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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라리아를 찾아서


시선으로부터의 자유현근식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팀장)


1. 처음 알게 된 꽃. 씨네라리아

 씨네라리아[cineraria,シネラリア]는 쌍떡잎식물 국화과의 두해살이풀. 사전을 찾아보니 씨네라리아에 대한 설명의 저렇게 쓰여 있고, 보라색이나 파란색 꽃을 찍은 작은 사진이 그 첨부되어있다. 마치 떠오르는 듯 한 꽃의 색깔 때문에 '항상 빛남', '항상 즐거움'이라는 꽃말이 붙어 있다는 시네라리아. 일본을 가기 얼마 전 나는 씨네라리아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도쿄 여행은 씨네라리라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까?

 KAL의 항공기에서 내려 나리타공항의 게이트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이제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 땅에 발을 내디딘 외국인에 불과했다. 나리타공항의 나이 든 일본인 직원들만이 도움을 주기위해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항공기에서 승무원이 나리타공항에 도우미를 대기해달라고 부탁한 덕분에 일본인 도우미에게 입국절차를 안내 받고 있지만 이국 여행객이 가진 약간의 불안감이 가슴 속 저 안에 깜박거렸다. 더구나 도우미 직원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나리타공항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터미널 내부가 복잡한 구조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입국 절차는 쉽게 끝나지 않고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출입국카드작성과 패스포트 확인은 물론이고 지문날인과 얼굴촬영, 수화물신고, 세관검사 등 꽤 오랫동안 공항을 헤매고 있었다.

 도쿄중심지로 가기 위해 나리타공항 지하에 있는 전철역의 JR센 승강장에서 익스프레스를 타고나서야 비로소 일본을 여행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정말 무모하리만치 쉽게 결정한 도쿄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공항에서 도쿄중심지인 신주쿠 역까지는 급행열차인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도 1시간 반이나 달려가야 했다. 외국의 풍광은 무엇인가 다른 매력적인 요소가 있으리라는 얇은 상상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한국의 시골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설이나 TV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여 적산가옥이라 불리던 일본식 주택이 눈앞을 드문드문 스쳐지나갈 때 일본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 새삼 깨닫곤 했다.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보는 차창밖 풍경 익스프레스 안에서 바라보는 신주쿠역으로 가는 풍경


2. 신주쿠

 신주쿠 역에서 내려 도보로 10분 거리인 호텔로 향했다. 우리는 3박4일 동안 그곳에서 묵을 예정이다. 숙소 옆에는 현대식 건물인 도쿄도 청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청사 옆으로 매우 높은 빌딩들이 들어섰고 저마다 초현대식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역에서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니시신주쿠(西新宿)로써 대규모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따라 호텔과 현대식 오피스 빌딩으로 가득 차 마천루를 형성하고 있다. 행정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도심지역이어서 그런지 도로나 건물의 배치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도로의 1층 높이 위에 다시 직각으로 지나가는 도로(고가도로가 절대 아니다) 배치는 사거리를 거의 없게 만들어 교통체증을 피하고 있었다. 역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은 비교적 오래 전부터 도쿄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가이며 24시간 잠들지 않는 환락가 지역이라 한다. 실제 역 주변에서 마주한 도쿄의 첫인상은 여행객들의 천국이었다. 한국의 서울역과 남대문, 동대문 쇼핑타운을 맞 붙여놓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만큼 신주쿠 역 주변은 도쿄의 중심지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의 거리를 걸으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그것은 대도시 도쿄답지 않은 도로의 폭과 자동차 통행량 때문이다. 새로 지은 도쿄도 청사 주변 도로는 거의 모두 왕복 4차선에 불과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 좁은 도로에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한산하다는 점이다. 도로 양옆에 무슨 일인지 도쿄도 택시들이 즐비하게 정차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도로는 거의 혼잡하지 않았다. 70년대 이후 일본에서도 마이카 붐이 일어 집집마다 승용차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도 신기하리만치 차량이 통행이 적었다. 물론 도쿄 일부지역은 세계의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교통체증이 심각하기로 악명이 높지만 도쿄도 중심지인 신주쿠는 도로가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이는 도쿄의 교통체계가 도시철도(지하철 포함) 중심으로 발달해 왔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도쿄 교통수단분담율의 가장 많은 80%를 차지하는 게 도시철도라 한다.

