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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탐방 : 위험에 노출된 장애인


위험에 노출된 장애인 하성준 (아시아ㆍ태평양 경제사회 위원회 사회개발국 프로젝트 컨설턴트)


얼마전까지 우리 나라 메인 뉴스 시간에 보도된 기사들 중에 태국홍수사태에 관한 기사들이 자주 있었다. 태국의 수도이자 인구 800만이 살고 있는 동남아 중심도시 방콕이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었고 실제 방콕의 일부가 침수되어 수십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홍수의 원인은 태국 북부지역에 내린 엄청난 비로 인한 것인데 이 빗물이 모이고 모여 흘러 흘러서 방콕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에 두 차례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지는 시기가 엄청난 강물의 방콕 도달시기와 맞물리면서 상당수의 수량이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고 홍수로 이어져 버렸다. 이로 인해 방콕 남서부이자 옛 방콕의 중심이었던 톤부리, 방콕 중·북부의 방캔, 락시 지역 등 방콕의 북부와 남서부 상당수 지역이 완전히 침수되었고 방콕 동북쪽에 위치한 돈무왕 공항이 침수되는 등 그 피해가 적지 않았다.


[그림1 : 홍수로 불교의 나라 태국의 사찰이 물에 잠겨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홍수사태가 진정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집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어 버린 채 망연자실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은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에 노출된 장애인의 안전문제에 관해 태국에서 필자가 경험한 사실에 근거하여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사실 “재난에 처한 장애인”이라는 주제는 국제사회에서 여러 차례 논의된 바 있고 에스캅이 2013년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아·태장애인10년에서도 주요한 이슈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 2000년 이후 발생한 여러 차례의 자연재해상황에서 장애인들은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으며 식량의 부족, 정보의 부족,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원조의 부족 등으로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조차도 파악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잠시 생각해 보자. 2004년 12월 동남아 지역에 밀어닦친 쓰나미, 2010년 1월에 발생한 아이티의 지진사태 그리고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지진과 스나미, 연이은 후쿠시마원전사태까지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뿐, 잠시만 생각해 보면 재난이나 재해는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만은 아닌 현실이다. 최근 두드러진 생태계의 변화징후, 기후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이러한 재해나 재난에서 안전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림2 : 우리나라에 발생한 수해. 건물이 1층 높이까지 잠겨 있다.]

필자는 지난 2009년 “하성준의 유학일기”코너를 통해 미국에서 경험한 토네이도에 대해 기고한 적이 있다 (프리즘 통권 제12호 “시선과 소통 하성준의 유학일기 ”장애인 긴급지원 서비스와 자립생활“). 당시 장애인에 대한 적절한 원조가 이루어지지 못해 고립된 장애인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도움을 청하는 내용을 소개한 바 있는데 재난이나 재해상황에 처한 장애인에 대한 문제는 선진국과 후진국이 따로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태장애인10년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이슈들이 논의되고 또 그렇게 논의된 결과는 새로운 아·태장애인10년에서 다루어질 중요한 정책방향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는 빈곤의 퇴치, 소득보장, 교육기회의 확대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들 문제들의 경우 선진국과 후진국의 상황은 극단적이다. 빈곤을 생각해 보자. 후진국의 장애인 빈곤은 “굶주림”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빈곤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빈곤은 굶주림과는 다르다. 삶의 질이라고 표현되는 상대적인 빈곤인 경우가 많다.

교육기회의 균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잘 사는 나라의 교육기회는 대학진학을 중심으로 하는 고등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저개발국가의 교육기회는 학년기 초기의 6년 내지 9년에 걸친 초등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반해 재난상황에 처한 장애인에 대한 문제는 선진국과 후진국이 따로 없다. 그리고 아직 어느 국가도 장애인만을 위한 위기극복을 다루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제사회는 여성과 아동을 배려한 원조활동만을 강조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 재난상황에 처해 있는 장애인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한 것일까? 필자는 미국과 태국에서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정보, 식량, 원조라는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재난상황에 처한 장애인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림3 : 외국의 이재민 캠프]

모든 재난이나 재해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이다. 어디서 어떤 일이 발생했고 그 일이 내가 있는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파악하는데 정보는 필수적이다. 또 이러한 정보는 재난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면 라디오나 TV를 통해 특별방송을 내보내고 온 국민이 거기에 체널을 고정한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이나 태국에서도 동일했는데 문제는 이와 같은 실시간 정보를 습득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있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라디오나 TV시청에 제한이 있고 상황을 신속하게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지도와 같은 시각적 정보의 습득에 제한을 받으므로 재난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대피소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를 수도 있고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정보부족에 놓이게 된다. 실제 필자도 이러한 상황이 미국에서는 좀 덜했는데 태국에서는 매우 심각했다. 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방송매체를 활용할 수 없었고 지도를 보면서 어디가 어떻게 되었는지 퍼즐을 맞추어야 했으며 대피소의 위치는 거녕 상황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도 모르고 주변에서 습득한 정보가 있으면 방콕지도에서 어느 지역인지 찾아보는 것이 고작이었고 대사관 홈페이지나 UN 직원들에게 보내주는 실시간 문자 메시지만으로 상황을 짐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 필자가 사는 지역이 방콕시내 중심가라 아무런 홍수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될 수 있었지 실제 물에 잠기는 사태가 발생했다면 정말 아찔할 뻔 했던 며칠이었다. 그러나 아직 상황이 정리된 것이 아닌지라 긴장의 끈은 놓지 않고 있으며 여차하면 대피할 피난소의 위치도 파악해 두고 있다.

