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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낫데드옛”과 의사조력자살 윤삼호 정책위원(한국장애인인권포럼)

 연명치료 기술이 점차 고도화되면서, 의사들은 한 생명을 언제 거두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경외스러운 책임감을 가질 때가 자주 있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는 이렇게 내다봤다. “사회는 항상 의사를 살인자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가령,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살인하는 것처럼. ... 그런 요청으로부터 의사를 보호하는 것이 사회의 책무다.” 장애인들은 자신이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는 판단에 특히 취약하다.

“죽음의 기차” 반대 운동

 1997년 1월8일, 미국 연방 대법원이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를 금지하는 주 법률의 합헌 여부를 다투는 바코 대 퀼(Bacco v. Quill) 사건을 심리하고 있을 때 법원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많은 시위자들, 특히 맹인, 농인, 전동 휠체어 사용자 등 중증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조롱 섞인 단체 이름 “낫데드옛(Not Dead Yet)”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할로윈의 영혼이라도 불러낼 듯한 “무시무시한” 글자체였다.
낫데드옛은 악명 높은 잭 케보키언의 도움을 받은 자살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촉발된 조력자살 합법화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확산되자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1996년 봄에 설립된 단체다. 언론인, 시인이자 낫데드옛의 회원인 마크 오브라이언(Mark O'Brien) - 그는 1997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호흡 훈련(Breathing Lessons)”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은 케보키언의 윤리에 대해 이렇게 반박한다.

그의 윤리는 인공심폐장치(iron lung) 안에 들어가 있는 한 사내를 동정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동정심은 치명적인 무기가 되었다. 1997년 1월8일, 연방 대법원은 우리의 고통을 끝내주겠다며 나와 같은 사람들을 (가엽게 여겨) 죽이자는 주장을 경청했다. 1955년 소아마비가 유행한 다음부터 인공심폐장치는 나의 두 번째 생명이 되었다. 40년 동안 난 이런 말을 들었다. “저 가엾은 것.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저 아이는 영원히 아플 거야.” 난 “영원히” “고통스럽지” 않을뿐더러 “아픈”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나를 위해 당신들의 동정심을 낭비하지 마시오. 난 살고 싶소. 자비로운 죽음(mercy death)을 실행에 옮기는 의사들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를 가엽게 여겨) 매년 수 천 명이나 죽인다. 연방 대법원이 자비로운 죽음이 합법이라고 선언하면, 그것은 장애인들에 대한 수렵 허가(open season)를 선언하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우리는 전염을 시키거나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특정 정당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죽음의 기차(death train)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결코 제 발로 그 기차에 탑승하지 않을 것이다.

