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장실 장애인 담당관이었던 애니 에머맨(Anne Emerman)과 법대 교수 예일 카미사르(Yale Kamisar)는 의사조력자살이라는 “판도라의 상자”와 관련된 소송은 연방 대법원보다 주로 주 정부 법률로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지키얼 이매뉴얼(Ezekiel Emanuel)과 린다 이매뉴얼(Linda Emanuel)은 조력자살을 합법화하려는 전국적인 시도를 연도별로 정리했다. “〔1994년 오리건주 주민투표가 실시된 이후〕1995년부터 지금까지 조력자살 관련 법안이 20개 주 이상에서 약50건이나 제출되었지만 통과된 법안은 단 하나도 없다. ... 현재〔1997년 7월24일〕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명백한 범죄 행위로 규정하는 법률이 있는 주는 35곳이다.”
1994년 오리건주 주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은 51대 49로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를 결정하였지만, 법률적 다툼 때문에 주민투표의 결과는 3년 동안이나 시행이 유보되었다. 이매뉴얼 부부는 “안락사 승인 시도를 가로막은 역사적 전례”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를 테면, 1890년부터 1906년까지 미국에서는 의사조력자살 합법화와 관련된 공론이 치열했지만 1907년 오하이오주가 그런 조치를 합법화하는데 실패한 이래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락사가 공론의 의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매뉴얼 부부는 “입법자들이 대중들은 내심 안락사를 양가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에머맨은 이런 논쟁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에머맨에 따르면, 이처럼 논쟁적인 쟁점은 복잡한 사정이 있으며, 또 장애와 조력자살에 대한 오해가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안락사를 극구 반대하는 장애 공동체 구성원들은 소명 의식이 강하다. 이들은 “대중을 교육시키기 위한 성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에머맨은 캘럽 조사를 인용하였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75%는 의사들이 합법적으로 “고통 없이 환자의 생명을 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미국내과협회의 조사를 보면, 전체 의사의 40%는 환자들이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 있도록 조력한 경험이 있었다.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1994년 주민투표 결과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1997년 11월4일에 다시 실시된 오리건주 주민투표 결과는 찬성 60, 반대 40이었다. 그러자 연방 법무장관 재닛 리노는 1998년 6월5일 “오리건주의 기념비적인 조력자살법의 완전한 시행을 가로막는 마지막 법률적 장애물”이 제거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에머맨의 말을 들어보자. “과학기술 덕분에 중증 장애인들도 독립적으로 살면서 이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그런 장애인들이 조력자살 운동에 맞서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리노 장관의 결정은 다른 주들이 연방 정부의 제재를 받지 않고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비슷한 법률을 제정하도록 신호를 주는 것이어서 에머맨의 우려가 현실로 되었다. 오리건주 주민투표에 대한 리노의 판단을 1면에 실은 <뉴욕타임즈>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조력자살 합법화에 강하게 반발하였다고 보도하였지만 대다수 장애 공동체 역시 격렬하게 반대했다는 사실은 싣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미끄러운 경사면” vs. 미국의 “정치적 전략”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허버트 헨딘(Herbert Hendin)은 네덜란드의 안락사 정책을 “미끄러운 경사면”으로 정의하면서 미국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네덜란드는 조력자살에서 안락사로, 말기 병자 안락사에서 만성 병자 안락사로, 신체적 병자 안락사에서 정신적 병자 안락사로, 자발적 안락사에서 비자발적 안락사(이른바 ‘확실한 요청이 없는 환자의 종결’)로 진행되었다.” 콜먼과 질은 1996년 의회 증언에서, 미국에서 장애인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법률과 정책이 느슨해진 사례를 몇 가지 지적했다. 우선, 비장애인들이 판단한 “삶의 질”에 기초하여 건강 돌봄을 제한적으로 제공하려는 오리건주의 의도는 돈이 많이 드는 병자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잘 보여준다. 둘째, 경증 장애인들조차 생존을 위한 장기 이식을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인공 호흡기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기계 장치에 의한 호흡(assisted breathing)을 선택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넷째, 인공 호흡기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심폐소생술 포기(DNR)”와 연명장치 제거를 심사숙고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콜먼은 생명윤리학자들이 미국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희소한 자원을 할당할 의향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워한다고 지적했다. “그 방법이 ‘자발적인’ 심폐소생술 포기 요청이든, 가족들에 의한 대리 결정이든, 비자발적인 ‘무용성 가이드라인(futility guideline)’이든, 보험회사의 거부든, 우리 장애인들은 의료 조치 유보에 의해 제거된다.” 미국의학협회와 여러 개인 병원들이 함께 개발한 무용성 가이드라인은 환자 본인이나 가족의 명시적인 희망에 반하여 취하는 의사들의 의료 조치 중단까지도 허용한다. 1997년 12월에 안락사 지지 단체인 컴패션 인 다잉(Compassion In dying)이 기금을 모으기 위해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예로 들면서, 콜먼은 “안락사 지지자들이 이제 말기 상태가 아닌 사람들까지 공공연하게 포함하는 등 모금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고 폭로했다.
