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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소통
문래예술공단과 도시 재생

문래 예술 공단과 도시재생 김윤환(작가,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책임연구원)

 어느 사회이든 ‘자유로운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일상의 찌든 피곤을 달래주고, 넥타이도 느슨하게 풀어 헤칠 수 있는 곳, 약간은 엉뚱한 상상이 더 즐거운 창의력으로 발휘될 수 있는 곳, 도심의 숨통을 틔어줄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공간은 아마도 ‘도심의 창작 촌’일 것이다. 창작 촌에서 시민들은 언제든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며 더 나아가서는 창작의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 또한 예술가들은 단지 완성된 작품을 전시장에서만 전시하거나 연습실에서 안무가 끝난 작품을 공연장에서만 공연하는 형태로 시민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창작과정 중에 시민들과 함께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전시되지 않은 작품을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예술가들은 예술가들대로 얼마나 마음이 풍족해지겠는가?

작가들의 작업실 풍경  나아가 국내외 다양한 작가들이 쉽게 들락거릴 수 있는 곳, 어린이 아틀리에가 있어서 예술가들이 아이들과 함께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 지역주민들은 장보러 가다가도 살짝 들러서 화가의 작업실에서 커피한잔 마실 수 있는 곳, 음악공연과 미술전시가 함께 열려도 어색하지 않은 곳, 할머니들이 젊은 음악가들의 연주에 흥겹게 춤을 출 수 있는 곳, 굳이 미대를 가지 않더라도 창작 촌의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대로 화가가 될 수 있는 시민 아틀리에가 있는 곳, 장애와 비 장애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예술프로그램이 넘치는 곳, 맘속에 꿈은 품었으나 현실의 벽 앞에 꿈을 접어야 했던 샐러리맨들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예술가들과 맘껏 문화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곳, 지역의 갤러리 관장들이나 공연기획자들은 언제든지 들러서 작가를 섭외할 수 있는 곳, 미술품 구매자들도 쉽게 들러서 새로운 작품을 구입할 수 있고 예술가들에게도 경제적인 도움이 되는 곳, 외국의 기획자들이 들러서 한국현대예술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확인하고 우리 예술가들을 섭외해 가는 곳,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도심 창작 촌이 필요하다!

작업실 한켠의 추상적 작품 사진  역사적으로 예술가들은 수많은 실험에 통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변화시켜왔다. 예술가들은 작품의 생산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예술의 소통방식에 변화를 일으켰고, 나아가 무엇이 예술인가를 묻기도 했다. 확대된 예술의 기능은 예술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만들었고, 도시의 문제에도 개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기존의 도시개발에 대한 반성이 1970년대 유럽사회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의 관점이 제기됨으로써 예술의 사회적 개입이 가속화된 점도 있겠다.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은 과거 물량위주의 도시재개발 방식에 근본적인 반성의 지점을 제공하였고,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기존 재개발방식에 대한 반성적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본 글에서 사용하는 도시재생이란 용어는 학술적으로 정확히 정의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인간 삶의 공간으로서의 도시공간을 회복시키는 노력이며 원래의 도시의 모습을 복원하고 보존하면서도 도시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기능들을 더욱 살려나가는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도시개발 사업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는 단지 또는 시가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과는 다르게 구분하여 부르고자 한다.