 낫데드옛, ADAPT(American Disabled for Attendant Programs Today), 변호사 다이앤 콜먼(Diane Coleman)과 스티븐 골드(Stephen Gold)는 의사조력자살을 금지한 주 정부의 조치가 합헌이라고 주장하는 전직 뉴욕주 검찰총장 데니스 바코(Dennis Bacco)를 지지하면서 제출한 법정조언자 의견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건강 상태나 장애에 기초하여 특정한 부류의 개인들에게 조력자살이라는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ADA를 위반하는 치명적인 차별이다.” 장애인 공동체는 의사조력자살이 의료 전문가들이 수용할 수 없는 삶의 질을 가진 사람들까지 그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는 불길한 결과를 우려했다.
1988년 11월22일 케보키언이 루게릭병에 걸린 토마스 육(Thomas Youk)을 독약을 주사하여 안락사시키는 장면이 CBS의 <60분>에 방영되어 큰 파장을 일으키자 낫데드옛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콜먼은 이렇게 주장했다. “기자들은 케보키언의 희생자들 대부분은 장애인일 뿐 말기 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희생자들 각자를 절망의 수렁으로 몰고 가는 차별과 억압을 외면하고, 사람이 죽을 수 있도록 돕지만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존중과 간단한 지원을 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거절하는 이 사회의 불의를 외면한다.” 130명이 넘는 사람들의 자살을 도왔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케보키언은 토마스 육 사건으로 2급 살인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 이전에 검사들이 그를 다섯 차례나 기소하였지만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다.
마이클 베촐드(Michael Betzold)는 1997년에 언론인 잭 레센베리(Jack Lessenberry), 일명 “죽음의 의사 장사꾼(The Selling of Dr. Death)”에 관해 폭로하면서 케보키언이 어떻게 미국 전역에서 영웅이 되었는지 밝혔다. 케보키언의 친구 한 명, 그의 변호사 저프리 피저(Geoffrey Fieger), 레센베리는 1993년부터 베촐드의 폭로가 나오기 전까지 <뉴욕타임즈>에 케보키언을 옹호하는 글을 써댔다. 그들은 언론이 조력자살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베촐드는 “케보키언의 글과 말을 보면, 그는 죽어 가는 사람, 장애인, 정신질환자,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유아, 혼수상태에 있는 성인에 대한 안락사를 허용하는 사회를 옹호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사망 전 인체 실험과 장기 적출을 찬성한다. 그는 정부나 윤리학자들의 감시가 없는 곳에서 의사들이 운영하고 요구만 있으면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는 국제적인 죽음의 시스템을 꿈꾸고 있다.” 뉴욕시에 있는 <빌리지 보이스 Village Voice>의 냇 헨토프(Nat Hentoff)는 의사조력자살에 반대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골수 진보 판사〔제9차 순회법원 스티븐 라인하르트(Stephen Reinhardt)〕가 조력자살뿐 아니라 안락사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것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그 결과로 죽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 장애인을 비롯한 취약 계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죽어야겠다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이들은 아무도 자신이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이 계속 살아 있으면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따라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짐만 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방 대법원

 1996년 바코 대 퀼 제2차 순회법원 항소심 판결과 워싱턴 대 글럭스버그(Washington v. Glucksberg) 제9차 순회법원 항소심 판결이 번복되자, 1997년 6월26일 연방 대법원은 의사조력자살을 금지하는 주 정부의 법률들을 만장일치로 지지했다. 바코 대 퀼 재판 이전까지는 뉴욕주에 거주하는 법적 자격이 있는 성인들은 의료 조치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의사들은 그런 환자들이 연명 장치를 제거하거나 작동을 멈추어 달라고 요청하면 그것을 존중하는 게 허용되었다. 하지만 뉴욕주 법률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자살을 시도하거나 실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돕는 것은 중범죄였다.
제2차 순회법원 항소심은 연명 장치에 의존하고 있는 환자에게 연명 조치를 거절할 권리, 즉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인정했다. 주 정부가 한편에서는 환자가 연명 장치를 하고 있을 때에는 본인의 제거 요청에 의한 생명 종결을 허용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연명 장치를 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이와 비슷한 환자의 통제권을 거부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법원은 퀼 박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이 보기에 이런 차이는 미국 헌법의 동등한 보호 조항(Equal Protection Clause)을 위반하는 것이다. 검찰종장 바코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면서 1997년 연방 대법원은 뉴욕주의 의사조력자살 금지 조치를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퀼과 글럭스버그 두 사건에 대한 항소 법원의 결정은 의사조력자살을 지지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글럭스버그 재판에서 라인하르트 판사가 “말기(terminal)”를 “치료 불가능하고 불가역적인 의학적 상태”로 정의한 것은 무수한 장애인과 만성 질환자들을 위협하는 것일 수 있다. 1958년 법학 교수 예일 카미사르(Yale Kamisar)는 가족 구성원들이 말기 상태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영양관(feeding tube)과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허용해주는 법원, 의사, 심지어 성직자들에게 경고했다. 카미사르는 이것이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적극적 안락사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렇게 안락사 당하는 자 중 일부는 상당 기간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경고했다. 논문 “조력자살에 반대하며 - 아주 제한적인 형태라고 할지라도(Against Assisted Suicide - Even in a Very Limited Form)”에서, 카미사르는 자신의 동료 로버트 버트(Robert Burt)의 말을 인용했다. “〔수 백 만 명의 미국인들이 적절한 보건 서비스의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재판부가 의사조력자살을 헌법이 보장하는 보건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카미사르의 분석에 큰 영향을 받은 제9차 순회판사 로버트 비저(Robert Beezer)는 글럭스버그 재판에서 1994년 뉴욕주 테스크포스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다. “조력자살과 안락사는 이 사회 구석구석에 전달되는 보건 등 각종 서비스들을 특징짓는 사회적 불평등과 편견의 프리즘을 통해 실행될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는 “투석, 산소 호흡기, 인슐린, 장기 요양이 필요한 사람들은 죽어가는 것도 아닌데도 안락사 후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1994년 주의 유권자들은 1997년 다음 번 오리건주 선거 때까지 의사조력자살의 시행을 중단한다는 조치를 승인했는데, 여기에 대항하여 전국생명권위원회(National Right-to-Life Committee)가 소송을 제기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다른 한편, 장애운동과 장애인 단체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해준 적이 있었던 뉴욕의 법률회사 세 곳 - 아놀드 & 포터(Arnold & Porter), 크래바스, 스웨인 & 무어(Cravath, Swaine & Moore), 데비보이즈 & 플림턴(Debevoise & Plimpton) - 이 의사조력자살을 지지했다. 게다가 진보적인 하버드법대 교수 로렌스 H. 트라이브(Laurence H. Tribe)도 1997년 연방 대법원에서 의사조력자살을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주 정부의 의사조력자살 금지 조치를 무효화시키는 바코 대 퀼 재판 다수의견에서, 주심 윌리엄 H. 레퀴스트는(William H. Rehnquist)는 이 문제는 연방이 아니라 주의 재판 관할권에 두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 노인, 장애인 등 취약 집단이 혹사당하고, 무시되고, 오해받지 않도록 보호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항소 법원은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의사조력자살을 강제 받을 것이라는 주 정부의 우려를 기각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삶의 마지막 상황에서 가해지는 교묘한 강압과 부당한 영향력에 대한 실질적 위험을 인정했다.

