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종주 부산에서 서울까지 581Km - 우 창 윤 부회장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나는 한번 계획을 세우면 바로 실행 옮긴다. 그러다 보면 시행착오도 많이 겪게 되지만 성취하는 것 역시 많다. 계획만 세우고 실행에 옮기지 않고서는 이룰 수 있는 게 없다고 본다.
아직 동장군의 기세가 남아 있던 3월 초 즈음이었다. 겨우내 사이클을 타지 못해서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에 최상용씨와 의기투합하여 날이 풀리면 국토종주를 한번 해보기로 하였다. 이왕 하는거 도쿄에서 평양을 거쳐 북경까지 달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첫단계인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코스를 달려보기로 했다
곧바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스폰서를 구하고, 안내주자의 역할을 해주실 자원봉사자의 섭외를 부탁하였다. 또, 작년 9월부터 왼쪽 팔꿈치의 치료 때문에 사이클을 탈 수 없었는데, 롤러를 타며 몸 만드는 작업을 열심히 진행하였다.
2013년 4월 27일 오전, 부산의 낙동강 하구둑에 나(50세), 최문기(47세), 양정관(47세), 최상용(46세), 김대중(43세) 이상 지체장애인 핸드사이클 5인 그리고 조양래, 박용상(이상 도싸회원) 사이클 안내주자 2인 및 지원 스태프, 체육회 직원 등이 모였다. 전날 저녁 늦게 내려와 숙박을 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어서인지 피곤이 가시지 않았지만 모두들 국토종주에 대한 설레임과 알 수 없는 긴장감 등이 교차하고 있었다.
과연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여정은 어떤 것인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숙연함 같은 기분이 지배하고 있었다. 낙동강 하구 둑에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도착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고 마침내 5월 3일 그 꿈을 이루고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 종주 일지 >
□ 4월 26일 : 잠실운동장→부산 다대포항(차편 이동)
- 오후 2시 : 잠실종합운동장 서울시장애인체육회에서 출정식
- 오후 7시 : 부산 다대포항 도착
□ 4월 27일 : 낙동강 하구 둑→양산물문화관(35km)→ 창녕함안보(55km)
- 오전 10시 : 부산 낙동강 하구 둑 낙동강물문화관 앞에서 출정식
- 오후 1시 : 양산물문화관 도착 후 도시락 점심
- 오후 7시 : 창녕 함안보 도착
▶ 오전엔 날씨가 쾌청하고 도로상황도 비교적 양호했으나 오후엔 시골 과수원길, 마늘밭 등을 지났는데 비바람이 불고 역풍으로 속도를 내지 못해 모두들 힘들어 했다.
□ 4월 28일 : 함안창녕보→창녕합천보(55km)→달성보(38km)
- 오전 9시 : 창년함안보 출발
- 오후 1시 : 박진고개 도착후 김밥 점심
- 오후 5시 : 합천창녕보 도착
- 오후 7시 : 무심사고개 통과
- 오후 9시 : 다림재 통과
- 오후 11시 : 논공읍 도착
▶ 날씨는 비교적 양호했으나 고개를 4개나 넘는 바람에 정말 힘든 하루였다 . 오후 늦게 넘은 무심사고개와 다림재는 비포장 도로여서 일행 모두 핸드사이클이 헛바퀴 돌고 등받이가 바닥에 닿는 등 천신만고 끝에 넘을 수 있었다. 자정이 다되어 할매 국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 4월 29일 : 달성보→강정고령보(23km)→칠곡보(36km)→구미보(35km)
- 오전 9시 : 달성보 출발
- 오전 10시 : 강정고령보 도착, 대구 녹색자전거봉사단 5명(회장 정영애)합류
- 오후 1시 : 칠곡보 도착
- 오후 6시 : 구미보 도착
▶오전부터 비가 와서 우비를 입고 라이딩하였는데 노면은 미끄럽고 빗물이 고여 힘들었지만 비와 안개가 가득한 낙동 강변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 4월 30일 : 구미보→낙단보(19km)→상주보(17km)→상주상품교(11km)→문경불정역(31km)→문경읍(10km)
- 오전 9시 : 구미보 출발
- 오전 10시 : 낙단보 도착
- 오전 12시 : 상주보 도착후 kbs3 무장애세상만들기 방송
- 오후 1시 : 상주상품교 도착후 도시락 점심
- 오후 4시 : 문경불정역 도착
- 오후 5시 : 문경읍 도착
▶ 전날 묵은 산장에서 최상용씨는 지네에 팔뚝을 물렸고, 최문기씨는 가방에 지네가 들어가 기겁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종주한 날 중 가장 날씨가 좋았고 낙단보 직전에는 14%의 고개도 거뜬히 넘었다.
