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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소통 2007년 제6호 하성준의 유학일기(1) 미국 유학 6개월의 크로키, 하성준(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팀장)



미국 유학 6개월의 크로키
하성준(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팀장)



I. 장애는 특별하지 않다!

필자는 2006년 12월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학업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왔다. 떠나기전에 많은 사람들이 격려와 우려의 말을 했지만 그러한 말들을 뒤로 하고 어느덧 미국에서 생활한지 6개월이 넘어간다. 6개월간의 미국생활로 미국을 다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동안의 생활로 알게된 것,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기를 원한다.



지금 내가 생활하고 있는 지역은 미국 본토에서도 거의 한 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간략하게 이 지역을 설명하면 미국의 중부 일리노이 주(State of Illinois) 남쪽에 위치한 카본데일(Carbondale)이라는 지역이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버드와이저 맥주로 유명한 세인트루이스(ST. Louis)이고 인근에 미저리 주, 캔터키 주, 인디에나 주가 있고 테네시 주도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사실 일리노이에서 가장 큰 도시는 시카고(Chicago)이고 주도(Capital of state)는 스프링필드(Springfield)인데 이들은 모두 일리노이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일리노이 전체에서 보면 카본데일은 일리노이의 중심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장왕하게 카본데일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의 경험이 미국 전체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복지제도나 공공행정 시스템이 서울이나 부산, 강원도나 경기도가 유사하지만 미국은 주에 따라, 카운티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의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이 글의 내용이 미국 전체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릴 필요가 있다.



시각장애를 가진 필자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장애가 별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한국에서 장애는 정말 불편한 것이고 되도록 타인에게 알릴 필요가 없는 개인정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개인의 장애에 대해 공식적으로 궁금해 하거나 코멘트하는 것이 듣기 싫다는 의미를 넘어서 무슨 큰 범죄(차별)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또 미국에서 생활하는 다른 유학생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장애가 정말 상대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유학생들이 영어가 잘 안된다는 이유로 당하는 불이익을 보았으며, 이민을 목적으로 이곳에 정착하신 분들이 의사소통의 문제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가지는 것을 보면서 장애란 결국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메론"이 먹고 싶어서 오늘 그걸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 미국사람, 못 알아듣는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물었다. “멜론 있냐고 그걸 먹을 수 있냐.” 그런데 또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물었다. “m e l o n 먹을 수 있냐.” 그랬더니 혼자서 "m e l o n" 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멜른" 헉!!!


한번은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식사 때마다 너무 음식을 많이 담아 주기에 음식을 담을 때마다 "조금만 줘, 조금만 줘" 했더니 정말 음식이 조금 뿐이었다. 후렌치 토스트 하나, 베이컨 한 쪽, 그리고 정채 불명의 빵 하나.
그런데 이러한 경험은 필자인 나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앞을 보지 못해 이런 경험을 하지만 많은 유학생들이 카페테리아에서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의 이름도 모른 채 음식을 먹는다. 차림표를 보고 음식이름을 말하기도 어렵지만 발음상의 차이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대부분 간단한 음식이라도 차림표에 음식이름과 같이 있는 번호로 음식을 주문한다. 음식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말하면, 우리는 "콜라"라는 말에 매우 익숙해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라이트"니 "다이어트"니 하는 저당분 콜라를 마실 수 있지만 미국은 그러한 측면에서 콜라를 4가지로 구분한다. 우선 코카콜라와 팹시로 구분하고 각각의 콜라에 레귤러(보통 콜라)와 다이어트(저당분) 콜라로 구분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데 다들 알다시피 코카콜라는 "콕"이라고 하고 팹시콜라는 "팹시"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이러한 음료수의 종류를 철저히 구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팹시든 코카콜라든 다 같은 콜라지만 이 사람들은 철저히 구분하는 모양이다. 팹시만 가지고 있는데 콕을 달라고 하면 "우리는 콕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미국생활이 익숙하면 쉽게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어도 서툴고 생활한지 얼마되지 않은 유학생들은 여기서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냥 있는 콜라종류를 마시든지(가장 쉬운 방법), 다른 음료수 달라고 하든지(잘못하면 낭패 보는 방법). 이것은 사이다에서도 비슷한데 흔히 우리가 아는 사이다가 미국에서는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스프라이트이고 나머지는 세븐업이다. 이것도 잘못 말하면 콜라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닥터패퍼를 마시는가!"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건 한 가지니까!



