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 : 애리조나(Arizona, Phoenix)

　여름휴가를 맞아 미국의 애리조나(Arizona)와 플로리다(Florida)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좋은 기회로 각 주의 수도인 피닉스(Phoenix)와 올란도(Orlando)에 있는 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이번 프리즘 여름 호에서는 애리조나 피닉스에 위치한 ARIZONA BRIDGE TO INDEPENDENT LIVING(ABIL)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IL의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ABIL

　ARIZONA BRIDGE TO INDEPENDENT LIVING(이하 ABIL)은 애리조나에 있는 5개의 자립생활센터 중 가장 규모가 큰 센터입니다. 풀뿌리 운동의 일환으로 지역에서 장애 이슈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논의했던 신체 장애인들의 모임이 시초였던 ABIL은 1981년부터 센터 운영 기금을 지원받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역 장애인들의 자립생활과 역량강화(Empowerment)를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ABIL은 피닉스(Phoenix)와 메사(Mesa) 두 지역을 기반으로 자립생활 서비스 사무실 3곳, 활동보조 서비스(PAS) 사무실 2곳, 장애인 전용 체육관 Spofit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큰 규모답게 행정부, 권익옹호팀, 고용 서비스팀, 지역사회 통합팀, PAS팀 등에는 약 8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2012년 현재, ABIL PAS팀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활동보조인들의 수는 약 1,900여명이 넘습니다.

　미국의 NPO(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단체)에는 최고경영책임자를 뜻하는 CEO라는 호칭을 흔히 볼 수 있는데 ABIL의 총괄책임자 또한 President와 CEO를 함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또 경영진 혹은 행정부라 번역될 수 있는 Executive 부서에는 마케팅 매니저, 시스템 프로그래머, 행사 플래너, Receptionist, HR(Human Resources Coordinator) 등의 일반 기업체에서나 볼 수 있는 담당자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IL센터에서 접할 수 없었던 생소한 구성원들을 보며 예전에 사회적 기업 관련 도서에서 읽었던 ‘사업으로 자리 잡은 미국 NPO들’이라는 한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자유주의자인 레이건 대통령이 ‘작은 정부 노선’을 채택하면서 그동안 NPO에 지원하던 정부 보조금을 조금씩 줄여갔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NPO들의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NPO들은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하던 인재와 노하우를 받아들였고 ‘운동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전의 자세에서 ‘사업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 쪽으로 체질이 전환되었습니다. ABIL 또한 장애인의 IL을 지원하기 위한 PAS를 기관이 가지고 있는 경영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효과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사회적 기업으로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방문을 통해 권익옹호 팀장인 Donna씨와 지역사회통합 팀장인 Darrel씨를 만나 메인 사무실과 장애인 체육관 Spofit 두 곳을 둘러보고, 1시간 30여분 동안 센터의 취지와 하는 일, 활동보조서비스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던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권익옹호 활동인 “This is my life”의 담당자인 Lynn씨를 직접 만나 사업의 목적과 내용, 초기 어려웠던 점 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센터를 방문한 Arizona Statewide Independent Living Council(AZSILC)의 소장인 Tony씨를 만나 미국과 애리조나의 자립생활 정책에 대한 소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ABIL의 메인 사무실은 The Disability Empowerment Center(DEC) 안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2008년에 설립된 DEC는 여의도에 있는 이룸센터와 같은 성격의 건물로 유니버설디자인 설계, 대중교통 중심 지역에 위치한 62,000평방피트의 장애 관련 비영리 기관 지원 센터입니다. 현재 센터에는 ABIL를 비롯하여 Arizona Autism United, Valley Center of the Deaf 등 11개의 단체가 입주하여 활동하고 있고 Conference Center, Class Room, Computer Lab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애리조나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황색 건물들과 달리(참고로, 애리조나는 사막이었던 옛 정취(?)를 고수하려는 주정부의 도시정책에 따라 건물들이 황색 톤으로 되어있음) DEC의 외곽은 참 세련되었습니다. 건물 입구부터 내부 곳곳의 높은 접근성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DEC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마치 작은 역사관처럼 미국 IL 역사의 한 순간, 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아 전시해 놓은 2층 복도였습니다. 장애인의 권리를 스스로 찾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과 중요한 사건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을 보며 그때의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고 나와 같이 ABIL을 찾은 사람들이 자립생활센터의 이념과 취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Donna씨의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지금은 전국화, 산별화되면서 각자 위치한 지역사회에서 IL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의 IL센터에도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도시환경 개선이라는 이유로 생활시설 건립이 난무하였던 1988년, 사회를 향해 울분의 목소리를 외쳤던 당사자들의 저항 운동부터 활동보조서비스 도입,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모두가 단결하여 싸운 역사적 사건의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ABIL은 지역사회 안에서, 일터에서, 또 가정에서 장애인의 임파워먼트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요 서비스로는 자립생활기술교육, 정보제공 및 의뢰, 동료지지(상담), 권익옹호, 주택개조, 장애차별금지법 교육, 탈시설 및 지역사회통합, 고용, 사회보장서비스, 청소년 전환 교육/임파워먼트, 활동보조서비스(PAS), 레크레이션 등이 있으며, 각 서비스들은 다시 여러 개의 세부 단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주정부에서 지원하는 센터 운영비로 진행되고, 활동보조서비스를 비롯하여 주택개조, 발달장애인을 위한 권익옹호 등의 일부 프로그램들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직접 지원해주는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ABIL의 서비스 중 소개할 만한 프로그램을 몇 가지 공유하고자 합니다.

