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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리포트 권리와 장애, 편견과 장벽


장애인권과 무장애 생활환경 배융호 ((사)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총장)


장애인권에 있어서 접근권의 중요성

장애인의 가장 중요한 권리 가운데 하나가 접근권(rights to access)이다.

접근권은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권리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시설물(건물), 교통수단, 정보, 의사소통 등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때의 ‘접근’은 단순히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용하고 완전히 누리고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접근권이 장애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의 기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사회의 모든 활동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접근권이다.

그래서 「비와코 새천년 행동계획」(Biwako Millenium Framework)에서도 “행동계획은 포괄적이고(inclusive), 무장벽이며(barrier-free), 권리를 기반으로 하는(rights-based) 사회를 지향한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UN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에서도 일반원칙 가운데 하나를 접근성(accessibility)으로 하고 있고, 제9조(접근성), 제20조(개인의 이동), 제21조(의사소통 및 정보 접근) 등 3개의 조항에 걸쳐 국가가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완전한 접근권의 보장하고는 거리가 있다. 지난 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진정 사건을 분석해 보면, 접근성과 관련된 시설물의 이용에 있어서의 차별(15.6%), 이동 및 교통수단의 이용에 있어서의 차별(5.9%), 의사소통 및 정보접근에 있어서의 차별(30.2%)로서 전체 진정사건의 51.7%인 867건에 달하고 있다.

고용, 교육, 문화 및 체육 등에 있어서도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지 않아 차별로 진정된 사건까지 포함한다면, 접근권과 관련된 차별 진정건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아 차별을 당하는 일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편의시설 설치율은 77.5%이지만,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대로 설치된 적정설치율은 55.8%에 불과하다(보건복지부, 2009). 편의시설 대상 시설의 절반 정도만 법에 맞게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실제 이용이 가능한 것도 절반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대중교통인 버스는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우리나라 전체 시내버스의 10% 밖에 되지 않으며, 지하철역이나 철도역의 이동편의시설 설치율은 92%이지만(국토해양부, 2010),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역들이 많다.

접근성의 보장과 사회환경의 개선

접근성이 보장된 공간과 환경이 바로 접근 가능한 환경(accessible environments)이다. 접근 가능한 환경은 건축환경이 될 수도 있고, 도시 환경이 될 수도 있으며, 교통환경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접근 가능한 생활환경 또는 접근 가능한 사회환경이라고 부르게 된다.

하나의 생활환경이 얼마나 접근 가능한가의 척도가 바로 접근성이 얼마나 보장되는가이다. 따라서 접근성은 장애인이 얼마나 동등하게 이용하고, 활동하며, 참여할 수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법에는 편의시설(facilities or equipment)의 설치, 정당한 편의(reasonable accommodations)의 제공, 장벽의 제거(elimination of barriers)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접근성(accessibility)이나 접근 가능한 생활환경이라는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편의시설이 더 많이 사용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접근성의 보장=편의시설의 설치”, “접근 가능한 생활환경= 편의시설이 설치된 생활환경”이라는 공식은 매우 보편적인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편의시설이 접근성 전체를 이르는 용어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을 제정하면서 접근성 보장을 위한 방법으로 편의시설 설치 위주의 정책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편의시설 설치 위주의 정책이 우리나라의 접근성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반면에 편의시설 설치 위주의 정책은 우리나라 접근성 정책의 저해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편의시설 설치는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정당한 편의제공이나 장애물의 제거 역시 편의시설 못지않게 중요한 접근성 보장 방법이며, 편의시설의 설치만으로는 접근성을 완전하게 보장할 수 없다.

