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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칼럼 : 새로운 사회계약 -기본소득제


새로운 사회계약 -기본소득제 손제민 기자(경향신문 정치부)


 ‘20대 80의 법칙’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전체 부의 80%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되었다. 파레토의 생몰연도가 1848~1923년인 점을 보면 부의 불평등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 있어온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20대 80의 사회’라는 말은 한 세기가 지난 최근까지도 불평등 사회를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그런데 이제는 20대 80이라는 말도 잘 쓰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상위 1%와 하위 99%라는 말을 부쩍 많이 쓴다. 갈수록 더 많은 부가 보다 더 적은 사람들에게로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계급 간의 격차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심각한 문제이다.


[ 그림1 - 2011년 소득5분위 배율은 5.73배로 2010년 5.66배보다
0.07배나 소득격차가 벌어졌다. ]


* 소득5분위 배율이란 소득 상위20%(5분위) 부자들의 소득액을 하우 20%(1분위) 서민들의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평균적인 소득불평등 수준을 나타낸다.

 미국은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의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이다. 2011년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8000달러로 세계 7위였다. 그러나 미국이 살기 좋은 사회인가라는 물음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50여개 상위 부자나라에서 미국은 정신질환자, 기대수명, 신생아 1000명당 사망한 유아수, 비만율 등에서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이상 미국을 본받기 위해 전력해온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 50~60대가 된 ‘산업역군’들은 남북한 분단이라는 제약 조건 속에서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웬만한 사회안전망 없이 사는데 익숙해졌다.
그 관성이 남아있는지 소득 2만불 시대라는 지금도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을 노동하고, 가장 적게 자고 쉬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BBC 방송이 2011년 8월5일 ‘아시아의 일 중독자들에게 휴가를 가라고 설득할 것인가’라는 기사에서 “한국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일을 많이 하지만 생산성은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연 평균 휴가도 11일 정도로 짧고 그마저도 나눠서 간다”고 보도했을 정도로 우리는 일중독 사회에 살고 있다.
한국인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0년 기준 2193시간으로 OECD 국가 중 1위이다. 잠자는 시간은 2009년 OECD 국가 통계에서 회원국 중 가장 짧은 7시간49분이었다. 짧은 수면시간은 입시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10대 때부터 몸에 배는 덕목이다. 여성가족부는 2010년 한국 청소년의 평일 평균 수면시간(7시간32분)은 미국(8시간47분), 영국(8시간36분)보다 짧다고 밝혔다.


[ 그림2 -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 2,193 시간으로 OECD 국가 중 1위이다. ]


 한 교실 안의 친구들을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상대로 여기며 밤낮 자신을 채찍질 한 끝에 대학에 들어간다. 대학생들은 좁은 취업문을 열기 위해 ‘스펙쌓기’에 청춘을 저당 잡힌다. 빛나는 대학 졸업장은 어마어마한 등록금 빚과 같이 온다. 최근에 외교통상부의 한 간부는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털어놓아 좌중이 잠시 숙연해졌다.
“외교부에 들어온 대학생 인턴들과 식사를 하면서 내가 인턴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랬다. 여러분들처럼 뛰어난 재원들을 보면서 나처럼 대학교 4년동안 핑핑 놀다가 졸업반 때 고시에 합격해 정부 부처에 들어온 사람들은 운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고. 그랬더니 한 인턴 학생이 인턴 자리라도 얻기 쉽지 않은 때에 외교부 인턴이 되었다며 주위의 부러움을 받는다고 했다. 순간 옆에 있던 다른 인턴의 안경알 위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다.”
능력이 탁월해서 또는 좋은 부모를 만나서 선망 받는 직장에 취직했다 하더라도 ‘노후 설계’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자신 또는 가족구성원 누군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불치병이라도 얻는다면 온 가족이 나락으로 떨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평균수명이 늘고, 상대적으로 정년은 짧아지면서 중년에 직장을 퇴직한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퇴직은 곧 가난의 다른 이름이다. 2011년 9월 통계청 통계를 보면 50~54세 남성의 2009년 기준 10만명 당 자살률은 62.4명으로 20년 전인 1989년의 15.6명보다 300% 증가했다. 이것은 젊어서 고생을 사서 했던 우리의 인생 후반부도 녹록치 않음을 웅변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나는 과연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했던 사회일까. 누구도 원하지 않았고,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그저 나 혼자라도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면서 달리고 있는가.

   필자가 몸 담고 있는 경향신문은 지난해 10월6일 창간 65돌을 맞아 ‘한국사회, 사회계약을 다시 쓰자’라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사회계약이라는 말에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합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사회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 해방 직후 김구 선생이 제시한 ‘통일된 민주국가’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하나의 모습으로 제시되었지만 그것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온데간데 없어지고 ‘반공이 국시(國是)’라는 말이 등장했다. 어떻게 ‘증오’가 국민 전체가 지지하는 국정 이념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1987년 민주화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마련한 듯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당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은 또 어디로 가버리고, 자살률 세계 1위로 상징되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도장 찍어준 적 없는 이 계약은 원천 무효라고 선언하고 새로운 계약서를 써야 하지 않을까.

 이미 정치권은 4월 총선, 12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열망을 수용해 발 빠르게 복지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복지사회’가 지금 우리가 새로 써야 할 사회계약일 것이다.
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계약의 하나로 ‘노예노동’이 사라져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고 싶다. 우리가 늘 과로하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작업장에서 어떠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모멸감을 꾹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본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제안한 기본소득제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파 성향의 하시모토 시장은 일본의 차세대 총리 후보 1순위로 꼽힌다. 그는 최근 자신이 이끄는 지역정당 ‘오사카 유신회’ 전체모임에서 선거 공약의 대강을 발표하면서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기본소득제는 개인의 소득 수준이나 취업의사를 묻지 않고 일률적으로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정기적으로 최소한의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보편적 복지’의 한 예이다. 한 나라의 부는 1차적으로는 해당 기업과 개인들의 창의적이 노력에 결과물이지만 그런 부가 창출될 수 있는 근원적인 바탕은 그 나라 공동체 전체의 문화적 유산이기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들은 누구나 그 부를 나눠가질 권리를 갖는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지금까지 미국 알래스카주와 브라질 일부 지방자치단체, 아프리카 나미비아 등에서 실시되었다.
한국 내에서는 대번에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을 기본소득제에 어째서 경쟁을 강조해온 일본의 우파 정치인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는 누구에게나 일정한 생활비를 지급하면 수급 자격심사 업무가 생략되는 만큼 관련 분야 공무원을 줄여 그 인건비를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공무원 정원 감축 등 작은 정부론 또는 공공부문 개혁을 강조해온 하시모토로서는 기본소득제가 ‘복지’와 ‘개혁’을 동시에 이루는 묘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누구나 기본적인 소득이 있기 때문에 요즘 정부와 언론에서 틈 나면 강조하는 내수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다.

 흔히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근로의욕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한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최저생계비일 뿐 넉넉한 생활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즉,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더 하도록 하는 유인은 남겨놓고 있다. 또 기본소득이 생긴다고 평생 일하지 않고 놀고 먹겠다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신 노예노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행한 경우는 분명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사회 전체의 행복도도 올라갈 것이다. 이웃 일본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면 우리라고 하지 못할 법이 없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수가 진정으로 그런 종류의 새 계약을 원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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