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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탐방 : 하성준의 아시아 탐방


가장 기본적인 편의시설 하성준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이사회 사회개발국
사회통합과 프로젝트 컨설턴트)


 1990년대 중반 우리 나라에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 처음 제정된 이래 “편의시설”은 우리 나라에서 장애인의 복지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자리 잡아 왓다. 최근에는 건축물의 준공검사 단계에서 장애인 편의시설의 설치 유무를 판단하여 판정기준에 포함시킬 만큼 우리 나라의 편의시설에 대한 의식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실정인데 에스캅 빌딩과 방콕 시내의 편의시설 사정은 어떨까? 오늘은 가장 기본적인 편의시설이라는 주제로 방콕의 장애인 접근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가장 기본적인 편의시설은 무엇일까? 우리는 편의시설이라고 하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블록이나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 같은 것들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편의시설은 이렇게 특별히 설치되거나 만들어지는 것들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기본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편의시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를 생각해 보자. 인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블록이나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인도는 편의시설이 아닐까 현재 위치에서 어떤 지점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 인도는 중요한 통로로써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인도가 강남의 고급 주택가처럼 고르고 평평한 표면에 넓직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도 장애인들에게 하나의 편의시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지역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인도가 울퉁불퉁하고 노점상이나 불법으로 설치된 볼라드 등으로 보기만 해도 답답한 인도라면 그 인도는 편의시설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편의시설이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는 모든 형태의 업무용 혹은 주거용 시설 자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장애인 등 특정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부과적으로 편의시설이 설치된다면 완벽한 접근성이 보장되는 시설 소위 말해 무장애 (barrier-free) 시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방콕에 소재한 에스캅 빌딩은 보편적 설계에 의해 만들어져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건축물이다. 2008년 이후 엘리베이터의 음성안내 시스템, 점자 및 양각문자 표지판,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의 설치 등 다양한 바가적인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접근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에스캅 빌딩이 아니라 건물 밖 환경이 장애인의 접근성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해 에스캅 빌딩의 접근성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종류의 편의시설을 다 다루기는 어렵고 방콕 시내의 인도를 중심으로 장애인의 접근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방콕 시내의 인도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좁고 울퉁불퉁한 인도”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1km 이상의 장거리를 걷는 일이 드물다. 날씨가 덥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토바이 같은 교통수단도 하나의 대중교통 수단으로 활용된다. 방콕에 오면 “뚝뚝”이라고 불리는 오토바이 택시를 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비교적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활용되는 교통수단이다. 이 외에도 그냥 오토바이 자체를 택시처럼 이용하기도 하고 방콕에서는 찾아 볼 수 없지만 다른 인근 국가로 가면 자전거도 하나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생각해 보자. 무더운 여름, 1킬로미터 이상의 먼 거리를 걸어서 이동한다면 얼마나 덥고 짜증나는 일인가? 1년 내내 더운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어쩌다 발생하는 짜증이 아니라 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됨으로 비교적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인도의 상황이 지나치게 열악한 곳이 바로 방콕이다. 대부분의 인도는 좁고 울퉁불퉁하다. 좀 넓은 인도가 확보된 지역에서는 길거리 음식점이나 노점산들이 인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인도에는 가로등도 가로수도 필요하고 더러 광고판도 자리 잡고 있어 방콕의 인도는 차로 만큼이나 복잡한 상황이다. 그래서 인도를 이용하기 아주 어려운 때가 많다. 필자만 해도 인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복잡한 것 외에도 인도 이용을 가로막는 요인에는 지면이 고르지 못한 것, 단차가 높고 차로의 소음이 심한 것 등이 인도 이용을 가로막는 저해 요인이 된다. 또 하나의 저해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차도와 인도 사이에 갓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갓길이 없어 자동차나 오토바이들이 인도에 근접하여 운행함으로 흰지팡이에 의지하여 보행하는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자칫 사고의 위험이 높다.

 유엔 빌딩 주변 도로는 방콕의 다른 지역에 비해 사정이 그래도 좀 나아서 인도가 비교적 고른 편이지만 인도의 넓이는 우리 나라의 그것에 비해 절반 이하의 수준이며 경사로의 경우 거의 스키장의 활강로를 방불케 할 만큼 경사가가팔라 자칫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필자가 걸어서 지나 다녀 보아도 가파르니 윌체어가 이용하려면 장애인의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그럼 가장 좋은 장애인의 보행환경은 어떤 곳일까? 가로수나 가로등이 전혀 없는 곳, 노점상이나 불법 시설물이 하나도 없는 곳, 바닥이 넓고 고른 곳. 대답은 의외고 간단하다. 비장애인에게 편리한 인도이다. 비록 인도가 넓지 않더라도 노점상이나 가로등 같은 것들이 설치 되어 있더라도 일정한 넓이의 보행공간만 보장된다면 그 인도는 장애인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바닥의 상태는 매우 중요한데 되도록 고른 바닥이 좋다.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는 완만해야 하며 인도와 차도 사이에 최소한 50cm 이상의 공간을 확보하여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은 가장 기본적인 보행환경 즉, 인도가 갖추어야할 조건이다. 여기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블록이나 음향신호기 등이 설치된다면 금상첨화.

 끝으로 편의시설에 대한 필자의 개똥철학 한 가지만 언급하고 이 글을 맺으려 한다. 에스캅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편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으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활동하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것은 가장 쉽게 범하는 오류 중의 하나이다. 편의시설이란 최소한의 활동성과 독립성을 보장해 주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으로 한 사람의 장애를 완전히 보전해 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평소에 많이 대해 보지 못하는 일반인 뿐만 아니라 장애인계에서 일하는 일부 사람들 조차도 이와 같이 간단한 사실을 종종 간과한채 행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유도블록이 설치된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시각장애인은 정안인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회의중에 수화통역이 제공된다고 해서 모든 논의 내용을 청각장애인이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합리적 배려 혹은 장애인 편의시설이라고 불리는 환경적 원조 체계는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불이익을 최소한의 수준에서 보전해 줄 뿐, 그러한 환경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장애없는 사람과 동일한 수준의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장애가 중증일수록 더 극심해 지는데 동일한 유도블록을 활용하는 데에도 잔존시력을 가진 저시력인과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전맹인 사이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적어도 프리즘을 사랑하시는 독자 여러분들은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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