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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호의 장애학 이야기

장애의 개념적 기초와 장애모형 David Johnstone 지음 / 윤삼호 번역

※ 이 글은 <An Instruction to Disability Studies> 제1장을 요약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 〕는 역자가 문맥에 맞게 하기 위하여 첨부한 것입니다.

WHO의 장애 개념

최근 영국의 법적 장애 정의는 장애차별법(Disability Discrimination Act, 1995)이 규정하고 있는데, 모호하기 짝이 없다.

장애인은 정상적인 일상 활동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능력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곤란을 겪게 하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입은 자이다(DDA 1995).

〔이 정의에 따르면,〕장애는 사회적 차별이라는 집단적 행위가 아니라 영원한 기능 상실로 비춰질 수 있다. 그 결과, 손상이나 상실(loss)이 장애의 법적 기초가 된다.

이러한 정의는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불이익의 원인을 만성적 질병에 돌린다.〔그 결과,〕장애인은 계층적으로 그리고 개인의 건강이라는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1976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개발한 다음과 같은 분류법과 일치한다.

손상(impairment) -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손상이란 정신적, 육체적 혹은 해부학적 구조나 기능의 상실이나 비정상을 일컫는다. (즉, 손상은 말더듬이나 시력 상실과 같은 의학적 손상(damage) 혹은 신체 일부의 기능 이상임을 강조한다.)

장애(disability) -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장애란 (손상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방법이나 범위에서 행위를 할 능력을 제약받거나 상실한 것을 일컫는다. (즉, 장애는 손상으로 야기된 신체적 기능의 결과로 간주된다. 예를 들면, 말더듬의 결과 가운데 하나는 대화의 어려움이고, 척추피열의 결과 이동의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핸디캡(handicap) -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핸디캡이란 손상이나 장애 때문에 주어진 특정 개인이 받는 불이익 - (나이, 성별, 사회적ㆍ문화적 요소들에 걸맞게) 그 사람의 정상적 역할을 충분하게 할 수 없도록 제한하거나 가로막는 것 - 을 일컫는다. (즉, 핸디캡은 특정인의 사회적 여건이나 일상적 환경에서 장애로 인한 결과 때문에 야기된다. 이것은 교통수단이나 안경에 대한 접근 제약 등을 일컫는다.)

WHO의 정의에 따른 ‘장애’ 구성은 특정한 신체적, 정신적, 행동적 상태들과 관련된 실천과 인식의 계층적 기능이다. 여기서 장애는 질병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UPIAS와 DPI의 장애 개념

1972년, 영국에서「분리반대신체장애인연합(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 이하 UPIAS)」이 결성되었는데, 이 조직은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장애인 정치동맹체였다. UPIAS는 1976년에 ‘장애의 기본 원리(Fundamental Principles of Disability)’이라는 문건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스스로 정의한 장애 개념이 들어있다. 이 정의는 WHO 분류의 한계와 모호함을 비판하고, 의사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손상과 장애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UPIAS는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시설 격리, 접근성 문제, 노동 시장에서 배제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 생활에 완전히 참여할 수 없어서 장애인으로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UPIAS의 입장에서는 신체적 장애는 질병으로 인한 제약이라기보다 환경적, 사회적 억압이었다. UPIAS는 WHO의 대중없는 분류법 대신 장애와 손상을 엄밀하게 분리한 안을 제시하였다.

손상 - 사지의 전체 혹은 일부분이 없는 것을 강조함. 혹은 사지, 기관 혹은 신체 구조에 결함이 있음. 다시말해 손상은 개인을 강조한다.

장애 -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책임은 거의 혹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회 활동의 주류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은 동시대 사회 구조에 의한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약 때문임을 강조한다.

약 6년 뒤, DPI(Disabled People's International)는 장애의 원인을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부과하는 부담과 장벽으로 돌리는 장애 개념을 제출함으로써 UPIAS의 정의를 발전시켰다. ‘정상적 삶’에 대한 정의와 손상과 장애를 입은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제약을 비교함으로써, DPI는 공동체 생활이라는 틀(schema) 내부에서 장애의 인과관계를 찾았다.

손상 - 신체적, 정신적 혹은 감각적 손상으로 야기된 개인의 내부 기능적 제약

장애 - 물리적, 사회적 장벽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공동체의 정상적 생활에 참여하는 기회의 상실 혹은 제약(DPI 1982)

따라서, 장애 정의 초점이 하나의 연속체(continuum)를 따라 이동되었다. 즉, 장애 개념이 기능 상실로 인한 일탈에서 장애의 정치적 속성의 자각으로 바뀌었다. 사회적, 무의식적 편견을 강조하는 UPIAS 모형 - 올리버(M. Oliver)는 이것을 ‘차이의 정치학’이라 했다 - 은 이 연속체의 극단을 제시한다. 이 모형은 깨어 있는 장애 자부심(disability pride)과 장애 문화의 등장을 이끌고, 정상성 개념이 부과한〔장애/비장애〕경계를 허문다.

개인비극모형 혹은 의료모형

수많은 주변집단을 위한 대책들이 그렇듯이, 장애인 대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다소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장애인 대책은 시작부터 ‘도움을 주는 자들’과 ‘도움을 받는 자들’, 즉 노동시장 수요와 서비스 제공 집단의 역할 사이에 존재하는 상이한 힘 관계를 포함한다.

