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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소통 연대의 시선, 장애인운동과 매니페스토, 이광재 사무처장



장애인운동과 매니페스토
이광재



차별과 소외, 배제와 박탈.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에 대해 얼마나 알까? 평범한 비장애인이 느끼는 만큼보다 아주 조금 더 알고 있지는 않을까? ‘장애인이 아니기에 전해 듣는 입장에서의 운동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는 장애인부모회원의 말씀, 장애 없이 무럭무럭 커주는 아이를 주신 행운만큼 그분들보다도 못하리라 고백하며 글을 시작한다.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방앗간을 경영하시던 아버지의 첫사랑은 곱사등을 가진 여인이었다. 아버지의 사춘기로 짐작되는 부산고교 시절, 무척이나 단아했던 그분과의 사랑은 애절했다 들었다. 그래서일까? 누구든 어린 시절 가졌을 법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적었다. 대신 한국장애인인권포럼 간사를 지낸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곱사등을 가진 여인에 대한 신비감으로부터 장애에 대한 무지가 더 커졌음도 솔직히 고백하며 시작한다.


매니페스토는 ‘공공을 위한 약속(Promise for Public )운동’이다. 정치영역에서의 공약(Pubic pledge, election pledges)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정치영역에서의 매니페스토만을 논하기로 하자. 정치영역에서의 매니페스토조차 정책선거와 등가로 놓는 것은 선관위다운 발상이다. 이미 공약(Pubic pledge, election pledges)이라는 고유명사에서도 알 수 있듯 매니페스토운동은 선거 이후에도 질권[質權, pledge]을 행사하는 운동이다. 대의자가 유권자에게 약속한 공약을 변제해야 할 채무로 보고 시작하는 운동이다. 변제가 없을 때에는 당선자 신분을 회수하거나 차후 선거에서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선거 때만 반짝하는 일시적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시민사회·전문가가 함께 대의자들을 압박하여 약속의 구체성을 확보하고 쉽고 빠르고 편한 방법으로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제공, 대의자들의 약속을 충분히 숙지하여 예측가능성을 높여주는 운동이다. 특히, 대통령선거에서는 후보자의 공약의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목표, 우선순위, 절차, 기한, 재원’의 5가지 요소를 강제하고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게 하는, 행정의 수반으로서 선택받고자 한다면 대한민국호를 운영할 기획서를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내 놓으라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양성화운동이다. 대통령후보로 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밝히고 적극적으로 요구하자는 것이다. 음습하게 뒷거래를 하지 말고 사회전반의 요구들을 양성화시켜놓고 선택하자는 운동이다.



때문에 장애인운동에서의 매니페스토 기제는 매우 유용하다. 국민들은 한국형매니페스토운동 확산을 통해 후보자의 공약이 유권자에게는 질권의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매니페스토운동을 통해 지난 대선에서의 이회창후보와 노무현후보 각각의 중요공약 재원을 역 산출해본 결과 이회창 후보는 국가재정 가용예산의 5조원이 넘었고 노무현 후보는 2조원이 넘었던, 실현 불가능한 뻥 공약으로 유권자를 현혹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애매모호한 한 줄 공약으로 보여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구태를 확인할 것이다. 장애인운동도 이러한 정치권의 구태에 농락당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의 차별과 소외, 배제와 박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정치인의 약속불이행을 이유로 거리로 나서는 장애인들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국민들을 우군화 하는데도 매우 유용한 기제다. 매니페스토운동이 장애인 시민이 질권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에 유용한 기제를 제공하는 정당한 운동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형매니페스토운동은 소통을 위한 서비스운동이다. 서로의 몫을 함께 나눠지고 가는 운동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라는 오만과 편견을 넘어 질서있는 참여를 통해 광장에 모이고, 장애인의 문제를 넘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벗으로서 우리사회 전반의 문제를 숙의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 때의 공약이 다르고 인수위에서의 정책이 다르고, 행정수반으로서의 이행과정이 다른, 대국민 약속은 없고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행정만 있는 불합리를 함께 다잡아 보자는 제안이다. 대의민주주의제도 하에서 대의자와 유권자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지 못했던 구태를 다잡고 ‘믿을 수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전술했듯 나는 비장애인이다. 장애인에 대해 제한적으로 알고 있으며 장애인 당사자만큼의 이해도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낮은 곳으로 임해주길 간절히 바라며 살아온 나의 과거와 지금까지가 최소한 동지적 관점을 견지하기에 손색없으리라 믿고 있다. 내 아버지의 첫사랑이 곱사등을 가진 여인이라는 막연한 추억으로부터도, 장애인인권포럼 초창기 근무했던 아내를 통해 밤 새워 눈물짓게 했던 안타까운 이야기들도 벗이 되고자 하는 노력의 씨앗이 되고 있다 본다. 어줍지만 함께 가려는 작은 몸짓을 따스하게 다독이며 함께 가려는 푸근함을 통해 매니페스토운동과 장애인운동이 결합한다면 조금 더 낳은 세상을 향한 또 다른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 매니페스토(Manifesto)의 어원은 라틴어의 '손(manus)'과 '치다, 빠르게 움직이다(fendere)'가 합성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이는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서약을 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즉, 매니페스토(Manifesto)의 어원에는 『책임있는 약속, 계약』, 『직접 본인의 손으로 계약문서를 작성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매니페스토 개념은 1834년 영국 보수당 당수인 로버트 필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은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라면서 구체화된 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정신이 꾸준히 이어지다가 지난 90년대부터는 출마자가 투명한 공약을 제시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1997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집권에 성공한 것은 매니페스토 10대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데 힘입었습니다. 서유럽에서는 ‘강령 매니페스토’라 부르는 등, 선진국에서는 매니페스토가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특히, 신용을 가장 중요시 하는 사회인 미국은 ‘플랫폼’이라 부르고 있으며 상호 계약을 합리적 토론을 통해 문서화하고 상호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때는 사회적 질타를 피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매니페스토 운동에 가장 익숙한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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