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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포유 : Movie plus, 영화속 장애인은 감동 코드의 소재일 뿐인가?


영화속 장애인은 감동 코드의 소재일 뿐인가? 이상봉 (인천혜광학교 교사)


최근 장애인 대상 영화 몇 편이 상영되었다.

청주성심학교의 청각장애 야구단을 그린 '글러브'와 시각장애인이 범인을 찾아내는 '블라인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광주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도가니' 등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은 대부분 장애를 극복하고 도전하여 성공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러한 형태의 영화는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려오는 고정 포맷으로 감동과 함께 장애인들의 의지를 새롭게 바라보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감동과 의지의 장애인의 모습은 항상 부족하고 신뢰할 수 없으며 나약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있고 그 도움을 얻어 장애를 극복하는 성공스토리며 그런 가운데 감동을 요구하게 된다.


[그림1 : 청각장애 소년들의 야구 도전을 그린 영화 "글러브"]

장애인의 사회적 위치가 과거와 달리 많이 변하고 있는 지금, 이와 같은 의지의 장애인으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장애인을 바르게 인식시킬 수 있는지, 과연 이러한 소재가 현시점에서 타당한 것인지 한 번쯤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은 끝없는 도전을 하며 사는 투쟁적인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도 자신의 능력 안에서 스스로 노력하고 주위와 어울려 사는 동등한 인격체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우리는 인식하여야 한다.

시각장애인 여성이 건널목을 건넌다. 차량이 엉키고 운전사들의 욕지거리가 들린다. 비 오는 날 밤 택시정류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지만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결국, 살인범의 차는 다가오고 그녀를 태운다. 경찰서 취조실에서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는 사건에 대한 내용을 묻지도 않는다.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의 말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블라인드’에서의 몇 장면이다.


[그림2 : 영화 "블라인드"의 한 장면. 그녀는 시각장애인이다.]

영화 '글러브'는 유명감독인 강우석 감독이 만든 청각장애인 야구단 이야기이다. 충주성심농학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 역시 장애를 가졌지만, 그 장애를 딛고 전국대회에 첫 출전한다는 장애 극복 스토리이다.

특히 '도가니'는 그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이슈가 되어 대통령과 국회의원까지 관람하였다. 인터넷에는 재수사와 해당 법인을 해체하라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는 등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해 약자에 대한 인권법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는 등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이토록 사회적 파장이 큰 영화와 장애극복의 인간승리를 담은 영화 속에 비쳐지는 장애인의 모습은 나약한 자, 피해자, 무능력자, 신뢰할 수 없는 장애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제는 장애인이 살아가는 모습이 전과 다르게 변화되고 있다. 많은 장애인이 전문분야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며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 이는 그동안 힘써온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의 결과이며 장애인 스스로 삶의 질을 높여 나가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금은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 녹아들어 함께 살아가고 있고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영화 산업 쪽에서는 장애 극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은 장애인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왜곡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림3 : 영화 "글러브"에서 청각장애 소년들이 야구가 하고 싶다며 수화를 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이제는 영화 세계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장애극복의 장애인이 아닌 자신의 삶을 즐기며 스스럼없이 이웃과 어울려 사는 장애인이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오래전 MBC의 이경규씨가 맡아 했던 '정지선 지키기 양심냉장고'의 첫 번째 수혜자는 공교롭게도 장애인 부부였다. 새벽 4시가 넘어선 시간, 그래서 누구도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시간에 정확히 정지선을 지킨 소형차 한 대. 급하게 달려간 이경규씨 앞에 나타난 양심냉장고의 주인공은 뇌성마비 장애인 부부였다. ‘왜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신호를 지키느냐?’는 이경규씨의 질문에 입은 삐뚤어지고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그 장애인 부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 항상 지켜요." 이다. 환하게 웃는 모습과 행복해 보이는 장애인 부부의 표정에서 우리는 큰 감동을 얻었고 그 행복한 순간의 파장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영화에서 보이는 장애인의 모습은 이와 같이 진솔하게 살아가고 있는 따듯한 장애인들의 모습을 조명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인도 영화 ‘내 이름은 칸’을 보았다. 자폐증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고 행복해하고 그로 인하여 주위가 따듯하게 변화되는 영화다. 자폐증을 가진 주인공의 장애 특성을 장점으로 삼아 훈훈하고 행복해지는 내용의 영화다. 영화에는 장애극복의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그 안에 장애인이 갖는 어려움은 있다. 그렇지만 그 어려움은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오래전에 상영되었던 미국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IQ 75의 지적장애인 검프의 이야기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장애인의 아름다운 내용이다. 조금은 황당한 설정으로 되어 있지만 영화 속의 장애인은 이상하지 않다. 행복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절대적으로 사회에 기여한다.

