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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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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권리 존중과 장애인의 자립생활
실현은 함께 가는 것
고미숙(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사무국장)
잊혀져가는 장애인자립생활의 의미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장애인들의 피눈물 나는 투쟁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사회서비스보다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있기도 했다. 교육을 받을 때 인상에 남는 말이 있다. “여러분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훌륭한 일을 한다는 긍지를 가지셔야 합니다.” 내 옆에서 교육받던 나이 지긋한 여인은 감동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아직도 그 여인이 그 감동을 간직하고 있을까, 아니 아직 활동보조인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2010년 정부의 조사에 의하면 사회서비스 분야 중 장애인활동보조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교육받은 사람이 수십만 명이지만 활동보조를 하는 사람은 3만이 되지 않는다. 제도 초기에 현장에 투입된 사람들 중에는 자원봉사를 하던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좋은 일을 돈 받고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원봉사자와 노동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 곧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시급이 높아서 좋은 일자리라는 장밋빛 환상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곧 이 일이 몸과 마음이 고되고 생계유지까지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현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들로 인해 장애인자립생활을 지원한다는 말은 점점 잊혀져가는 상황이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한 남성 활보의 절대부족, 근골격계 질환 만연

 2012년 활동보조인연대가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의 비율이 87%를 넘고, 연령은 50대가 가장 많았다. 이에 비해 이용자는 남성의 비율이 60% 정도 된다. 급여가 낮을수록 남성노동자들의 이직율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성비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의 성격상 신체접촉이 많고 일대일로 서비스가 이뤄지다보니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용자와 활보 모두가 원치 않는 신체적인 접촉을 해야 하는 인권침해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활동보조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성별이 달랐을 경우 활동보조인은 물론 장애인에게도 스트레스가 되며, 활동보조인의 이직의사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활동보조인연대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활동보조인의 2012년 월 평균임금은 75만1천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낮은 평균임금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수입의 불안정성이다. 이번 달에 수입이 100만원이다가도 다음 달에는 몇 만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입이 불안정한 이유는 바우처를 통한 임금지급 방식 때문이다. 활동보조인은 이용자의 그만두라는 말 한 마디에 바로 실업자가 된다. 이런 구조이다 보니 활동보조인은 이용자가 시키는 일이 부당해도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다. 가족의 빨래와 식사, 결혼한 자식 김치나 만찬 만들어주기 같은 일을 요구받아도 거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복지부의 지침대로라면 연결을 끊을 때는 이용자나 활보 모두 2주 전에 고지하도록 되어 있지만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2주를 서로 얼굴보기가 쉽지도 않을 뿐더러 2주 후면 다른 이용자의 연결이 바로 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지침은 공허한 문구일 뿐이다.

 이런 저임금과 불안정한 구조로 인해 활동보조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려면 4-500시간을 일해야 하거나 두 세 가지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아니면 집에 다른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보조수입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활동보조인이 직업의식이 부족하고 아르바이트처럼 일하고 있다는 비판이 종종 나오는데 이는 주객이 전도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은 활동보조인에게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노동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활동보조인연대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1년간 신체 중 어느 한 부위라도 통증이 있어서 의료기간을 이용한 경우가 68.4%에 달했고, 3개월 이상 만성적인 질환에 시달리는 비율이 40% 가까웠다.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산재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지만 산재를 통해 치료한 경우가 거의 없고 개인이 알아서 치료를 하는 식이었다. 심한 경우는 다쳐서 일을 하기 힘든 상태에서도 대체인력이 없어서 일을 계속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수요자 중심 = 소비자주의’가 갖는 문제점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중증장애인에게 사회서비스바우처를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기관을 직접 선택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즉,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서비스의 중심에 놓는 장애인사회서비스제도이다. 기존의 서비스가 공급자 중심으로 제공되었다면 이제는 수요자 중심,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중심에 놓는 서비스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수요자 중심’이라는 의미가 ‘소비자주의’와 동일시되면서 서비스 제공인력에 대한 고려는 제도의 뒤편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활동보조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당황하는 것이, 연결될 때 가서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시키는 일을 하시면 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때와, 활동보조인이 보는 앞에서 코디가 이용자에게 “마음에 안 드시면 바꾸시면 돼요”라고 할 때이다. 이것은 활동보조인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활동보조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시키는 일이나 하는 비주체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또 한편 이 소비자주의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도 상당부분 왜곡시키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책임감도 따르는 것이다. 그 책임감에 대해 장애인 이용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의 권리를 위해서는 타인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은 묻어버리는 것이다.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는 정부의 책임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

 다른 사회서비스분야와 마찬가지로 활동지원제도는 민간위탁을 통해 운영된다. 가장 잘 알려진 노인요양이 영리기관에 위탁한다는 것이 다를 뿐. 영리냐 비영리냐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중개기관들은 확보된 이용자 수만큼 기관운영을 위한 비용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에 대한 관리보다는 양적인 경쟁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용자가 원하는 것이면 불법이라도 모른척 눈을 감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심지어 성희롱을 상습적으로 하는 남성이용자에게 이용자가 원한다고 여성활보를 지속적으로 파견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민간위탁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할 때면 해결하는 방법을 단속을 강화하거나 지침을 바꿔보거나 서류를 보강하게 하거나 하는 식이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정부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제도를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위탁 과정에서 온갖 문제들이 발생해도 중개기관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문제를 덮으려 들고, 결국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중개기관 간에 갈등 속에서 대충 문제가 마무리되게 된다. 결국 제도를 위탁한 정부는 책임 또한 위탁해 버린 것이다.

공공성 확보와 월급제 실현... 질 좋은 서비스를 위한 필수 조건

 매년 정부는 지침을 새로 내린다. 그 지침 속에는 지난해에 발생했던 문제들이나 당사자들을 요구를 적당히 섞어서 해마다 약간씩의 수정을 거친다. 그러나 한 번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요구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활동보조서비스의 질적 향상은 활동보조인들이 안정적인 노동조건 속에서 자신의 전문성과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처럼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하고, 바우처 긁느라 정력과 시간 낭비하며, 온갖 서류들 제출하고, 일하는지 안하는지 증명하기 위해 동동거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존중받으며 질 좋은 서비스로 이용자를 만나기 위해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 활동보조인에게 최소한의 생계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계속 감내하라는 것은 장애인에게도 불안정한 서비스를 그냥 받으라는 것이며 이는 활동지원을 권리가 아닌 시혜로 여기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제도의 외적인 확장보다 장애인과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때 진정으로 장애인의 자립생활의 실현은 가능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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