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시선과소통 : 나와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보조기술 연구


나와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보조기술 연구 송원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연구원)


 나는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재활보조기술연구과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지도 벌써 만 6년이 지났고 장애인 행정 도우미를 1년 가까이 했었지만, 나에겐 거의 첫 직장이라 할 수 있는 이 연구소에서 일을 한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2년 동안 근무하면서 내가 주로 하고 있는 일은 식사를 보조해주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다. 전공이 항공우주공학이라 로봇은 좀 생소한 분야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계 쪽 베이스를 가지고 있어서 설계를 하거나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등 이것저것 조금씩 배우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림1 : 국내최초 상ㆍ하지 재활치료 로봇]

국립재활원 내에 재활전문 병원도 있고 장애인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연구소가 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 건물이어서 그런 것인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내가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하는 일도 밖으로 출장을 많이 다닌다든지 몸을 많이 쓰는 일이 아니라 계속 연구실에 있으면서 연구만 하고 있으니 그렇게 몸이 힘들 일도 없다. 장애인이 되고 병원을 돌면서 재활치료도 열심히 받았고 곧바로 다니던 대학을 다니면서 침대에 올라가서 쉬기보다는 오랜 시간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체력 적으로 달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연구원 선생님들이 많이 배려해주고 챙겨줘서 더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식사 보조 로봇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상지가 불편해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호자가 음식을 차려만 주면 사용자가 조종해서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로봇이다. 외국 제품들이 몇 개 있긴 하지만 끈적이는 밥을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한식에 맞는 로봇을 만들고 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상지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밥을 혼자서 먹는 게 쉽지가 않다.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어서 밥을 입 안까지 넣어줘야 하는데 무엇을 줘야 하는지, 양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얼마나 빨리 줘야 하는지 등등 주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서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중의 하나인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장애인들에겐 큰 불행이고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큰 문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림2 : 식사 보조로봇 시제품]

처음 만든 시제품을 가지고 사용자가 직접 이 로봇을 사용해보고 그에 대한 불만이나 개선점, 원하는 점들을 말해주면 우리는 그것들을 다음 시제품에 반영해서 계속 제품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사용자들이 안 좋은 평만 늘어놓을 때는 힘도 빠지고 해야 할 일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에 어깨가 절로 무거워진다. 반면에 잘 만들었다고 수고하신다고 칭찬해 주시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스스로 도구를 이용해 음식을 먹어 보고 좋아하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함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좀 더 노력해서 더 좋은 제품으로 만들어 이런 중증 장애인들의 일상 속에서 그들을 위한 좋은 보조기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휠체어를 탄 1급의 중증 장애인이지만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나는 거의 장애인이 아니다. 나는 혼자서 씻고 밥 먹고 운전해서 가고 싶은 곳은 전국 어디든지 갈수도 있고 일해서 돈도 벌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면서 못하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비장애인에 비해서 여러 가지 힘든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나는 지금 내 생활에 적응을 해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다. 내가 장애를 가지기 전에는 지금의 나보다 심한 장애인들을 거의 보지도 못했고 접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은 거의 매일 그런 사람들을 보고 접하게 된다.

그들과 마주하면 나는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느끼게 되고 내가 장애를 통해 겪는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장애인들 속에 나 혼자 장애인으로 있는 것보다 나보다 더한 장애인들이 주위에 많이 있는 걸 알게 되면 정서적으로도 덜 우울해져서 좀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본다.


[그림3 : 다양한 재활로봇들]

연구소에서 일을 하다 보니 국가 기관이나 다른 여러 기관에서 재활보조기구나 관련 제품들을 많이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예산이나 인력 등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많은 연구가 중단되기도 하고 실제 상용화가 되지 않고 그냥 연구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장애인이라 더 그런지는 몰라도 그냥 논문거리나 업적을 위한 연구보다는 많은 중증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실제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장애인관련 보조기구나 물품들을 보면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물건을 만들어도 수요가 많지 않아서 다른 것들에 비해 돈이 되지 않는다. 그 결과 장애인관련 물품들을 만드는 데 투자를 하거나 만드는 업체가 적을 수밖에 없어서 질도 떨어지고 나머지는 다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비싸지는 것이다. 돈 잘 버는 대기업에 이런 곳에 투자를 하라고 할 수도 없고, 정부에 지원을 해달라고 하면 당연히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로 답답하긴 하지만 서두른다고 해결 될 일도 아니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나아지길 바라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