재난재해상황에서 정보와 함께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는 식수를 포함한 식량문제의 해결이다. 미국에서는 상수도 공급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식수문제가 없었지만 태국에서는 식수문제로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태국의 수돗물에는 석회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물을 그냥 마실 경우 신장에 결석이 쉽게 생기거나 신장 자체를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연수된 물이나 생수를 식수로 사용한다. 방콕의 홍수위험이 고조되자 상수도 공급이 끊어질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고 편의점을 비롯한 상점의 식품과 생수, 휴지와 같은 생필품이 동나고 식당조차 하나 둘 문을 닫는 등 정말 위험이 닦쳐 온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필자 역시 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미리 좀 사두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더 구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물이 1주일 넘도록 동난 채로 있었고 물이 동나자 콜라, 쥬스, 우유같은 음료가 동나고 나중에는 맥주까지 동나는 것을 보고 먹고 마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음식물사정은 재난이나 재해의 종류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림4 : 태국 노동자들이 물이 찬 거리를 지나고 있다.]

필자가 태국에서 경험하고 있는 상황은 물건을 구입하는 상황에서 살 물건이 부족했다. 그러나 지진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음식물은 배급과 같은 형태로 유통될 것이다. 장애인이 이러한 상황에 처한 경우 다른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음식물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구호단체나 당국에서는 장애인을 먼저 배려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현재가지 명확한 답을 주는 사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실 예로 2010년 아이티 지진사태 당시 한 시각장애학교에서 외부로 전해진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오히려 굶주리고 겁에 질린 지역주민들이 학교로 난입하여 보유중이던 식료품과 약품을 약탈해 갔다고 전해졌다. 이는 개인이나 사회의 도덕성과는 관계없이 재난이나 재해상황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또 다른 형태의 예로는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및 도쿄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사태 당시 청소년들이 배급하는 과자를 받아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일도 있다. 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성으로 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들이 재난이나 재해상황에서 장애인이 음식물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가 고려할 예가 될 수는 없다.

끝으로 재난이나 재해상황에서 적절한 원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원조에는 음식물의 공급이나 적절한 정보의 제공도 포함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대피소로의 이동이나 일상생활의 영위를 위한 최소한의 활동보조만을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재난이나 재해상황이 되면 아무리 좋은 자립생활 서비스도 재활·복지 서비스도 일시적으로 마비된다. 특히 활동보조인에 의해 제공되는 자립생활 서비스는 재난이나 재해상황에서 가장 쉽게 붕괴될 수 있는 서비스가 될 우려가 많다. 상황은 이렇지만 장애인들 특히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재난상황에서도 이러한 서비스가 없이는 생활하기 어렵다.

이번 태국의 홍수사태를 맞이하면서 필자가 생각한 것은 위험이 당장 닦쳐오지 않더라도 미리 대피하는 것이 장애인들에게 가장 안전한 대책이라고 생각했다. 지진과 같은 위급상황이 발생한다면 평소 미리 구축해 둔 네트워크를 통해 장애인의 피해를 확인하고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다.

미국에서 경험한 일이지만 재난이나 재해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병원이다. 비록 특별한 의료적 문제가 없더라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거동이 불편한 정도의 장애인이라면 병원을 대피장소의 하나로 고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긴급상황이라면 병원 역시 환자들로 가득 차 버릴 것이므로 여기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가령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전문가들은 환자를 치료하게 하고 별도의 인력들이 장애인을 원조할 수 있는 서비스를 병원에서 제공하고 그 인력의 배치 역시 병원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거나 지역의 자립생활센터와 병원이 재난이나 재해상황에서 공조할 수 있는 방안을 미리 고려해 두는 것이다.


[그림5 : 자연재해 앞에 병원이라 반드시 안전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

이제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는 어느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기후의 급속한 변화는 우리가 미쳐 예측하지 못한 자연재해를 일으키곤 한다. 이러한 인류의 위기상황에서 우리 장애인 당사자들은 재난이나 재해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국제사회를 통해 모색해 볼 때이다. 필자는 이미 장애인의 문제를 “복지”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국제사회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복지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인권이 다루는 영역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복지는 삶의 질이라는 차원에서 교육, 고용, 문화, 정보 등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갖지만 인권은 이러한 분야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의 평등에 관심을 갖는다. 복지는 스마트폰의 보급에 1차적인 관심을 갖지만 인권은 스마트폰의 보급은 물론이고 누구나 동등하게 활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기울인다.

재난이나 재해는 복지문제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이다. 물론 긴급구호와 같은 제도들이 복지제도의 일부로 마련되어 있지만 이들은 모두 사후처리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인권은 예상가능한 문제 즉, 재난이나 재해상황에 노출되기 쉽운 장애인, 이러한 상황속에서 최후의 약자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장애인을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다루는 주제도 “Disaster Risk Reduction (재해위험의 감소)”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이미 사태가 발생한 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적절하게 원조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재난이나 재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상황이 장애인의 수를 증가시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장애는 개인에게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재난은 집단 구성원 전체에게 장애를 발생시킨다. 즉, 재난이나 재해가 또 하나의 장애발생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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