에이즈 활동가들

 대다수 에이즈 활동가들은 장애 운동가들과 달리 의사조력자살에 찬성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말기 암환자 한 명과 말기 에이즈 환자 두 명, 그리고 티모시 퀼과 다른 의사 두 명은 의사조력자살에 찬성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환자들과 의사들을 지지하는 법정조언자 의견서에는 유명한 게이운동단체인 람다법률지원및교육기금(Lambda Legal Defense and Education Fund)과 일부 종교 단체들뿐 아니라 전국에이즈인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People with AIDS)의 서명도 들어있었다.
에이즈운동 활동가 래리 크라머(Larry Kramer)는 이렇게 지적한다. “에이즈가 유행한 이후로 우리가 찾아가서 대화할 수 있는 의사들은 항상 있었다. ... 최전선에 서 있는 우리들 모두는 고통을 끝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난다.” 그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독약을 선택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특히 자신이 연출한 에이즈 연극 <정상적인 심장 The Normal Heart>의 주연 배우였던 브래드 데이비스(Brad Davis)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약은 고통만 주고 효험은 없었다. 그는 햇빛을 전혀 보지 않았다. 그래서 병은 점점 더 악화되었고 가족들과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끝내고 싶어 했다.” 이 일 때문에 크라머는 “자살(self-deliverance)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추구하는 시애틀의 컴패션 인 다잉(Copassion In Dying)과 힘을 합쳤다. 그는 “배역 담당자”가 된 양 의사 둘을 선발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주치의 사무엘 클래그스브룬(Samuel Klagsbrun) 박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오랜 친구 하워드 그로스먼(Howard Grossman) 박사였는데, 크라머는 이들을 퀼에게 소개를 해 주고 소송에 대비했다.
1996년 10월30일, 내과 의사 네 명과 정신과 의사 한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의료 전문가 집단이 1990년부터 시작된 잭 케보키언의 의사조력자살 캠페인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1991년 주류 내과 의사인 퀼은 말기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여성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면제를 과다 처방했다고 전례 없는 공개 고백을 하였다. 퀼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옹호했다. “‘내가 여기서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나요?’ 라고 말하면서 죽어 가는 사람의 마지막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묵살하고 있는 것 아닌가?”
로니 사벨슨(Lonnie Shavelson) 박사는 퀼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의사조력자살을 위한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어쨌든 의사조력자살이 일어나고 있다. ... 나는 실제로 그런 자살이 남용이 되고 있더라도 아무도 모르고 있으며, 은밀하고 음성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자살이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잠재적으로 재앙이 될 것이다.” 사벨슨의 주장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지역 에이즈 전문 의사들의 단체인 베이 에어리어 컴뮤니티 컨소시엄(Bay Area Community Consortium)이 1997년에 발표된 설문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3%는 자신의 환자들 중 한 명 이상의 자살을 도와준 경험이 있었다.

