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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롬 여행과 스웨덴 총선

 독일 월드컵이 치러지는 2006년 초여름의 유럽행은 쉽지가 않았다. 비행기 값이나 호텔비가 턱없이 비싸서 예상을 넘어섰다. 할 수 없이 월드컵이 끝나가는 7월초에야 스톡홀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누군가는 낯선 나라에 대해서 말하려면 적어도 1년 이상 그곳에 살아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첫인상을 말할 수 있을 뿐이라는 의미일 게다. 대개의 여행은 스치듯 지나갈 수밖에 없어, 내 모든 여행기는 첫인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의 이해에서 첫인상이 또 얼마나 중요할 것인가. 비록 왕왕 편견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더라도, 우리는 첫인상의 강렬한 영향에서 자유스러울 수는 없다.

왕궁 앞 수상 카페의 모습스톡홀름의 첫인상 - 푸른 빛, 깨끗함, 청량한 공기!

깨끗함이나 청량한 공기는 예상했던 것이지만 푸른 빛은? 그것은 스톡홀름 도착시간과 관계가 있다. 파리를 경유해 초저녁에 도착한 스톡홀름은 7시가 지났지만 해가 지지 않았다. 어두워지지 않은 하늘은 그렇다고 해가 비추지도 않고 오랫동안 푸른 빛으로 남아 있었다. 왕궁 앞 수상 카페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11시가 될 때까지 그 푸른 빛 속에 앉아 있었다. 이국의 느낌을 실감하면서...


  내가 갔던 7월에는 아직 스웨덴 총선은 치러지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으면 그래도 사민당이 다시 집권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 반, 기대 반의 대답들이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한참, 9월경 치러진 총선에서 20세기 대부분을 통치해온 사민당은 패배했다.

그 의미를 둘러싸고 한국사회의 진보/보수 사이에서 말이 많다. 보수 측에서는 ‘스웨덴 총선은 스웨덴형 복지국가의 패배’라고 말하고 진보 측에서는 ‘스웨덴은 복지의 과잉이 문제이나 우리는 복지의 빈곤이 문제니 상관없다’고 말한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방적 해석을 용인하겠는가? 그것들은 항상 다양한 파장과 해석들을 낳는다. 먼 나라 스웨덴의 총선도 마찬가지일 게다. 그러나 그 판단에 앞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스웨덴과 우리의 차이다.

  스웨덴 안내자들은 항상 스웨덴에 대해 삼단논법식으로 얘기했다. 1) 스웨덴은 죽여주는 복지 국가다. 2) 스웨덴의 세금은 끔찍하게 높다. 3) 그러나 스웨덴 사람들은 기꺼이 세금을 낸다. 일행 중 한분은 스웨덴의 복지에 대해서 감격해 하다가도 세금 얘기가 나오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왜 스웨덴 사람들은 끔직하게 높은 세금을 기꺼이 낼까?

  스웨덴의 인구는 900만 정도며 이중 외국인이 100만 정도인데, 외국인을 제외하면 20세기 후반부에 인구가 거의 늘지 않았다. 스웨덴의 고용 가운데 30% 정도가 공공부문에서 일하는데 우리는 그 수치가 5% 수준에 불과하다. (아마도 스웨덴보다 더 공공부문의 고용이 높은 곳은 싱가폴일텐데 싱가폴의 어떤 점은 스웨덴과 많이 닮아 있다.) 스웨덴의 실업률은 수치상으로는 낮고 실제로는 높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청년실업률이 유럽 국가 중에서도 제일 높다는 점이다. 스웨덴의 농림업인구는 0.2%에 불과하고 목재펄프의 수출비중은 25% 정도, 전체 공업생산에서 금속, 기계, 수송기계의 비중은 50%이고 제재, 펄프, 제지, 합판의 비중은 15%정도이다.

시청 만찬장의 대형 벽화  스톡홀름의 시청에서는 매년 그 유명한 노벨상 수상식과 만찬이 열린다. 안내자는 스톡홀름 시청을 관광하면서 여러 가지 자잘한 얘기들을 많이 해 주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시청 만찬장의 대형 벽화였다. 벽화는 금박으로 채색되어 그 큰 방을 온통 황금빛으로 빛내고 있었다. 정작 내 눈길을 끈 것은 한 쪽 벽 위에 그려진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을 몇 개의 삽화로 그려낸 그림은 아마도 ‘생로병사’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인간을 그려낸 것이리라. 나는 그 그림 한가운데서 목발을 짚은 장애인을 보았다. 어느 화가가 이런 성스런 그림의 한 쪽에 목발을 짚은 장애인을 그릴 수 있겠는가? 그 그림에서 미적 감동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그림은 사실주의적 미의식을 한껏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세속적이며 사실주의적이며 프로테스탄트적인 합리성이 스웨덴 사민주의의 뿌리가 아니었을까?

벽에 그려진 일부 삽화

  내가 보기에 스웨덴의 복지국가는 마치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같이, 성실과 근면 그리고 사해동포주의를 바탕에 둔 사민주의, 높고 안정적인 고용과 높은 세금으로 이룬 복지혜택, 그리고 그런 스웨덴 황금기를 주도한 40~60살에 이르는 두터운 사민주의 노동자 대중(근대적이며 前지식기반적인)의 결합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30% 가까운 높은 청년 실업률과 사민주의 세대와 청년세대간의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에게는 합리주의적 사고가 부족하고, 높은 세금을 감당할 만한 안정적 일자리는 더욱 부족하고, 무엇보다 이런 이념과 정책을 밀고 갈 담당세력이 너무나 미약하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세력이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 근대적 노동의 확대가 요구되지만 동시에 빠르게 지식기반노동으로 이전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정규적 일자리의 부족이 절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적 노동의 해체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스웨덴의 넓은 들판의 풍경 스웨덴이 이루어낸 것은 정말 아름다웠다. 깨끗한 환경, 어느 한 곳 버려진 곳이 없는 농촌과 들판의 풍경, 인간애의 한 표현으로서의 높은 수준의 복지.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인구학적 요소, 국가간 경쟁의 정도, 선발 국가와 후발 국가의 입지, 역사적 문화적 유산들과 관계된 것이다.

  짧은 스웨덴 여행과 스웨덴 총선 결과를 보면서 나는 스웨덴을 배우려는 우리가 이념과 제도(정책)와 지지세력이라는 스웨덴 복지모델의 주요 요소를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궁금해 졌다. 그 무지가 바로 지금 우리를 곤궁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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