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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라리아를 찾아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과 지중해변의 코스타 델 솔


시네라리아를 찾아서 고 정 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간사)

안달루시아 지방과 지중해변의 코스타 델 솔

7박8일(2008.8.7~14)간의 스페인 여행기, 그 첫 번째 이야기

 설레는 마음으로 난생 처음 유럽 땅을 밟아 본 게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른 최근 2년 사이, 내가 거듭 유럽을 방문하게 된 것은 단지 외롭다는 넋두리를 읊어대는 친구의 하소연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때문만은 아니리라. 아마도, 그동안의 일상에서 오는 단조로움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은 일종의 ‘일탈의 욕구’가 내 마음을 어느 순간 온전히 지배해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 대책 없이, 여행가방 하나가 소유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홀가분함과 다소의 두려움을 품고,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작년 초겨울, 북해에 면한 암스테르담의 차갑고 스산한 기후에 조금은 실망했던 네덜란드와 벨기에 여행의 경험이 떠오른다. 스페인 해안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친구의, ‘지중해 바다빛깔의 아름다움’에 대한 호들갑스런 찬사에 흔들려 덥석 길 떠난 것을 혹시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가는 비행시간 내내 불안과 기대 사이를 오간다.

 휴가 기간 내에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함께 떠난 여행길이었다. 하지만, 막상 유럽 1, 2위를 다투는 관광대국 스페인의, 여타 서유럽국가들과는 달리 다소 황량해 보이기까지 하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말라가 공항에 도착하자, 모든 일상은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졌고, 앞으로 펼쳐질 여행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온통 설렘으로 가득 찼다.
투우와 플라멩고, 정열적이면서도 애달픈 곡조의 스페인 무곡과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스페인에 대해 내가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저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어찌 그뿐이랴. 발 바쁘게 다니지 않아도 스페인의 국영항공사가 이베리아항공과 스팬에어항공이라는 것쯤은 알게 된다. 국영방송국인 TVE, 시내에서 드문드문 눈에 띄는 바클레이 은행이나 안달루시아 은행,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패스트푸드점 버거킹과 대형할인마트 까르푸도 발견할 수 있다. 이슬람식 문화와 기독교식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건축양식에 감동하는 한편으로, 오늘을 사는 상업도시로서의 스페인의 일상적 면모가 또다른 의미에서 인상깊다.

숙소전경 숙소사진


 코스타 델 솔이라 불리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지방의 지중해연안, Marbella(스페인어 발음으론 마베야)라는 도시에서 자동차를 이용, 내륙으로 40분 정도 더 들어가면 La Quinta라는 골프리조트내의 콘도식 별장이 나온다. 코스타 델 솔의 관문인 스페인 동쪽지역의 말라가시와, 가장 서쪽 끝인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관문 지브롤터해협을 끼고 있는 지브롤터 시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이곳이 내가 여행 내내 묵었던 이방의 보금자리였다.

산정상에서 바라본 도시모습

 별장 뒤로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병풍처럼 빙 둘러쳐져 있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보았음직한, 돌산과 구릉, 언덕으로 뒤덮인 풍광이 펼쳐진다. 깔끔히 정돈된 골프장들의 푸른 잔디조차 없었다면, 사막처럼 삭막해 보이기까지 했으리라.
식물종도 한국과는 확연히 달랐다. 내 키만큼 자란 선인장과 고무나무, 벤자민, 오렌지와 석류나무를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가로변의 야자수와 독특한 색상의 꽃들은 이국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해변의모습 여름이면 유럽전역에서 고급 요트족들이 몰려들고, 골프와 해변일광욕을 즐기기 위해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줄지어 찾을 만한 지역이었다. 이처럼 고급스런 휴양지의 모습, 고급요트가 즐비하게 정박해 있는 항구의 풍경 속에서 간간이 잡역부로 일하는 중남미와 북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눈에 들어온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식민주의가 지배하던 시절, 궁정형 저택에서 유색인 하인들의 시중을 들으며 유유자적하는 백인 귀족들의 모습이 겹쳐져 다가왔다.