통증 관리

 통증을 관리하는 과학기술이 유용하다고 주장하는 의료 전문가들도 있다. 소아과 에이즈 전문 간호사인 실라 다이아몬드(Sheila Diamond)는 “통제할 수 없는 통증 같은 건 실제로는 없고 오직 과소-인정되고 과소-조치되는 통증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호스피스 전문 의사 아이라 바이오크(Ira Byock)도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말기 환자들의 통증 치료가 부적절할 때가 더러 있지만 이런 사실이 문제조차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는 사실을 우리만 알고 있는 게 아니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의 보건 시스템은 아직은 사정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듯이, 그런 사람들을 그저 만성 질환이 있지만 그리 빨리 죽지는 않을 존재쯤으로 취급하기 예사다. ... 의대 교과 과정을 보면 삶의 막바지에 있는 사람들을 치료에는 관심 거의 없다. 게다가 4년 과정 동안 통증 관리에 대해 배우는 시간은 겨우 몇 시간에 불과하다.

 뉴욕에 있는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 완화 치료 전문가이자 1970년대 중반부터 완화 치료 및 통증 관리 분야 선구자인 캐슬린 폴리(Kathleen Foley)는 이렇게 지적한다. “종양학 레지던트와 연구원들조차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다. 조력자살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그들의 통증을 잘 관리해주면 대부분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의사조력자살 지지 측과 반대 측 모두 통증 관리가 주 정부 승인에 의한 자살보다 더 바람직하다는데 동의한다. 다니엘 카(Daniel Carr) 박사는 보스턴에 있는 뉴잉글랜드 메디컬센터의 내과 의사이자 마취과 의사이고, 통증 관리에 대해 광범위한 글을 쓰는 넬슨 헨들러(nelson Hendler) 박사는 볼티모어 인근에 있는 멘사나 클리닉의 소장이다, 이 둘은 질병 중심 접근법이 아닌 환자 중심 접근법을 추구하는 1990년대 의료 전문직 운동을 지지한다. 이를 테면, 예전 의사들은 환자의 질병 경험을 무시한 채 암환자의 종양과 AIDS 환자의 백혈구 수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카 박사는 의료적 상황이 요구할 때 낮은 단계에서 서서히 높은 단계로 올려가는 연방 통증 관리 지침을 언급한다. 렌들러 박사는 통증 관리를 저해하는 복합적인 요인들 - 가령, 의사가 처방한 통증 약물에 급여를 하지 않는 보험회사들, 통증 관리를 소홀하게 다루는 의료계와 의과대학들, 통증 관리를 위한 약물을 처방하는 의사들을 공격적으로 추적하는 마약수사국(DEA) 등 - 을 비판한다.
카 박사와 헨들러 박사는 통증을 진단하지 못하거나 오진을 하여서 적절하게 치료가 되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된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동의한다. 카 박사는 의사들은 3도 화상은 아프지 않다는 둥, 아이들은 신경계가 발달되지 않아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둥, 암으로 인한 통증은 결코 완화되지 않는다는 둥, 이런저런 신화들 너무 오랫동안 신봉했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카 박사는 암으로 인한 통증 사례들 가운데 90%는 성공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데도 이 가운데 30~40% 정도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암 환자의 30~40%는 주요 우울증을 경험하는데, 이런 증상은 치료되거나 호전될 수가 있다. 카 박사와 헨들러 박사는 적절한 완화 치료와 함께 중증 신체 질환자들이 자살하는 주원인이 되는 우울증을 치료하면 의사조력자살은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카 박사는 관리의료 때문에 통증 관리 분야에서 “지난 수 십 년 동안 치열하게 싸워 이룩한 진보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걱정한다. 생리적으로 볼 때 통증을 다스리려면 공격적인 조기 치료가 필요한데, 카 박사의 말을 인용하자면 관리의료기관들은 “지체하고, 연기하고, 거절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지금의 통증 관리 및 관리 의료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나 같은 통증 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1996년 미국 의회는 산모와 산생아를 병원에서 48시간 이상 돌보도록 하는 보건계획 수립을 의무화했고, 1997년 클린턴 대통령도 유방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위해 이와 비슷한 안전장치를 권고했다. 하지만 많은 보건체계 전문가들은 통증 관리를 위해서 그런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강력한 지지를 받은 유방 절제술”이 극적으로 본질적 서비스 항목에서 배제되자 엄청난 여론의 지탄이 뒤따랐다. - 예전에는 관리의료기관들이 유방 절제술 환자에게 하루 입원료만 지불하였다. 통증 관리 역시 그렇게 복잡한 문제이지만, 관리의료기관들이 이 중요한 서비스를 엉성하게 다룬 탓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푸대접을 받을 것 같다.