  그러면 기존 재개발의 관점은 무엇이고 무엇이 반성된다는 말인가. 최막중은 그의 글「세 방화 다품종 도시전략」에서 “대량생산 소비시대는 빵을 중심으로 '보다 빨리, 보다 많이, 보다 값싸게' 만들기 위해 '붕어빵'복제, 아파트'단지' 신도시 개발, 정답 추구 형 아파트 문화가 대세였으나, 과거 선망의 대상이었던 강남의‘붕어빵 아파트’는 이제 질시의 대상이 되고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현재는 다품종, 소량생산소비시대로서 문화와 환경은 지역특화발전에 필수적 2가지 요소이므로 특화발전은 모든 지역이 서로 달라야 하고, 다양한 잣대로 측정되어 모든 지역이 특정 부문에서 서로 다른 1등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다품종, 소량생산소비시대에 와서 문화는 모든 것의 중심과제가 되었고, 구시가지 역사문화, 포도주나 위스키 등 오래 숙성된 맛, 도시재생(Urban Renaissance) 등이 고부가가치 산업이 되었다. 이는 생산과 소비의 권한이 확실히 사용자에게로 이동하였고, 도시의 구성에서도 문화가 주된 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문래동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문래동 철재상가 모습 서울 문래동은 전통적인 준 공업 지역으로서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공업지역의 기능을 해왔다. 특히 문래3가 종합철재상가단지는 1960년대 이래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로 활황을 이뤘으나 1980년대 이후 도심 재개발 사업과 외환위기, 철강 수요처 감소, 중국산 저가제품 유입 등으로 위축되면서 점차 쇠락하고 있는 지역이다. 문래철재상가단지는 동으로는 아파트형 공장단지, 서쪽으로는 소규모 제조업 공장지대, 남으로는 초등학교, 북으로는 대단위주거아파트단지와 연접하고 있다. 이 지역의 주요 문제점으로는, 재래식공단과 주택단지의 경관이 너무 달라 생활문화권 단절이 심각하고, 공단지역과 신흥주택단지의 주민들이 서로 정서적 이질감이 너무 커 지역공동체가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철재상가 단지 주위의 예술인들의 활동모습  그러나 5, 6년 전부터 철재상가단지에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지역은 새로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덧 50개 작업실 130명에 이르는 예술가들이 모여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종합예술창작단지(이하, 문래 예술 공단)로 변모해가고 있다. 건물의 1층은 대부분 철재상가와 철 가공 공장들로서 낮 동안 영업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밤에는 건물 2,3층의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어 이 지역은 낮과 밤을 번갈아가며 공간이 활용되고 있다. 예술가들은 또한 공간의 재활용 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람직한 도시재생은 도시공간의 재생뿐만 아니라 공동체 커뮤니티의 회복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예술이 다양한 이해관계의 집단을 매개하며, 첨예한 긴장을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밤이 되면 공장 불이 꺼져서 어둑어둑했던 이곳에 예술가들이 불을 밝히고, 공장이 가진 장인적 특징과 예술이 가진 창조의 정신이 융합되어 새롭고 개성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되길 원한다.

  문래 예술 공단의 큰 특징은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 예술가들이 자생적으로 모여 창작 촌을 이뤘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베이징의 따산쯔 지역의 초기과정과 매우 흡사한 것으로서, 철공소들이 하나둘씩 외곽으로 빠져 나가 빈자리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작업실을 꾸미고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펼침으로써 지역이 새롭게 활성화되고 있는 경우다. 문래동예술가 중 상당수는 홍익대, 대학로 일대의 유흥상권의 확대로 인한 높은 작업실 임대료를 버티지 못해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철공소단지의 임대료가 싸다는 소문을 듣고 모였다. 또 재래식 철공소의 장인적 분위기가 주는 근대적 감성은 실험적 예술가들로 하여금 자신의 작업무대로 삼을 정도로 매력적인 장소로 비춰졌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문래동 창작촌은 지난 2-3년간 빠른 성장세를 보였으며,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확장될 전망이다. 예술가들은 연중 다양한 공연행사와 시각예술행사를 벌이고 있으며 최근 지역사회에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벽화운동과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 문래 예술 공단은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추진하는 재개발사업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준 공업 지역 재개발을 추진해왔었고, 특히 서울시의회는 작년 11월부터 준 공업 지역 관리지원 특별위원회를 통해 재개발 조례(법)개정을 추진해왔다. 올해 7월 9일 시의회는 준 공업 지역 공장부지의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도시계획조례’개정안을 통과시켰고, 8월 9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이후 서울시‘도시 계획 국’이 준 공업 지역 종합정비계획을 발표하고 민간입찰을 부치게 되면 준 공업 지역 도시재개발사업은 본격추진 될 것이다.

