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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남긴 상처들 조임숙 (시각장애 시인)


생의 한 지점에 파문을 일으킨 화두
“빛이 남기는 상처”라는 말이 무슨 힘을 품었기에 이토록 나를 설레임과 기대로 부풀게 하는지, 빛이 남기는 흔적이 사진이란다.

지난 해 어느 잡지를 통하여 읽은 바 시각 장애인들도 사진을 배우고 촬영하며 전시회까지 열었단다. 항상 정보에 뒤떨어진 나에게까지 그 소식이 전해졌으니 소문이 널리 전파 되었나 보다.

소심한 성격에다 매사에 소극적인 자신을 알면서도 새롭고 이색적인 것이면 호기심과 의욕이 솟구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익숙하지 못한 일을 시작할 때마다 걱정과 두려움에 온 몸이 움츠러드는 듯 힘겨워 하면서도 왜 끊임없이 모험을 즐기는지 또 다른 나의 모습에 놀랄 때도 있다.
시각 장애인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회의 날을 기다리던 중 실로암 시각 장애인 복지관에서 사진 교실을 개강한다는 공지에 망설임 없이 등록하게 되었다.

개강 첫날.
두려움과 기대 속에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수업은 시작되었고, 참가자들 중 내가 가장 연장자였으며 시력 또한 내가 가장 나쁜, 모두들 나보다는 그나마도 조금씩은 보이는 편이었으며, 일부 참가자들은 중도 실명한 사람들이어서 예전에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긴장.
새롭게 만나게 된 환경과 생소한 용어들이 더욱 나를 긴장 속으로 몰아갔다.

지도 강사이신 사진작가 김태훈 선생님.
그도 큰 사고로 시력까지 손상을 입은 분이란다. 열정적인 이미지와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그러면서도 개구쟁이 같은 느낌과 재치 있는 유머 감각이 긴장된 수업 분위기를 풀어가기도 했다.

“사진은 빛이 남긴 상처들이며, 흔적이고 언어랍니다.”

시를 읊는 듯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빛의 언어가, 빛의 에너지가 사진이라니, 참으로 경이로운 이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의 언어로 시각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하려는 김태훈 작가님. 사고의 후유증은 생명을 위협하지만 태연하게 아픔을 표현하는 모습이 더욱 듣는 이의 마음속에 쾌유의 기도를 올리게 만든다. 오래도록 기적의 손길에 붙들려 빛의 유희를 갈망하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빛으로 빚어내는 수 없는 언어들의 축제에 초대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실 것을 기대해 볼 따름이다.

인간의 한계는 스스로가 그어 놓은 온 선안에 걸음을 멈춘다.
사진 교실에 참가하게 되면서 이 말은 정말 맞는 것이라 절감한다.
몇 차례 이론 수업이 있은 후 서울대공원으로 출사를 나가게 된 것이다.
난생 처음 카메라를 매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틈새를 헤치며 자원 봉사자 박한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셔터를 누른다. 빛을 겨우 분간하는 1급 시각 장애인에게 카메라가 들려지다니...
나들이 나온 사람들도 신기한 듯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곤 한다.
사진기는 어떻게 잡으며 셔터는 어떻게 누르는지, 구조는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하나 익혀가며 초점이 피사체에 닿을 때 마다 들려오는 ‘삐’ 그저 한번의 신호음, ‘삐’ 들어보는 신비의 소리 ‘임숙아 초점이 맞았으니 셔터를 눌러 보렴.’ 인자한 스승의 가르침처럼 청각을 쓰다듬는 상큼한 음향.

사진을 배워 보겠다고 하니 가족들조차 어이가 없다는 듯 만류하기도 하고 시간 낭비만 하는 무모한 짓이라며 청각 장애인이 노래를 배우러 가는 것과 같다는... 어디 놀러나 가자는, 공부하러 가는 날이면 이런저런 말로 걸림돌을 놓는다.

글의 처음에서 밝힌 바, 소심하며 소극적인 탓에 새로운 환경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염려와 두려움으로 온 몸이 움츠려 드는 어려움을 경험 해 왔으면서도 이젠 나이를 들었기 때문일까? 시작이 반이라는 교훈이 나의 삶을 주도 해 온 것 같다. 시작하면 끝을 맺고 마는 이런 끈기는 어디서 오는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다시는 힘에 겨운 것은 시작하지 않으리라 다짐 하곤 한다.

시 쓰기를 좋아했던 까닭에 1990년 정안인들이 공부하는 시 창작 교실에 들어가 공부하며 시인으로 문단을 두드리게 되었고, 40대 중반이 되어 그토록 갈망하던 대학 공부를 시작하고, 나이 쉰을 넘어 대학원 청소년 지도학과를 졸업하게 되었으며, 청소년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시각 장애인 청소년 지도자 1호 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저런 사설들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과시 하거나 자랑 하려는 것이 아니다.
푸른 내일은 도전하는 사람들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얻은 확신이기에 환경을 핑계로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에 사설이 길어진 것 같다.
도전과 용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걱정을 동반하는 일에 투신하는 것에 합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출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결과물을 검토하신 김태훈 선생님.
시각 장애인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증거물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꿈이었던 내게 사진은 또 다른 빛깔로 꿈을 채색해 주리라 믿으며 외국에는 시각 장애인 사진작가도 많다는데 나도 그 부류들 속에 이름을 등재해 볼 날을 소망해 보며 아이같은 기대에 부끄러운 웃음이 터져나온다.

예술을 보편적인 각도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조립하며 낯설게 하는 심미안으로 바라볼 때 새로운 것들을 탄생시키는 작업이 아닐까?
시각 장애인이라는 걸림돌을 통해 누구도 빚어낼 수 없는 또 다른 빛의 언어들을 사진속에 담아 창조자의 영광을 밝혀 드러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바위에 부딪치며 노래를 만들어 가는 시냇물처럼 시각 장애라는 걸림돌에 넘어지고 부딪히며 아름다운 빛의 노래들을 온 세상에 들려주기를 기대해 본다.

모든 사물들은 저마다의 빛깔을 흔적을 남긴다.
나의 삶을 다시 점검해 보게 하는 빛이 남긴 에너지 ‘사진’, 사진은 빛이 남긴 상처이며 에너지이고 그 흔적이라는 이치.
나는 어떤 빛깔과 향내로 지내 온 길을 채색 했을까?
나름대로 내, 외적으로 관리하며 매무새를 여미려 애써 왔지만 나 자신도 잘 볼 수 없는 나의 빛깔. 일탈을 꿈꿔도 보고 선박을 기웃거리며 탈출의 기회를 만들어버려 한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세월을 먹으며 키워진 것은 길게 따라오는 생애 그림자.
그래도 꿈은 아직 느린 속도로 고도를 낮추며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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