치료에 대한 강조 : 유해한 메시지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는 인공 호흡기와 전동 휠체어를 사용한다. 그는 척수손상 치료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전국을 다니면서 캠페인을 벌인다. 하지만 장애 운동가들은 리브가 무의식중에 유해한 메시지 - 장애인은 치료되지 않으면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 를 전달한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여기에 대해 리브는 이렇게 지적한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척수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척수가 재생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지만, 우리는 척수 연구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장애인 공동체들은 이처럼 돈이 많이 들고 연구 결과가 실제로 적용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는 “더욱 현실적인〔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절실한〕현재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을 고갈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카 브리스토(Marca Bristo)는 전국장애위원회(National Council on Disability) 위원장으로서 또 억세스 리빙(Access Living)의 대표 겸 CEO로서 공식적인 직책을 떠나서 말하면, 척수 연구를 장려하고 심지어 척수손상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리브의 열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척수 연구 덕분에 척수손상자들의 생존률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브리스토는 리브가 공공 부문보다 민간 부문에 간청하는 것이 불편하다면서 그가 장애운동에 유해한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대규모의 과장 광고(“hype)”를 활용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장애 운동가들은 1998년 3월1일에 방영된 2시간 분량의 특별 방송 <크리스토퍼 리브: 희망의 찬가>는 동정심을 이용하여 기부금을 짜내는 제리 루이스의 모금방송을 정교하게 모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애 운동가들은 대중매체가 시민권의 맥락에서 장애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리브가 논리 정연하고, 박식하고, 사회적 의식을 갖춘 사람이지만 장애 문화와 쟁점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지적하는 장애 운동가들도 있다. 이들은 장애인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법률을 개선했을 할 뿐 아니라 보조 장비 공급업자들이 가격을 낮추도록 유도한 리브의 노력을 칭찬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리브가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1996년 후반기에 HBO 스페셜 <황혼 무렵에 In the Gloaming>를 감독하여 호평을 받았다. 또 1998년에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1954년 고전 영화 <이창 Rear Window> 리메이크 작품을 직접 감독하고 주연 배우로 출연함으로써 1990년대 후반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버전의 리메이크 영화를 제작하는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리브가 수많은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아직도 그는 1995년 승마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이후 “슬픔의 단계(mourning phase)”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 그의 자서전 <변하지 않은 나 Still Me>는 1998년에 출간되었다. 리브가 자신의 담론에서 또 자신의 삶에서 치료를 강조하였지만, 그는 자신만의 지성, 재능, 혜안을 활용하여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는 굳건한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척수손상자인 언론인 존 호켄베리(John Hockenberry)는 자신의 책 <움직이는 장해물들 Moving Violations>에 이렇게 기술한다. “장애인을 전체 사회에 참여시키기 위한 노력보다 척수손상을 치료하거나 중증 장애인의 자살과 관련된 법률적 문제를 토론하는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무리 불가능해보일지라도 정상적인 존재로 만들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은 감상적인 메시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너무 끔찍해서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전동 휠체어를 타는 전신마비인이자 장애 운동가이가인 대니얼 로버트(Daniel Robert)는 장애인들이 처한 진퇴양난의 곤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에 빠져 있다. ‘치료’를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죽음’을 기다릴 수도 없다. 크리스토퍼 리브와 잭 케보키언에 집중된 모든 언론들의 보도 총량을 요약하면 ...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한 공식이 된다. 그들이 우리를 고칠 수 없으면 우리는 죽는 게 더 낫다. 이것이 우리의 시민적 책무다.”

