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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소통

활동보조인프리즘

활동보조인 활동을 하면서

 내가 처음 장애인을 접한 것은 고향 성남에 있는 장애인 특수학교 혜은학교에서 보조교사로 한 학기동안 일하던 때였습니다. 처음으로 장애인 기념식에 가보고, 학생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비록, 이 학생들이 장애는 갖고 있지만 비장애인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들을 그들도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서, 주로 제가 케어했던 학생은 말을 전혀 못하는 자폐증을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사지는 멀쩡하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을 먹여 주고, 양치질 시켜주는 등의 일을 하였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학생이지만 제가 일하면서 참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활동보조를 알게 되고 나서 그 학생에게도 활동보조인 제도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그러던, 작년 9월에 활동보조인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었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평등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모집 공고를 본 순간 마음이 동했습니다. 신청 후에 활동보조인 교육을 받아 보라는 연락을 받고 직접 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소정의 교육을 받은 후에 드디어 활동보조인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파견을 나가게 되서 만난 사람은 발달장애 자폐증을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혜은학교에서 봐왔던 애들보다 장애가 심해서 힘들었습니다. 사람들 많은 장소에서 큰 소리로 울기도 하고 저를 힘들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지체 장애인의 경우는 자신의 의사보다는 부모의 의사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할 때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로 놀이공원에서 기구를 타면서 놀아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순서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행동에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관할 부서에서 재정을 충원해주는 가락복지관에서 2006년 4월부로 더 이상 지원이 되지 않아서 활동보조인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지원이 중단된 이유는 그 학생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지원을 안 해줘도 자부담으로 할 수 있을 거는 판단에서였는데, 장애학생 어머님께서는 복지관의 지원이 중지된다고 하니 활동보조를 그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참 아쉬웠습니다. 지원이 부족해 활동보조인이 꼭 필요한 장애인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제도는 빨리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두 번째로 만난 분이 최고 하이라이트입니다. 바로 안성빈씨입니다.
안성빈씨를 처음 만난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0월 20일 그날은 공교롭게도 안성빈씨가 사역하시는 장애인 인터넷 선교방송 희망방송의 중보기도모임이 있던 날입니다.
저는 안성빈씨의 첫인상이 워낙 좋았고, 같은 크리스찬이라 마음이 통했는지 처음 만난 날 제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누구를 처음 만나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보기도모임에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안성빈씨와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전 그 이후로 희망방송에 매료되어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성빈씨는 마음이 넓고, 성격이 활달하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하기가 편합니다. 실수를 한 경우에도 크게 화를 내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몸은 장애인이지만 마음만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그분을 아는 사람은 다 알겁니다. 씻는 것을 도와주고, 옷 갈아 입는 것, 청소, 설거지 등을 돕고 있는데, 그래도 한 손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에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은 혼자하십니다.
저를 활동보조인보다는 동생처럼 여겨 주셔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친해진 관계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가끔씩은 무료 봉사를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안성빈씨같은 경우는 진짜 저에게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다보니 웬만하면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세 번째 만난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세 번째 만난 장애인은 첫 번째 만난 장애인처럼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이었는데 첫 번째 만난 장애인보다는 장애가 조금 덜 했습니다. 그래서 활동하기가 조금 수월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학생이 먹는 걸 절제를 못해서 몸무게가 무려 100Kg이 넘어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살을 빼기 위해 수영과 헬스를 하는데 제가 그걸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먹는 걸 절제 못하다 보니 운동을 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배가 고파지면, 길 건너에 있는 빵집까지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빵을 집어먹고 오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행여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다그치기도 했습니다.

  네 번째 만난 장애인은 김재호씨라는 분인데 이분은 3년 전에 다이빙을 하다가 그만 목뼈가 부러져 경추 손상 사지 마비 장애인이 되었답니다. 이분은 안성빈씨에 비해서는 중증이라 도움도 더 필요하고, 조금 힘들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성격이 밝고, 쾌활한 점이 좋았습니다. 이분은 제가 실수하면 이내 화를 내시긴 하지만 곧 풀어지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외에도 잠깐 잠깐씩 도와준 장애인들이 꽤 있는 편입니다.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점은 이들도 활동보조인만 있으면 비장애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활동보조인과 이용자간에 긴밀한 관계가 필요하며 서로에게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활동보조인 제도화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장애인들이 살고, 그들이 지역 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에게는 자립생활이 중요합니다. 시설 등에 갇혀 사는 게 아니라 지역 사회 내에서 똑같은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관계 당국에서는 장애인 복지에 보다 더 신경을 써주시길 부탁드리고, 비장애인들 여러분도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안 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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