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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호의 장애학
장애학 이야기 - 장애와 사회를 설명하는 두 모형


장애와 사회를 설명하는 두 모형 - 의료모형과 사회모형 윤 삼 호 (대구DPI 정책부장)


지난 호에서 소개하였듯이, DPI와 UPIAS는 장애를 개인 내부의 병리학에서 사회와 환경에 의한 제약으로 설명함으로써 장애 정의를 바꾸었다. 이 같은 정의의 이동은 장애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장애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를테면, 영국의 올리버(Mike Oliver)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장애 정의의 이동을 계기로 장애를 둘러싼 사회를 해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도모했다. 즉, 개인과 병리학에 기초한 낡은 ‘의료 모형(= 개인 모형)’을 비판하고, 사회와 환경의 요소들을 강조하는 새로운 ‘사회 모형’을 제시한 것이다.

올리버 교수는 이 두 모형의 차이를 아래 도표로 정리하였다.[Understanding Disability: From Theory to Practice, M. Oliver, 1996]

개인 모형 (individual model) 사회 모형 (social model)
ㆍ개인적 비극 이론
(personal tragedy theory)
ㆍ개인적 문제 (personal problem)
ㆍ개별적 치료 (individual treatment)
ㆍ의료 행위 (medicalisation)
ㆍ전문가 우위
(professional dominance)
ㆍ전문 지식 (expertise)
ㆍ조정 (adjustment)
ㆍ개별적 정체성 (individual identity)
ㆍ편견 (prejudice)
ㆍ태도 (attitudes)
ㆍ돌봄 (care)
ㆍ통제 (control)
ㆍ정책 (policy)
ㆍ개인적 적응 (individual adaptation)
ㆍ사회적 억압 이론
(social oppression theory)
ㆍ사회적 문제 (social problem)
ㆍ사회적 행동 (social action)
ㆍ자조 (self-help)
ㆍ개인적/집단적 책임
(individual/collective responsibility)
ㆍ경험 (experience)
ㆍ긍정 (affirmation)
ㆍ집단 정체성 (collective identity)
ㆍ차별 행위 (discrimination)
ㆍ행동 (behaviour)
ㆍ권리 (rights)
ㆍ선택 (choice)
ㆍ정치 (politics)
ㆍ사회적 변화 (social changes)


1) 의료 모형 : 장애를 억압하는 낡은 모형

인류의 역사는 장애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통틀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기준으로 대우를 받은 적은 없었다. 장애는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런 공포심이 동정과 배제라는 사회적 태도를 ‘생산’하였다. 그래서 사회는 장애인들‘과 함께’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장애인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정해 왔다. 이런 사고에 해석력을 부여한 것이 바로 ‘의료 모형(medical model)’이다.

의료 모형은 엄밀한 이론과 객관적 검증이라기보다 장애에 대한 근원적 공포심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에서, 미신에 가깝다. 이 모형은 다음과 같은 아주 단순한 이원론으로 장애를 해석한다. (불행하게도, 이런 단순한 이원론이 아직도 우리나라의 지배적 사고 체계로 자리잡고 있다.) 영국 장애학자 데이비드 존스톤은 의료 모형을 아래 그림으로 설명한다. [An Instruction to Disability Studies, D. Johnstone, 2001]

의료모형
< 비장애 >
정상이다
좋다
깨끗하다
적합하다
할 수 있다
독립적이다

---------------
---------------
---------------
---------------
---------------
---------------
< 장애 >
비정상이다
나쁘다
불결하다
적합하지 않다
할 수 없다
의존적이다


의료 모형의 주인공인 의료 전문가는 장애가 없는 몸이 더 정상적이고, 더 우월하고, 더 완전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에게 장애란 언제나 예방과 치료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는 의사라는 그들의 직업이 가지는 속성이기 때문에 크게 나무랄 수만은 없다. 의사는 손상의 치료에 그치지 않고 장애를 가진 개인의 인격까지 통제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간호사, 각종 치료사들을 자기 밑으로 계열화시켜 스스로 권력화하고 장애인의 삶에 무례한 방식으로 개입하곤 한다. 올리버는 이 같은 의사의 장애 통제 메커니즘을 이렇게 일갈한다. [The Politics of Disablement, M. Oliver, 1990]