ㆍADVOCACY - Political Action

　2012년은 미국과 한국 모두 대선이 있는 해입니다. 현재 ABIL은 ”Just Vote Arizona Disability Coalition"와 “Arizona Disability Advocacy Coalition"의 주축이 되어 애리조나의 장애인들이 모두 투표를 통하여 시민으로서 그들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활발한 권익옹호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ㆍIndependent Living Skill - This is my Life

　애리조나의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들은 주정부에서 지원하는 DDD(Department of Economic Security Division of Developmental Disabilities, 일종의 활동보조서비스)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ABIL은 DDD를 받는 발달장애인 성인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있어 자기결정과 자기옹호를 할 수 있도록 지원, 지지하기 위해 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권익옹호 서비스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코디네이터(case manager)와 함께 서비스 이용의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기릅니다.

ㆍADVOCACY - The Improbable Theatre Company(ITC)

　'Improbable Theatre‘ 자칭 ‘별난 극장’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개인, 사회적, 정치적 소재를 가지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 공연을 만들고, 발표하는 예술가들의 극단입니다. 1999년 연극과 음악 공연을 사랑하는 개인들이 모여 ABIL에서 시작한 ITC는, 현재 그들의 꿈이었던 피닉스의 Herberger 극장에서 점심시간 콘서트 및 많은 공연을 진행하였고, ‘장애인의 삶·경험과 예술성’ 등 여러 주제의 워크샵을 실시하였습니다.

ㆍInformation - Disability Survival Manual

　정보제공 서비스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 매뉴얼(책자)는 인생의 큰 변화를 일으키는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자세히 담아 놓았습니다. ‘어디에 살아야 할지, 어떤 보조기구들이 있는지, 결혼·성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여러 사진과 실제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글들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알기 쉽게 제공합니다. 또한 그들은 많은 전문가 군단(의사,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들의 잘 짜인 조언보다 장애를 가진 사람, 그리고 바로 당신의 경험이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매뉴얼이라는 말도 빼 놓지 않았습니다.

'2011 ABIL Annual Report'를 통해 핵심 사업들의 양적 수치와 예산(세입, 지출)의 규모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2011년 ABIL의 세입은 약 35백만달러, 한화로 350억원입니다. 거의 이천 명에 육박하는 활동보조인을 고용하고 있는 거대 센터인 만큼 총 세입 중 활동보조서비스 운영 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습니다. 한 해 동안 PAS를 위해 애리조나 주 정부에서 받은 기금은 약 29백만 달러(한화 290억원)이었습니다. 그 외 단위 사업별로 체육관 운영 기금 1.5백만 달러, 주택개조 기금 1백만 달러, 고용 관련 기금 50만 달러, TANF(가족지원기금) 9만 달러 등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현재 미국은 개정된 ‘The Rehabilitation Act Amendments of 1973’의 TITLE VII Part C-Centers for Independent Living의 근거하여 650여개의 자립생활센터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센터의 규모나 주정부의 지원 크기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띄며 센터 운영 기금을 지원 받고 있습니다. 1년의 IL센터 운영을 위해 미국에서 지원하는 총 예산이 80백만 달러(한화 800억원)라고 하니 한 센터 당 지원받는 기금은 우리나라의 센터 운영금과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추정됩니다.