의사조력자살 운동이 미끄러운 경사면 이론과 정학하게 맞아 떨어지는 네덜란드의 경우와 달리 미국의 죽을 권리(right-to-die) 캠페인은 “정치적 전략”의 일환이라고 콜먼이 주장했다. 다시 말해, “때만 되면, 장애인들은 살아가려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사람들이라는 메시지에 의해 집중포화를 받는다.” 콜먼은 죽을 권리 단체 헴락 소사어티(Hemlock Society)의 설립자 데릭 험프리(Derek Humphry)의 주장을 인용한다. “좋든 싫든, 비록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죽을 권리와 비용, 가치, 건강 돌봄 자원의 할당 사이의 연관은 정치적 논쟁의 일부다.” 콜먼은 손상과 만성 질병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질을 의사가 일방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문서로 입증하면서, 장애인들에게 적절한 건강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까봐 우려한다. “장애인이 없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살 것이라고 점점 더 확신하는 이 사회에서 시민적 정의 체계 또는 사법적 정의 체계가 장애인의 삶이 동등하고 충분하게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믿는 장애인은 없다.”
오리건주 의사조력자살에 관한 최초 보고서1999년 <뉴욕타임즈>는 조력자살에 대한 보고서 두 건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하나는 네덜란드에서 15년 동안 자행된 조력자살 실태를 조사한 <의료윤리 저널 Journal Medical Ethics>의 보고서였고, 다른 하나는 미국 오리건주 의사조력자살 합법화 이후 1년 간의 실태에 관한 주 정부 건강과의 보고서였다. <뉴욕타임즈>는 <의료윤리 저널>이 네덜란드에서 “치명적인 혼란”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에서 조력자살은 기술적으로는 불법이었지만 실제로는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조사된 안락사 5건 중 1건은 안락사를 요청한 적이 없는 환자들에게 시행되었으며,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유용한 다른 방안들이 있었지만 시도되지 않았다.” 반대로, 오리건주 보고서는 조력자살 허용 법률에 의한 혼란이나 남용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즈>가 지적하였다. “1998년 한 해 동안 조력을 받은 사람들은 남자 8명과 여자 7명 모두 15명뿐이었다. 그 중 13명은 암 환자였는데, 의사들이 말하길 그들 대부분은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오랜 신념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이었다.”
오리건주는 입법 효과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판단하였지만 캐슬린 폴리(Kathleen Foley) 박사를 비롯한 말기 치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그 보고서는 치명적인 약물을 처방한 의사들과 고작 20분씩 전화로 인터뷰한 것에 기초하였을 뿐 아니라 오리건주 의사의 40%는 자살 방조가 두려워 약물 처방을 거절하였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다. 폴리가 관측하였다시피, 조력자살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시각들은 생략되었다. “우리는 환자의 목소리를 잃었다. 우리는 가족의 목소리를 잃었다.”
