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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소통 비장애인의 하루


내가 알고 있던 편리함의 기준 정춘진 (삼성소리샘복지관 실장)


한 곳에서 십년을 넘게 일하다보니 세월만큼이나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삼성소리샘복지관은 청각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언어재활을 위해 엄마 등에 업혀서 온 아이들은 장난꾸러기 초등학생이 되었고, 손을 잡고 걸어왔던 아이들은 활기찬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엄마들은 시간의 흔적이 얼굴에 보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원고부탁을 받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난 십년을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 장애인의 부모가 된다는 것. 장애인의 자녀가 된다는 것. 장애인의 가족으로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물론 저는 비장애인인 까닭에 그 절절함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십년 넘게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써,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자리에서는 그 마음을 함께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것과 틀린 것에 대한 차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내게 익숙한 것이 상대방에게도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황새의 식사이야기는 나의 익숙함이 상대방의 불편함이 될 수 있고, 그것 대한 통찰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것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언어에서는 편리함과 불편함의 간극이 넓고 깊습니다.

원고를 위해 고민하다가 한 아이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한 아이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동안 지켜보고 이야기를 나눴던 서너 명의 이야기를 엮은 것입니다. 이야기를 엮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편리함, 정상성의 기준이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서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아이가 입학을 했습니다.

학교안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학생들 사진

2004년 5월 나는 태어났습니다. 점심시간 무렵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한달이 지났을 무렵 외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큰외삼촌네 집에서 몇 달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할머니는 엄마를 불러 며칠을 울고는 나를 다시 엄마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나는 엄마와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내가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달이 지나서였다고 합니다. 나를 업고 이 병원 저 병으로 뛰어 다녔다고 했습니다. 결국 내가 청각장애라는 진단을 받고서는 병원 바닥에 엎드려 소리를 삼켜가며 오랬동안 울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겁이 났다고 합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말을 가르칠 수 있을 까 무서웠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내가 듣지 못한다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눈물이 한 없이 나왔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와 이모들은 엄마처럼 살면 안된다고, 어렸을 때부터 나를 복지관으로 언어치료실로 데리고 다녔습니다. 막내이모는 나를 데리고 다니느라 시집갈 나이를 훌쩍 넘겼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우리 집에서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011년 3월 나는 우리 동네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엄마, 할머니, 막내이모와 학교에 갔습니다. 인공와우 수술을 했지만 집중에서 듣지 않으면 잘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이라서 기린처럼 목을 쭉빼고 교장선생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도 들을 수는 있는데, 다른 아이들처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내 귀에 있는 보청기를 보면서 신기해했고, 다른 엄마들은 뭐라뭐라 소곤거렸는데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모와 할머니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담임선생님 면담도 해야 하고, 학교행사가 있으면 참석도 해야 하고, 알림장도 잘 읽고 챙겨줄려면 더 바쁘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모와 할머니한테는 미안한 표정이 가득했습니다. 사실, 우리 엄마가 말을 못하는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 엄마가 말을 얼마나 재미있게 하는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내 배꼽이 세 개는 빠져야 끝이 납니다. 완전대박입니다. 엄마가 이야기를 할 때 그 눈빛과 표정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손모양은 정말 예쁩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합니다.
엄마랑 이야기할 때는 나는 수화로 합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봐서 조금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차이나타운에 놀러갔었는데, 거기 음식점에서도 우리에게는 한국말로 하고 자기들끼리는 중국말로 했습니다.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니까 사장님이 나를 보고 웃었습니다.

엄마랑은 수화로 이야기하고 친구들하고는 말로 하는 내 모습과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시선, 내 불편함

나와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 익숙한 방식과 편리함.

사회적으로는 그것을 주류 또는 정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대부분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판단하게 되는 인식의 틀이 됩니다. 내가 편리함이라고 믿는 것들. 정상이라고 믿는 것들에서 벗어나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편하고 불행한 것일까요? 혹시 그것을 보는 내가 불편하고 힘든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와는 다른 시선. 내 불편함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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