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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소통 : 남자의 계절-가을


이성적, 논리적 사고를 강요받고 훈련한 남자들아, 가을은... 박현희 (장애여성네트워크 활동가)


 가을은 별칭이 참 많다.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풍요의 계절 등. 그 중에서도 가을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별칭은 ‘남자의 계절’이다. 그런데 왜,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지? 그리고 왜 가을에 남자들이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하는거지?

가을의 단풍
<그림 1. 가을의 단풍. 스산해지는 공기와 저 아름다운 빛깔 앞에 남자는 센치(?)해 진다.>

30대인 애인에게 물었다.

“가을에 왜 남자들이 외로움을 타요?”
“음, 가을이 날씨가 좋잖아요. 선선하고, 습도도 적당하고. 날씨가 좋으면 어딘가 나가고 싶잖아요. 나들이를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있어야하지 않겠어요? 혼자서 도시락싸는 부산을 떨면서 갈 순 없잖아요. 그래서 가을이면 남자들이 부쩍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아요.”

20대인 아는 동생에게 물었다.

“가을이 외롭니? 가을 타?”
“여자가 없잖아.”
“봄, 여름, 겨울도 여자가 없는건 마찬가지인데 특별히 가을이 더 외로워?”
“왠지 파아란 하늘보면 누군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30대인 친구에게 물었다.

“남자들이 왜 가을을 외롭다고 생각해?”
“가을에 감성도 up 되는 건 남녀 공통 아녔어?”
“남자의 계절이라고 많이들 하잖아.”
“어.. 그러고보니 그런 말도 있기는 했던 듯. 으음.. 내 인식으로는, 성별차 없이 '괜히 감성이 널뛰는, 심신에 정서적 영향을 미치는' 계절.”
“오!”
“뭐, 우수라던가 뭐라던가 주로 남자 전유물 같이 생각되는 경우가 많으니 남자의 계절이니 하는 말 있는 거 아니려나?”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러므로, 가을은 좋은 취식물을 즐기는 계절로 지각되는 편이 민중에 좋은 일이야.”

3인의 대답으로는 감이 안와서 검색을 해봤다. 가을엔 일조량이 감소하고 일조량 감소로 인체에서 세라토닌의 분비가 활발해진다. 세라토닌은 항우울 작용을 하는 멜라토닌의 분비를 억제해 가을에는 우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결국은 호르몬분비 이상으로 신체가 작용을 하는 것이네. 신체작용이 결국 감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남자들이 유난을 떨까?

가을의 남자
<그림 2. 가을의 남자. 사실은 수확의 계절에 연애 수확 본능이라도 발동하는 게 아닐까?>

10대에는 가을을 타는 남자들이 멋있어 보였다. tv 드라마에서 긴 트렌치코트의 자락을 휘날리며 낙엽을 밟는 남자 주인공이, 괜히 말도 안되는 쪽지를 건내는 학원의 급우가 멋있었다. 특히 트렌치코트를 입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걷는 ‘무능한 지식인’ 코드의 남성들이 멋있어보였다. 이건 그냥 지식인에 대한 선망이 있는 어린 계집아이의 취향이다.

20대에는 가을 타는 남자들을 놀렸던 것 같다. 그들이 왜 가을을 타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으면서 트렌치코트라도 휘날랄라 치면 놀렸다. “지금 뭐, 뭐하는 거야? 설마 가을 타는 거야? 여자 없다고? 당신이 애냐.. 가을을 타게..” 가을은 ‘무능한 지식인’ 남자나 타는 것이라는 10대에 생긴 말도 안되는 편견이 그렇게 만들었다. ‘가을을 타는 남자=무능한 지식인 코드의 남자’이라는 나만의 공식을 보편화시켜 남자들을 놀리던 시절이다.

30대의 초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은? 앞서 말한 애인처럼, 이유를 조곤조곤 대가며(뭐 딱히 수긍할 순 없지만;; 여자들도 외로워!) 가을 타는 현상을 진단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파란 하늘과 적란운에 그냥 외로움을 느끼는 아는 남자들은 얼마나 있을까? 닥치고 가을은 그냥 맛난 것을 먹는 계절로 지각되어야해, 라는 생각을 하는 남자들은 얼마나 있을까? 이처럼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이유를 알고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이번엔 30대 여성1에게 물었다.

“가을 타는 남자들 보면 어떤 생각 들어?“
“여친이 있어도 탈까 이런 생각 들고 좀 없어보이기도 하는데? 괜히 바바리입고 폼재는 남자들 보면 말야. 게다가 바바리가 안 어울리는 남자도 있으니까. 흐.”

20대 여성은 “갑자기 센치해지고 여자 같아져서 감당하기 힘들어. 눈치봐야 한다구!”

30대 여성2는 “멋있단 느낌보단 안좋던데... 참 시간 많다, 쓸데없다 이런 생각도 들고.” 라고 말했다. 30대 여성3은 “남자가 가을을 타면 좀 그렇지.”라고 한다. 3인의 여성 모두 가을을 유난스럽게 타는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있었다.

트렌치코트
<그림 3. 트렌치코트는 남녀불문! 아무나 소화 못한다구!>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원인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던 3인의 남성은 가을을 타는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여성 4인은 가을 타는 남성들의 현상을 평가하고 있었다.

아뿔싸! 내가 평가를 요하는 질문을 했구나. 결국 나부터가 남자들이 가을 타는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고 그들의 모습에 대해 여자들과 수다 떨기를 원한게 아닌가.

자기에게 일어난 변화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감정적, 정서적 경우일 때에는 더 그러하다. 감정적, 정서적인 부분이 더 발달한 여자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이성적, 논리적 사고를 강요받고 훈련한 남자들에게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본인에게 일어난 변화를 설명하는데 주저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설명하지 못하고 매체에 익히 노출된 모습들(트렌치코트와 낙엽)을 연출하며 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남자들이여,

생리적 변화가 올때만 감정적 표출만을 하지 말고 언제나~ 늘~ 그러면 어떤가! 강요받고 훈련 받아온 이성적, 논리적 사고에 갇혀 있지 말고 감정적, 감성적 사고도 늘 트레이닝을 해보는게 어떤가! 그렇다면 가을이 되었다고 폼 잡는데만 필요한 트렌치코트 비용도 들지 않을테고(이게 뭔 말..) 폼 잡는데 필요한 시간도 절약될 테고(정말?) 여자 같다는 평가도 받지 않을텐데? 감성을 표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렌치코트는 정말 아니야! 오홍홍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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