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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포유 : 무대 위를 달리는 사람들


무대 위를 달리는 사람들 송정아(장애인 극회 휠)


연극의 시작

 1999년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장애인 주일을 맞이해 장애인부에 나오는 사람들이 교회의 지원으로 전문 연극 연출가를 초빙하여 연극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수줍어 앞에 나서지도 못하던 나는 그 무대에 올라간 순간, 내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2개월을 대본 짜고, 연습하여 500석이 넘는 교회 강단에 서는 날.
눈앞이 캄캄하고, 머릿속이 하얗게 될까봐 온 몸이 긴장감에 움직일 수 없이 떨렸다. 아마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제일 긴장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막이 오르고 조명이 켜지면 무대 위로 올라가 수많은 시선 앞에 서서 대사를 까먹지 않으려고 무대 뒤 쪽에서 몇 번이나 외우고 또 외웠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어 무대에 오르는 순간 떨릴 줄 알았던 마음은 조명이 켜지면서 서서히 자신감으로 변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준비한 대사와 연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때의 그 짜릿한 성취감이 날 지금까지 연극에 빠져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나는 밖으로 나오는 용기를 얻었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수동휠체어 바퀴를 열심히 굴려 나오면서 자동차 면허증도 따고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고, 동료상담가로서 장애인자립생활이 국내에 자리 잡을 시기의 기반을 마련한 중심에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자신감 회복과 함께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연극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들을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내가 일하고 있던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에서 연극모임을 만들어 장애인들에게 연극을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태어난 ‘휠’은 예상대로 장애인 연극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의 열정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30명의 회원들을 어렵지 않게 모아 자원봉사를 자처한 전문 연출가와 함께 연극의 기초부터 시작하여 대본을 만들어 1년여 만에 마침내 워크숍공연을 처음 올렸다.



열정하나로 뭉친 사람들이 만든 연극

 처음 모임을 시작하고 몇 년 동안은 연습장소가 없어 장소를 빌려 준다는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일주일에 한번 씩 모임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단원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은 더 뜨거워져 갔다. 휠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극단을 만들었지만 처음 3년 동안은 지원받는 곳도 없어 모임 때마다 자비를 털어 공연장도 구하고 연습 식사비, 소품, 무대 등을 함께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열정을 갖고 힘들어도 불평 보다는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준비해 낸 소중한 마중물 같은 단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휠이 있었으리라. 우리들은 매년 1~2 작품을 단원들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착하여 무대에 올렸다.

10년이 넘는 동안 30여 편의 공연을 올리면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소중하지 않은 작품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아직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만한 몇 개를 꼽아 소개하고 싶다.

<문밖, 세상을 향해 - 2002년 9월 1일 /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

 2001년 12월, 첫 모임을 가진 후 우리는 처음부터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서 거의 매 주마다 모여 연극에 대한 기초부터 배우면서 그룹별로 주제를 정하고 대본을 만들어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워크샵 작품이다.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사랑, 취업, 여행을 주제로 만든 대본을 연습하여 최종적으로 ‘여행을 떠나요’와 ‘면접 보는 날’의 두 세션을 선보였다.



‘여행을 떠나요’는 여행도 한번 가보지 못한 휠체어 장애인 스무살 소녀 정희가 용기를 내어 친구와 함께 엄마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강릉으로 떠나는 열차를 타지만 소매치기를 당하여 어렵게 바다구경을 하다가 정신이 팔려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마는 정희. 하지만 이를 계기로 엄마는 정희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면접 보는 날’은 결혼이 하고픈 종민이 직장을 구했지만 사기인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좌절에 빠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또 한번 좌절을 겪어야 하는 현실적 아픔을 그린 내용이다.

<생일파티 - 2003년 2월 19일 ~ 22일 / 종로구민회관>

워크샵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자신감으로 극단의 정식 창단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생일파티’이다. 집에서 전화 상담을 통해 수입을 올리며 혼자 살고 있는 민수는 25번째 생일 날, 집에 도둑이 들게 되는데 민수가 장애인임을 확인한 도둑은 민수를 가엾게 여겨 훔친 물건을 놓고 가려 한다. 민수 또한 도둑이 측은해 보여 집안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는 통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이웃의 신고에 경찰이 나타나 둘은 연인 행세를 하고 다 모인 자리에서 생일파티가 열린다.



이 공연은 창단 공연인 만큼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조명과 무대, 분장 등 전문 스텝들과 호흡을 맞춰 선보인 작품이었고, 당시에는 장애인연극의 새로운 바람으로 뉴스와 방송에서도 크게 방영되었었다. 그 때 휠과 인연이 된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함께 하고 있다.