  만약 이대로라면 문래동 예술가들은 짧게는 1~2년 길어봐야 2~3년 후면 철재상가단지에서 쫓겨나 뿔뿔이 흩어져 살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주요원인은 무엇인가.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서울시청의 부서 간 정책혼선과 도시개발정책의 경직성, 그리고 주민들의 이기주의와 고부가가치 문화산업에 대한 무지함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문래동의 또 다른 작업실 풍경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서울시 문화국은 작가들의 창작 실을 지원하기위해 문래동에 아트팩토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반해 도시계획국은 도시계획 국대로 문래동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의 정책이 한 장소에서 충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서울시가 창의문화도시를 목표로 내놓은 10대과제 중 첫 번째 과제가 <아트팩토리>사업인데, “낙후지역에 복합 레지던스 형으로 조성하여 창작 공간 및 지역재생의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문래동의 경우 서울시가 추진하려는 사업보다 더 진보된 형태의‘도심 창작 촌’을 이미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가치가 높은 기존 창작 촌을 버려두고 별도의 작은 부지만을 매입해서 아트팩토리 사업으로 추진하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대상지의 정확한 현황조사나 자산평가도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벌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셋째는, 현재 도시 계획 국이 추진하는 문래동 개발계획은 과거 상황을 바탕으로 세워놓은 계획으로서 창작 촌이 생김으로써 달라진 상황을 적절히 반영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도시계획국은 문래철재상가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그에 적절한 대책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며, 특히 서울시의 창의 문화 도시 플랜과의 정책공조가 필요하다. 넷째로는 주민들의 개인이기주의가 문제라고 본다. 재개발과 창작 촌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대체적인 시각은 주변에 창작 촌이 있어 문화적 혜택을 보는 것은 좋지만, 재개발을 통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을 더 강력하게 희망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문래동 철공소단지가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기여해왔던 역사나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철공소지역만의 문화적정체성(개성)을 말살시키게 되고, 도심에 어렵게 형성된 창작 촌을 공중분해 시키게 만든다. 다섯 번째로는, 고부가가치 문화산업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부족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서울시가 창의문화도시를 위해 그토록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가운데 창작촌의 중요성은 더욱 더 부각되고 있으나, 정작 창작촌은 그 뿌리부터 뽑힐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은 많은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문화산업진흥을 위한 좋은 정책은 나와 있겠지만 그것은 관공서의 책상서랍에만 모셔져 있는듯하다. 왜냐하면 시가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막상 문래창작촌은 소홀히 취급하고 있고, 시와 함께 창의도시를 만들어가야 할 지역주민들은 고부가가치 문화산업으로서의 창작촌의 가치를 이해하기는커녕 오로지 아파트와 주상복합개발이익에 대한 기대치만 높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작업실에서 예술인들의 작품활동 모습  사실 도심 속 창작촌은 정부와 서울시가 엄청난 예산과 전문 인력을 투여하더라도 쉽게 조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창작 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오랫동안 투여되어야 하며 창작을 위한 제반여건이 성숙되어야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외부의 지원 한 푼 없이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문래동 창작촌은 그런 면에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현재는 지난 5,6년 동안 서서히 축적된 창작인프라를 바탕으로 예술창작역량이 급상승하는 국면에 있어 지역사회에 대한 문화적 기여도 확대와 구도심재생에 본격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맺힌 형국이랄까.

  서울시는 지금부터라도 대책마련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우선 시 정책상의 혼선을 바로잡아야 하며, 도심 속 창작 촌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산출해내어 그것이 어떻게 창의문화도시건설에 기관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고부가가치문화산업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나아가 문래동 창작 촌을 어떻게 민간재개발로부터 보존할 것인가. 또 어떻게 지역주민들을 설득할 것인가. 또 아트팩토리 사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하여 어떻게 문래동 창작 촌을 적극 활용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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