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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소통 : 배리어프리영화가 당연한 사회를 위하여


배리어프리영화가 당연한 사회를 위하여 이은경 대표(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배리어프리영화’라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먼저 용어에 대한 설명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배리어-프리’는 짐작하는 것처럼 영어다. ‘Barrier’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통행을 막는) 장벽, (어떤 일에 대한) 장애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Free’는 ‘자유로운’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배리어-프리’란 ‘장벽이나 장애물을 없애서 자유롭게 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1974년부터 건축학 분야를 중심으로 배리어프리 운동이 확산되어 왔고 현재는 물리적 배리어 뿐만이 아니라 고령자나 장애인들에 대한 제도적, 법률적 배리어, 나아가서는 마음의 배리어까지 허물자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배리어프리영화’란? 기존의 영화를 관람할 때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화면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과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이런 시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을 돕기 위해 기존의 영화 안에 있는 배리어를 없앤 영화를 바로 ‘배리어프리영화’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기존의 영화에 시각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이지 않는 화면을 설명해 주는 음성해설을 첨가하고, 청각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들리지 않는 소리들, 즉 대사, 음악, 효과음 등의 정보를 눈으로 읽을 수 있도록 자막을 첨가하는 또 하나의 버전을 말한다.


[ 그림1 - 음악, 효과음의 정보를 자막처리 한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


한국의 경우, 장애인 관련단체를 중심으로 시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을 돕기 위한 한국영화의 음성해설과 자막이 10여 년 전부터 제작되어 왔다. 물론 그 편수는 연간 10여 편 내외로 연간 제작되는 한국영화가 100여 편임을 감안할 때 결코 많은 편수는 아니다. 또한 음성해설과 자막은 대부분 한국영화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연간 개봉되는 200~300편의 외화까지 합하면 시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 환경은 상당히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장애인 관련단체를 중심으로 제작된 음성해설과 자막은 장애인영화제나 일부 상영회를 통해 한시적으로 상영되고 이후에는 디비디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어 배리어프리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물론이거니와 시청각장애인들의 인식 또한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방송 쪽 현황을 살펴보자.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 및 관련법령이 개정됨에 따라 ‘중앙지상파 방송사뿐 아니라 보도 및 종합편성 채널도 폐쇄자막, 수화통역, 화면해설방송 제공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KBS, MBC, SBS, EBS 등 중앙지상파 방송사는 2013년, 지역지상파 방송사는 2015년까지 전체 방송프로그램 중 자막방송 100%, 화면해설방송 10%, 수화방송은 5%를 편성해야 한다. 보도 및 종합편성 채널사용 사업자는 2016년까지 지상파방송사와 같은 수준으로 편성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단, 유료방송사업자(SO, PP 등) 중 고시로 지정된 사업자는 2016년까지 자막방송 70%, 화면해설 5~7%, 수화방송 3~4%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위한 방송물을 제작/편성해야 한다. 이것은 장애인의 방송시청을 보장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렇듯 방송의 경우는 100%는 아니지만 실시간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정보공유가 가능하다. 하지만 영화의 경우는 화제의 영화가 대대적인 홍보를 한 후 개봉할 때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없다. 최근에 개봉한 바 있는 청각장애인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 <글로브>와 <도가니>의 겨우 2편만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을 제작해 일부 영화관에서 한글자막판을 동시에 개봉한 것이 아마 전부일 것이다. (다만, 이 자막은 외화자막과 같은 대사자막에 한정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가 개봉할 때, 그 영화를 보고 싶은 시각장애인은 소리만으로 영상을 상상하며, 청각장애인은 영상에 의존해 소리를 상상해 내며 영화를 볼 수 밖에는 없다.

나는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지금까지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일에 종사해 왔다.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수많은 영화들을 기억하고 있고 앞으로 가능한 많이 그런 영화들을 제작하고 그 영화들을 통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향을 주는 것이 꿈이다. 한편의 영화를 제작할 때, 혹은 한편의 영화를 배급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관객이다. 이 영화를 어떤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되는데, 너무나 부끄럽게도 나조차도 전에는 한 번도 시청각장애인을 내 영화의 소중한 관객으로 인식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시청각장애인을 소중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최근에 있었다. 재작년인 2010년 11월, 나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일본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일본 사가현에서 개최된 제1회 사가 배리어프리영화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거기서 총 10편의 배리어프리영화를 체험할 수 있었는데 한국영화인 <워낭소리> 한편을 제외한 모든 영화는 일본영화였고 이것이 내가 정식으로 체험한 첫 번째 배리어프리영화들이었다. 이 영화제는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된 영화제로 시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을 돕기 위해 직접 본인 영화의 음성해설과 자막 작업에 참여한 감독님들이 시청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비장애인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자신의 체험담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제였다.

