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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포유 : 여행이 주는 기쁨


여행이 주는 기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 ‘행복여행’ 참가자 이영일


 여행이라는 글자 속에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묘한 마법 같은 게 있나봅니다. 일상 속에 지내다가도 여행을 떠올리면 그 순간부터는 흥분되면서 미소가 절로 나는걸 보면은요. 저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1급 지체장애인입니다. 하지만 드라이브도 좋아하고 여행은 더더욱 좋아하지요. 신기하게도 아내도 여행을 좋아해서 우리 집 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지도엔 이런저런 표시들이 가득하답니다. 지난봄에는 차를 몰고 제주도까지 다녀왔습니다. 장흥이라는 곳에서 배에다 차를 실고 갈매기를 벗 삼아 떠난 여행이었는데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4박5일 내내 따사로운 날씨에 쪽빛바다, 푸릇푸릇한 들녘에 신선한 공기…….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기쁨이요 행복이었답니다. 항상 아내와 단둘이 즐기는 여행이지만 친구처럼 연인처럼 함께하는 우리 삶의 활력소 제공은 여전히 여행이랍니다.

 얼마 전 장애인 단체인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주관하는 장애인 가족여행 “행복여행”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만이 아니고 장애인가족들에게도 활력을 충전하라고 여행을 마련해준 것인데 다른 장애인들은 어떻게 생활하나 그리고 그 가족들은 어떤 기쁨과 슬픔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장애인단체에서 준비한 여행이기에 숙소 및 기타 편의시설이 얼마나 편할까. 상상하면서 참가신청을 했는데 다행히 선정이 되어 경주여행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떠나보는 단체여행인지라 설렘도 컸지만 두려움도 커서 기다리는 며칠이 이런 흥분 저런 기쁨, 포물선을 그리며 초등학교 때 소풍날을 기다리는 그런 기분이었답니다.
지금부터는 그렇게 아이처럼 기다렸던 경주여행에서의 2박3일을 자랑해볼까 합니다.

 장거리여행의 별미는 단연코 고속도로 휴게소지요.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들도 재미있고 오뎅이나 감자, 우동까지 이것저것 맛보는 재미도 여행속의 별미로 자리 잡기 충분했답니다. 경주라는 곳은 20년 전에 한번 가본적이 있는데 그때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리 헤아려 봐도 생각나는 것이 없으니 이번여행이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체 여행하는 사람들의 특징인 이름표를 목걸이처럼 매달고 우리의 경주여행코스는 시작되었습니다.

 단체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는 천마총이었는데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답니다. 곳곳이 우거진 나무들과 빨간 단풍이 든 그곳은 늦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절경들에 아내와 나는 어린아이처럼 신나했답니다. 이곳에 와보기 전 상상속의 천마총은 겨우 무덤 하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부끄럽기까지 했답니다. 공원 안 넓은 뜰의 아름다움을 잠시 뒤로하고 천마총무덤 안의 구경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덤 속에서 출토된 것들이 전시된 곳인데 금귀고리, 금혁대... 등을 구경할 때는 과연 저것들이 순금일까, 몇 돈이나 될까, 돈으로는 얼마나 될까.... 이런 상상만을 했으니 참으로 조상님들께 송구한 생각이 들어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가족들도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를 한명씩 배치해 주었습니다. 저희 가족에게는 잘생긴 법대생이 와 주었고 이동 내내 즐거운 얘기도 많이 해줘 귀도 즐겁고 몸도 편한 그런 좋은 만남이었답니다.

 즐겁게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단체여행에서는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동시에 할까, 종업원들은 얼마나 순발력 있게 서비스를 할까, 휠체어 탄 사람들도 식당의 곳곳을 드나들 수 있을까... 많은 것들이 궁금해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으니 버스는 어느새 식당 앞에 도착했습니다. 단체여행객 숫자가 백여 명이 넘었는데도 잘 차려진 식탁에 정확히 서비스하는 식당직원들의 프로정신이 날 놀라게 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첨성대로 이동하였습니다. 깜깜한 야밤에 첨성대를 구경한다기에 좀 의아해했지만 그곳에 도착해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깜깜한 공터에 첨성대모형만 불을 밝히고 있으니 시선이 집중되었고 옆에 있던 아내는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지만 모두 거무스름하게 나왔고 오로지 내가 찍은 한 장만이 기막힌 자태로 잘 나왔답니다.
우리 일행은 첨성대를 마지막으로 첫날 일정을 마치고 경주보문단지 안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하여 여행의 첫날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둘째 날 아침 우리는 첫 번째 코스인 감포바다로 이동했습니다. 우리가 탑승한 관광버스에는 리프트장치가 되어있어 휠체어가 오르고 내리는데 편리했습니다. 일반 고속버스에도 이렇게 리프트장치가 있다면 더 많은 장애인들이 여행을 즐길 수 있을텐데...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포바다는 경주시내에서 40여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가는 길이 너무 멋있고 아름다워 이곳저곳 눈요기하다보면 감포바다에 금새 도착한답니다. 감포바다를 가는 해변도로가 너무 아름다워 아내와 나는 또다시 오자고 약속도 했습니다. 감포바다는 자그마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생겼는데 탁 트인 파란바다는 내 몸의 구석구석을 청소해주는 그런 느낌이었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바다를 좋아합니다. 이런저런 말이 필요 없이 그냥 바다가 좋답니다. 하염없이 바라본 감포바다를 오랫동안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오후엔 불국사와 경주 밀레니엄 파크로 이동하였고 밀레니엄 파크에서는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양궁을 쏘아봤답니다. 25개의 화살을 쏘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10점짜리 명중을 해 주변에 있던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우쭐한 기분에 마냥 웃고 있었더니 가이드가 한턱내야 한다는 말에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이외에도 이번 여행에서는 이런저런 좋은 여행지도 많았고 좋은 일도 많았습니다. 50평생 살아오면서 장애의 몸으로 장애인과 함께하는 단체여행은 처음이었습니다. 배운 것도 많았고 느낀 것도 많았답니다. 이상한 말일지 모르지만 저는 살아오면서 장애인이라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단지 여러모로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고 영화관도 외식도 운동도 여행도 남들만큼 해오며 살았습니다. 장애인에게는 어차피 삶이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도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장애인에게 여행자체가 불편하고 피곤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불편함도 느껴보고 힘든 것도 느껴봐야 삶도 극복이 되고 살아있는 느낌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간절해질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년 전에 미국대륙을 60일간 자동차로 아내와 단둘이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무려 1년 정도를 준비해서 실행에 옮긴 여행이었는데 기쁨과 슬픔, 공포와 환희가 공존했던 미국 여행이 우리에겐 커다란 힘이 되었고 살아가는 동안 가장 큰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은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여행은 나의 꿈이자 미래입니다. 이런 기쁨을 함께하는 아내가 동지이자 동반자이기에 더더욱 기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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