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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복지국가는 역동적인가


역동적 복지국가는 역동적인가이범재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 대표)


 시민단체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지난 3월 중순 ‘복지국가 제안대회’를 주관하는 등 복지의 정치 쟁점화를 시도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단체는 자신들의 주장을 모은 책인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논리와 전략>)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볼 때 이 단체의 의도는 상당히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몇 가지 점에서 그들의 시도와 성과에 찬사를 보낸다. 먼저 필자는 지난 10여 년간 진보·개혁 세력이 ‘국민경선제’, ‘기간당원제’, ‘대통합’ 등 정치공학적 슬로건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산적 복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민주적 참여의 확대’ 이후 오랜만에 시대적 가치를 반영한 진보·개혁 의제라고 생각한다. 또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상당수 진보·개혁 정치인들이 내놓은 당일치기성 주장과는 달리 학자, 정치인, 현장 활동가, 정책집행 경험자(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들이 상당한 시간 공동 참여해 형성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장하는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국가’이다(편집자 주:보편적 복지국가란 복지 혜택이 시혜로서 소외층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 이상 전 국민에게 권리로 제공되는 국가를 말한다). 이는 아마 보편적 복지야말로 지금 진보 세력이 제시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가치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독특한 것은 이 단체가 사용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용어다. 이 ‘역동적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한국 현실에 맞게 변용시키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역동성’의 의미는?

 필자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펴낸 (논리와 전략)을 통해 이 단체가 말하는 ‘역동적’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단체의 이상구 사무총장은 ‘복지국가의 교육전략’에 대한 글에서, 국가가 ‘등록금 후불제’ 등을 통해 국민의 보편적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혜택을 누리는 대학은 시설이나 ‘교수 대 학생 비율’ 등에서 일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등록금 후불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이상구 사무총장은 주장한다.

 이 사무총장의 제안은 대학교육 무상화·반값 등록금 등 ‘서민정책’이라는 명칭으로 포장된 진보 세력 일각의 주장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면에서 ‘역동적’이다. 사실 ‘대학교육 무상화’ 같은 서민정책(?)은 공적 자금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불필요한 대학 진학을 지원함으로써 일부 사학재단의 배만 불리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사회 서비스 확충 방안’에 대한 글을 통해, 공공병원 비중을 30%(현재 7%)까지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적 복지론’이다. 그러나 이상이 대표는 공공병원 비중을 영국이나 스웨덴 수준<90% 이상>까지 압도적으로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의료재정 체계(의료비를 조달하는 방법. 한국의 경우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료를 내고 의료 혜택을 받음)의 공공성이 강하므로 굳이 공공병원 비중까지 압도적으로 늘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제안은 ‘공공병원만이 의료의 공공성을 보장한다’는 식의 전통적 진보 세력의 주장과는 명확히 다르다.

그러나 전통적 진보와 다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하나의 완성되고 시대적 의미가 분명한 모델이 되려면 ‘역동성’의 철학적·시대적 논거를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역동성’은 경쟁(시장)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역동성’은 세계화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역동성’은 노동권, 그리고 ‘소비자 선택권’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복지국가론, ‘소비자 선택권’을 포용해야

 이상이 대표는 보육·요양 등 사회 서비스 부문이 시장화되어(민간 시설이 많아지고, 이에 따라 이 부문의 노동자들이 민간에 고용되면), 서비스의 질과 고용의 질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사회 서비스 부문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공공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렇게 되면 공공 부문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비교적 ‘질 좋은 고용’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는 정치전략이기도 하다. 보육·요양 등에서 질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된 수혜자들은 물론이고 공공시설에 고용된 사회 서비스 노동자들도 ‘복지 정치’를 지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이 대표의 ‘복지국가론’은 ‘서비스 공급자(노동자) 중심’ ‘정부 중심’으로 치우쳐 ‘서비스 소비자’(수혜자)의 선택권 및 결정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2007년부터 시행된 ‘중증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제도가 중요한 사례다. 이 제도는 ‘복지 서비스 소비자’인 중증 장애인들 스스로의 생존권 확보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이 제도에서 장애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서비스의 질과 고용의 질’이 아니라 ‘서비스에 대한 통제권’이다. 즉, 장애인들 역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서비스의 계획-실행-평가에 ‘서비스 소비자’인 장애인 자신이 참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서비스 제공자를 ‘도우미’(도움 주는 사람)라 부르지 않으며, 활동보조인의 제도화·자격증화에도 반대한다. 이는 서비스 공급자(노동자)의 ‘고용의 질과 자격’이 공급받는 자의 선택권·결정권과 일부 충돌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복지 정치’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려면,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와 소비자(예를 들어 중증 장애인)라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균형을 이뤄내야 한다.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는 ‘공급자(노동자) 중심주의’는 고립을 피하기 어렵고, 이는 교육 서비스 부문에서 전교조의 역사가 어느 정도 증명한다.

 또한 이상이 대표는 지방정부가 복지 서비스를 공급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민간의 구실은 경시한다. 그러나 지방정부 관료체계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 민주주의 논의에서는, 정부가 행정 기능의 일부를 민간에 위임하거나 위탁하는 조처(거버넌스 )가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뛰어넘는 매우 중요한 시도로 간주되고 있다. 사회 서비스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방정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보편적 복지국가론’의 한국적 변용으로서 역동성을 가지기 위해서, 특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진보·개혁 세력의 재구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적 덕성이 작동하는 제3섹터, 즉 사회적 경제의 역할이 옹호되어야 한다. ‘보호된 시장’의 필요성과 공급자와 소비자의 공존에 대한 탐구도 더욱 보편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동성’이라는 용어는 자칫 ‘정치적 수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시사in>135호 (2010년 4월 12일)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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