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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호의 장애학이야기

키워드로 읽는 장애학


키워드로 읽는 장애학 윤삼호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소장)


 장애학의 주요 개념들은 여러 운동과 이론의 영향을 받아 발전되었다. 사회학과 인류학 같은 전통적인 학문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이나 흑인 운동 같은 소수자 운동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그렇다고 장애학의 모든 개념들이 외부에서 빌려온 건 아니다. 적어도 핵심 개념들은 장애 이론가와 운동가들의 노력의 결과로 생산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장애학에서 주로 다루는 주요 개념(또는 키워드)을 통해 장애학의 핵심을 개괄하고자 한다.

주체 vs. 대상

 언뜻 보면, 장애학은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 재활공학의 연구 관심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그렇지만 사실은 장애학과 기존의 장애 관련 학문들은 그 접근법부터가 전혀 다르다.  가령, 기존 학문들은 장애인을 복지서비스의 대상, 교육의 대상으로, 재활의 대상 등으로 고정시켜 놓고 접근한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이들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장애인(그들의 표현으로는 ‘클라이언트’)을 적절하게 ‘관리’하거나 이들에게 ‘서비스’를 전달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어서다. 전문 인력들이 이렇게 양성되다보니 장애인은 그들 직종의 서비스 대상일 뿐 주체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은 장애 그 자체보다는 장애를 가진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짙어 장애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많은 장애 관련 전문 인력이 헌신적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들과 갈등을 겪는 것은, 이처럼 전문가와 장애인의 관계가 도움을 주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로 고정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반면에, 장애학은 장애를 가진 개인보다는 장애를 구성하는 사회구조와 환경을 주목한다.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장애학의 주요 관심사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역사적 조건이 장애(인)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 때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은 모든 분석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장애학은 장애인을 연구의 주체로 사고하며, 장애인(the disabled)보다는 장애(disability)가 연구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볼 경우, 장애학과 기존 장애 관련 학문은 협력적 관계라기보다 갈등적 관계라 할 수 있다.

다음 표는 장애학과 장애 관련 학문의 키워드들을 비교하여 정리한 것이다.

장애학과 사회복지학 키워드 비교 목록
장 애 학 사회복지학 등
장애, 사회, 억압

장애인, 클라이언트, 재활

적극적, 주체적 인간관

의존적, 비주체적 인간관

자기-통제, 자기-결정

사례 관리

당사자주의, 장애 경험, 운동

전문가주의, 서비스

사회변화

서비스 개선


손상 vs. 장애

 장애학을 이해하는데 핵심 가운데 핵심은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 개념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사고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당신에게는 어떤 장애가 있나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척수장애”이나 “뇌성마비장애” 따위가 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런 건 ‘손상’이지 ‘장애’가 아니다. 장애학에서 말하는 ‘장애’란, 신체나 정신의 손상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런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접근할 수 없고 배제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를 이런 식으로 처음 정의한 단체는 UPIAS(분리반대신체장애인연맹)였다. 영국의 장애인 당사자 단체 UPIAS는 1976년에 <장애에 관한 기초원리>라는 문건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다음과 같은 장애 정의가 들어 있다.

ㆍ손상 : 사지의 전체 혹은 일부분이 없는 것, 혹은 사지, 기관 혹은 신체 구조에 결함을 가진 것
ㆍ장애 :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거의 혹은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그들을 사회 활동의 주류로부터
     배제시키는 동시대 사회 조직에 의한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약


 이처럼 UPIAS는 ‘개인의 손상’과 ‘사회적 장애’를 명백하게 구분하고 장애는 차별과 배제로부터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 뒤, 이 개념은 영국과 미국의 장애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세공되어 장애학의 핵심 이론인 ‘사회모형’으로 발전한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어떤 장애가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하면 될까? 그 대답은 이렇다. “식당에 들어 갈 수 없어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봐요.” “이유 없이 면접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어요.”

억압 vs. 착취

 ‘손상’과 ‘장애’를 구분하듯이, 장애학자들은 ‘억압(oppression)’과 ‘착취(exploitation)’ 개념을 다르게 본다. ‘착취’는 고전적 맑스주의 이론에 따라 자본가-노동자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이라면, ‘억압’은 지위와 권력이 불균형한 집단들 사이에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폭력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인종주의 페미니스트 질라 에이젠슈타인(Z. Einsenstein)은 억압과 착취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착취는 남녀를 불문하고 자본주의 계급 관계의 경제적 현실을 일컫는 말이라면, 억압은 가부장적ㆍ인종차별적ㆍ자본주의적 관계로 정의되는 소수자와 관련된 말이다.’ 덧붙이자면, 착취는 남녀 노동자, 비장애/비장애인 노동자 모두에서 똑같이 발생하지만 여성 억압은 가부장적 위계 속에서 여성의 역할(어머니, 가사노동, 보호자 등)을 강요당하는 것에서, 인종과 장애인 억압은 백인과 비장애인의 우월적 지위나 권력 때문에 발생된다. 그래서 ‘억압은 착취를 포함하지만, 착취보다 더 복잡한 현실을 반영한다.’