니시신주쿠 도심의 고층빌딩 중 가장 초현대식 건물인 도쿄도 제1청사 니시신주쿠 도심의 도쿄도 제1청사와 주변건물

니시신주쿠 도심의 고층빌딩 중 가장 초현대식 건물인 도쿄도 제1청사

도쿄도청에서 신주쿠 역 가는 연결 통로 신주쿠의 마천루를 이룬 고층빌딩

도쿄도청에서 신주쿠 역 가는 연결 통로와 신주쿠의 마천루를 이룬 고층빌딩


 니시신주쿠의 초현대식 빌딩과 신기한 도로의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우리들은 거리를 쏘다녔다. 도청에서 신주쿠 역까지 아름다운 거리를 따라 걷기도 하고 약간 느끼한 국물이 특징인 면을 저녁식사로 먹었으며, 쇼핑가를 걸으며 상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내가 살던 곳 한국 땅에서 크게 벗어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인생이 한순간의 무모한 결정으로 도쿄의 한복판까지 와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약간 센티멘털해 지기까지 한다.
 그래서일까? 신주쿠를 걷고 있는 동안 한결 자유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쿄의 지리는 잘 모르지만 어느 곳이라도 찾아갈 수 있을 듯 하고, 어떤 제약이나 구속 없이 문득 마음이 내키면 다시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집을 떠난 초보 여행자가 느끼는 보편적 심리가 자유로움일까? 숙소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그 자유로움의 정체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시선으로 부터의 벗어남이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동안 그 누구도 우리를 주목하는 일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3. 인간에 대한 예의 또는 무관심

 동행자 두 사람 모두 눈에 확 뜨이는 장애인이 거리를 나돌아 다니는데도 신주쿠의 행인들은 어느 누구 하나 우리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한사람은 육중한 휠체어를 타고, 하나는 술 취한 듯 비틀거리며 걸어도 일본인은 제 갈기를 바삐 갈뿐 누구도 발길을 멈추고 지켜본다던가. 다가와서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타인의 시선에서 탈출한 이 거리에서 나는 오히려 자유를 만끽한다.

 도쿄 여행 내내 장애인이라는 자각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큰 건물과 턱이 드문 보도는 휠체어를 타고 다닌 다해도 별 어려움은 없을 정도이다. 특히 도쿄를 이동하는 교통수단은 대부분 도시철도를 이용하면 거의 모든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나 그에 대체할 수단도 구비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그 위치를 찾기 힘들어 도쿄 시민들도 역 직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도시철도(지하철)의 모든 역에 승강장과 전동차간에는 적어도 10센티미터 이상의 단차가 있어 이동 경사로를 놓지 않으면 휠체어는 타거나 내리지 못한다. 도와주는 제복 입은 역무원이 없다면 속수무책 떠나는 전동차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 거의 모든 일본인들은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플랫폼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역무원조차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휠체어를 타고 도쿄의 도시철도를 이용하려면 개찰구 옆에 있는 직원들에게 꼭 도움을 요청하여야 한다.

 하라주쿠 역과 신주쿠 역의 일부 승강장에는 외부로 나가는 엘리베이터 대신 특별히 제작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휠체어를 태운다. 외양은 일반 에스컬레이터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는데 휠체어를 태우기 위해서 제복을 입은 역무원이 비장애인의 통행을 통제하고 버튼을 누르니 마치 트랜스포머 같은 에스컬레이터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휠체어가 올라타면 3개 정도의 계단이 단차 없이 동시에 휠체어 지탱하면서 운행되고 맨 뒤에는 휠체어가 전복되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올라와 있다. 친절한 도우미 역무원과 같이 에스컬레이터는 재미있는 모습으로 휠체어 싣고 올라가거나 내려가기도 했다.

전철에 연결된 휠체어용 경사로 에스컬레이터를 조정하는 역무원의 모습
에스컬레이터를 탑승한 휠체어 장애인의 안전을 위해 뒤에서 잡아주는 역무원 역앞에서 역무원과 기념 촬영


 역무원들의 전형화 되었지만 깍듯한 친절과 일반 도쿄시민의 무관심 사이에서 나는 서울에서와는 다르게 자유를 느꼈다. 만약 이 도시의 친절과 무관심 속에서 살아간다면 나는 행복할까? 이 자유로움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몰라 서둘러서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옮겼다.

