는 최적지가 됐다. 그러니 장애인단체들이 정치성을 가지게 되고 정치적 편파성을 확연하게 가지게 됐다. 더 웃긴 것은 그 단체장이 어느 정파로 가느냐에 따라 그 단체가 그 정파의 속하느냐가 결정이 된다. 이건 장애인단체의 주인이 장애인이 아니라 바로 꼭대기에 계신 분의 것이라는 말밖에 더 되는가.
이건 아니다. 한, 두 사람의 출세를 위해 장애인이 있고 장애인단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폴리페서’라는 단어가 있다. 정치교수라는 뜻이다. 하라는 연구, 교육은 안 하고 정치에 기웃거리면서 기회를 엿보는 교수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단체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말로는 장애인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분들을 보면 저 분들이 과연 장애인을 위해 단체 활동을 했나, 정치를 위해 단체 활동을 했나는 생각이 든다.
과연 몇 사람의 뜻만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미국이나 일본에는 우리 같은 장애인 할당식의 국회의원들이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우리가 그들보다 정치적 힘이 쎌까.
우리 장애인들의 힘을 길러야지 몇 사람의 힘만 믿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은 장애인들이 힘이 있어야지 몇 사람이 국회의원이 된다고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믿지는 않는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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