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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또 다른 세상과 소통을 이루다. 성정자 이사 (한국장애인서예협회 )

 서예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구 집에 걸려있는 액자를 보면서 부터였다. 먹으로 쓴 글씨가 살아 움직이는 듯 하는 느낌에 한참을 멍하니 넋을 잃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마음속에 ‘언젠가 꼭 해봐야지’ 라는 것을 간직하며 지내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고 방송대에서 서예동아리를 발견하고 가입을 하게 되었다. 이때가 정식적인 서예와의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앉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몇 번 다니다가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책상에 펴서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요구 하면 될 일 이었는데 말이다. 새내기라서 말하기가 부담스러워 쉽게 포기한 나였다.
그런 나를 그럴싸한 이유를 대고 포장하여 서예를 하고 싶은 마음을 늘 속에 감추어 두고 쉽게 꺼내지 못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건 서예와의 첫 만남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포기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 있는 편의시설이 잘 된 복지관에 서예실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그 설렘과 감동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설렘을 안고 들어간 강의 첫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한문서예가 시작되고 있었다. 강의를 들어가기 전 몇 몇 분들은 한글 서예를 먼저 배우신 모양이다.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가득 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쁘면서도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선생님은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해보자’라는 말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제 막 시작한 서예에서 무얼 목표로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열정 가득한 선생님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함께 했던 분들과의 인연은 내겐 행운이었다.

 서예를 막 시작하고 서예 인으로써 삶에 대한 방향이 뚜렷하지 않을 때, 꾸지람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런 방향으로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은 내게 행복감을 주었다.

 오랫동안 글을 쓰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기류에 빠져들기도 하고, 원칙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모른 채 나아갈 때가 있다. 그렇게 오만에 빠져 있을 때, 선생님의 지적은 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고 바른 길로 서게 했다.

 삶의 여정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면 나는 참 좋은 사람들을 잘 만났던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사회를 구성하듯 서예도 글자의 획 하나하나가 다르게 표현되어진 각기 다른 선과 점들이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글이 될 수 있다.

 언제든지 글을 쓸 수 있도록 늘 개방되어진 복지관 서예실, 함께 글을 쓰는 도반 어르신들과의 창작과 전시, 타 지역 장애 예술인들과의 교류전 등 내가 맺은 인연들로 인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은 혼자 이루는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 그림 . 서예를 하고 있는 성정자씨 모습 >

 서예는 단순히 먹과 붓으로 종이 위에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한자 한자 정성을 들여 써 내려가면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양 과정이다.
서예 글감을 찾기 위해 옛 성현들의 글귀를 읽으며 내 부족함을 깨닫게 되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준다. 표현 되어진 먹 글씨에선 장애는 드러나지 않고 마음속의 굳셈과 부드러움, 욕심과 게으름까지 보이니 나보다도 내 심리를 먼저 아는 붓 끝에 마음을 비워두는 시간도 스스로 갖는다.

 요즘은 누군가에게도 내가 느끼는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옛글을 읽으면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잘 쓴다고 말할 수 없지만 좋은 글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싶어졌다. 아이를 다그치는 부모에게 ‘채근담에서 발췌한 글귀’를, 아이에게 좋은 글귀를 주고 싶은 엄마에겐 ‘들꽃’을, 장애를 결점이라 여기고 용기 없던 나에게 위로가 된 ‘결점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란 글 등을 나누고 싶어졌다.
이런 글귀들을 나만의 글씨로 표현해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며 미소 지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붓과 노는 것이 너무 좋아 열심히 한 점도 있지만 운도 따라 주어 큰상도 받을 수 있었다. 장애인 서예술인의 작가 등용을 위해 처음 개최된 제1회 한국장애인 서예 한마당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제주지역에서 전국장애인예술인들의 전시가 열리게 되었다. 무척 기쁘고 설레이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내 생의 목표와 희망으로 꿈꿔왔던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 대전에서 대상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 예상치도 못했는데 큰상을 받게 되어 너무 기뻤지만, 더 큰 기쁨은 제주 장애 작가들에게도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준 데 의미가 있었다.

 “장애가 희망을 꿈꾸는데 제약이 안 된다.”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예전의 나는 속으로 ‘장애를 겪어보지 않아서 저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거야’라고 늘 맞불을 지폈었다. 하지만 나에게 인연이 된 서예를 하면서 부정적이던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었다. 글씨를 쓰면서 획 하나가 주는 정직과 인내를 알게 되었다. 먹이 종이에 스며들 듯, 희망을 꿈꾸는 내가 되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 줄 착각하고 있던 내 틀 안에서 나가 세상 밖으로 나를 표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예를 하면서 난 또 다른 세상과 소통을 하고 감동 받고 기억으로 가져와 하고 싶은 일들로 더 큰 희망을 품지만 나 아닌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길 나의 미약함도 힘이 되어 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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