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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소통

하성준의 유학일기


Independent Living과 Rehabilitation 하성준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at Carbondale 재활상담 석사과정)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 2007년 1월이었다. 3 년하고도 반이 지난 지금 내가 자립생활과 재활이라는 용어 속에서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나는 사회복지사로써 그리고 한 사람의 장애인으로써 살았고 공부했으며 일했다. 이제 재활상담을 석사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가 자립생활 (Independent Living)과 재활 (Rehabilitation)에 대한 나의 생각을 미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혹자는 내 생각에 반대 의견을 가질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같은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이 최소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면서 얻은 나의 의견임을 먼저 밝혀 둔다.

 14살 때 시각장애특수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듣게된 말 중에 “재활”이라는 말이 있다. 재활이 무엇인가? 지금은 재활에 대해 어느정도 나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과정을 특수학교에서 보내던 당시에는 재활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말을 썼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도 장애인복지는 사회복지의 많은 분야중의 하나였고 그저 재활이라는 말의 학문적 정의만 외워 시험을 치른 기억만 있다. 중요한 사실은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자립생활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자활”이라는 말을 가끔 들어본 듯 하다. 그리고 내가 자립생활 혹은 독립생활이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2002년인가로 기억하는데 올림픽 파크텔에서 열린 RI Korea 세미나에서이다.

  이후 내가 직장을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로 옮긴 이후, 장애인당사자단체에서 자립생활에 관한 일도 하고 관련 지식도 가진 분들로부터 자립생활에 관해 더 자세히 그리고 깊이 알게 되었다. 그 분들 중에는 자립생활을 몸으로 실천하는 분들도 있었고 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분들도 있었다. 당시 만났던 분들이 보여준 자립생활과 현재 지금 내가 생각하는 자립생활이 같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재활과는 다른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같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에서 내가 재활상담을 공부하고 있지만 석사과정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원래 미국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재활이라는 개념을 다룬 수업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참여했던 수업의 다수는 일반적인 상담기술이나 이론을 배우는 수업이 많았다. 또 장애를 의료적, 사회·심리적, 직업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과목이 하나, 장애인의 직업문제를 다루는 과목이 하나 있었다. 학생들의 다수 역시 장애인의 가족이거나 본인이 장애를 가진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장애인당사자집단이 느끼는 재활에 대한 생각과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재활의 개념은 많이 다르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 내에서 재활과 자립생활이 공존하고 있는가? 실습을 거의 두 학기가 되도록 하고 있는 지금, 그 대답은 "No (아니다)“이다.

 미국에서 내가 처음 직면한 자립생활과 재활의 갈등은 바로 클라이언트(Client)라는 용어의 사용에서 엿볼 수 있었다. 앞서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실습을 받고 있는데 내가 제출한 리포트에서 클라이언트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슈퍼바이저로부터 그말에 담긴 의미가 자립생활정신에 위배된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미국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자립생활과 재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 거기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론 내가 느낀 것이 정말 미국장애인들의 그것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국에서 온 시각장애유학생의 경험이고 나만의 생각임을 다시 밝혀 둔다.