오리건주 보고서가 조력자살의 원인이 통증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특정하여 말한 환자는 단 한 사람이라고 지적하였지만, 조지프 샤피로(Joseph Shapiro)는 이와 비슷한 동기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언급했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이혼을 했거나 결혼을 못한 사람들이 평균보다 “몇 배 더” 높기 때문에 샤피로는 돌봐주는 배우자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환자의 결심이 바뀌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결국, 이 보고서는 환자의 조력자살 선택 동기 가운데 재정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과소평가하였기 때문에 다른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샤피로는 이렇게 지적한다. “오리건주에서 개최된 최근의 공개 회의에서 휠체어 사용자이자 당뇨병 환자인 릭 버거는 주 정부의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이 이제 조력자살〔이른바 “존엄사”〕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많은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자기 집에서 - 존엄하게 - 사는데 필요한 재가 지원 급여는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장애 차별의 정당화1998년 의회 증언에서, 다이앤 콜먼은 오리건주의 조력자살법은 “미국장애인법(ADA)에 저촉될 뿐 아니라 영향 분석 결과에 따르면 1964년 시민권법에도 저촉된다”고 주장했다. 콜먼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말기 환자는 대부분 장애인이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조력자살법에 내재한 ADA 위반 소지들을 완전히 무시한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우리 문화는 건강 상태와 관련된 차별을 기본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여전히 사람들은 그런 건강 상태가 자신의 목전에 닥치기 전에는 그것을 차별로 인정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있다.”
아울러, 콜먼은 장애 차별은 실제보다 더욱 세심하게 “사법적, 법률적 정밀 검사”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장애인들은 의도적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우리 사회의 정치적 무권력 상태의 지위를 대표하는 제약과 제한에 직면한 외떨어진 섬에 사는 소수집단이다.” 콜먼은 “불평등한 대우”를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 하나를 인용하였다. 오클라호마아동병원이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자행한 실험 때문에 척추피열증이 있던 아기 24명이 죽었다. 그 이유는, 죽은 아이의 부모들이 의사의 “치료 중단” 권고에 대한 환자 부모의 수용 여부를 실험하는 연구에 자신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먼은 사회적 맥락에서만 오리건주 법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법이 제정된 후 처음으로 유명해진 사건을 설명하였다. 유방암이 있는 80세 할머니가 조력자살을 요청했는데 의사들은 그 할머니가 우울증이 있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컴패션 인 다잉(Compassion In dying)이 그 할머니의 자살 요청을 받아줄 만한 의사를 찾아내는 순간, 이 사건은 법적 요건을 확실하게 충족시켰다. 콜먼이 관측처럼, “이 법 어디에도 한 개인은 자립생활 또는 사회 서비스 혜택에 관한 정보를 고지 받아야 한다는 구절이 없고, 한 개인은 자신이 선호하는 의료적 대안 또는 서비스 대안을 실질적으로 제공받아야 한다는 구절이 없고, 사람들이 조력자살을 해 줄 의사를 찾을 때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없도록 하는 구절이 없다.” 또 콜먼은 “강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조력자살을 보고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콜먼은 이런 유형의 차별적 법률이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며, 이는 “헌법 수정 조항 14조에 따른 동등한 법적 보호의 거부”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콜먼이 지금까지 법원은 “장애인에 대한 ‘의심 분류(suspect class)’ 지위”를 허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지만, 미국 연방 대법원은 획기적인 조력자살에 관한 결정에서 장애 차별을 인정했다. 콜먼의 말을 들어보자. “주 정부의 관심사는 취약한 사람들을 압제로부터 보호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 관심사는 장애인과 만성 질환자들을 편견, 부정적이고 부정확한 고정관념, ‘사회적 무관심’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까지 확대된다. ... 중증 장애인들의 자살 충동은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처리되어야 한다.”