이러한 경험들의 원인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에서는 장애가 아니었던 부분이 여기서는 장애로 발생하는 것이다. 영어를 잘못 알아들어서 생기는 에피소드는 이 외에도 수도 없이 많지만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필자는 장애가 결코 절대적인 개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II. 서비스의 시작은 계약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처음 방문한 곳이 장애학생지원센터(Disability Support Service : DSS)였다. 이곳은 장애를 가진 학생이 원만히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각종 지원을 행하는데 시각장애인에게는 1. 보행지도 및 적응기간 동안의 도우미(Assistant) 지원, 2. 보조공학기기의 대여, 3. 수업에 필요한 교재의 제작, 4. 추가시간의 배정을 목적으로 하는 별도고사장 제공 등을 지원한다. 이들 중, 보행지도는 보행전문가(Orientation & Mobility Specialist)에 의해 진행되고 도우미는 DSS가 지정한 도우미에 의해서 한시적으로 지원된다. 그리고 교재의 제작은 문서인식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문서파일 제작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서비스의 제공 전에 계약서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서비스제공 전에 계약채결이라는 형식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필자가 경험한 것과 같이 공식적이고 유의미한 형태로의 계약은 거의 없다. 구체적으로 여기에 관해 설명하기로 한다.



처음에 DSS에 가서 필자가 한 일은 담당 재활상담가를 만나서 상담한 것이다. 상담의 내용은 간략한 장애상태의 확인(어느 정도 보이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학업과 관련해서 사용가능한 보조공학장비는 무엇이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별도의 인력지원 즉, 활동보조인과 같은 지원이 필요한지, 기타 보행지도를 포함한 교육 및 훈련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서 상담한 내용을 기초로 하여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의 주된 내용은 학교와 장애학생 사이에서 학생이 학교에 원만히 적응하고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구체적인 서비스내용을 명시하고 학교의 모든 교직원은 계약자의 원만한 학사일정 소화를 위해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이때, 서비스의 내용은 일일이 적는 것이 아니고 계약자와의 상담결과 확인되고 지원 가능한 서비스항목에 체크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성한 계약서를 원본 외에 6장을 복사하고 한 장은 DSS가 보관하며 나머지는 장애학생 본인이 가지고 간다. 그리고 이 계약서를 장애학생이 수강하는 과목의 담당 교수 혹은 강사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다. 이 계약서를 받은 담당교수 혹은 강사는 학생이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을 요구했을 때, 이를 최대한 지원해야 하고 자신이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를 모르거나 지원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 계약서에 날인한 재활상담가에게 관련 사항을 문의한다. 그리고 재활상담가는 이러한 협의 사항에 대해 다시 장애학생에게 알리고 적절한 지원방안을 함께 모색한다.


처음에 계약을 한다는 것이 다소 생소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계약이라고 하면 집을 사고 팔는 일이 아니고는 개인이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계약을 하고 그 계약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일일이 필요를 설명하거나 이해시킬 필요가 없었으며 장애를 가진 필자의 요구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요구할 것과 요구해도 안되는 것이 명확히 구분되었고 어떤 문제를 누구에게 가서 문의하고 도움을 청해야 할지가 명확했을 뿐만 아니라 장애학생과 재활상담가, 그리고 재활상담가와 교직원 사이에 자연스러운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 준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지원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이다. 장애학생이 혼자서 학과 혹은 수업 담당교직원과 협의하여 필요한 것을 해결하거나 학교에서 운영하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장애학생 대신 담당교직원들에게 지원을 요구하고 지원하거나 아예 아무런 지원도 없이 그냥 장애학생이 알아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세 번째 형태의 경우 교직원이 자신의 학과나 수업에 장애학생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대학들이 장애학생과의 계약을 통해 적절한 지원을 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계약서를 장애학생이 직접 담당교직원에게 전달하면 더 효과적인 네트워크의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III. 뿌리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다!


