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시선과 소통 : 시설을 위한 변명


시설에 대한 생각 정춘진


 1971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 필립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 : Stanford Prison Experiment ; 가상으로 교도소를 만들고 실험참가자 중에서 임의로 교도관역할과 죄수역할을 주어 권력에 대한 역할반응을 실험 -필자 주-)'을 실시한다. 이 실험은 이전까지 인간행동을 이해하고 분석했던 ’개인의 병적 소인‘관점에서 ’사람, 상황(또는 행동의 배경),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시스템‘이라는 요인으로 확장시켰다는 의미를 지닌 실험이었다. 이 실험이 다시금 세상에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3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자행된 미군 헌병들의 이라크 포로 학대사건,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 사건 등을 설명하는데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상황(또는 행동의 배경)‘, ’사회적 시스템‘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2010년 초 인천시에서 각 비영리단체에게 한미 FTA 등 촛불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부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히자 일부 비영리단체들은 보조금지원을 거부하고 일부 단체들은 시의 조건을 수용한 사건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영리단체인 참여연대에 대해서도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단체이므로 정부보조금 지원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소란스러움이 한동안 계속 되기도 했다.

 정부는 사회에 필요한 공익적인 사안에 대하여 민간에게 위탁하여 보조금을 지원한다.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방식에는 크게 2가지가 있는데, 사업단위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과 사업전체를 포괄해서 지원하는 방식이다. 보조금이 정부로부터 지원되니 이에 대한 모니터링은 당연히 관할 시군구청에서 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니터링의 수위는 비영리 단체의 사회적 파워 등에 따라서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보조금을 받는 단위사업이 채택이 되거나 사업운영주체로 선정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사회적 파워와 정치적인 친밀도와 밀접하게 연관되기도 한다. 즉 친하거나 중립적이면 유리하고, 소위 찍히면 가차 없이 변경·탈락될 수 있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알만 사람은 다 아는 오래된 불편한 진실이다.

 정부보조금을 받는 비영리단체들은 친정부적이고 시군구에서 요청하는 정책을 우선으로 수행하고자하며 가급적 정당색채를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정 정당을 지지했다가 문제에 휘말리면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 정책으로 확정되어 시달되는 것을 수행하는 생존의 현명함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보조금지원과 운영주체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입장에서 결국에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주체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발언이나 행동에 위험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설사 사회적 발언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도 이러한 단체를 길들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보조금지원을 중단하거나 운영주체를 바꿔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현실상황이 이러다 보니 이런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발언에 대한 침묵을 암묵적으로 학습한다. 그리고 사회적 발언 대신에 소속단체의 고유사업에 열정적으로 몰입하여 수행한다. 일종의 반동현상이고, 욕구불만인 셈이다.

 정부보조금을 받는 비영리단체에는 참여연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자유총연맹도 있고,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관, 장애인복지관도 있다.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정부보조금을 받는 비영리단체들 아니 장애인복지관으로 패러디해 보자. 비난받아야 할 모든 것에 면죄부를 사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단체들이 속한 상황과 사회적 시스템을 보자는 것이다. 보조금을 지원하고, 운영주체를 결정하는 쪽은 ‘갑’이고, 보조금을 지원받고 운영하는 곳은 ‘을’인 구조인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불합리한 사항에 대해서는 ‘을’도 ‘갑’에게 발언하지만,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갑’은 영원한 갑이고 ‘을’은 영원한 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을’은 ‘갑’의 다양한 명시적 암묵적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것은 기본중에 기본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을’의 생사박탈권을 쥐고 있는 ‘갑’을 불편하게 할 용기있는 ‘을’의 탄생은 몹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보보조금을 받는 장애인복지관의 위탁체계와 과정, 보조금지원 및 모니터링시스템. 그리고 사업내용요구사항과 보고, 규격화된 사업컨텐츠와 요구사항 등은 장애인복지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제한과 비난을 가속화 시키는 ‘상황’이며 ‘시스템’이다. 모든 것이 이러한 것으로 설명될 수는 없으며, 비난 받아야 할 모든 것이 이러한 이유로 무마될 수는 없다. 다만 비난하고 비난받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장애인복지관의 기능과 역할도 끝없이 견제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복지관의 기능과 역할을 규정하는 상황과 시스템을 상당부분 결정하는 주체들도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장애인활동가들로부터 ‘을’인 장애인복지관만 많은 비난과 견제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억울하다. 장애인활동가들에게 부탁한다. 이제부터는 ‘갑’도 비난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을’이 행동하는 상황이 바뀌고, 시스템이 개선된다. 그 이익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몫으로 돌아간다.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