유연성 없는 법률의 위험종양 전문가인 이지키얼 이매뉴얼 박사는 “죽을 권리는 누구의 권리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주장하였다. 1870년부터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대두된 것은 생명을 연장하는 신기술 때문이 아니라 진통 효과뿐 아니라 고통 없는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몰핀 같은 진통제의 발견 때문이었다. 죽음을 재촉하는 약물이 아니라 통증을 완화하는 약물을 과도하게 복용해도 결국 죽음에 이를 수 있지만, 이런 조치는 윤리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제재 대상이 되는 의사조력자살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매뉴얼의 지적처럼, 통증이 아니라 우울증이 주로 의사조력자살을 요청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 같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 접근법은 “주사 한 방과 생명을 끊는 약물이 아니라 정신과적 개입”이다. 게다가 과학기술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환자들은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새로운 법률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이미 의료 개입을 중단시킬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헌법은 차별을 받는 대상을 ‘의심 분류(Suspect Classes)’, 유사 의심 분류(Quasi-Suspect Classes), 비-의심 분류(Non-Suspect Classes) 세 가지로 구분한다. 여기서 ‘의심 분류’는 분리되고 고립된 소수계층으로 정치적 과정을 통해 자신의 권익을 보호할 수 없고 빈번하게 심한 차별 대우를 받는 계층을 말한다. 연방 대법원은 이러한 계층에 대해 보다 큰 사법적 보호를 하고 있다. 인종, 외국인, 그리고 출신 국가에 의한 차별이 의심 분류에 속한다. ‘유사 의심 분류’는 여성/남성, 그리고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한 차별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비-의심 분류’는 의심 분류 기준, 유사 의심 분류 기준에 속하지 않는 나이, 재산, 성향 등 기타 모든 것에 근거한차별 대우가 이에 속한다.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를 우려하는 이매뉴얼은 그렇게 될 경우 가장 취약한 계층은 “어린이, 광인, 정신질환자, 노인, 기타 등등”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 “기타 등등”에는 물론 장애인들도 포함될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고통 받는 자들 또는 고통 받는다고 추정하는 자에 대한 가정들을 만들어내지만, 그런 가정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여기에 선뜻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가시적 손상을 가진 사람들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건강 문제 뿐 아니라) 장애인의 삶의 질에 대해서도 동일한 유형의 가정들을 만들어낸다며 걱정한다.
1996년 <워싱턴포스트> 여론 조사를 보면, 장애인을 제외한 소외 계층 인구 집단 역시 의사조력자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경우 의사조력자살에 대해 찬성 20%, 반대 70%다. 네덜란드와 같은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건강 돌봄 제도가 없는 미국의 환자들과 의사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라도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하기 시작하는 2010년 전후가 되면, 인구통계학적 요인 때문에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에 대한 예산 압력이 거세지면서” 이 같은 문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윤리학 교수 루이스 스메디스(Lewis Smedes) 역시 이매뉴얼처럼 의사조력자살에 관한 윤리적 모호함은 유연성 없는 법 규정보다 실제 사례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때론 사태를 모호한 상태로 남겨 두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는 무시되던 법률들조차 때론 목적에 기여하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우리의 것으로 볼 수 없는 한 생명을 거둔다는 의미에서 볼 때, 의사조력자살은 도덕적으로 부담을 가져야 할 문제다. 이 책에 있는 법률들을 존속시키는 것은 이 같은 의미의 부담을 간직하는 방법이다.” 이매뉴얼 역시 “도덕적 판단”을 하는 자들이 “법 앞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의사조력자살은 계속 불법적이고 예외적인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 시스템이 장애인들도 주류 사회에서 생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과학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기는커녕 취약 계층의 오도된, 때론 공공연한, 자살 충동을 오히려 부추기는 경우가 너무 많다. 많은 장애인들이 “소외 계층”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정신과 의사 허버트 헤딘의 경고는 미국 사회 장애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네덜란드? 동질적이고 법을 잘 지키는 시민, 거의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나라? 그런데 미국은 어떤가? 상이한 문화들이 많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고,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수 천 만 명에 달라하는 나라다. 그곳을 나쁘다고 하면 이곳은 훨씬, 훨씬 더 나쁘다.”
“더 나은” 해결책이매뉴얼은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강하지도 않고 깊지도 않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람들에게 물으면 그 답변은 질문이 얼마나 정교하게 구성되었는지에 따라 다르다. 다이앤 콜먼은 “장애인의 삶에 관한 정보를 오로지 건강 돌봄 서비스 제공자들로부터 듣는 상당수의 장애인들은 오늘날 조짐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부상을 당하고 나서 초창기 몇 시간, 몇 주, 몇 달, 이른바 결정적인 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죽음을 위한 ‘선택’에 쉽게 흔들린다.”
