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시선과 소통

연대의 시선프리즘

모든 곳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짓는 평화박물관

 북한의 핵실험 여파가 이 사회를 불안과 긴장으로 요동치게 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이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한반도와 전 세계가 평화의 반대편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만큼 우리의 생존은 더욱 위협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북한의 핵실험 이전에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최근만 해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인, 이라크인들, 나아가 전 세계 인류를 공포와 불안에 떨게 했다.
평화박물관 건립 운동은 이처럼 척박한, 결코 평화적이지 않은 환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압도적인 현실의 힘들 앞에서 “이 땅에 평화를...”이라는 작은 외침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평화운동이 한번이라도 평화스러운 적이 있었던가. 평화롭지 않은 상태를 평화롭게 하는 일이 일거에 이루어지겠는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경계심과 지배욕, 남들에게 무엇을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리겠다는 폭력적 이기심, ‘이에는 이로, 피에는 피로’의 복수심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한꺼번에 체제와 구조를 바꾸거나 ‘착하고 좋은’ 권력을 잡아 행사하는 방식만을 지향해서는 임시방편에 그칠 수 있다. 요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평화박물관 운동은 우리 사회가 전쟁과 폭력, 차별과 배제에서 평화와 이해, 사회적 정의와 인권의 존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평화운동의 가치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평화박물관은 전시와 교육 등을 통해 이러한 평화운동의 가치를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기 위해 준비되고 있다.
2000년 여름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이 제기되고, 베트남에 대한 사죄운동이 시작되었다. 평화박물관을 건립하자는 생각은 그 활동 과정에서 탄생했다. 여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셨던 문명금, 김옥주 두 분 할머니께서 더 이상 당신들 같은 전쟁의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며 8천만 원의 성금을 내놓으셨다. 깊은 전쟁의 상처를 몸과 마음에 안고 살아오신 두 분 할머니의 삶의 무게가 담긴 그 돈은 어느 누구도 쉽게 쓸 수 없는 값진 돈이었다. 우리는 전쟁의 피해자로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할머님들의 뜻을 받아 평화를 사랑하고 원하는 시민들의 정성을 모아 평화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고,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해야만 하는 평화운동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2004년 말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정식으로 발족하여 건립운동의 발걸음을 떼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평화를 원하고 쉽게 얘기하지만 막상 무엇이 평화냐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구체적 사회의 모습으로서 평화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는 데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늘 전쟁과 폭력 속에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전쟁과 학살의 상흔을 깊게 드리우고 있는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그리고 최근 미국이 일으키고 있는 패권적인 전쟁들과 격화되고 있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속에서 우리는 평화는 비현실적이라는 인식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박물관’이라는 이름은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흔히 세상의 흐름을 뒤쫓아 오지 못하는 고루한 생각과 제도를 야유할 때 ‘○○○를 박물관으로’라는 비유를 하기도 한다. ‘지금 세상에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을 보관하는 곳’ 정도가 일반적인 인식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 앞으로만 향해 질주하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나온 길에 대한 올바른 기억과 성찰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전쟁과 폭력, 차별과 배제의 기억을 제대로 성찰하고, 그 속에서 희생당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희망하는 공간이 “평화박물관”이 될 터이다. 전쟁을 기리는 웅장한 전쟁기념관은 있지만 이 땅 어디에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평화를 보고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은 찾을 수 없다. 평화박물관이 절실한 또 다른 이유이다.

 우리의 활동은 그저 돈을 모아 앞으로 그럴듯한 건물을 짓자는 운동은 결코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평화를 위한 소통을 만들어가며 내용과 가치를 쌓아나가는 그 길 위에 있다. 한편에서는 평화박물관 건립계획을 구체화하여 어떤 건물을 어디에 어떻게 지을 것인지를 제대로 준비하고 이를 위한 사람들의 희망과 의지를 모아나가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박물관이 담아야 할 내용들, 다시 말하면 평화의식과 감수성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내용 없는 모래성을 쌓지 않기 위해서이다.