 지금까지 재활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는데 여기서는 자립생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자. 미국에서 자립생활은 미국의 장애인정책과 장애인서비스의 궁극적 목적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또 그것은 인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인식되어지고 있는 듯 하다. 실제 재활상담가 윤리강령에서도 쟁활상담가의 주된 역할 중의 하나로 “장애인의 완전한 자립생활을 원조하고...”라는 대목이 있을 만큼 자립생활은 이제 재활하는 사람이든 자립생활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장애인정책이 표방해야할 하나의 목적이 되고 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재활에서는 장애인을 Workable (일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장애인들의 잔존능력이나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통해 근로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립생활이라는 측면에서는 장애인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직업의 문제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자립생활 그 자체를 성취해야할 목표이자 실천과제로 여긴다. 생활시설이나 가족들로부터의 자립,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선택하는 자유,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것들에 대한 책임까지 자립생활은 철저히 과정지향적이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이 먼 것도 미국의 자립생활이다. 장애인들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장애연금인 SSDI의 지급액수를 보면 그것이 장애인의 생존에 초점을 두고 있을 뿐 자립생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자립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지역사회를 통해 마련하는 일이다. 결국 자립생활센터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대다수가 무료로 제공된다는 측면에서 자립생활센터의 운영을 위한 예산의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센터의 운영을 위한 예산이 연방 및 주정부로부터 지원되고는 있지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하는 자립생활센터들이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민간복지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또 미국에서 자립생활센터는 지역의 장애인서비스를 독점하는 서비스제공의 주체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뉴욕이나 로스엔젤레스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양상이 다르지만 상당수의 자립생활센터들은 지역내에서 유일한 장애인서비스기관인 경우가 많다. 광역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지역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재활센터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관과 유사한 개념임)가 운영되기란 아주 어렵다. 그것은 자립생활센터가 장애인들이 스스로 모이고 설립하여 연방 및 주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재활센터는 설립과정이나 경로가 자립생활센터와는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자. 강원도 ㅇㅇ군에 장애인들이 모여 자립생활센터를 만들고자 하는 경우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그들을 도와줄까?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 주정부뿐만 아니라 연방정부차원에서도 장애인들의 자조집단을 원조하고 모임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자립생활센터의 설립을 처음부터 국가가 지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장애인 당사자들의 손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뿌리내린 자립생활센터가 지역을 대표하는 장애인기관으로써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재활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하지만 미국에서 재활하는 사람들은 장애인정책의 주류이다. 상당수의 재활전문가들이 장애인정책의 수립과 집행과정에 관여하고 있으며 재활센터들은 수적으로는 적지만 많은 인력과 예산으로 장애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재활센터의 서비스들 중에는 장애인들이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것들도 상당수가 존재하는데 이는 애초에 장애인 한 사람이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서비스 이용시간을 초과해서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개인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미국의 재활전문가들의 상당수는 직업재활과 관련한 업무에 종사하는데 실제 연방 및 주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재활서비스들은 모두 고용가능성이 있는 장애인들이 직업을 얻도록 원조하는 서비스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활전문가들은 자립생활센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임금과 안정된 사회적 신분을 보장받으면서 일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립생활센터가 장애인들이 설립한 사설 장애인서비스기관인데 반해 재활센터는 연방 및 주립기관인 경우가 많고 사설재활기관이라고 할지라도 연방 및 주정부로부터 관련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운영역시 장애인이 아니라 법인이다. 그래서 재활이라는 말 속에는 어느 정도 공공 (Public)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다. 이러한 재활전문인력들이 최근 표방하는 것이 바로 전문성(Professionalism)에 대한 논의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전문성에서 찾고 전문성의 향상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은 물론 공신력을 높여 자립생활이라는 장애인정책의 기조 속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전문성이라는 기조 속에 들어 있는 미국의 재활은 바로 직업재활이다. 우리나라에서 직업재활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재활 중의 하나로 여기지만 미국에서 재활은 바로 직업재활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재활이니 의료재활이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재활의 한 영역으로 여기는데 반해 미국에서 재활전문가는 장애인의 직업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은 1973년 미국 재활법의 개정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데 1973년 재활법 섹션 501과 504는 장애인들의 근로기회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합리적 배려의 제공과 연방 및 주정부, 이들과 일정액수 이상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장애인의 근로기회평등을 위해 지켜야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장애인법에서도 장애인의 고용평등을 명문화하고 있는데 여기서 다루는 고용평등은 1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주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결국 재활전문가란 재활법, 장애인법, 그리고 그 이후에 성립된 장애인의 고용관련 법률들을 근거로 장애인의 직업문제를 다루는 일을 상담, 사례관리, 평가, 직무지도 등의 전문기술을 활용하여 수행하는 전문인력이다. 따라서 재활이라는 말이 미국에서는 직업이라는 말과 분리해서 사용하기란 어렵다.

 이와 같이 미국에서도 자립생활과 재활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자립생활에서도 직업문제를 완전한 자립생활의 성취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는 있지만 직업의 문제와 함께 접근성 (Accessibility), 개별화 프로그램 (Individualized programs: 활동보조, 주택개조 등), 지역사회 인식개선 및 협력프로그램 등도 직업의 문제만큼 아니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재활에서는 기본적으로 직업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며 사례관리 기법을 활용하여 자립생활을 돕기도 한다. 미국에서 재활상담을 공부하는 내가 자립생활센터에서 실습하면서 여러 차례 느끼는 자립생활과 재활의 관계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좀 달라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와서 공부하기 전까지만 해도 다소 대립적인 관계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자립생활과 재활이 서로 외면하고 있는 관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의사와 한의사 집단의 관계처럼 상관없이 지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맞서기는 애매한 그런 관계가 아닐까?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 자립생활에서는 장애인의 인권을 강조하고 재활에서는 직업의 문제, 전문성의 강화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장애라는 문제를 지닌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철학과 지식을 가지고 일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립생활과 재활이 공존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자립생활과 재활이 꼭 공존 또는 협력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 그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져야 하는가? 나름의 철학과 기술 그리고 전문지식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장애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인구학적 요소들 중에서도 독특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전문성을 강조하는 재활에서는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자칫 전문성이라는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애정을 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를 전문성을 가진 집단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의사, VIP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재활에서 전문성을 강조하는 미국, 그리고 나처럼 미국에서 재활을 공부한 사람들이 재활의 전문성을 강조한다면 그들은 먼저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들과 함께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직업윤리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애인은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지 그들의 조정을 받는 사람도 그들의 개인적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활동해온 많은 재활관련 전문인력들이 자립생활이라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평가를 받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들 역시 자립생활이라는 철학이자 목표이며 실천기술을 보급하고 적용함에 있어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체계성과 전문성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공적지원은 물론 민간사회복지자원으로부터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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