오토바이 사고로 경수 1번과 2번을 다쳐 목 아래로 전신이 마비되고 인공 호흡기가 없으면 호흡을 할 수 없는 낸시 롤닉(Nancy Rolnick)은 “죽을 권리” 운동의 근본적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사고가 나기 전에 브라이언 클라크의 연극 <어쨌든 누구의 인생인가? Whose Life Is It Anyway?>를 봤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에 삶을 마감할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와 남편 그리고 친구들은 주인공의 주장에 동조했고, 그의 결정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사고를 당한 후에 나는 동명 영화를 보았는데 여전히 그 주인공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어렵쇼! 이 녀석이 너무 앞서가잖아. 자신한테 병원 밖에서 살 방도를 찾아볼 기회조차 주지 않고.” 다시 말해, 내가 장애인이 되고 보니 관점이 바뀌었다. 난 더 이상 자살이 장애 문제를 해결한 좋은 방도라고 자동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더 좋은 해결책이 무엇일까? 아직까지는 내 혼자 생각에 불과하다. 우선, 나는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서 내 삶을 - 내 남편, 내 자식들과 그 배우자들, 친한 친구들, 그리고 나를 돌봐주는 간호사들을 - 예전으로 되돌려 놓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다. 그들의 기대는 효과를 봤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나에게 영감을 주고 나를 인도한 장애인들을 만났다. 내가 처음 재활 병원에 들어갔을 때에는 전신이 마비된 여성을 만났고, 퇴원 이후에는 젊은 전신마비 여성을 만나 멘토로 삼았다. 그녀가 너무나 환상적인 자립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살면서 만난 다른 장애인들로 나에게는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장애인 권익옹호 단체에 일하면서 내 생활의 새로운 초점이 생겼다.
롤닉은 접근 가능한 생활 환경과 최대한 독립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돌봄과 장비를 제공해 주는 민간 보험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적절한 도구와 지원만 있다면, 대다수 장애인들은 웃음, 사랑, 삶을 지속시키고 싶어 할 것이다.”
중증 장애와 말기 질환의 차이다음 사례들은 법원이 중증 장애와 말기 질환의 차이를 어떤 식으로 지워버리는 잘 보여준다. 판결을 할 때, 법원은 장애인의 삶과 비장애인의 삶이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미국 장애 운동가들은 캐나다 출신의 12살 된 뇌성마비 소녀 트레이시 라티머(Tracy Latimer) 사건에 매달렸다. 친부 로버트 라티머는 1993년에 일산화탄소를 이용하여 트레이시를 살해했다. 트레이스의 아버지는 2급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판사는 1년 후 가석방을 권고하였다.
판사는 로버트 라티어의 행위를 자비로운 살해(mercy killing)로 간주했고 대중들은 트레이시 아버지를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장애 운동가들은 비장애인 자식을 죽이면 들고 일어나면서 장애인 자식을 죽이면 왜 가만히 있는지, 그 이유를 따져 물었다. 또 이들은 트레이시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의료 절차를 시행했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뉴스 해설을 보면, ... 의사들이 트레이시에게 ‘교정’ 수술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소녀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행복해 했다. 트레이스가 고통을 호소한 원인은 뇌성마비 때문이 아니라 이 같은 수술 때문이 아니었을까? 장애 운동가들은 장애인을 죽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것과 다르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법원이 의사조력자살을 너그럽게 봐주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조이스틱으로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는 26살의 엘리자베스 부비아(Elizabeth Bouvia)는 남편과 함께 자기 아파트에서 독립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달성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되어 버렸다.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들어간 대학의 학과장이 부비아에게 그녀가 아무리 잘해도, 그녀가 끝까지 노력을 하더라도 일자리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절망감에 싸여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자 주 정부가 그동안 등하교할 때 사용하던 밴 자동차를 회수해 가버렸다.
게다가 남편이 떠나버리자 오붓한 가족은 산산이 부서져버렸고, 부비아는 유산의 고통을 맛봤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가족들은 그렇게 하면 아버지가 너무 불편해 질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자기 목숨을 거두기로 결심했다.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리버사이드병원에 입원한 다음, 스스로 굶어서 죽음으로써 영원한 안식을 찾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금방 그 병원 정신과 의료진은 부비아가 정신적으로 법적 행위 능력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곧이어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 나타나서 그녀가 이 기괴한 방식으로 자살할 권리를 법원에 청원했다.