장애가 의료화된 것은 틀림없다. 태아의 장애 여부 결정에서부터 장애성 질병으로 인한 노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의사들은 장애인의 삶에 깊이 개입한다. 물론, 이러한 개입 가운데 일부 - 가령, 손상의 진단, 외상 후 의학적 상태의 안정, 장애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질병의 치료, 육체적 재활 대책 등 - 는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의사는 운전 능력 측정, 휠체어 사용 지시, 급여 결정, 교육 서비스 선택 그리고 노동 능력과 잠재성 측정에도 관여한다. 위의 어느 경우에서도, 의학 교육과 의사 면허가 의사를 이런 문제에 개입할 가장 적절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증거는 없다. 게다가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방문치료사, 간호사 심지어 교사와 같은 수많은 전문직은 의사에 의해 계층적으로 통제받는 조직에서 일하거나, 의료 모형에 기초한 담론에 의해 구조화된 직업에 종사한다.
그 결과, 장애인과 그(녀)의 장애는 의료 전문가에 의해 개별화되고 종속된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최종 책임은 언제나 장애인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의사는 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장애를 가진 개인에게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재활 훈련을 받을 것을 지시한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성공한 ‘슈퍼장애인(supercrips)’은 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거의 모든 장애인은 배제를 경험한다. 자신의 장애를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의지가 약한 존재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장애는 개인적 비극으로 치부된다. 의료 모형을 ‘개인적 비극 이론(personal tragedy theory)’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재활하지 못한 장애인, 즉 자신의 비정상적인 몸을 정상적으로 되돌려놓지 못한 장애인은 이제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동정은 비장애인의 일반적 시각이자 모든 장애인의 보편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회는 자선을 통해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다하였다고 생각하는 한편, 무책임한(?) 장애인을 ‘가치가 낮은’ 부류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철마다 등장하는 ‘모금 방송’이 이와 같은 동정의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전파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장애인은 누군가의 보호와 동정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무능력한 존재라는 낙인까지 받게 된다. 그 결과, 독립은 기대하기 어렵고 삶에 대한 통제권과 선택권마저 없는 영원한 서비스 대상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정상성(normality)’이라는 코드로 장애를 인식하는 의료 모형은, 비정상적인 사람은 전문가의 개입에 감사해야 할 뿐이며 그 실패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의료 모형은 전문가에게는 전능한 권력을 부여하지만,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억압으로 작동한다.

2) 사회 모형 : 장애를 해방하는 새로운 모형

‘사회 모형(social model)’은 의료 모형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의료모형, 혹은 개인 모형을 뒤집어 놓은 것이 사회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형의 창시자인 올리버 교수는 다음과 같이 그 탄생 배경을 설명한다.[Social Policy and Disability: Some Theoretical Issue, M. Olver, 1986]

개인적 비극 이론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교육의 실패를 결함 이론(deficit theory)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범죄 행위를 질병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빈곤과 실업을 개인 특성의 취약함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이론 때문에 벌어진 다른 모든 희생처럼, 이 이론은 장애 문제를 개별화시키고 사회ㆍ경제적 구조는 건드리지 않는다. 전체로서 사회과학과 부분으로서 사회 정책은 개인주의적 이론을 거부하고 다른 대안적 사회 이론을 만들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 조만간 개인적 비극 이론이 사라지고 훨씬 더 적절한 사회적 장애 (억압) 이론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자.
의료 모형이 장애를 가진 개인의 비극(가령, 장애로 인한 고통)을 강조함으로써 장애 문제의 책임을 개별화시키는 반면, 사회 모형은 장애가 사회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므로 그 책임은 이 사회에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장애 문제를 사회화시킨다. 즉, 이 모형은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구조가 결과적으로 장애(인)을 억압한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사회 모형을 다른 말로 ‘사회적 억압 이론(social oppression theory)’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이론은 당사자의 경험, 차별과 분리에 대한 반대,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을 중요시한 영국의 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설명한 것이다. 물론, 하나의 모형이 장애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행위를 모두 설명하는 이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모형은 다만 당사자의 목소리를 온전하게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장애 운동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 장애학자 데이비드 존스톤은 사회 모형을 아래 그림으로 설명한다. [An Instruction to Disability Studies, D. Johnstone, 2001]

사회모형
교 육
고용
가 족
장애인
여 가
환 경
(건축물 등)
태 도


위의 그림에서, 장애인은 교육, 고용, 가족, 여가, 환경과 사회적 태도에 따라 규정받는 존재이다. 덧붙이자면, 교육과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한 장애인은 결국 노동을 비롯한 사회적, 문화적 활동의 제약을 받고, 결국 이 사회에서 ‘낮은 가치(low expectation)’를 가진 존재로 인식되고 또 그렇게 대우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장애인 당사자의 정치적, 문화적 자기 결정의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사회 모형은 주장한다. 다시 말해,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제약하는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여 접근성을 높이고, 장애인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하여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이 때, 전문가의 역할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독립적 삶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 모형은 1960년대 유럽과 미국의 소비자 운동과 소수자 운동(특히, 흑인 민권 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권리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개인적 경험으로서 장애를 정치화하여 장애인의 동등한 권리(rights)와 권한강화(empowerment)를 주장한 것이다. 이 운동의 주장은 이렇다. 모든 인간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열악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권리 행사에서 제약을 받는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무권리 상태에 놓이고 차별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 사회는 장애인의 권리 회복을 위해 집단적 책임을 져야 한다, 라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 운동의 결과, 199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속속 제정되고 장애인들의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하였다. [장애인 권리 운동의 결과, 미국에서는 1990년에 ADA(The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가 제정되었고, 영국에서는 1995년에 DDA(Disability Discrimination Act)가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 보다 앞서 북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된 장애인 부모 운동의 영향으로 ‘정상화 원리’가 정착되면서, 덴마크에서는 「정신지체케어법(1959년법)」이, 스웨덴에서는 「정신지체인지원법」(1968년)이 제정되어 정신지체인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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