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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에르토리코를 가다 고관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소 소장)


 2009년 10월 초, 나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의 상임대표를 맡아서 수많은 세미나와 회의, 행사참여, 수많은 서류처리와 일정정리 등등의 일에 치어, 거의 워크홀릭으로 매일매일을 파김치가 되어 지내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장애인자립생활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당시 참여하기로 했던 한국 장애인단체 관계자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워지면서, 내가 대타로 참여하게 되었다.

다만... 나의 참여가 출발을 불과 일주일을 앞둔 상태에서 급하게 결정되어 난감했다는 것 정도가 문제라면 문제이리라...

일종의 땜방이었다. 땜방! 뭐 그리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지만 장소가 이름도 생소한 미국령 섬이라는 사실에 일단 가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프에르토 리코를 찾아보았다.

와우~ 꿈에 그리던 카리브해의 미국령 섬나라.

대서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지점에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야자수 모래해변의 열대섬.

미국본토로부터 쿠바와 도미니카공화국을 지나서 더 내려와야 있는 먼 이국의 땅이었다.

그래 떠나자. 이렇게 갑자기 떠나는 것도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10월의 쌀쌀해져 가는 가을의 문턱에서, 얇은 긴팔 바람막이 옷을 제외하고는 다 반팔옷으로 채우고 출발 2~3일 전에 받은 비행기티켓을 들고 아무도 배웅하지 않는 인천공항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혼자 외국을 나가는게 처음은 아니었다. 매년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전미장애인자립생활컨퍼런스에 2005년도 자비를 들여서 혼자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필수적인 몇 개의 단어로만 무장된 생존 영어를 구사하면서 미국자립생활의 초기리더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국회의사당까지 거리행진도 했었으며, 혼자서 재미있게 워싱턴D.C를 구경하며 백악관 뒤뜰까지 갔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여럿이 함께 다니는 것보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자신에 대해 새로운 각오와 가능성, 장점을 발견하게 되고,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하는 능력이라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들이 부쩍 성장하게 되는 것 같다.

따라서, 말이 안통하는 외국계 비행기에서도 편안하게 지내면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항상 입국수속을 밟는 것은 긴장되는 일임이 틀림없다. 특히 9.11 테러 이후에 입국절차가 까다로워진 미국같은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장애인이더라도 특별히 봐주지 않는다. 어쩌면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별도의 장소에서 낮선 사람(통관원)에게 온 몸을 샅샅히 검색당해야하는 불안함이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뉴욕공항에서 최종 목적지인 프에르토 리코까지 가는 비행기로 갈아 타야 하는데, 워낙 넓고 복잡한 공항에서 옮겨 타는 곳으로 찾아가기란 또한 만만치 않다.

묻고 또 물으면서 찾아간 곳에는 한국인은 고사하고 동양인이나 백인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아하 이런 것도 또 다른 경험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비행기를 타고 5시간을 걸려서 목적지에 내리니 밤12시 가까이 되버렸다.

‘아.. 이제 공항까진 왔는데, 컨퍼런스가 개최되는 호텔까지 어떻게 가야할까’하며 혼자 난감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다가오면서 “당신이 이번 장애인컨퍼런스에 참여하는 마이클이 아니냐”고 물었다. 무조건 “맞다. 내가 마이클이다”라고 했더니 자기들이 갖고온 호텔셔트버스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차안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나처럼 늦게 참석하는 미국 각지에서 온 자립생활관련 종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컨퍼런스장소인 호텔에 와 있었다. 그리고 호텔로비에서 하루 먼저 온 일행을 만나고 나서야 무사히 왔구나라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지며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컨퍼런스의 책임자인 글랜화이트박사와 부인 캐시여사 그리고 필자
<그림 1 : 컨퍼런스의 책임자인 글랜화이트박사와 부인 캐시여사 그리고 필자>

하지만 ‘잘 왔어. 훌륭해. 이렇게 하며 힘든 일을 헤쳐나가는 거야’하며 스스로에게 칭찬하며 자신을 부추겨 세웠다. 그리고 이틑날, 오전부터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남은 1박2일의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오전에 폐막을 하고, 오후부터는 자유시간이었다. 그래서 나와 일행 1명, 그리고 통역사 이렇게 세 사람은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인근 조그만 섬으로 해수욕을 하러 떠났다.