편의증진법은 접근성의 보장을 편의증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접근성이 편의에 해당이 되고, 보장 대신에 증진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 정부가 점진적 정책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국민의 의식이 보장이라는 권리적이고 의무적인 표현보다는 증진이라는 복지적인 용어를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5년에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될 때도 장애인들은 「이동편의증진법」이 아니라 「이동보장법」으로 법률명칭을 정하기 원했지만, 정부는 「이동편의증진법」이라는 용어를 선택하였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접근성의 보장은 편의의 증진이라는 점진적이고 복지적인 용어로 사용이 되고 있으며, 건축물에 있어서의 접근성 보장은 편의증진, 교통과 이동에 있어서의 접근성 보장은 이동편의증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편의증진법은 법의 명칭과는 달리 편의의 증진을 편의시설 설치 위주로 한정지었다. 편의증진법은 ‘제2조 (정의)’에서 편의증진에 대한 정의를 하지 않으며, 편의시설에 대한 정의만을 하고 있다. 그리고 법 전체의 구조는 편의시설의 설치 원칙, 편의시설의 설치 대상, 편의시설의 종류, 편의시설의 설치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의시설 설치 외의 다른 편의증진에 대해서는 휠체어와 점자안내책자 등 편의용품 비치와 수화통역과 안내서비스 등이 전부이다. 정당한 편의의 제공과 장애물의 제거는 편의증진의 방법으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편의증진법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접근성 보장 정책은 편의시설 설치 위주의 정책으로 일관되었으며, 그 결과 접근성은 편의시설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그 결과는 두 가지 폐단을 낳았다. 하나는 잘못 설치되거나 불필요한 편의시설은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과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고 편의시설만을 설치함으로써 접근성 보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출입구에 계단이 없고 경사도가 완만하여 경사로 설치가 필요없는 주출입구에도 경사로를 굳이 설치하기도 하고, 가로수와 가로등 및 간판 등의 보행장애물은 그대로 둔 채 점자블록만 설치하여 실제로 점자블록을 따라 가다보면, 가로수와 가로등에 부딪치기도 한다. 설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접근성이 있고, 설치를 통해 해결을 할 수 없는 접근성이 있다. 정당한 편의제공과 장애물의 제거는 편의시설의 설치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접근성 보장에 대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은행의 주출입구에 경사로 설치만 하는 편의시설 설치 정책이 아니라 은행에 들어가서 현금자동입출금기도 이용하고 창구 업무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진정한 접근성 보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금자동입출금기에 대한 접근도 보장해야 하고, 점자나 다른 방식으로 된 각종 홍보물도 제공해야 하며, 청각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방식으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편의시설의 설치라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접근성의 보장 방법이다.

우리 사회환경의 미래, 유니버설 디자인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지금까지 우리는 불편한 우리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편의를 증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 결과 지난 10여 년 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생활환경 곳곳에 편의시설이 설치되고 장애인의 이용이 편리해졌다. 하지만 편의시설 설치 정책은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는 편의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에 편의시설 설치를 증진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이제 어느 정도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지금, 편의시설 설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현재의 편의시설 설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차별적 편의증진방법이고, 향후 증가해 가는 노령화사회를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을 비롯한 세계는 편의증진의 방향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또는 유니버설 억세스(Universal Access)로 잡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나 유니버설 억세스는 말 그대로 장애인, 노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이용가능하게 디자인하고,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편의증진법은 처음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편의시설의 이용 대상을 "장애인" 뿐 아니라 "장애인?노인?임산부"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용 대상자만 확대했을 뿐, 실제로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는 않았다.

여전히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는 장애인과 노약자만 이용할 수 있으며, 여전히 화장실은 비장애인용과 장애인용으로 구분되어 있다. 최근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자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유니버설 디자인을 “다목적”이나 “다용도”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다목적 화장실”이 바로 대표적이다. 기존의 장애인용 화장실에 유아용 변기나 기저귀 거치대를 설치하고 픽토그램을 장애인에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으로 변경한 후 다목적 화장실이라고 부르고 그 화장실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화장실로 오해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다목적 화장실은 유니버설 디자인에 의한 화장실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일 뿐이다. 다른 일반 화장실은 그대로 두고 장애인용 화장실의 사용대상자만 확대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되려면 고속도로 휴게소의 모든 화장실을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기준으로 만들고 특별히 장애인용화장실이 없어야 한다.

물론 특별한 공간이 필요한 장애인과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가족화장실은 권장이 된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노인이나 임산부도 같이 사용하도록 하자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이 아니라 모든 주차구역을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의 크기로 만들어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어디에나 주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보행장애인을 위해 주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의 설치는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유니버설 디자인이나 유니버설 억세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을 구분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2005년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주요 정책으로 삼고 건축물과 이동편의를 추지하기 위해 법을 통합하고 개정하여 「배리어 프리 신법(Barrier-Free 新法)」을 제정하였고, 장애인 및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여 나고야 중부 공항을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공항으로 건축하였으며, 최근 하네다 공항을 다시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공항으로 건축하였다. 우리나라의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모든 화장실마다 장애인용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장애인용화장실을 제외한 다른 화장실을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으므로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면에 중부 공항의 경우 모든 화장실을 넓고 크게 만들어 장애인용화장실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아도 장애인이 모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최근 노르웨이의 경우 유니버설 디자인을 국가 정책으로 삼고 야심차게 모든 환경을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도 교통정책에 있어서 주요 기조를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앞 다투어 유니버설 디자인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미래 사회에 대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할 경우 노령화 사회를 대비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할 경우 장애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편리해지고 안전해지며, 그러한 제품이나 그러한 디자인을 적용한 기업은 수요창출에서 유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점의 입구에 계단이 없다면,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 유모차를 미는 부모들, 어린아이와 동반한 가족들도 고객층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며, 계단이 있어 불편한 음식점과의 경쟁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편의시설 및 편의증진정책도 이제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나아가야 한다. 장애인만을 위한 특별한 시설이 아닌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이용하기 편리한 디자인과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바꾸지 않는다면, 미래에 바꿀 수도 없을 것이며, 그때는 더 많은 비용과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접근성 및 장애인의 접근권의 미래는 유니버설 디자인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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