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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하성준의 유학일기


엘리베이터의 숨겨진 진실 하성준 (유엔 아태본부 프로젝트 컨설턴트)


 필자는 3년 반이 넘는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지난 4월부터 태국 방콕에 소재한 유엔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에서 아·태 장애인 10년 계획과 관련하여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한 이곳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필자는 여러 가지 나만의 경험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필자가 방콕에서 경험한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해 프리즘을 통해 소개하기로 한다.

 오늘 첫 번째로 나눌 이야기는 엘리베이터의 진실이다. 엘리베이터는 중요한 장애인 편의시설 중 하나이고 한국에서도 많이들 이용한다. 여러 가지 편의시설 가운데 비장애인과 함께 이용하는 시설이기도 한 엘리베이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숨어 있다. 오늘은 내가 방콕에서 처음 다루기 시작한 편의시설인 엘리베이터의 모습을 가지고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우리는 장애인의 편의가 보장된 엘리베이터를 주변에서 더러 볼 수 있는데 몇 가지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점자와 양각문자가 붙어 있는 버튼들, 문이 닫히거나 열릴 때, 어떤 층에 도착했을 때 나오는 음성안내, 엘리베이터의 속도, 엘리베이터 내부 벽에 설치된 핸드레일 등이 알려진 엘리베이터의 편의시설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되려면 이 외에도 몇 가지 추가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우선 엘리베이터는 좀 커야 한다. 엘리베이터의 크기는 천차 만별이고 엘리베이터의 크기는 결국 건물의 크기나 확보된 공간에 이따라 다르지만 최대한 큰 엘리베이터가 좋다. 이는 전동 휠체어 사용자의 편의를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큰 엘리베이터는 에너지 낭비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되려면 그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여의도 이룸센터의 엘리베이터는 사실 건물의 크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의 수에 비해 작은 편이다.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더더욱 작은 편이다. 사람이 많이 타고 있을 때 전동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을 경우 탈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공간의 문제로 인한 것인데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은 저층을 비장애인들은 주로 고층을 이용한다. 입장이 뒤바뀐다면 비장애인들 가운데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질 것이고 장애인들의 엘리베이터 이용이 더 용이하지 않을까. 비장애인들이 고층을 이용하다 보니 6층이나 8층을 계단으로 다니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장애인들은 저층을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이동할 층에 관계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함으로 엘리베이터 이용자를 분산시키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그런데 필자는 지금까지 가장 작은 엘리베이터를 방콕에 있는 호텔에서 보았다. 필자가 묵고 있는 드목 (De Moc)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필자가 본 가장 작은 엘리베이터이다. 아마 그 크기가 이룸센터 엘리베이터의 1/2 정도 되는 것 같다. 성인 네 사람이 타면 꽉찬다. 이렇게 작은 엘리베이터이다 보니 눈치없는 필자만 빼고 사람들은 안에 사람이 두 명만 타고 있어도 엘리베이터 이용을 포기한다. 전동 휠체어 장애인은 이용조차 불가능할 듯하다. 이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만 이용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동승하기는 매우 곤란해 보인다. 유엔본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호텔이고 각종 회의참석자들이 자주 묵는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 사정은 그리 좋지 않은 것이다. 왜 가까운 드목 호텔 대신 거리도 멀고 비용도 비싼 프린스팔레스 호텔에 많은 장애인들이 묵는지 이유가 분명해지는 대목이다.

