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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포유 : 여름의 문턱... 어느 날... 문득!


여름의 문턱... 어느 날... 문득! 한동식 소장(한소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감기몸살로 두꺼운 이부자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끙끙거리기를 며칠. 그러다 갑자기 덮어쓰고 있는 이불의 무게때문인지 온돌바닥의 뜨거운 온도때문인지 가늠을 못하다가, 살짝 이불을 밀어내고 일어나 앉아보니 창밖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이 무척이나 따사롭게 느껴진다.

계속 바쁘게 이어지는 센터업무와 회의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어떤 이유에서건 당분간 이불속에서 뒹굴거렸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막상 병 치레로 누워있자니 답답하다는 생각만 든다. 이럴 때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구나’하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이젠 그동안 밀린 메일을 확인하고 창밖의 햇살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충동에, 몸을 움직여 메일을 확인하고는 답장을 보내야 할 곳은 답글을 보내고 난후 나갈 채비를 한다. 아직은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는 못했고, 아무리 창을 통해 방안으로 기어들어온 햇살이 따사롭게 보여도 조금은 춥지않을까 하는 생각에 옷을 두텁게 입고 승용차에 몸을 싣고 거리로 나섰다.

오랜만의 바깥공기를 마셔서일까? 상쾌한 느낌에 날짜를 확인해보니, 이미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기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 너무 오래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무심했던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놀랍고 가벼운 책망을 던져본다. 잠시 눈을 들어 거리를 보니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게 느껴지고, 간혹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은 이미 뜨거운 계절이 오고 있다고 알려준다.

벤치에 앉아 강아지를 데리고 여유롭게 노닥거리는 노인의 모습, 부부인지 아직 결혼을 안한 커플인지 모를 한쌍의 연인들이 사랑스럽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 가까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호호 불어먹으며 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그 가운데 문득 내 눈길을 한참동안 사로잡은 이들이 있었으니, 제법 나이차가 있는 듯 보이는 두 형제가 정겹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그들의 모습과 나의 어릴적 모습들이 오버랩되었다. 내 둘째형의 모습과 함께...

나는 황해도 곡산이라는 이북지역에 고향을 두신 아버지의 자식 욕심으로 3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나, 3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고, 그 때문에 어린 나를 들쳐업고 유명하다는 병원, 한의원 등 안다녀본 곳이 없다는 어머니의 눈물섞인 하소연은 어린 내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집안에서 또 한 명의 장애인으로 집안의 애물단지였던...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8살이 되면서 학교라는 곳에 다니게 되었고, 그때부터 장애인의 삶이 내게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학교생활을 위한 등하교에 대한 것은 줄곧 둘째형의 몫이었고, 그로인해 형은 늘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로 나의 통학을 책임지기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젊은 나이에 어린 동생을 자전거 뒷좌석에 태우고 학교를 오가는 20여분 남짓한 거리와 시간은 차지하고라도 비나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미끄러워 넘어질 수도 있는 고단한 거리를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12여년의 시간을 책임진다는 건, 지금의 내가 생각해 보아도 수월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은 형과의 의사소통이었다.

새로운 학년으로 새로운 반으로 배정받고 난 후, 새로 같은 학급으로 배정된 친구들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기까지 어린시절의 난 무척이나 내성적이서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조용히 교실 한 구석의 책상에서 엎드려 지내고 있었다.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이어가던 70년 후반의 어느 날, 아침부터 찌뿌둥하게 잔뜩 흐려있던 하늘에서는 갑자기 세찬 소나기기 퍼붓기 시작했고, 소나기와 함께 하늘을 울리던 천둥번개 소리는 어린 내 가슴을 더더욱 웅크리게 만들기 시작했다. 4교시 수업을 마칠 때까지 하늘에서 퍼붓던 빗줄기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같은 반 친구들은 우산을 가지고 마중나오신 부모님들의 손을 잡고 하나 둘씩 교정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두컴컴한 교실 한 구석에서 무료함보다는 무서움을 잊기 위해서 계속 들여다보고 있던 책들의 글씨도 잘 안보일 정도로 어둡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나는 형에 대한 짜증이 밀려왔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아직 도착하지 않는거지? 동생의 하교시간은 제대로 알고나 있는 거야? 혹시 일하다가 날 데리러 와야 하는 걸 잊어버리고 있는건 아닐까? 그렇게 온갖 짜증과 원망섞인 질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형에게로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형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에나 날릴 수 있는 투정이지,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형이 와주기만을 기다리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온갖 불평과 불안함에 빠져 있을 때, 비로소 둘째 형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일면 반가우면서도 한참동안을 기다리게 만든 형에 대한 불만으로 눈길을 쳐다보면서 온갖 짜증이 섞인 얼굴표정으로 온갖 손짓발짓을 해가면서 화를 표현했다.

‘수업은 아까 끝났는데, 이제 오면 어떡해?’
‘엄마가 나 데리러 가라고 얘기도 안하고 있었던 거야?’


기다렸다는 듯이, 형에게 온갖 화를 다 표현하고선, 형이 수화로 몇 마디 하려는 것을 일부러 못본 척 그냥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그 때, 살짝 형이 다리를 절뚝이는 것을 보았지만 화가 난 나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저녁식사를 마칠 때까지 집안 식구 누구와도 말 한마디 섞지 않고 내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그냥 그렇게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때에 엄마가 느지막히 나타나서 누나에게 얘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얘! 둘째가 아버지 공장일 돕는다고 물건을 옮기다가 빗물에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는데, 병원에서 깁스를 한다고 하던데 굳이 내일 하겠다고 그래서 오늘은 그냥 데리고 왔었는데, 막내는 누가 데리고 왔니?’

‘그랬어요? 집에 오더니 아무말 않고 자전거 끌고 나가길래 막내 데리러 갔나보다 했었는데?’

‘으이그 답답한 녀석! 그냥 아버지보고 데리러 가라고 그래도 됐을텐데’

‘암튼 오늘 발목 상태 봐서 내일은 병원에 데리고 가든지 해야하니까, 알았자?’

‘네!’


그제서야 형이 늦게 온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됐지만, 이미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형에게 얘기할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형은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왔고, 난 며칠간 아버지가 직접 등하교를 시켜 주셨고, 그렇게 형에게 얘기할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며칠후에야 그 날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얘기하고서 형의 발목깁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도 땅내음을 훅훅 풍기는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난 형과 함께 긴 시간을 함께했던 자전거와 어린날의 아릿하면서 따뜻했던 학교생활이 생각이 나곤 한다.

형은 나와 더불어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했던 청각장애인이었다. 그런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형과의 일종의 동질감(?)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되면서 남들과는 조금 일찍 남들이 얘기하는 속칭 ‘바디랭귀지(Body Language)’와 함께 수화(手話)를 배우게 되었고, 집안에서는 모든 가족들중에서 유일하게 형과 다른 가족들의 의사를 소통해 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어쩌면 그로 인해 형과의 그리고 청각장애인과의 차이와 소통의 중요함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가끔 나는 내가 가진 장애로 다른 장애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스스로 묻곤한다. 같은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내가 가진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적은 없었는지...

차창으로 보이는 두 형제는 자전거를 잠시 매점에 기대어놓고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따뜻한 봄햇살을 얼굴에 가득 머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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