2004년이나 2005년 정도로 기억되는데 일부 임산부들이 출산을 미국에 와서 한다는 뉴스보도를 보았다. 이른바 "원정출산". 다들 알다시피 미국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미국시민권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젊은 부부들이 아이의 장래를 걱정한다는 핑계로 미국에 와서 아이를 낳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미국에서 자녀를 낳은 유학생 부부 들을 보면서 아이를 미국에서 낳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필자가 원정출산을 권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기초가 튼튼한 미국의 복지제도를 생각해 보면 한국의 복지제도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그것도 일리노이주의 경우를 통해 이러한 필자의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우선 여자가 임신을 하면 산부인과 혹은 Health Center(한국의 보건소) 같은 곳에서 검진을 받는다. 이 순간부터 산모와 아이는 공공의료체계의 지원대상이 된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한 가지만 빼면 비슷하다. 임산부에게 정기적인 검진을 받도록 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노트를 갖는다. 한 가지 차이점은 무료라는 것이다. 여자가 임신이 확인된 순간부터 그 아이가 만 5세가 될 때까지는 기본적인 아이의 양육을 위해 검진, 출산, 출산후 정기검진, 분유, 이유식 등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는 일체의 비용을 개인이 부담할 필요가 없다. 물론 일정소득이상을 가지는 국민의 경우는 예외이지만 연간 가계소득 30,000$ 이하인 일리노이 거주민은 이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출생하기 직전에는 아이의 출생 후, 건강을 정기적으로 점검할 소아과 의사를 지정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아이에 대한 의료보장제도(Medicaid) 덕분에 무료이다. 참고로 일리노이의 경우 아이가 출생하고 출생신고를 마친 후부터 매달 아이가 의료보장제도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리는 카드가 우송되고 아플 때에는 이 카드를 제시하면 일리노이 내에 있는 모든 의료기관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은 즉시 확인이 되고 그에 따라 적절한 지원이 행해진다. 또 외국인이든 그렇지 않든 4세 이하의 어린이를 보호하고 있는 가정에 일정액의 food-stamp를 지급한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인데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도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정책이다. 재미있는 것은 무조건 food-stamp를 모든 가정에 지급하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정기적인 건강체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지급해 준다는 것이다. 받고 싶지 않거나 안 받아도 되는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 food-stamp에는 구입할 수 있는 식품의 종류가 명시되어 있는데 대체로 값이 싸고 영양이 높은 음식들이다. 또 같은 음식 즉 주스라고 하더라도 프리미엄급의 물품은 구매할 수 없다. 양은 어른까지 먹어도 될 정도로 지급되며 지정된 품목 외의 다른 물품 혹은 현금으로 교환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만 4세가 되면서부터 공적 교육체계에 소속되는데 여기서부터 대학교육까지는 거의 개인비용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사립학교를 다니거나 다른 주에 소재한 대학으로 진학했을 경우는 예외이다. 3세 이전의 아이는 지역에 소재한 주간보호센터(Day-care center)에서 보호한다. 외국국적의 아기의 경우 부모님 중의 한 사람이 이 센터가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다른 아이들과 같이 보호받을 수 있다. 그리고 교육프로그램도 지역에서 받을 수 있는 각종 복지혜택을 알려 주거나 생활영어를 교육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강제적이거나 시간을 낭비시키는 프로그램도 아니다.



이제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선 비용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출산과 관련해서 아이에게 지급되는 공식적인 지원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건강검진도 보건소를 통하면 큰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지만 전혀 안 드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회적 양육체계가 약하기 때문에 양육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 더 좋은 학교, 더 나은 보육서비스에 대한 부모의 욕심에 그 원인만을 두기에는 우리나라의 공적 보육체계가 너무나도 미약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특별한 지원과 추가적인 인력을 요구하는 장애인 보육에까지 이어져 장애아동에 대한 조기교육의 부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 육아, 교육으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복지/교육체계가 미약하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육아와 교육에 있어 개인(부모)의 부담이 큰 실정이고 미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복지, 공적교육체계가 치밀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보육과 교육에 대한 개인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러한 기초복지/교육의 우수성은 큰돈과 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장애아동/성인에 대한 우수한 복지/교육체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 복지선진국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거창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인간이 태어나서 교육을 받고 자립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를 때까지 기본적인 것을 사회가 책임지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미국의 복지/교육체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성장과 교육이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개별복지서비스는 매우 발달해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장애영역별로 특화된 이용서비스 가령, 심부름센터, 수화통역센터, 자립지원센터 등의 이용서비스와 장애인종합(종별)복지관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교육 및 레저서비스는 미국에 비해 훨씬 발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필자의 경우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의 우수한 개별서비스를 부러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광역화된 지역사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비용과 전문인력이 요구되는 복지관이나 앞에서 열거한 장애영역별 서비스를 일일이 마련하기 어렵다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점이기는 하지만 있던 물건이 갑자기 없어지면 불편을 느끼는 것과 같이 늘상 이용하던 서비스의 부재는 필자로 하여금 엄청난 불편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미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면적으로 서울정도 되는 지역 내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1,000여명이고 그들을 위해 심부름센터, 수화통역센터, 자립지원센터와 같은 장애영역별 서비스기관을 별도로 설립하기 보다는 연금과 같은 형태로 장애인 본인에게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육적일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통합적 개념의 자립생활센터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필자가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 옆방을 쓰던 저스틴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최중증의 뇌병변장애인이었는데 음악듣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나누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저스틴에게는 하루에 최소한 3회의 방문객이 있었다. 그들이 저스틴에게 어떤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제공하는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필자가 확인한 것은 옷 입는 것, 학교가기 전에 필요한 준비사항을 지원하는 것, 잠들기 전과 잠에서 깬 뒤에 신변처리 부분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 7시에 한번 오전 10시에서 11시 전후에 한번, 그리고 밤 10시 경에 한번 이렇게 방문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처음에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활동보조인(Personal Assistant)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들이 모두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으며 지원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남학생도 있었고 여학생도 있었다. 심지어 가구의 배치도 바꿔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옆방을 쓰던 필자는 우당탕탕 하는 소리에 괴로워해야 했지만...
후에 저스틴과 헤어지게 되어서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큰 불편 없이 저스틴은 학교생활을 영위하고 있었고 지금도 가끔 길에서 만나면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아주 반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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