 평화박물관은 무엇보다 ‘전시를 통한 평화교육’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올 4월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안에 평화공간 SPACE*PEACE를 개관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이 공간에서부터 의미 있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관련 전시회, 일본 원자폭탄 피해자인 한국인 2세 고 김형률씨 추모 전시회, 평택 대추리 주민 얼굴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전시회, 어린이 평화책 전시회 등이 짧지 않는 기간 동안 계속 이어졌다. 오프라인 뿐 아니라 온라인을 통한 ‘사이버 평화박물관’도 구축하고 있다. 각종 전시의 내용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시를 통해, 피해자의 시각에서 전쟁과 폭력을 일으키는 권력을 고발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는 앞으로 짓게 될 평화박물관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평화 교육은 평화박물관의 가장 주요한 내용이다. 학교 같은 직접적인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전시물과의 소통과 여러 참여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마음으로 교감하는 평화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전쟁과 폭력, 각종 차별과 배제를 고발하고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한 삶의 자세와 심성을 기를 수 있는 평화교육의 수단을 개발하고 있다.

  생활형 평화박물관 운동은 건물 안에 닫혀 있는 전시활동을 넘어서서 사람들 속에, 삶과 일상 속에 평화의 공간을 확산하는 활동이다. 각 지역의 뜻있는 사람과 단체들과의 협력 속에서 곳곳에 생활형 평화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활동이다. 이를테면 학교, 도서관, 지역시민단체, 자치단체건물, 카페 등 생활공간에서부터 평화의 기록과 기억들을 소중하게 보관?전시하며 소통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작은 평화박물관’을 추진하고 이런 생활 속의 평화박물관들을 네트워킹하는 일이다. 이것은 학생, 교사, 주민, 시민단체활동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평화를 기록?보관?전시하는 일 등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일산 ‘아시아의 친구들’ 사무실 한켠에 있는 생활형 평화박물관 1호점인 ‘평화방’은 그 좋은 사례이다. ‘평화방’은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연대 속에 운영되고 있다. 평화방 마련을 위한 기금모금, 전시물기획 및 전시물제작, 평화도서비치 그리고 내부인테리어, 공사 전과정에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였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직접 평화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책?놀이 등 생활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로도 ‘평화’를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올해 지역의 6개 도서관과 함께 연 ‘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도 이러한 사업의 일환이다. 앞으로 도서관, 학교 등의 공공시설과 사무실 등 사람들이 생활하고 일하는 모든 곳에 평화를 느끼고 소통하는 평화공간을 만들어가는 일을 준비하고 있다. ‘박물관’이란 이름을 건 큰 건물 안에서가 아니라 공기처럼 우리의 삶과 일상 속에 ‘평화공간’을 만들어 ‘평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국내외 평화운동 단체와의 연대와 네트워크 구축도 힘을 기울이는 사업이다. 국내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한국군의 파병 뒤에 본격적으로 평화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으나, 아직은 시작 단계이다.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연대와 네트워크는 이런 상황에서 더욱 절실하다. 나아가 평화박물관 활동이 현재의 평화 이슈들을 함께 흡수하고 평화운동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화와 패권국의 폭력 앞에 국제적 차원의 평화운동의 연대와 교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평화’는 누구나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말이지만, 진정한 평화 찾기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정치화된 반공이데올로기의 결정판이었던 ‘평화의 댐’처럼 아예 ‘반평화’가 평화행세를 하기도 한다. 부시의 침략 전쟁은 늘 ‘평화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평화를 제대로 구분하는 일은 지금 이 순간의 의식과 행동이다. 어느 평화활동가가 정확하게 포현했듯이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 차별과 폭력으로 가장 고통당하는 이와 연대하는 자세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평화의식과 감수성의 확산, 이것이 평화박물관이 세상과 함께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