부비아의 장애 즉 뇌성마비는 진행성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1983년 그녀가 한 차례 우울증을 겪었으며, 바로 그것이 병원으로 하여금 그녀의 자살을 조력할 수 있는 수용 가능한 이유라고 결정하였다. 그 후 일어난 부비아의 심경 변화 - 자살하지 않고 계속 살아야겠다는 결심 - 를 보면, 비장애인이 우울증을 겪는다면 법원이 그것을 의사조력자살을 위한 적절한 배경으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시각 장애 운동가이자, 편집자이자, 작가이자, 샌프란시스코스테이트대학 교수였던 메리 제인 오웬(Mary Jane Owen)은 1984년에 부비아의 사건을 이렇게 관측했다. “우리가 부비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고 있는 요지는, 이 젊은 여성이 자신의 우울증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장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그녀는 우리가 파놓은 공포와 편견의 함정에 빠졌다. 그녀는 취약함, 허약함, 그리고 이 모든 장애라는 ‘불완전함’에 대한 우리의 공포를 개인화하였다.”
법원이 허용한 아주 유명한 의사조력자살 사건이 두 건 더 있다. 라스베이거스 지방 법원 판사 도널드 모슬리(Donald Mosley)는 1990년 6월 의사가 전신이 완전히 마비된 케네스 버그스테트(Kenneth Bergstedt)에게 진정제를 주사하고 그가 호흡하는데 필요한 인공 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도록 판결하였다. 그때까지 모슬리는 버그스테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모슬리는 버그스테트가 그렇게 죽는 것이 자살이 아니고 그가 스스로 의학적 조치를 제한하였다는 괴상한 논리를 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자도, <디스어빌리티 래그 Disability Rag> 편집장으로 명성을 날린 메리 존슨(Mary Johnson)도, 그리고 그 어떤 장애 운동가도 버그스테트와 직접 대화를 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법원의 허락을 받아 버그스테트가 의사의 조력을 받으면서 자살을 한 후, 존슨은 <디스어빌리티 래그> 1990년 9/10월 호에 버그스테트는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어떠한 상담도 받지 못했다고 폭로했다.
자립생활운동의 선구자이자 맥아더 “천재” 특별연구비를 지원 받은 에드워드 로버츠(Edward Roberts) 역시 버그스테트처럼 인공 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았는데,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게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이런 사건들을 접하고 있으면 점점 더 화가 난다. 그들은 서로를 잡아먹는다. 변호사들, 법원들, 판사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은 버그스테트 같은 사람을 보고 “물론 그는 죽기를 원하죠” 라고 말한다. 사실은 우리가 이 나라의 장애인들을 죽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난 26년 동안이나 인공 호흡기를 착용하고 살고 있으면서 이런 사람들의 사건을 목도한다. 그들이나 나나 인공 호흡기에 의지해 살고 있는 게 매 한가지다.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 혹은 이미 거기에서 살고 있고 - 나는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차이는 이것뿐이다. 인공 호흡기가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다.
34살의 전신마비인 래리 맥아피(Larry McAfee)는 자신이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노동할 수 있도록 해줄 과학기술이 없어서 1989년 확실한 자살 계획을 수립하였다. 법원, 성직자, 그리고 가족은 그의 계획을 지지했다. “1985년에 장애인이 된 맥아피는 인공 호흡기를 스스로 멈추도록 해서 자살을 할 수 있도록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 그때, 장애 운동가들이 개입을 해서 맥아피를 위해 다른 대안을 강구하라고 투쟁했다. 그리고 맥아피에게 (그의 죽음을 도와준 사람들을 비롯하여) 누구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퍼프-앤-시프(puff-and-sip)가 달린 전동휠체어를 사용하여) 지역사회에 살면서 (음성 인식 컴퓨터를 이용하여)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는 순간, 맥아피는 마음을 바꾸었다. 자발적인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1992년 맥아피의 역경을 다룬 TV용 영화가 제작되었지만, 맥아피에게 죽는 방법이 아니라 사는 방법을 보여 준 장애 운동가들의 역할은 쏙 빼먹었다,
맥아피처럼 적절한 수단이 제공되었을 때 엔지니어로서의 전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중증 장애인들이 적절한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충만하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1992년, 뉴욕시의 자립생활센터 6곳이 공동으로 뇌성마비가 있는 10대 아프리카계 미국 남학생에게 표창장을 수여하였다. 그 학생은 처음부터 “지체(retarded)” 딱지가 붙어 있었지만 전동휠체어, 음성인식장치, 워드 프로세서를 작동하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자마자 아주 총명한 아이로 변모했다. 여전히 심한 장애인이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농인이자 장애권 운동가인 프랭크 보위(Frank Bowe) 교수는 “장애(disability)”와 “핸디캡(handicapped)”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하였다.