현재 일본의 배리어프리영화는 영화인들의 참여로 인해 시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을 돕기 위한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영화를 통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과 공유를 모토로 하면서 시각장애인용, 청각장애인용 버전을 따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각, 청각장애인이 함께 볼 수 있고 아울러 다른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함께 보면서 나눌 수 있는 영화를 지향하고 있다. 그 결과, 당연히 배리어프리영화의 완성도, 즉 퀄리티가 중요해 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오랜 기간 장애인 관련단체를 중심으로 영화의 음성해설과 자막 작업이 이루어져 오다 이처럼 영화인들이 본격적으로 가세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영화인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지엽적으로 움직이던 ‘배리어프리영화’가 수면 위로 떠올라 좀 더 공론화되기 시작하면서 사가 배리어프리영화제에 이어 지난 해에는 도쿄국제영화제에서도 처음으로 배리어프리영화 심포지엄이 열렸다. 물론 일본에서도 아직까지는 일부 영화인이 주축이 되어 배리어프리영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계 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그림2 - 시청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비장애인이 모두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본의 ‘사가 배리어프리 영화제’ ]


사가 배리어프리영화제의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영화프로듀서 야마가미씨는 배리어프리영화 역시 기존의 영화와 똑같은 영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배리어프리영화는 오리지널 영화와 같은 영화이면서 다른 영화이다. 우리는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을 얘기하고 호불호를 얘기한다. 배리어프리버전 또한 거기에 음성해설과 자막이 추가되었다 하더라도 영화의 감독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수년간 온 힘을 쏟아온 감독이 그 영화의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에도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리어프리버전을 볼 관객 역시 감독의 관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시청각장애인 관객을 위하여 또 하나의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에게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기 때문에 배리어프리영화가 영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과 공유를 중요시 하여 음성해설과 자막을 함께 넣은 오픈형 배리어프리영화 외에도 음성해설과 자막을 별도로 제작하여 선택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폐쇄형도 있는데 일본의 경우, 일본영화의 일본어자막판이 함께 제작되어 개봉되는 편수는 연간 대략 200여 편에 이른다. 일본의 최대 메이저영화사인 도호는 배급하는 모든 일본영화의 일본어자막판을 만들어 계열사인 도호시네마즈에서 상영한다. 물론 오리지널 버전에 비해 상영관은 많지 않지만 청각장애인들은 개봉과 동시에 많은 일본영화를 영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판은 자막판에 비해 훨씬 열악한 상황이다. 물론 한국과 비교하면 자막판의 경우는 훨씬 일반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하는 것은 배리어프리영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및 전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은 생소한 배리어프리영화를 많이 알리기 위해 많이 제작하고 상영해야 한다. 그리고 배리어프리영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기까지는 제작과 상영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영화의 제작자와 배급자, 영화관의 협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인으로서 내가 바라는 세상은 장애에 상관없이 본인의 의지에 따라 누구나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은 시기에 볼 수 있는 세상이다. 한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시키기 위해 많은 이들의 땀과 애정이 필요하듯 배리어프리버전도 많은 이들의 땀과 애정으로 제작되어 상영되길 바라며 시청각장애인 역시 소중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시청각장애인이 한 명의 소중한 관객으로 인식될 때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청각장애인 역시 소중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배리어프리영화가 1차적으로는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상영결과, 음성해설과 자막이 지적장애인의 영화관람에도 도움이 되고 고령자나 외국인의 영화관람에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외화의 경우 자막을 읽기 불편한 고령자에게 음성해설은 매우 효과적이다.


[ 그림3 - 지난 10월 32일 배리어프리영화설립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배리어프리 한일 합동 심포지엄 ]


배리어프리영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기까지는 각계 각층의 다각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므로 지금은 ‘배리어프리영화 운동’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배리어프리영화 운동’은 이제 막 첫 걸음을 떼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당분간은 영화를 통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과 공유에 초점을 맞춰 현재의 ‘배리어프리영화 운동’을 전개하고 보급해갈 생각이다. 다만, 하드웨어적인 개발이 수반될 때, 장차는 장애의 정도에 따라 선택해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버전의 배리어프리영화도 기대해 볼 수 있고 콘텐츠의 배리어프리화 뿐만이 아니라 영화관람을 위한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을 보장할 수 있는 물리적 배리어프리화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는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총 6편의 영화의 배리어프리버전을 제작했다. 기개봉한 한국영화 <블라인드><마당을 나온 암탉><도가니>의 3편과 개봉예정인 일본영화 <술 이 깨면 집에 가자>와 <마이 백 페이지>의 2편, 그리고 개봉예정인 한국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이다. 일본영화 <마이 백 페이지>는 3월15일 한국에서 최초로 일반버전과 배리어프리버전 이 동시에 개봉되고 한국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은 3월22일 한국영화 최초로 일반버전과 배리어프리버전이 동시에 개봉된다. 기개봉된 영화의 배리어프리버전은 영화제 등의 형식을 통해 5월부터 다시 극장에서 재개봉할 예정이다.
모든 한국영화의 배리어프리버전은 오리지널버전의 감독이 직접 연출했고 일본영화 2편 또한 <똥파리>의 양익준감독과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감독이 한국어 배리어프리버전의 연출을 맡 았다. <달팽이의 별>은 전문작가의 도움 없이 원고까지 이승준감독이 직접 쓰는 열의를 보였다. 또한 많은 분들이 재능기부로 나레이션과 더빙에 참여해 주었는데, <블라인드>는 성우 서혜정, <마당을 나온 암탉>은 성우 전숙경, <도가니>는 성우 이진화, <술이 깨면 집에 가자>는 배우 엄지원, <마이 벡 페이지>는 배우 한효주, <달팽이의 별>은 가수 김창완이 나레이션에, <술이 깨면 집에 가자>는 <똥파리>의 배우들, <마이 벡 페이지>는 김동욱, 서준영, 유다인 등이 목소 리더빙에 참여했다.


[ 그림4 - 일본영화 ‘마이 백 페이지’의 배리어프리영화 버전 작업에
김성호 감독과 배우 한효주, 김동욱, 서준영, 유다인 등이 재능기부로 참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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