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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권 교수 사진, 21세기보다 더 선진적인 고려시대 장애인 복지정책

역사속 장애인 정창권 (전 고려대학교 국문과 초빙교수)


고려시대 장애인 관련 기록도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별로 많지 않은 편이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문선》 등을 열람해보면, 주로 '장애인 복지정책'과 '시각장애인 활동상'에 관한 기록만 나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2회에 걸쳐 고려시대 장애인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정사(正史)인 《고려사(高麗史)》를 토대로 '고려시대 장애인 복지정책'에 대해 살펴볼 텐데, 이번에는 생생한 전달을 위해 역사 기록을 가급적 많이 인용하며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고려시대의 공식적인 장애인 명칭은 '폐질자(廢疾者)' 혹은 '독질자(篤疾者)' 등이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엔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과 더불어 이들 장애인에게 왕이 직접 물품을 나누어 주었다. 당시 왕들은 평상시에도 계속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장애인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물품을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예컨대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1019~1083)대의 초기 기록들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 을해(乙亥)에 구정(毬庭)에서 몸소 나이 80세 이상의 관원과 일반 백성 남녀의 효자, 순손(順孫), 의부(義夫), 절부(節婦), 환과고독, 폐질자 등에게 향연을 베풀고 물품을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고려사》문종 즉위년 9월조).
▣ 경자(庚子)에……. 다음날 남녀 서민 노인 및 의부, 절부, 효자, 순손, 환과고독, 폐질자를 구정에서 향연하고 물품을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고려사》문종 3년 3월조).
▣ 신축(辛丑)에 왕이 몸소 나이 80세 이상의 승속(僧俗) 남녀 1,343인과 독질, 폐질의 승속 남녀 653인과 효자, 순손, 절부 14인을 구정에서 향연하고 물품을 차등 있게 내려주었다(《고려사》문종 5년 8월조).
▣ 갑오(甲午)에 나이 80세 이상의 남녀와 효순, 의절, 환과고독, 폐질자를 구정에서 향연하고 물품을 차등 있게 주었다(《고려사》문종 11년 7월조).

 이처럼 왕은 매번 구정(毬庭)에서 잔치를 베풀고 물품을 차등 있게 내려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왕이 잔치를 베푸는 것에 대해 혹자들은 그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하나,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왕도 장애인을 사랑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대단히 상징적인 행위인 듯하다. 왜냐하면 《고려사》숙종 6년 3월 계미조를 보면, 왕이 노인을 위해 잔치를 베푼 것을 두고 '노인을 높이고 연치(年齒)를 숭상하는 예'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물품을 차등 있게 나눠줬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장애의 정도나 신분 등을 고려하여 지원하는 어떤 기준이 마련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장애인 복지정책은 서울 뿐 아니라 지방 관청에서도 똑같이 시행되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그러한 사실을 잘 말해준다.

▣ 계유(癸酉)에……. 또 일반 노인과 독질, 폐질의 남녀, 효순, 의절 1,280명에게 구정에서 잔치를 베풀고 서경(西京)과 여러 주군(州郡)에서도 또한 같은 날에 잔치를 베풀었다(《고려사》문종 13년 8월조).
▣ 을해(乙亥)에 노인, 효순, 의절을 위해 향연 했는데 왕이 친히 이를 권하고, 병자(丙子)에 또 환과고독, 독질자, 폐질자를 위해 크게 잔치하고 물품을 하사하되 차등 있게 하였고, 주부군현(州府郡縣)에서도 또한 이 예를 본받았다(《고려사》희종 4년 10월조).

 이렇게 당시엔 서울 뿐 아니라 지방 관청에서도 관할 지역 내의 장애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구휼하였다.
 그와 함께 고려시대엔 나이 들고 자녀가 없는 장애인에겐 국가에서 시중들 사람을 배정해주기도 하였다. 게다가 당시에 벌써 그 기준까지 마련해두고 있었다.

▣ 충렬왕 34년 11월에 하교하기를……. 80세 이상의 독질, 폐질자로 능히 자존(自存)할 수 없는 자는 그 소망에 따라 한 사람의 역(役)을 면제하여 부양하도록 허락하고, 만약 친척 가운데 부양할 사람이 없으면 마땅히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으로 하여금 모아서 안집(安集)시킨 뒤 나라에서 식량을 지급하고 관원을 보내어 제조(提調)토록 하라(《고려사》충렬왕 34년 11월조).
▣ 현종 11년 5월 을묘에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무릇 사람의 나이 80세 이상 및 독질자에게는 시정(侍丁) 1명을 주고, 90세 이상인 자에게는 3명을, 100세가 된 자에게는 5명을 주었던 것입니다……."(《고려사》병제, 오군(五軍)조).

 끝으로 고려시대엔 장애인이 살인죄를 범하여도 처형하지 않고 그냥 유배를 보내는 '사면제도'가 있었다. 물론 이것도 역시 법으로 정하고 있었다. 예컨대 다음의 두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 문종 33년에 강음현에 있는 한 맹인(盲人)이 다른 사람의 아내를 강간하다가 인하여 살인한 것은 마땅히 사형에 처할 것이나, 율문(律文)의 80세 이상과 10세 이하 및 독질자의 예에 의거하여 사형을 감해 섬으로 유배하였다(《고려사》형법, 휼형(恤刑)조).
▣ 인종 16년에 판(判)하여, "나이 80세 이상 및 독질인은 비록 살인죄를 범하여도 장형(杖刑)을 제하고 섬으로 유배한다."고 하였다(《고려사》형법, 휼형(恤刑)조).

 이상과 같이 고려시대 장애인 복지정책은 21세기인 오늘날에 비추어 보아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선진적인 면모들을 갖추고 있었다. 왕이 평상시에도 계속 잔치를 베풀어 장애인에 대한 존중의 뜻을 표현했고, 잔치가 끝날 때는 물품을 하사하여 그들의 생계를 도왔다. 또 늙고 자녀가 없는 장애인에겐 이른바 '시정인(侍丁人)'을 배정해주었으며, 기타 장애인은 살인죄를 범하여도 그냥 유배를 보내는 '사면제도'를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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