 엘리베이터에 숨겨진 또 하나의 진실은 음성 안내기능에 있는데 이 기능은 엘리베이터 자체의 선택 옵션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엘리베이터들이 도착하면 울리는 음향신호, 출발과 도착, 문이 열리고 닫히는 동작 안내 등 음성 혹은 음향으로 이루어지는 기능을 꺼두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보건복지부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황당함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것은 엘리베이터에 음성 안내를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과천 청사에 있던 시절, 재활지원과나 장애인정책과가 모두 1층에 위치하고 있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지만 안국동에 청사가 이전한 현재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안국동 보건복지부에서 필자가 타본 엘리베이터에는 음성 안내는 전혀 없고 음향 신호는 최소화되어 있어 시각장애인의 경우 절대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보건복지부에 갈 일이 생기면 꼭 누군가와 함께 방문하거나 복지부에 전화를 미리 해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 비록 장애인의 출입이 빈번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우리 나라 장애인정책을 주도하는 보건복지부인 만큼 엘리베이터에 이러한 편의기능을 좀 켜 두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유엔센터에 있는 엘리베이터에는 모두 음향 신호 및 음성 안내가 잘 나온다. 최소한 도착한 층을 안내해 주고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음향 신호는 잘 작동한다. 오피스 빌딩에 있는 3대의 엘리베이터 모두 이러한 기능을 켜 두고 있다. 장애인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엘리베이터의 기본 세팅이 그런 것으로 판단되는데 기본세팅에 장애인을 배려한 엘리베이터 제조 회사 정말 칭찬해 주고 싶다. 그렇지만 유엔센터 엘리베이터의 문제는 바로 버튼에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이 터치 방식인 것. 여기에 버튼이 눌렸는지 아닌지 아무런 음향 신호가 없다. 또 한번 눌리면 지정된 엘리베이터 동작이 수행되기 전까지 계속 그 상태가 유지되는데 이것도 그리 바람직한 기능이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버튼 방식은 우선 눌렸을 때와 눌림이 취소되었을 때 서로 다른 음향 신호가 필요하다. 버튼도 터치 방식이 아닌 일반 버튼 방식이 좋다. 여기에 점자나 양각문자는 버튼 위에 위치하는 것이 좋고 어느 한 가지만 사용하기 보다는 점자와 양각문자 모두를 표시해 두는 것이 좋다. 유엔센터 엘리베이터에서 이러한 조건들 중, 점자와 양각문자 모두를 표시해 두는 딱 한 가지만 충족하고 나머지는 모두 낙제이다.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보이지 않는 편의 (Accommodation)이다. 지나치게 빠른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타고 있는 사람에게 불안을 초래하고 출발과 정지에 있어 흔들림을 유발한다. 장애인 뿐만 아니라 노약자나 임산부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방콕에는 "마분콩"이라는 유명한 쇼핑지역이 있다. 우리나라의 동대문과 용산 전자상가를 합쳐 놓은 듯한 분위기의 쇼핑몰인데 이곳의 엘리베이터 속도는 거짓말 약간 보테면 63빌딩 고속 엘리베이터 수준이다. 그 속도가 장난 아니다. 다른 편의시설은 접어 두고라도 속도 하나만으로도 낙제점을 맥여도 손색이 없다. 마치 자이로드럽을 타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 나라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편의시설 현황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질 만큼 마분콩의 엘리베이터는 속도가 빨랐다. 이 외에도 집을 보러 다니면서 여러 건물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보았는데 편의시설의 설치가 거의 없다고 판단할 만큼 음향 신호나 음성 안내가 없었고 점자나 양각문자로 버튼의 기능을 소개하는 것 역시 거의 없었다. 엘리베이터의 크기도 작은 편이었고 터치식 버튼을 가진 것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꾼다면 엘리베이터에 먼저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보이는 방콕이었다.

 알면서 지키지 않는 것과 몰라서 못 지키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실제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방콕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 못 지키는 것이라고 여겨질 만큼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초보 수준이다. 인도의 모양과 넓이, 사람들의 의식, 등등등. 앞으로 필자가 전하는 방콕일기를 통해 우리 나라의 현실이 얼마나 앞서 있는지 또 우리의 모습 가운데 방콕과 다를 바 없는 무지함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등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의 권리를 우리가 지키고 가꾸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필요에 대해 눈뜨는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누군가가 알려 줘서가 아니라 우리가 알아 내어 요구하고 시정시키는 것이 새로운 아·태 장애인 10년 (2013~2022)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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