우리의 장애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핸디캡이다. 지금 이 교실에 있는 나에게는 핸디캡이 없다. 나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여러분 역시 나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곳에 수화통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장애인이다. 나는 예전부터 농인이었고, 오늘 아침에도 농인이었고 오늘밤 잠자리에 들 때도 농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교실에서는 핸디캡이 없다. 그리고 이 교실은 접근 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어떤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여기에 들어 올 수 있다. 그래서 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은 핸디캡이 없다. 그들은 여전히 장애인이지만 핸디캡은 없다. 다시 말해, 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적 능력, 자신의 지식, 자신의 능력이 허용하는 일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중증 장애인인 스티븐 호킹은 과학기술 덕분에 “현대판 아인슈타인의 마음을 가지고 우주의 신비”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1963년 막 21살이 되던 해 호킹은 물리학 박사로서 캠브리지대학교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퇴행성 운동신경 질환인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때문에 전신의 근육이 위축되어 결국 2년6월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호킹은 놀랍게도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고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있다. 1985년 폐렴 때문에 기관을 절개한 뒤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음성인식장치와 전동휠체어에 부착한 소형 개인용 컴퓨터 덕분에 강의를 하고,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책과 논문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호킹에게 중증 장애는 그의 지성과 열정을 우주론에 집중할 수 있는 자극제인 것 같다. “건강 상태를 진단받기 전까지만 해도 난 아주 따분한 생활을 하였다. 가치 있게 할 만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나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있는 꿈을 꿨다. 그때 갑자기 사형 집행이 유예되면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호킹의 질병이 그에게 새로운 창의성을 가져다주었다고 주장하는 동료도 있다.
점차 손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호킹은 머릿속에서 미리 그림을 그려본 다음 기하학적 주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연구 프로젝트를 주의 깊게 골라야 했다. 또 그는 그 누구도 가져본 적이 없는 멋진 도구들을 개발하였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쓰던 도구 한 벌을 잃어버려야 다른 도구를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예전 도구보다 새 도구가 더 유용하다. 다시 말해, 그런 도구를 사용하면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특정한 유형의 문제를 당신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텔 부회장 스티븐 나흐트하임(Stephen Nachtheim)은 이렇게 관측한다. “호킹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웅장한 고딕 양식의 캠브리지대학교 교내 어디를 가든지, 또는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그는 항상 인터넷, 음성인식장치, 그리고 문, 전등, 개인용 오락 센터를 통제할 수 있는 적외선 리모컨에 접속해 있다.” 나흐트하임은 호킹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남자”로 정의하였다. “호킹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과학기술을 활용한다.” 1997년 <뉴욕타임즈>는 호킹의 아주 두드러진 장애를 잠깐 언급하면서 “천재적인 이론가”가 캘리포니아 과학기술연구소를 방문한 기사를 1면에 실었다. 당시 호킹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내 장애를 색맹처럼 생각한다. 장애는 가지고 있으면 불편하지만 함께 살 수도 있고 에둘러 갈 수도 있는 어떤 것이다. 분명, 나의 장애는 색맹보다 더 심각하지만 나한테 장애는 부차적인 것이고 나의 세계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성공하는 것이다. 신체적 장애인들이 옆에 있는 녀석들보다 더 똑똑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신이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더라도 아무도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상대적 관계가 아닌-역자주〕절대적 관계에서 두각을 드러내야 한다.
장애 정도를 가지고 한 생명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까? 중증 장애인들의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책 결정 과정에서 말기 질환과 장애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생명의 가치를 판단할 때 오만과 자기 만족이 개입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낫 데드 옛(Not Dead Yet) 소속 변호사 다이앤 콜먼은 1998년 의회 증언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쟁점들과 씨름하고 있다. 비용-편익 분석이 인간의 생명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가? 말기 질환자들을 비롯한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인간 다양성의 일부에 속하는가? 우리 장애인들이 교묘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최종 출구(Final Exit) 해결책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