이와 같이 외국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관점은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장애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리면서 사랑하며 행복해하며 이웃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영화를 통하여 사회는 장애인을 내 이웃으로 여기고 그들이 별개의 인간이 아닌 내 가까운 친구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림4 : 영화 "포레스트 검프"]

장애를 극복하는 의지의 장애인과 장애특성을 인정하며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장애인. 두 종류의 장애인이 있다면 우리는 사회에 어떤 장애인을 조명해야 할까? 장애극복의 인간승리적인 장애인은 항상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부족한 능력으로 부족한 목표를 향하여 매번 도전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의 능력 안에서 사회 속에 어울려 사는 장애인이 드러나야 할 때다. 이는 시대적 변화이며 또한 사회에 장애인 인식이 긍정적이고 함께 어울려 사는 다정한 이웃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계몽적 의미도 부여되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다.

장애인도 그들이 살아가는 행복권을 추구하며 스스로 능력 안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장애인은 부족한 존재가 아니라 본인이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그들의 불편함을 사회는 보충해 주고 도와주면서 장애인 스스로 살아가는 것을 인정해 줘야한다.

장애인은 독특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초월하여 극복하여야 하는 슈퍼스타는 더더구나 아니다. 그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리와 함께 사는 이웃일 뿐이다. 이제 그들이 살아가는 바른 삶, 그들만의 행복함, 순수하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모습, 따스한 마음 등이 드러나는 삶을 통하여 이웃과 함께 사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그려져야 한다.

글을 쓰는 나도 장애인이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겪는 일이지만 장애를 가진 나에게도 장애란 삶속에서 장벽이었다. 어릴 때는 놀림의 대상이었고 자라면서는 인간관계의 벽이었다. 그 후 사회 속에서는 편중된 시선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나름의 철학을 갖고 살아왔다. 그것은 이웃이 장애를 가진 내게 무엇을 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이웃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5 : 사진작품의 모델이 된 필자. 이런 즐거움이 더 좋다.]

장애인과 정상인이 함께 어울려 지내다보면 서로에게 장애인이란 인식을 느끼지 못한 채 살게 된다. 나는 이와 같이 장애인과 정상인이 서로 격 없이 지내는 관계를 '중화'라 말하여 왔다. 장애인은 사회 속에서 중화되도록 노력해야한다. 그리고 중화의 단계는 정상인이 먼저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먼저 시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장애인이 사회 속에 동화되어 살 수 있는 지름길이며 장애인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난 해 5월, 나는 시각장애 청소년의 꿈과 소망과 소원을 드러내는 사진전을 인천과 서울에서 열었다. 인천의 시각장애 학교인 혜광학교 중, 고등학생의 꿈을 3년 동안 촬영하여 학생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 사진전이었다. 이 전시 목적은 장애극복의 전시가 아니었다. 있는 자신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청소년인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어 중화의 단계로 걸어가는 전시, 중화의 단계를 청소년기부터 터득하게 하고자 하는 전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평범한 아이들의 꿈이 많은 일들을 만들어 냈다. 영화사에서 우리 아이들의 꿈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어느 독지가는 아이들의 꿈을 담은 책을 만들 수 있는 출판 비용을 책임지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래서 '안녕, 하세요!'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판되어 판매되고 있으며 영화도 같은 제목으로 완성되어 국제영화제 출품과 함께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책 '안녕,하세요!'와 영화는 장애극복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말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꿈을 이야기하고 그 꿈을 향해 가는 일상을 말한다. 그 안에서 작은 감동이 있고 따스한 이야기가 있다.

이와 같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더 넓은 사회 안에 공감할 수 있도록 다가설 수 있는 사회적 공조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다양한 면에서 연구되고 노력해야 하겠지만 특히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영화산업에서는 더욱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제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중화'된 이웃으로, 친구로 인식되어야 한다. 장애인이란 타이틀 속에서 부족하고 무능한 그리고 나약한 존재가 아닌 그들의 능력 안에서 스스로 삶을 영위하는 동일한 존재로 보여 지고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이 그 삶을 영위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장애인은 도전과 극복의 대상이 아닌 밝음과 장애 특성의 장점을 통하여 그들도 꿈과 희망과 순수함으로 우리와 같은 공간을 영위하는 친구로,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는 이웃으로, 함께 어울려 사는 동료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적 변화이며 당연히 개선되어야 할 우리 사회의 당위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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