함께 갔던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이범재 대표와 필자
<그림 2 : 함께 갔던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이범재 대표와 필자>

관광 중 만나게 된 이구아나. 반갑다!
<그림 3 : 관광 중 만나게 된 이구아나. 반갑다!>

정말 환상적인 풍광이었다. 정말 자연에서 보는 산호와 열대어, 그리고 식당 옆에서 혼자 놀고있는 이구아나, 맛있는 생선튀김요리등을 맛보고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1박을 더하고 다음날 프에르토 리코 시내구경을 하면서 숙소를 잡고 다운타운에서 전통요리를 맛보았다. 근데, 내 구두 밑창이 떨어져 버렸다. 이런 어디서 신발을 사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시내 광장 주변은 너무나 조그만해서 슈퍼마켓이 하나밖에 없었다. 일행은 이곳에 왔던 경험이 있었는지, 이곳에서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슈퍼마켓이라고 일러주었다.

광장에서 갖 볶은 커피를 팔고 있었다.
<그림 4 : 광장에서 갖 볶은 커피를 팔고 있었다.>

거기서 값싼 싸구려 슬리퍼를 사고서 신발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곤 이틑날 새벽, 일행은 뉴욕으로 혼자 떠나고, 나는 아침에 짐을 꾸려서 또다시 혼자 관광을 다니게 되었다. 광장에서 파는 갓볽은 커피하며, 역사관광지 일대를 도는 트롤리 버스를 타고서 스페인통치시절에 지어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엘 모로 요새와 산크리스토발 요새를 샅샅히 뒤져보며 400여전에 요새의 감옥 벽면에 새겨진 그림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다 죽어간 카리브 해적들의 한맺힌 영혼과 400년간 스페인과 미국의 끊임없는 각축장이 되어버린 작은 섬나라의 슬픈 운명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이 엘 모로 요새
<그림 5 : 이곳이 엘 모로 요새>

그리고 저녁에 찾아간 전통식당에서의 정말 전통적인 음식인 냄새고약한 통돼지고기 튀김을 먹고나서 공항에 일찍 도착하니 8시였다. 이때부터 10시간을 기다려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프에르토 리코를 빠져나왔다.

해적들이 엘모로 요새 감옥의 벽에 자유를 갈망하며 그려넣었던 자신들의 배 모습
<그림 6 : 해적들이 엘모로 요새 감옥의 벽에 자유를 갈망하며 그려넣었던 자신들의 배 모습>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경험들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직업 여행객으로 다니는 것도 괜찮겠구나란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관광지는 내가 장애인이란 것이 확실하면 등록증 따위에 상관없이 무료라는 것이다. 트롤리버스도 공짜고 관광지도 공짜고 그래서 몸이 좀 피곤한 것만 빼고는 참 즐겁고 저렴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뉴욕에서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비바람을 맞으면 돌돌 떨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일행을 다시 만나서 점퍼를 빌려 입고, 슬리퍼 대신 운동화를 사서 신고, 유명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뮤지컬을 구경하고나서, 밤 늦게 재즈바에서 정통 뉴욕 재즈를 관람도 하면서, 2박3일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 여행은 나에게 정말 커다란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줬으며 삶의 긍정적 힘을 갖게 만들었다. 그 후, 얼마 안되어서 재직중이던 단체의 대표직을 사직하게 된 결심도 그 때 내릴 수 있었으며,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용기도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얻어졌던 것이라 믿는다.

여행은 사람을 부쩍 성장시킨다.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은 나의 옹졸함을 깨닫게 하고 더욱 더 넓은 마음을 갖으라고 부추긴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이는 누구에게나 다 똑 같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다. ‘항상 삶에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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