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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리포트 대한민국 인권 바로미터


누구의 목소리만 허용되고 있나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5월 1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4명의 게이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이 15회 인권영화제 개막작이어서 그걸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러 성소수자 커뮤니티나 성소수자인권단체에서 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영화가 워낙 재미있고 감동적이라고 입소문이 나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개막 이 틀전 영화등급심사위원회(영등위)에서 ‘종로의 기적 예고편’을 ‘유해성 있음’으로 판정했다고 언론보도가 많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열린 공간인 거리에서 상영하는 인권영화제에 동성애자혐오단체들이 와서 영화 상영을 방해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로 사람들이 많이 온 것이기도 했다.

동성애 혐오 발언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이성애자만 있다고 배우며 자라온 것 때문일지라도 그들이 다른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부인하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성소수자들의 존재성을 철저히 부정한다면, 그것은 그/녀들을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유엔인권규약에서도 혐오나 전쟁선동은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성애자들의 삶의 이야기, 사랑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는 도무지 보기 어려울뿐더러 왜곡되거나 소비대상으로만 드러나기 일쑤이다. 그런 열악한 한국현실에서‘우리도 여기 있다’라는 것을 솔직하고 현실감 있게 드러낸 좋은 게이영화다. 이 사회에 일정한 몫을 가진 자만이 목소리를 갖고 표현할 수 있는 사회이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은 이 사회의 주류이다. 이성애자, 비장애인,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이 한국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말하고 있듯이 나도 말하고 싶다

성소수자들의 삶을 표현하는 것을 가로막는 주요 세력은 현 정부의 주요 지지기반인 보수기독교이다. 유엔인권기구에서도 제정을 권고한 차별금지법을 보수 기독교단체에서는‘동성애찬성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동성애라는 게, 성적 지향이 누가 찬성하고 반대하고 말 것이 아님에도 찬성법이라는 발상과 표현이 우습다. 보수기독교 정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그들은 현 정권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하지 않겠다는 법무부의 답변까지 받아내었다.

그렇게 힘이 강력하다보니 동성애자가 나오는 주말 드라마‘인생이 아름다워’가 동성애를 양성한다며 버젓이 일간지에 비판광고를 내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누구의 삶이 그려내는가, 표현하는가는 철저히 지배 권력의 영향에 있다. 많은 매체에서 비장애인, 이성애자들의 삶만이 나온다.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정 내용이 왜 무시되고 하찮게 주변적으로 그려지는지, 무엇인가를 포함하고 포함하지 않는 일을 누가 결정하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프리덤하우스에서 발표한 '2011 세계 언론 자유 지수' 결과. 초록색 : 자유국 (총 68개국) / 노란색 : 부분적 자유국 (총 65개국) / 보라색 : 비자유국 (총 63개국)
프리덤하우스에서 발표한 '2011 세계 언론 자유 지수' 결과
초록색 : 자유국 (총 68개국) / 노란색 : 부분적 자유국 (총 65개국) / 보라색 : 비자유국 (총 63개국)

지금 한국에서 말할 수 있는 자는 소수이다.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힘이 없는 약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표현되더라도 당사자의 시선이 배제된 상태에서 타자화된 시선으로 필터링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당사자들이 자신의 삶을 직접 자기 입으로, 손으로, 글로, 카메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공중파를 통해 나온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의 삶은 얼마나 나오고 있는가? 노출빈도 뿐 아니라 당사자들이 직접 생산한 표현물이 얼마나 되는가를 짚어보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2008년 여러 인권단체들과 활동가들이 만든 ‘2008 인권선언’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17-4. 누구든지 재산, 지역, 나이, 성별, 장애 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미디어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사회는 미디어 독점구조 속에서 배제돼 온 소수자들의 자기표현 기회를 공공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17-5. 장애인은 언어, 수화, 점자 등 자신의 장애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여 의사소통할 권리가 있으며, 필요한 경우 대안적인 의사소통 방법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업은 음성파일, 화면해설 등 의사소통 매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사회적 소수자가 차별 없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정부는 그에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할 의무가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이나 여성 할당제 같은 적극적 조치란 사회적 소수자들이 그동안 배제되고 분리되었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정부의 조치는 미흡하다.

그러니 사회적 소수자들이 정부에게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라고 항의하는 집회시위를 할 수밖에 없다. 집회시위에 대한 권리는 민주사회에서 모든 이에게 보장된 기본적인 권리이다. 사회적 소수자가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정부는 조처해야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5월 25일 복지부 앞에서 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제 조항을 폐지하라는 집회에 참여한 중증장애인을 경찰이 연행하려고하다 휠체어에서 떨어졌다.