우생학 운동과 안락사

 의료사학자 마틴 퍼닉(Martin Pernick)은 해리 하이젠덴(Harry Haisenden) 박사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1916년 당시 시카고의 외과 의사였던 하이젠덴은 1990년대 케보키언만큼이나 미국인들에게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이젠덴이 1915년 11월 손상을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를 죽이기로 결심하였을 때, 그는 일간 신문 <허스트 Hearst>의 ‘시카고-어메리컨’ 코너를 담당하는 기자에게 자신이 다른 신생아들도 죽이도록 허락했지만 이번 사건은 특별히 대중의 관심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퍼닉의 말을 들어보자.

하이젠덴과 그의 신봉자들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들을 두고 연민과 사랑을 격정적으로 토로하면서 동시에 경멸, 증오, 공포, 혐오를 표현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 장애인은 골칫거리이자 이 사회를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괴수들을 불러들이는 악마였다. 하이젠덴은 손상이 있는 신생아를 죽인 혐의로 각기 다른 사법 당국의 조사를 세 차례나 받았고 그 때마다 혐의가 인정되었지만, 그는 신문에 기고를 하고 <검은 황새 The Black Stork>라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시카고의사협회에서 추방되었을 뿐이다.

 하이젠덴은 <허스트>의 “추문 폭로” 전문 기자 잭 레이트(Jack Rait)와 함께 <검은 황새>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주연 배우로 출연하였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척추피열증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 아기를 비롯한 잘 알려진 사건들을 다루었다.

이 놀라운 영화의 주요 플롯은 병명을 알 수 없는 유전병을 가진 클라우드라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하이젠덴이 직접 연기한) 딕키 박사의 거듭된 생생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드는 사귀고 있던 앤이라는 여성과 결혼을 한다. 그들의 아이는 즉각 수술을 해야 목숨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장애인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딕키 박사는 수술 집도를 거부한다. 아내 앤은 불안에 떨며 울기만 한다. 하지만 하느님이 고통, 광기, 범죄로 가득 찬 아이의 장래를 장황스럽게 보여주자 앤은 불안에서 벗어나서 딕키 박사의 판단을 수용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기의 영혼은 위로 올로가 기다리고 있던 예수의 품에 안긴다.

 퍼닉은 하이젠덴이 20세기 초 미국의 수많은 저명인사들의 지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 <뉴레퍼블릭 New Republic> 같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 및 출판사들과 판권 계약을 맺었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과학은 좋은 삶과 나쁜 삶을 구분하는 객관적인 수단을 제공한다는 공통적이고 진보적인 믿음이 존재한다. 이런 믿음의 배경에는 그런 판단을 실제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주관적 가치관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들에 대한 윤리적, 정치적 비난을 편향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따라서 증거가 없다고 간단하게 치부해 버린다.