  한낮이면 온도가 섭씨 39도를 오르내리는 땡볕더위에 지레 주춤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시에스타 시간에 맞추느라 오후 늦게나 제대로 시가지 상점구경을 할 수 있었던 여행 첫날, 마베야 시내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두루 거쳐 찾아간 해변의 모습은, 여름 휴가철 빡빡한 인파로 발 딛을 틈도 없이 번잡스러운 한국의 해수욕장의 풍경과는 너무나 달랐다. 선탠을 하면서도 책을 손에 놓지 않는 평온하고 차분한 사람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해변에는 한두 개의 노변 cafe가 있을 뿐, 수영복을 여름 내내 일상복처럼 입고 지내는지 별도의 탈의실이나 변변한 샤워장도 눈에 띠지 않았다.
‘태양은 가득히’란 영화 속 알랭 드롱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강렬한 태양이 지중해를 달구는 동안 완전 범죄를 꿈꾸며 친구를 살해한 알랭 드롱. 영화의 마지막, 그 범죄의 전모가 드러나는 순간 묘하게 일그러지던 알랭 드롱의 표정에 난, 압도당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지중해, 그 시리도록 푸른 바닷물에 조심스레 몸을 담근다. 이 드넓은 지중해 어딘가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배신과 증오, 음모로 얼룩진 사건이, 실제로 벌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순간, 바닷물은 차가운 칼날의 감촉처럼 온몸에 소름을 돋운다.

  일출, 일몰시간이 한국과는 2시간여 차이가 나는 스페인에서 적잖이 시간감각을 잃고는 늦잠을 자기 일쑤다. 여행 둘째 날, 아무리 느지막이 동이 터온다 하여도 벌써 오전 9시가 넘어간다면, 귀한(?) 아침시간을 허비하고 말 것 같다.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열고, 시내로 나가 미하스라는 곳에 가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니, 넓은 지중해연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티볼리파크라는 유원지에서는 각종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고, 가볍게 트래킹도 할 수 있다. 산 정상의 햇빛은 퍽이나 강렬했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난 후에도 약간의 어지럼증은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건조한 날씨 덕에 땀은 흐르기도 전에 말라 버렸고, 천천히 트래킹을 시작하자 불쾌한 느낌은 말끔히 사라졌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독수리가 많다던데····, 혹여 아프리카 땅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나의 기대는, 시계를 흐리는 자욱한 안개 탓에 아쉬움으로만 남았다.

세빌랴의 가로수와 궁전의모습

  셋째 날, 오늘은 안달루시아지방의 주도인 세빌랴에 가기로 했다. 안달루시아지방은 남한 정도의 면적에, 인구는 남한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주요도시는 세빌랴, 코르도바, 그라나다, 말라가, 카디즈 정도일까? 네비게이션도 없어 차로 이동하기는 자신이 없는지, 친구는 관광버스를 이용하자고 했다. 전날 예약 차 시간에 맞춰 아침 7시부터 숙소를 나서야 했다. 끝없는 산맥을 끼고 좌우로 올리브농장이 펼쳐져 있는 구릉지대를 버스로 한 3시간쯤 달렸을까? Sevilla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멀찌감치 대도시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슬람문화의 건축물  여느 대도시처럼 과달끼비르라는 큰 강을 끼고 있음에도, 스페인에서 4번째 규모의 대도시이자 항구가 멀지 않은 곳임에도, 그리 활기찬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슬람문화와 기독교문화, 두 문화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져 빚어낸 세빌랴 대성당과 알카사르 궁전의 조각과 문양은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 이에 비할까 싶었다.

이슬람문화의 건축물 이슬람문화의 건축물


  대성당 옆의 히랄다탑 종루까지 오르면 세빌랴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듯도 싶지만, 과달끼비르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을 타고 강주변을 둘러보고, 우리의 인사동에 비견할 만한 예쁜 집들로 이루어진 골목들을 둘러본 것에 만족하자고 되뇌이며, 다시 3시간여를 달려 마벨라의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벌써 여행 일정의 절반이 지나 버렸다. 아직 코르도바나 그라나다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마음은 굴뚝같아도, 성수기인 탓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는 일일투어가 힘들다는 말에 온 몸의 기운이 빠진다. 내일부터는 비교적 가까운 론다와 지브롤터해협이 위치해 있는 지브롤터를 가보기로 하자. 그곳에선 또 어떤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게 될까? 설렘과 기대 속에 뒤척이다 잠이 든다.
[*남은 여행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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