4. 도쿄의 일상 - 일본 드라마 속 거리

 10년이 훨씬 넘은 이전 시절, 일본드라마에 몰입했던 시절이 있었다. <잠자는 숲; 眠れる森>으로 시작했던 일본 드라마의 섭렵은 <춤추는 대수사선; 踊る大搜査線>, <롱 베케이션;ロング-バケ-ション>, <뷰티플 라이프; ふたりでいた日?>, <사랑한다고 말해줘; 愛してると言ってくれ> 등 쟁쟁한 드라마 외에도 40 여 편 정도를 줄기차게 보았다. 일본 드라마는 거의 11부작(1회 약 60분)이므로 500회에 가까운 드라마를 본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 회선이 처음 개인집에 보급될 때이니까 시디 1장 분량의 1회 드라마를 받으려면 최하 3시간이상 걸리곤 했다. 감상시간보다 다운로드 받는 시간이 몇 곱절 걸리므로 아예 하루 24시간 PC를 켜놓고 자료실에서 다운받기가 다반사였다. 요즘 돌이켜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몰입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이 가시화되어 이와이 슌지 감독 장편 영화 데뷔작 <러브레터;Love Letter(1995년작)>가 음으로 양으로 한국 젊은이들의 예민하고 애틋한 감수성을 강타했을 무렵의 일이다. 그때까지도 일본영화는 금지예술이고, 일본가요는 남 몰래 해적판을 구해듣는 비애국적 행위였다. 일본문화라면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일본드라마를 통해 정식으로 일본대중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마 그때 내 뇌리 속으로 들어와 깊숙이 자리 잡은 인상은 일본, 도쿄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지배하고 있었다. 어쩌면 일본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그곳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첫 데이트 장소를 찾듯이 마음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도쿄 행을 선택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행 내내 그 흔적의 장소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도쿄의 평범한 주택가 도쿄 인근의 풍경
도쿄 중앙공원의 모습 도쿄 거리에 앉아있는 고양이


 다만 중앙공원 뒤에 지평선처럼 펼쳐진 도쿄의 평범한 주택가를 보며 일본 드라마에서 본 장면들을 떠올려야 했다. 작은 면적의 땅 위에 미니어처처럼 지어진 주택들, 그 앞에 장난감처럼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와 자전거, 그 속을 파고들어 동네 주민들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파는 작고 허름한 식당. 도로 하나를 건너면 작은 신사를 품고 있는 공원과 그 속을 꽉 메운 찬란한 5월의 신록. 그 위로 떨어지는 아침 햇살.
 하지만 약간 이국적인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었다. 아침 시간, 신주쿠 역에서 모여들었을법한 행색이 남루한 노숙자들이 수도 가랑이를 붙잡고서 단장을 한다. 그 모습을 점잖게 앉아 보고 있는 많은 수의 고양이들. 이것이 대도시 도쿄의 평범한 아침이고 일상일 것이다.

5. 그리고 남겨둔 것들

 일본을 소개하는 TV영상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대각선으로 횡단보도가 있는 시부야는 도쿄의 독특한 젊음이 느껴졌고 특급열차 로만스카를 타고 찾아갔던 온천지역 하코네는 산골 관광지였다. 특히 하코네유모토 역에서 고라 역까지 탔던 등산철도는 스위치백 방식으로 열차가 운행되는 곳이다. 급경사지역의 산줄기를 열차가 오르기 위해 가던 방향을 후진으로 바꾼 뒤 선로를 갈아타며 운행하는 것이다. 열차가 3,4번 정도 스위치백으로 운행하더니 눈앞에는 이미 하코네의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 여행기에 기록해야 할 것들은 아직 많다. 시부야에서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눈 혼혈로 보이는 일본인, 고라 역에서 다시 산을 오르기 위해 탔던 케이블카(모노레일과 비슷한), 마지막 날 공원에서 열린 일본 벼룩시장, 그리고 일본 음식들……. 그러나 이 모두를 이곳에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남겨둔 것들이 나중에 더 그리워질 테니까! 그리하여 그리움이 깊어지면 다시 한 번 그곳으로 가고 싶다.

고라 역까지 탔던 등산철도의 열차내부 열차에서 바라본 고라역 모습
산 위에서 바라본 하코네의 절경 열차안에서 보이는 맞은편의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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