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인권리포트 : 인권위 점거 장애인단체 간부 기소


우리 옆을 보며 같이 가자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우동민 열사의 투쟁하는 모습  모란공원 열사묘지 입구 비석 곁에 작은 비문 하나
어찌 비문까지도 주인을 닮아 소박하고 조용한지...

아직은 그 분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어 그 분의 이름을 입술에 올리기만 해도 스믈스믈 눈물이 눈을 적신다.
우동민 열사는 늘 소리 없는 미소를 하늘을 향해 짓고는 했다.
뇌병변 장애인인 우동민 열사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언어장애가 있어 미소로 또는 눈빛으로 손가락으로 간단하게 의사 표현을 하였다.

그 분은 항상 있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춥거나, 덥거나 늘 그 분은 그 자리에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투쟁 현장에서, 그냥 그렇게 스쿠터에 앉아 있었고 전투 경찰 앞에서도, 용역이라는 탈을 쓴 폭력배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당당하게 투쟁했었다.
순박한 웃음을 웃으며 그분이 투쟁현장에서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장애 있는 사람 누구 하나 빠짐없이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

이 것 하나 뿐......
한명의 사람으로 자립하여 자신의 삶을 자신이 이끌고자 했던 그 분
그러나 그 분은 모란공원 묘역에 계신다. 언제나 지켜 오던 투쟁 현장을 떠나셨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생각하면 우동민 열사가 생각난다.
우동민 열사는 작년 11월 급성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2010년 11월 4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현병철 사퇴를 촉구하며, 인권단체들이 국가인권위원 7층을 점거 농성을 시작 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으로 인권단체들이 힘을 모아 우리사회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 만든 소중한 기관이다. 정부 기구이나 정부의 권력에 대항 할 수 있는 기구로서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며 인수위가 무엇보다 먼저 한 행위가 인권위를 축소하는 것 이었다.
인권위의 권한 및 조직 축소.
걱정되었다. 장애계가 7년 동안 피눈물 흘리며 일구어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또한 인권위에서 관리 감독하는 일이다. 그리고 걱정하던 일이 발생했다. 이명박 정권은 인권활동에 대한 경험은 커녕 개념조차 부족한 현병철이라는 듣도보도 하지못한 사람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충격. 다른 말이 필요없었다. 어떤 조직이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조직의 목적과 운영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충분한 수장이 중요한데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현병철이라는 사람은 인권에 대한 어떠한 경험도 개념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건은 터졌다.
인권위 위원장이라는 인사가 인권 강의 자리에서 흑인을 ‘깜둥’이라며 비하하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인종, 성별, 국가, 장애 차별에 대하여 무심할 정도가 아닌 무식할 정도의 발언을 너무나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하고 다녔다. 말이 그럴진데 행동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사회 약자로서 언제나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특히 중요한 곳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정기구인 인권위에 진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권위의 수장이란 작자의 행보가 가관인 것이다. 어찌 이런 작자가 인권위의 수장으로 모든 사람들의 인권 지킴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뿐이 아니었다. 인권위의 비상근 상임위원 인사는 더 기막혔다.
김양원이란다. 장애인 낙태를 요구하는 인권위 상임위원이라니 말이 되는가?
아직까지도 많은 시설에서 장애인의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찾아내어 올바르게 시정하고 인권침해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인권위가 아니었던가? 인권침해 사건을 긴급하게 접근하여 조사하고 사실을 밝혀 시설장을 고발하고 시정 권고 하여야 할 곳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김양원 인권위 비상근 상임위원은 자신이 시설장으로 있을때 장애여성의 낙태와 정부 지원금 횡령등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작자가 아닌가?
인권위가 인권위로 있을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되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인 진정 건수는 폭주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이후 2008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전까지 접수된 진정건수는 모두 630건에 불과했으나 2008년 4월부터 12월까지 총 645건, 2009년 한 해에만 총 745건이 접수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진정사건이 거의 9배에 해당 된다.(국가인권위원회 2010)
장애인 차별금지추진연대는 2010년은 서울시의 공공근린시설의 장애인 차별금지법의 중요한 ‘정당한 편의’가 제공 되고 있는가를 모니터링 하여, 2010년 6월 25일 인권위에 8백여 건을 집단진정 하였다. 그리고 진정에 대한 조사는 인권위에 의하여 1여 년이 넘도록 지연되고 있다다. 진정인들의 무엇을 진정했었는지도 잊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2011년에도 2010년에 이어 서울시내 유치부부터 대학교까지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 하고 있는데, 이것은 또 얼마나 기다려야할까?
아직 인권위 서랍에는 처리되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이 언제나 처리될지 기다리고 있다.