<선택 - 2004년 2월 25일 ~ 29일 / 대학로봉산민속극장>

뻑 하면 자살을 하는 무책임한 인간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13명의 자살자들이 다섯 개의 짧은 이야기를 보고, 다시 한 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최후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들은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또 겨울의 이야기를 보고 천천히 일어나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몸을 움직인다.
결국 ‘오늘 자살자 0명’이란 말을 남기고 막을 내리는 이 공연을 하면서 제일 배고팠던 기억이 난다. 외부지원 없이 단원들의 자비를 털어 만든 공연이라 연습 때도 각자 쌀이며 반찬을 가져와 먹었는데 집에서 밥을 안 먹고 오는 친구들도 많아서 항상 음식이 모자랐지만 어느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연 때 쓰일 인형 소품도 모두 달라 붙어서 직접 깎아 만들면서도 공연을 올린다는 즐거움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사랑 - 2007년 5월 24일 ~ 6월 2일 / 가나의 집>

‘사랑’은 2005년 제1기 연극아카데미에서 만든 발표회 작품을 뮤지컬로 각색한 공연이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처음 도전하는 무대여서 배우들도 스텝들도 너무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을 하고 싶은 한 장애인 남자가 사기를 당하여 돈만 날리지만 사기꾼과 다시 만나 사랑의 힘으로 용서를 한다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노래와 춤, 연기를 함께 소화해야 하는 배우들은 안 되는 노래와 안무를 배우며 자기와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을 연습하면서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부분을 공연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다들 열의에 차 있었다. 특히, 배우 중에 시각장애인이 있었는데 전혀 앞을 볼 수 없었기에 연출이 일일이 동작 하나 하나 가르쳐야 하는 수고(?)를 해 무대에서 사고 없이 멋진 무대를 펼칠 수 있었다.



<춤추는 휠체어 - 2010년 10월 1일 ~ 31일>

프랑스의 야엘아쌍은 세계여행전문가였으나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후 청소년 문학작가가 되었다. 그가 쓴 작품 중에 중도 장애를 입은 소녀의 묘사를 잘 그려낸 ‘춤추는 휠체어’를 휠의 2010년 정기공연으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았다.



비록 소설을 대본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연극적 장면 구성을 위해 내용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평범하게 살던 루이즈가 갑작스런 사고를 극복하고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림으로써 장애가 슬픔이 아닌 새로운 도전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무대였다.

그 밖에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었던 ‘피터팬 날다’, 원주에서 제주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던 ‘비밀의 화원’이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었다.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극단

 이렇게 공연을 경험한 사람들은 나의 예상대로 점점 자신감을 찾고, 사회활동을 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연극 모임을 처음 시작했던 한OO씨는 온 몸이 심하게 뒤틀려 밥도 먹여줘야 하는 중증장애인이었지만 휠에서 올린 공연을 통해 국내를 대표하는 방송사 프로그램의 보조진행을 맡게 된 적도 있었고, 휠체어를 밀지 못한다던 채OO씨는 연극 무대에 오르고 싶어 스스로 극복해 내어 결국 공연하게 되었던 적도 있다.

이렇듯 내가 10년 동안 연극을 어렵지만 놓지 못하는 이유는, 장애인도 동정심을 유발하는 무대를 떠나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전문성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은 연극의 요소들을 이용해 소외되고 나약한 사람들에게 그동안 움츠려 들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고 싶은 사명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인권가이거나 장애 해방가는 아니다. 단지 아직 많은 장애인들과 이 사회 중심을 벗어난 사람들이 문화에 움츠러들지 않길 바라며, 문화의 중심에 서서 이끌어 나가길 바랄 뿐이다.

요즘 장애인예술단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 참 기쁘다. 하지만 한편으론 장애인이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하고는 있지만 그 제작진(연출, 무대제작, 음악작곡, 조명 엔지니어, 작가 등)은 그들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예술이라는 부분이 상품적 가치와 전문성이 있어야 인기라는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회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치열한 경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장애인으로써는 무대에 올라가게 해주는 것만 해도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누구나 이용하기 편리한 무장애 공연장에서 휠체어를 탄 연출가가 시각장애인 작곡가가 쓴 음악으로 듣지 못하는 엔지니어가 조정하는 멋진 조명을 받으며 입으로 그린 무대를 배경 앞에서 멋진 연기를 펼치는 기분 좋은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까지 나는 어쩌면 연극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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