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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조삼모사의 원숭이가 되지 말자

 최근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여러 가지 사안 중에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활동보조인 제도화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이하 전장연)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이하 협의회) 등의 노력으로 지난 4월 43일간에 걸친 서울시청 앞 노숙농성을 통해 서울시로부터 제도화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고, 최근에는 활동보조인 제도화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기만적인 태도에 반발하여 진행된 36일간의 세종문화회관 앞 노숙농성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권리로서 인정하는데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얻은 바 있다.

  그런데 투쟁 과정에서 장애운동 진영은 또다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내는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내어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서울시의 활동보조인 제도화 약속 이후 보건복지부는 정부차원의 제도화를 위해 몇 개의 장애인단체 연대체들이 참가하는 TFT를 구성하여 논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한정된 예산을 핑계로 청각장애와 정신지체, 발달장애 등을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18세 이하 장애아동을 제한하고,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기초법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한정시키는 등 ‘필요도’에 의한 서비스 분배라는 장애인들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장애유형, 가구소득 수준의 차이에 따라 장애인들이 서로 반목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전장연과 협의회는 TFT에서 탈퇴하고 ‘활동보조인 제도화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을 구성하여 대정부투쟁에 돌입하였고, 또 하나의 자립생활센터 연대체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이하 연합회)는 이를 자립생활센터 지원과 연계하여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농성에 들어갔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요구를 가지고 한 집단은 정부를 상징하는 광화문 청사 앞에서, 한 집단은 보건복지부가 자리한 과천 청사 앞에서 각각 노숙과 천막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집단의 요구사항은 짐짓 비슷할지 모르지만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하며 심지어 한쪽에서 다른 한쪽 때문에 자신들의 투쟁이 물거품이 되었다며 공공연하게 비방하는 모습까지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에서 활동보조인 예산확보를 핑계로 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 예산 증액 계획을 취소하고 동결시켜버리자 센터를 운영하고 있거나 하고자 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며 예산동결의 이유를 활동보조인 제도화 투쟁의 과도한 행동 탓으로 돌리며 그 지도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생겨난 것이었다.

  물론 이 두 집단의 입장 차이는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이고 사안마다 지속적인 충돌을 빚어왔다. 이번 활동보조인 문제로 인한 두 집단 사이의 논쟁은 그러한 입장 차이를 다시 한 번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입장 차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번 논쟁의 핵심은 자립생활센터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자립생활이념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장애인들의 자발적인 모임에 의해, 혹은 복지관이나 장애인단체들의 지원으로 기초 자치단체 차원에서 자립생활센터들이 속속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자립생활이념과 운동의 확산으로 중증장애인들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 개선되고 나아가 이들의 인권신장과 삶의 질 향상의 기반이 마련된다는 측면에서 자립생활센터의 수적 증가 자체가 일정부분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발적, 혹은 타의적으로 생겨나는 자립생활센터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마냥 박수치고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굳이 통계자료를 들거나 실례를 들지 않아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기초생활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이동, 교육, 노동, 문화 등 사회 전 영역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기 때문이고, 자립생활운동은 그러한 배제와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지역사회의 당당한 주민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지역사회 풀뿌리운동이다.

  자립생활센터의 역할은 그런 중증장애인들의 지역사회변혁의 메카로서 그들이 집안에서, 혹은 시설에서 벗어나 자신의 참 삶을 위해 함께 투쟁하고 자립생활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조직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과 조직은 자립생활에 대한 올바른 이념과 확고한 신념을 가진 ‘당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는 대부분 중증의 장애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투쟁에 의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자립생활지원을 공식화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각종 모금단체에서 자립생활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자립생활센터들에서 자신들의 센터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직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활동가들은 지역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 사명을 잊어버리고 월급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샐러리맨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센터의 운영자들은 자기 지역의 중증장애인 전체의 보편적인 권리보다는 센터 회원들, 또는 소위 자기센터 직원들의 생계를 더욱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자립생활센터들의 재정구조는 매우 취약하다. 전반적으로 후원문화가 미개한 우리나라에서 법인이 아닌 비영리 민간단체의 후원수입은 그 운영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센터들은 정부나 민간재단 공모사업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는데 기획력이나 관리능력이 부족한 센터들은 공모에 당선되는 것도 쉽지 않다. 거기에다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하기 전까지는 그나마 공모 신청할 수 있는 곳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센터의 운영자들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가며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활동가들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활동비를 받아가며 밤낮은커녕 쉬는 날도 없이 현장과 지역을 뛰어다니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자립생활센터 하나만 차리면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그나마 일할 수 있고, 적지만 활동비를 받는 활동가들이 일반 장애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고, 이는 장애인들의 노동소외와 빈곤의 현실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인 것이다.

  센터의 안정적인 운영을 중요시하는 자립생활센터들에서는 ‘센터가 죽으면 지역사회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은 없다’, ‘센터는 정부가 해야 할 중증장애인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대신하는 것이다’ 등의 논리로 센터의 운영과 활동가들의 임금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어떤 이는 나아가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를 중증장애인의 유력 직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언제 파산할지 모르는 자립생활센터에서 불안하게 활동하는 나 같은 활동가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사회와 더불어 개인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들이 전체 중증장애인들의 보편적인 권리를 위한 투쟁을 폄하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장애인을 팔아 자신들의 이익만 챙겨왔던 기존의 장애인 이익단체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말이다.

  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 예산 동결의 책임은 활동보조인 제도화 투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 책임을 활동보조인투쟁 지도부에게로 돌린다면 그것이야 말로 조삼모사의 원숭이만도 못한 처사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전체적인 예산을 늘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한정된 예산으로 당사자 간의 불신과 반목을 조장하는 보건복지부에 있는 것이다.

  문제를 제대로 보고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파악하자. 제발 앞으로는 우리끼리 싸우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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