 결국 지난 11월 인권위가 인권위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며, 이명박 정부의 차별적 인권 행보에 발맞추는 행태가 극에 닿으면서 문경란, 유남용 상임위원들과 전문위원들이 전원 사퇴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어 인권위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이 모여 11월 4일부터 ‘현병철 사퇴 촉구’를 위한 농성이 인권위 7층에서 시작하였다. 이어 장애인단체들도 인권위의 올바른 제자리 찾기와 장애인의 여러 사안들 요구안을 걸고 11월 23일 인권위 11층에서 농성을 하게 되었다. 인권위는 우리에게도 소중한 기구이다. 인권위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사문화 된 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애계가 전력을 대해 제정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결국 인권위가 인권위답지 못한다면 장애인이 차별 당하는 이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인권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할 몫도 우리에게 있다. 이러한 문제 앞에서 해결 방법은 현병철 위원장의 퇴진뿐이다.
인권위의 상황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안을 찾아야 한다.

 몹시 추웠던 지난 해 12월 3일 제18회 세계장애인의 날.
현병철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며 장애인 200여명이 8층부터 13층까지 점거하고 사무실을 완전 봉쇄하여 인권위 하루 동안 업무마비 사태를 발생하였다. 역시 우동민 열사는 우리와 함께 있었다. 그날 밤 우동민 열사는 감기 기운을 보였다. 추운 농성장에서 감기가 심해질지 모르니 집으로 가라고 하였건만, 다른 동지들 모두 고생하는데 자기만 들어갈 수 없다 하였다. 어눌하고 한 마디 한 마디 천천히 하는 말이었지만, ‘우리 투쟁에서 옆을 보면서 천천히 같이 가자’고 말했던 우동민 열사. 그리고 그 말이 우동민 열사의 마지막 유언이 될 것이라고는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누가 감히 상상했을까? 우동민 열사가 우리와 나누었던 말들 중에 그 말이 남겨지리라고는....

 우동민열사의 노제를 인권위 앞에서 지냈다.
그리고 열사가 마지막 농성장으로 밤을 지세운 인권위 11층을 둘러보고 저승길을 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열어달라고 하였으나 그들은 열어주지를 않았다. 우리들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모란공원에 그의 영혼을 날리며 그 분이 꿈꾸었던 세상을 우리가 만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겨울 찬바람에 날려지는 그에게 차라리 그 차가운 바람이 있어 덜 외로울 것 같았다. 이승에서 장애인에게는 더 차갑고 서러운 바람을 알고 있는 그 분에게 저승은 이런 것이 없으리라 믿고 싶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자의 변명이 아닐지.

 지금 여기 살아있는 우리는 또 하나 걱정이 있다.
우동민 열사가 사랑하는 동지들, 그가 함께 했던 12월 3일 같이 했던 동지들이 34명이 경찰 조사를 받았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외 4명은 기소상태이며 8월 18일 첫 공판을 받았다.
우동민열사가 하늘에서 이 현실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할지......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우동민 열사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 현재 기소상태인 장애인활동가들도 후회하지 않고 있다.
인권위에 대한 애정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어떤 사람이 인권위에 있는가에 따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거나 하지 못하는 기구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수장인가가 무척 중요하다.
얼마 전부터 인권위에서 인원 충원을 하겠다고 한다.
그런 인권위에 우리의 요구가 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장애인의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인권위에 들어가야 한다고, 그러한 사람을 채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권위를 모니터링하고 끊임없이 진정하고 좋은 권고가 나오게 하고 장애인이 당하는 차별에 적극 대응하게 하는 것을 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장애인 차별 없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란공원에 가을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우동민 열사를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
인권위 앞에서 서성거릴 그 분이 모란공원에는 있기나 할지. 인권위 정문 앞에서 스쿠터에 앉아서 여전히 투쟁하러 오는 동지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있을 것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바라며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 분과 우리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경계선이 있지만 그 분의 뜻과 우리의 뜻과 같다면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우동민 열사와 같은 장애인들이 투쟁하러 나선다.
묵묵히 그렇게 투쟁의 현장에 있다.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