< 상주의 가파른 고개길에서 힘들어 지친 나를 뒤에서 밀어주고 있는 조양래씨 >
□ 5월 1일 : 문경읍→이화령휴게소(12km)→수안보온천(19km)→충주탄금대(28km)
- 오전 9시 : 문경읍 출발
- 오전 11시 : 이화령 정상 백두대간 허리도착
- 오후 1시 : 수안보 도착
- 오후 4시 : 충주 탄금대 도착
▶이화령고개 4.2km가 얼마나 먼지 실감하였지만 오르고 난후 그 성취감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어떤 고개도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 이화령 정상에 선 모습 >
□ 5월 2일 : 충주탄금대→목행교(6km)목행교→강천보(58km)→여주보(10km)→이포보(14km)→양평군립미술관(16km)
- 오전 9시 : 충주 탄금대 출발
- 오전 11시 : 비내림 휴게소 도착
- 오후 2시 : 장천보 도착후 햄버거 점심
- 오후 4시 : 여주보 도착
- 오후 5시 : 이포보 도착
- 오후 7시 : 양평 도착
▶쉬운 코스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경사가 심한 곳이 많았고 비포장길도 많았다. 오후엔 비가 내려 고생을 하였지만, 이포보를 지날 때 행군하는 군인들을 만나 환영 받을 때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
□ 5월 3일 : 양평군립미술관→능내역(22km)→팔당대교(6km)→광나루자전거공원(18km)→종합운동장(7km)
- 오전 9시 : 양평군립미술관 출발
- 오전 11시 : 신원역 조착
- 오후 1시 : 양수역 도착후 녹색자전거봉사단회원(한만정 회장) 30명 환영받고 합류
- 오후 3시 : 서울 잠실한강공원 도착
- 오후 4시 : 잠실종합운동장 호돌이광장에서 도착 환영식
□ 단순함
처음 계획할 땐 이런저런 계획을 많이 세운다. 그러나 막상 사이클에 오르면 매우 단순해진다. 다음 목적지에 가야 점심을 먹고, 그 다음 목적지에 도달해야 저녁을 먹고 쉴 수 있다. 달리다 목마르면 물마시고 허기지면 간식을 먹는다. 찻길로 다닐 땐 조심조심하고, 물웅덩이 나오면 흙탕물 튈까봐 서행하고 비오면 비 맞고, 바람 불면 바람 맞으면 그만이다. 처음 부산에서 출발할 때는 솔직히 막막했다. 해낼 수 있을 까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단순하게 묵묵히 사이클 페달을 돌리는 일이다. 사이클을 통해 질주 본능이 되살아 난다.
□ 믿음
부산에서 서울까지 581km를 종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동료에 대한 믿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난관에 부딪쳐도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해내고 말겠다는 믿음은 세상만사에 다 적용된다.
또한 사이클 타는 동안 이어지는 도로에 대한 믿음도 필요하다. 아스팔트길, 시메트길 같은 좋은 길도 있지만 자갈이나 진흙이 덮힌 비포장길도 만나기 마련이며 또한 가다가 막다른 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길은 반드시 이어지며 목적지까지 연결된다.
□ 3페 1문
사이클 타며 힘들 때는 세 번 페달 돌리고 한 번 자신에게 물어 본다.
“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부산에서 서울까지 나는 페달을 몇 번 돌렸을까?
핸드사이클 바퀴의 원둘레는 는 26인치이므로 26×2.54×3.14 ≒ 2m 이고 중간기어로는 페달질 한 번에 약 6m 정도 이동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총 거리 약 580km를 6m로 나누면 97,000번 정도의 페달을 돌렸다는 말이 된다. 정말 장하다 나의 팔이여! 반면 나의 다리는 놀면서도 왜 그렇게 저리고 아픈지 첫날은 적응이 안 되어 힘들었다.
□ 멘탈의 중요성
이화령을 포함한 고개를 오를 때 생각나는 시조로 정말 어울린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운동을 하면서 마약을 복용했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인간의 뇌는 몸이 힘든 운동을 할 때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진통효과를 주는 신경전달물질 엔도르핀을 대량 방출한다. 이때의 엔도르핀은 고통이 사라지더라도 남아있게 되어 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핸드사이크을 타고 이화령을 오를 때 정상직전의 깔딱 고개를 오르느라 죽을 힘을 다해 땀을 뻘뻘 흘리고 정상에 오르면 해냈다는 성취감과 더 이상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심리적 육체적 이완이 행복감을 가져다주게 된다. 이것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 나는 달린다
은퇴하고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한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와 애팔래치아 트레킹한
“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을 읽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도보여행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팔을 이용한 여행을 해 보고 싶다. 이왕이면 도쿄에서 서울과 평양을 거쳐 북경까지 아시안 하이웨이를 핸드사이클로 달리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4개국의 갈등과 현실을 몸으로 체험해 보고 싶었다. 이제 그 첫 단계인 부산에서 서울을 달린 것이다. 장애인들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세상에 보여 주고 싶었다. 사이클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통합하고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그려본다.
□ 자전거길에 대한 단상
자전거길 안내표시가 잘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았고 험한 길은 우회도로 표시가 병기되어 장애인 등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 바닥이 낮은 장애인사이클에 대한 고려를 하여 경사가 끝나는 곳은 완화부분을 만들어 경사로를 원만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도로가 만나는 부분의 각도도 예각으로 된 부분은 회전하기가 곤란하므로 이 부분에 대한 고려도 중요하다.
어떤 구간은 자전거를 타기에 적합하지 않아 MTB대회 때 사이클을 들고 뛴 사람이 우승할 정도로 험한데도 억지 춘향식으로 자전거 길로 지정한 곳도 있어 하루속히 개선해야 한다.
자전거길 주변에 자연환경에 대한 보존에 대한 대책과 여행자를 위한 캠핑장이나 유스호스텔 등의 숙박시설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