장애를 개인의 비극으로 보는 의료모형은 오래 전부터 연구되어 왔다. 의료모형은 비장애인이 장애인보다 좀 ‘더 좋다’거나 더 우수하다고 분류하는 이원설로 장애를 해석하였다. 이것은 쿠르츠(Kurtz)가 작성한 학습장애인 분류법과 거의 일치한다. 장애인 이미지는 동정, 공포, 그리고 자선으로 정의되었고, 이런 각색에 해석력을 부여한 것이 바로 장애인 이미지였다. 의료모형은 객관적이고 엄밀한 시도라기보다 장애에 대한 근원적 공포심을 확고하게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취약하고 그 본성이 억압적이다.

비장애 장애
정상 비정상
좋다 나쁘다
깨끗하다 불결하다
적합하다 적합하지 않다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독립적이다 의존적이다

이러한 묘사는 장애인들과 함께 무슨 일을 하기보다 장애인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가정을 정당화시키는데 활용되었다. 의료모형은 20세기 초 장애인들의 아기 낳을 권리를 박탈하는 거짓 박애로 가장하여 대규모 수용시설의 유지와 강압적인 장애인 통제를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장애인들은 특정 분류법을 쉽사리 따르지 않는다. 분류법은 장애인들의 다양성과 범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올리버가 말하듯이, 의료모형은 ‘손상 개념을 기능의 비정상으로, 장애를 정상적인 인간 행동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핸디캡을 정상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리욱스(Rioux)는 장애를 의료적/생물학적으로 분류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제 장애 특성을 서비스 대상이나 사회적 골칫거리로 규정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의료’ 모형은 힘 있는 전문가 집단의 축도라고 볼 수 있는 의료 행위에서 나타났다. 의사들은 신성한 책임감으로 생명과 죽음을 다룬다. 의사들의 이런 능력은 여러 전문적 서비스에 큰 영향을 주고,〔장애인들이〕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하고,〔서비스〕실행 도구를 마련해 주었다. 이런 강력한 영향력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장애를 가지게 되면 의료모형은 사실상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 의학의 영향력은 ‘보호’ 문제를 개별화하는 주요한 요소인 탓에, 개인적 소외감은 더 복합적으로 된다.

애초부터 서비스 제공자들이 어떻게 장애 ‘문제’를 장애인들의 책임으로 돌렸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의료 본래 기능은 환자의 요구를 평가하고, 처방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에 가깝다. 장애인들은 의료에 의지하고 지배를 받아왔다. ‘의사의 손에 달려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장애인들은 의학적으로 정의되었다. ‘의료모형’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단순한 개념이다. 그러함에도, 이 모형이 손상과 장애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위한 유용한 설명으로서 받아들여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모형의 힘은 정상화 원리(principles of normalisation)와 실현 불가능한(그리고 장애인들이 바라지 않을 지도 모르는) ‘완전함(wholeness)’을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의료모형으로 장애를 이해하려면 정상성에 대한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전문가들이 좋아하는 힘 관계를 강조하고 장애는 개인의 비극으로 보는 견해를 강화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의료형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이렇다. 손상이나 장애를 입은 사람들은 치료에 감사해야 하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전문가가 추천한 개입을 잘 따르지 않은 환자의 잘못과 책임이다.

사회모형

의료모형은 장애는 개인의 비극이라는 단순한 시각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회적 장애모형은 개인의 책임에서 집단의 책임으로 인과관계의 강조점을 뒤바꿔 놓았다. 이 모형은 장애인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것은 사회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해석이다. 따라서, 책임 소재가 손상이나 장애를 가진 개인에서 사회적, 물리적 환경에 의한 제약과 각종 제도 및 기관의 태도로 옮겨갔다.

장애인의 사회모형도

의료모형과 사회모형의 근본적 차이는 해석력의 변화에 있다. 의료모형과 달리 사회모형은 사회가 야기한 구조적, 개인적 장벽을 강조하고, 장애인들의 의사결정 참여와 전문가 역할의 제한을 인정한다. 사회모형의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ㆍ사회모형은 장애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와 태도의 변수들을 인정한다.
ㆍ사회모형은 장애인의 목소리/시각을 인정한다.
ㆍ사회모형은 장애인들의 시민권을 억압하고 거부하는 정치적 과정을 폭로한다.
ㆍ사회모형은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에게 권력/정보를 제공한다.

사회모형은 장애학 어휘 목록에도 올라가 있는〔오래된〕모형이지만, 여전히 장애 문제에 대한 집단적 사고의 변천과 개인적 사고의 변천 모두를 탐구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사회모형은 그 속성상 장애인들의 살아 있는 경험들에서 생겨났다. 그래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모형은 의료모형과 반대로 장애인 당사자들과 그들의 집단적 목소리로부터 힘을 얻었으며, 장애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 비장애인 “전문가들”의 확신을 허무는’ 방법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핀켈스타인은 사회모형의 가장 큰 힘은 의학적 장애 해석을 거부하고 이에 저항하는 비타협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권위를 잃어버리면, 권리 중심 아젠다를 만드는데 기여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노고를 배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모형에도 한계는 있다. 손상의 경험적 현실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 가지 이상 손상을 입을 수 있지만, 자신은 그 가운데 단지 한 가지 때문에 장애를 느낄 수 있다. 즉, 천식, 청력 상실, 그리고 관절염을 모두 가진 사람이 의료 조치로 천식을 통제하고 보청기로 대부분 들을 수 있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다면 관절염과 건축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한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손상 결과가 다양하고 그 심각성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장애를 일반화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장애 연구 문헌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의 손상 수준은 높아졌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것 같은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손상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 ‘좋은 날’이 있으면, 또 ‘나쁜 날’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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