 의학을 악용한 가장 끔찍한 사례 중 하나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으로 부적절하다고 간주된 사람들에 대한 나치 의사들의 대량 학살이었다. 로버트 리프튼(Robert J. Lifton)은 나치 독일의 유력 의사들이 자행한 이와 같은 “생의학적 환상(biomedical vision)”을 1920년대 심지어 그 이후에도 미국과 영국에서 성행한 우생학 운동과 연결시킨다. 1923년, 독일의 의사이자 유전학자인 프리츠 렌츠(Fritz Lenz)는 “독일은 미국과 영국의 우생학 연구 시설에 전혀 필적할 수 없다”고 불평했다.
렌츠는 “독일에는 미국처럼 간질, 정신지체 같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이 없기 때문에 미국과 비교할 때 독일의 불임 시술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며” 독일인들을 비난했다. 버지니아 캘리언즈(Virginia Kallianes)와 필리스 루벤펠드(Phyllis Rubenfeld)는 20세기 후반 우생학 운동의 재등장이 어떤 영향, 특히 장애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논한다.

장애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금지가 공공연하기 때문에 이들이 장애 여성의 재생산이나 장애 아기의 출생을 방지하기 위한 선택적 낙태(selective abortion) 또는 유전자 기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중 일부는 20세기 초 미국 우생학 운동 당시 특히 많이 자행된 장애 여성에 대한 불임 시술 남용의 유산에서 비롯되었다. ... 이제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검사 같은 재생산과 관련된 첨단 과학기술, 우생학의 귀환, 그리고 1927년 버지니아주의 강제 불임 시술을 지지하는 연방 대법원의 판례에 체화되어 있는 사회적 태도로 복귀하고 있다는 주장을 목도하고 있다. 그 당시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lmes) 판사는 지금도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회는 명확하게 부적절한 자들이 그들의 종(kind)을 계속 이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랜드먼(J. P. Landman)은 미국의 불임 시술 운동에 관한 1932년도 연구에서 “정신박약자, 간질 환자, 정신병자, 맹인, 기형인, 범죄자는 자신의 결함을 영구화시켜 다음 세대의 질을 위협하기 때문에 인류에게 해로운 존재로 ... 간주하는 열광적이고 맹렬한 우생학주의자들”에 대해 언급한다. 우생학자들은 “국민은 외적에 대비하는 만큼이나 국민의 퇴행에 대비하여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들은 렌츠의 주장에 따라 국민은 “이렇게 바람직하지 않은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1996년 다이애나 콜먼(Diana Coleman)과 캐럴 질(Carol Gill)은 의회 증언에서 많은 장애인들이 선택하는 의사조력자살을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반대했다. 장애인들과 만성 질환자들은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193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한 우생학 운동이 다시 등장할까봐 두려워한다. 우생학 운동에 고취된 나치 의사들은 신체와 정신에 손상이 있어서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사람들 20만 명을 학살하였다. 히틀러가 1941년 8월에 이 같은 안락사 정책을 폐기했다지만 그는 집권 12년 동안 유일하게 이 공식 명령을 번복하고 약물과 치료 중단, 음식물 공급 중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인 학살을 계속하였다. 그러나〔제2차 세계대전 전범 재판이 열린-역자주〕뉘른베르크 법정은 학살당한 장애인들의 가족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살인을 처벌하지도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케보키언이 자신이 만든 자살 도구는 전신마비인들을 위한 해결책의 일환으로 고안했다고 시인한 콜먼과 질의 의회 증언은 장애인들의 “죽을 권리”가 “죽을 의무”로 둔갑하는 등골 오싹한 전조이다. 나치의 레토릭(rhetoric)은 “의사의 도움에 의한 자살(medicide)”을 옹호하는 다음과 같은 케보키언의 논리에 그대로 울려 퍼진다.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자들 또는 불구자들의 목숨을 자발적으로 자기-제거하면 공공 보건 및 복지가 보존되고 강화된다.” 양육자와 보호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은, 특히 이들이 의존적인 존재가 될 때 더욱 취약해진다.

여성이 조력자살에 의해 착취되고 위험에 처한다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케보키언의 “클라이언트들(clients)”을 조사해 보아야 한다. 그가 처음 죽인 8명은 모두 만성질환과 장애를 가진 중년 또는 노년 여성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짐이 될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 여성들 가운데 한 명을 부검했는데 그에게는 신체적 질병의 흔적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장애 여성들은 “죽을 의무”가 있다고 느끼는 첫 번째 부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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