장애인은 집회시위와 결사에 참여하였을 경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아야 하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활동보조인과 분리되거나, 보조기구 및 보조견을 빼앗기거나 이용을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은 장애인의 집회시위에 대한 권리를 제약하는 방향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 심지어 2009년 서울시는 시위에 참가한 장애인에 대한 보조금지원을 중단했다가 사회적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정부를 비판하면, 그래피티조차 형사 처벌되는 현실

물론 사회적 소수자만이 아니라 정부정책을 비판하면 무조건 자유를 빼앗으려는 게 현실이다. 집회시위만이 아니다. 작년 말 한국정부가 G20개최를 하면서 막대한 예산을 들이면서 G20를 비판하지 못하도록 시민들의 입을 막았다. 이러한 정부의 행태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려고 대학강사 박 씨는 2010년 10월 G20 홍보물에 쥐 도안을 대고 검은색 스프레이 분무액을 뿌리다가 붙잡혔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용물을 훼손했다는 것이 이유다.

당시 검찰은 박씨에게 "G20을 방해하려는 조직적인 음모"라며 인신을 구속하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되는 망신을 당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올 1월 박 씨를 정식으로 기소하였고, 4월 박씨에게 '징역 10월'을 구형했다. 그 후 5월 13일 서울중앙지법은 공용물 재판부는 "공공물인 G20 포스터에 낙서한 것은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넘어 형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하지만, 행사 방해 목적이 아니고 G20 행사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며 공용재물 손괴 등의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 후 서울중앙지검은 이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공용물 훼손이라면 훼손에 대한 경범죄로 과태료만 부과하면 된다. 기소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피티는 원래 특성상 기존 권력에 대한 풍자와 비판,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 그려진다. 그런데도 조직적인 음모를 운운하며 형사 처벌하려는 것은 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프리덤하우스에서 발표한 2011 언론자유 보고서에 한국은 부분적 언론자유국인 노란색으로 표시되어있음
프리덤하우스에서 발표한 2011 언론자유 보고서에 한국은 부분적 언론자유국인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한국에서 허용된 목소리는 현 정부를 지지하는 목소리뿐이다. 다른 목소리는 틀어막고 있어서 얼마 전 미국의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에서도 `2011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한국을 '언론자유국(free)'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partly free)'으로 강등시켰다. 또‘2011 인터넷상의 자유' 보고서에서도 '인터넷 자유국'이 아닌 '부분적 자유국가'로 분류했다. 보고서에서는 언론에서의 검열, 언론매체의 뉴스와 정보콘텐츠에 대한 정부 영향력의 개입이 확대되었고, 인터넷 실명제 등의 규제 장치와 블로거 미네르바 체포 및 PD 수첩 제작진의 이메일 압수수색, 선거 시기 인터넷 글쓰기 제약 등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후퇴되는 표현의 자유 때문에 이를 조사하러 2010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인 프랑크 라 뤼가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그 결과인 한국 표현의 자유 보고서가 오는 6월 3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보고된다. 보고서에는 ’프리덤하우스‘가 지적한 거 외에도 국정원의 박원순 명예훼손 사건 등과 같은 형사상 명예훼손죄 삭제, 공무원 교사의 시국선언 참여에 대한 징계 등에서 나타난 공무원 교사의 표현의 자유 보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부에 비판적인 정보를 삭제하는 사실상의 사후 검열 기구로서 기능하지 않도록 그 기능을 독립 기구에 이양할 것, 집회시위의 허가관행 중지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권고가 있다. 유엔 인권기구가 권고를 하더라도 그동안 이를 무시하거나 축소해온 것이 한국정부의 태도이다. 따라서 이러한 권고를 제도적으로, 관행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시민사회, 인권운동진영이 할 일이다.

인권의 씨앗은 우리에게 있다.

인권의 중요한 가치인 자유와 평등,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비차별의 원칙은 언제어디서나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보장은 수많은 당사자들, 인권옹호자들의 실천과 연대 속에서 실현된다. 인권의 씨앗, 자유의 씨앗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씨앗을 싹을 틔우고 꽃과 열매를 맺게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장애인인권영화제나 LGBT(레즈비언ㆍ게이ㆍ양성애자ㆍ트랜스젠더, 통칭 성소수자) 영화제는 그러한 땀의 결과이다.

그리고 지금도 인권을 위협하는 모든 권력에 맞서서 거리에서 소리 높여 집회시위의 자유를,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국가가 수많은 제도적 틀과 폭력으로 우리의 자유를 빼앗으려 해도 빼앗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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