　ABIL의 2011년 서비스/프로그램별로 지출한 예산의 백분율을 살펴보니 활동보조서비스 87.57%, 주택개조 3.44%, 동료상담 1.30%, 고용 지원 1.34%, 권익옹호 0.9%, 자립생활기술교육 0.53%, 정보제공 및 의뢰 0.33%, TANF 0.25%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애리조나에는 ABIL을 비롯하여 20여개의 PAS 중개기관들은 AHCCCS(Arizona's Medicaid Agency)를 통해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Arizona Long Term Care System (ALTCS)와 발달장애인을 위한 Arizona Department of Economic Security, Division of Developmental Disabilities(DDD) 두 개의 PAS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AHCCCS(www.azahcccs.gov)는 PAS와 관련된 미국과 애리조나의 법적 근거부터 신청방법, 소비자(Consumer)와 활동보조인(Care Worker)을 위한 길잡이 등 다양하고 유용한 자료들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AHCCCS는 2012년 10월부터 DIRECT CARE SERVICE와 DIRECT CARE WORKER TRAINING AND TESTING PROGRAM를 시작하는데 이는 소비자와 활동보조인이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서비스로서 기존의 활동보조서비스 중개기관의 역할이 조금 변화될 전망을 보입니다.

　2011년 ABIL를 통해 PAS 서비스를 지원받은 소비자는 1,780명이고, 활동보조인의 수는 1,913명입니다. 처음 숫자를 듣고 굉장히 놀라워하는 저를 보고 Donna씨와 Darrel씨도 이해한다며 눈웃음을 지었습니다. 한국과 같이 미국에서도 자립생활센터가 활동보조서비스의 중개기관 역할을 하고 있는데, ABIL은 특히 활동보조서비스의 규모가 매우 큰 편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어떻게 자립생활센터에서 이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며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저는 ABIL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노하우를 듣고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BIL의 30번째 생일의 해였던 2011년에는 ‘Spofit’이라는 장애인전용체육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체육관은 ABIL 메인 사무실이 위치한 DEC 바로 옆에 있습니다. Spofit의 Full-name은 “Virginia G. Piper Sports and Fitness Center”로 체육관의 설립을 위해 기부한 단체의 이름이 앞에 위치합니다. 실제로 Spofit의 총 건립비 130억 중 피닉스 시에서 지원한 53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ABIL의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재단이나 단체, 개인의 후원을 받아 십시일반으로 모아졌다고 합니다. 45,000평방피트의 넓은 체육관에는 피트니스 센터, 실내 코트, 수영장, 암벽타기, 실내 트랙 등 건강 증진과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화장실과 샤워실, 엘리베이터 등의 기타 시설도 설계 시 접근성을 고려하여 세심한 신경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AZSILC의 Tony소장님께 여쭤 본 결과 현재, 미국의 자립생활센터들은 센터 인증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973 재활법에 있는 주요 사업과 철학을 바탕으로 센터들은 설립되고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연방정부나 주정부는 장애 정책을 만드는 데 있어 ABIL의 대표인 Phill씨와 같이 지역사회에서 장애 운동을 하는 당사자 대표들의 협력과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책을 통해 접했던 Judith Heumann씨 또한 현재 연방정부의 장애 정책 위원회에서 활동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이번 방문은 ABIL의 30년 역사를 알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 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온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살아 숨 쉬는 열정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ABIL은 그들이 만든 IL 역사의 한 순간 한 순간들을 가슴의 품고,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의 자립과 역량강화를 위해 현재를 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언젠가 다시 만날 ABIL은 또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나아가고 있을지 기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