 이렇듯 ‘억압’과 ‘착취’를 구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장애(인) 등 소수자 문제를 착취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른 소수자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장애 문제는 단순히 노동자-자본가 관계 때문이 아니라 그 원인이 훨씬 더 복합적이다. 착취 받는, 따라서 (이론적으로만 보면) 역사에서 진보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조차 장애인ㆍ여성ㆍ외국이주민ㆍ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 억압의 심연에는 장애인 억압이 놓여 있다. 데이비스(Davis)의 주장처럼, ‘진보론자들은 자신들이 인종이나 젠더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며 자부심을 가질지도 모르나, 그들이 장애 이슈를 다룰 때만큼은 장애차별주의자(ablelist)가 된다.’

 장애인 억압은 자본주의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주의 사회의 장애인 억압이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평균적으로 보면,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장애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더 소극적이다. 심지어는 자국의 장애 문제를 대외적으로 거의 공개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있다. 이는 장애인 억압 문제가 특정한 사회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체에서 보편적인 사태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장애운동 일각의 주장처럼 노동해방이 오면 장애해방도 뒤따라온다는 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근거가 없다. 장애해방 없는 노동해방은 또 다른 억압 체제가 될 수 있다.

창조론 vs. 구성론

 장애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장애학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창조론(creationism))이고 다른 하나는 구성론(constructionism)이다.

 창조론은 장애가 특정 집단의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장애인은 구체적인 하나의 집단으로 실존한다. 영국 장애학자 핀켈스타인(V. Finkelstein)이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맑스의 사적유물론을 받아들여 장애인의 역사를 3단계로 구분하고, 장애는 서구 자본주의의 직접적 결과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1단계에서 장애인들은 경제적으로 최하층이었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계층이었지만, 공동체에서 축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단계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장애인은 새로운 노동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 한다는 이유로 고용에서 배제되고 공동체에서 축출되었다. 그 대신, 대규모 병원과 시설이 장애인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은 자신을 스스로를 돌볼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가 이때부터 생겨났다. 신체나 정신에 손상이 있는 사람들은 1단계에서는 생존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가졌지만, 2단계에서는 수동적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무능력한 장애인(disabled)이 된 것이다. 장애인은 이렇게 ‘창조’되었다. 3단계는 아직 완전하게 도래하지 않았는데, 이 시기는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장애인도 노동과 사회에 참여하고 억압에서 해방되는 시기이다.

 하지만 창조론은 역사를 너무 단순하고 낙관적으로 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장애인 억압은 모든 역사에서 중층적일 뿐더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이것이 장애를 제거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장애를 만들어 낼 것이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이런 한계 때문인지 창조론을 주장하는 장애학자는 소수이고, 구성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다수이다.

 구성론은 다양한 이론틀에 기초하고 있어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보면, 장애인이 구체적 실체를 가졌다기보다 그 사회의 문화, 역사, 관습, 태도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구성론의 관점이다.

 가령, 미국 인류학자인 그로스(N. Groce)는 미국 뉴잉글랜드 인근 마서즈비니어드섬을 연구하였는데, 이 섬에는 근친혼과 우성 농유전자 때문에 집집마다 농인이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 대부분이 수화를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농인들도 지역사회에 완전히 통합되어 살았다. 이를 연구한 그로스의 결론은, 비장애인이 수화를 사용하면 농인은 특별한 장애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듣지 못한다는 것이 농인의 장애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적 방식과 태도가 농인의 장애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장애학자들도 구성론을 지지한다. 이를 테면, 셰익스피어(T. Shakespeare)는 장애인은 편견 탓에 장애를 경험하는데, 이런 편견은 단지 개인 상호간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적 표현, 언어, 사회적 상징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또 모리스(J. Morris)는 장애인은 몸의 한계 때문에 비장애인에 의해 타자로 정의됨으로써 편견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한다. 궁중 어릿광대, 프릭쇼, 수용시설, 나치 수용소 같은 이미지들이 장애인 편견의 역사적 사례들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장애는 이 사회 구성원들의 편견이나 태도 때문에 발생한다. 즉, 장애는 그 사회의 편견에 의해 ‘구성’된다는 말이다.

 구성론을 종합해 보면, 장애란 결국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구성되는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 사회가 편견에 기초하여 손상을 가진 자들에게 특별한 사회적 역할을 강제한 탓에 장애인들은 장애를 경험한다. 따라서 손상을 장애로 ‘구성’하는 사회적 고리를 차단해야 장애인이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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