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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소통제목:하성준의 유학일기(2) 내가만난미국사람, 글:Southern Illinois University 재활상담 석사과정, 하성준

내가 만난 미국사람                            하성준(Southern Illinois University 재활상담 석사과정)


어느새 미국에 와서 생활 한지 9개월이 넘어 서고 있다. 처음과 달리 이제는 사람들이 하는 영어도 어색하지 않고 이곳의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활에 익숙해 지면서 필자는 전에 느끼지 못한 미국, 이해하지 못한 미국에 대해 생각해 보게된다. 이렇게 생각한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이다. 미국이야 말로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민족국가이니 만큼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산다. 흑인, 백인, 동양인 뿐만 아니다. 처음부터 미국에서 살아 왔던 인디언부터 와스프로(WASP) 불리는 상류층의 백인, 이민을 통해 정착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까지 분류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회를 유지시키고 이끌어가는 기본적 원리도 어느 정도 보편화되고 합리적이다. 이렇게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미국에서도 갖가지 모순과 불합리가 존재한다. 장애를 가진 필자에게도 미국사람들을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시각이 생겼다.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미국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하여 잠깐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미국사람들도 인종을 구별한다.
"인종을 구별한다!”라는 말을 마치 인종을 차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국사람들도 학연, 지연 그리고 혈연에 따라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인종을 구분한다. 그러나 인종차별문제가 1960년대 심각하게 대두된 이유에서 그런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 흑인, 백인, 스페인계 하는 식으로 구분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생활에서 명백히 사람들을 구분한다. 그 기준이 좀 특이하다.
첫째, 말투로 사람을 구분한다. 아직은 정확히 왜 인종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다르다. 필자도 말투를 통해서 백인과 비백인을 구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더 자세히 구분한다. 백인, 흑인, 멕시코나 스폐인계, 심지어 스코틀랜드계나 아일랜드계도 구분한다. 말투에는 말의 속도, 강세, 억양 등의 특성이 들어있다. 물론 이러한 인종구분이 사회적 불이익으로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만, 개인적 사정 특히 나이, 인종, 주거형태 등을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미국사회에서 이러한 것들을 직접 묻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발전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 결혼은 미국사회를 인종적으로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들은 친구나 사회적 관계의 사람들을 나름대로 판단하는 기준으로 인종이라는 요소를 사용한다.
인종은 미국에서 단순한 피부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종에 따라 취미나 취향이 다르다. 스포츠를 예로 들면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농구는 흑인이, 아이스하키는 백인이 좋아한다. 미식축구, 야구, 골프는 특별히 인종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미식축구는 미혼이고 남성이며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좋아하고 야구는 기혼이면 성별과 연령에 구분없이 좋아한다. 골프는 타이거우즈 덕택에 오해를 많이 받지만 거의 백인들의 전유물이다.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차이가 많다. 대체로 흑인은 음악을 크게 듣거나 파티를 연다. 이러한 파티는 경찰이 출동할 만큼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경향이 많다. 교회를 가면 흑인에 비해 백인의 비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고 멕시코나 스페인계 사람들은 동료나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휴일에 공원, 거리, 학교에 있는 벤치는 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이다.
마지막으로 인종에 따라 선호하는 학과가 다르다. 우리 학교만 하더라도 공과대학에는 미국사람 자체가 거의 없다. 물론 일부 특정전공은 예외지만 전기, 전자 및 컴퓨터 등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과대학에는 인종을 막론하고 토박이 미국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학교의 경우 이러한 학과생의 대부분을 중동이나 인도출신 유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반면 백인들은 재활, 교육, 경영, 문학 등의 학과에 많이 속해 있다. 특히 재활관련 학과의 경우 유학생을 제외하고 백인과 비백인의 비율이 9:1 정도이다. 또 전체 학교학생의 비율로 살펴봐도 흑인이나 남미계 보다는 백인이 비율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학과를 떠나 생각해 보자.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점의 시간제 근로자는 대부분 흑인이다. 학교도서관의 공사현장에 가보면 일반노무자들은 대부분 스페인계나 멕시코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운전직의 경우 이곳의 사정이 좀 다르다. 실제 LA나 뉴욕과 같은 대도시을 보면 택시나 버스의 운전은 대체로 유색인종들이 많이 하고 있지만 이곳은 운전직에 종사하는 백인도 많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지역과 비도시지역이라는 지리적인 특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겉으로는 인종에 대해 무관심해 보이는 사람들이 실제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심각한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가 미국이다. 장애인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차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구별되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든다. 장애인의 대부분이 실업상태에 처해 있고 30,000명이 넘는 대학생 중에 장애인의 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모든 장애인지원서비스의 수혜 여부를 결정하는 순간에는 의학적 검사를 통해 장애유무를 판단한다. 이러한 미국의 현실을 보면 사회제도나 법률이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구성원의 의식까지도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필자는 적어도 미국사회가 인종과 장애를 차별할 만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느끼고 있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것이 각종 서류에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학입학서류에도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학생증발급과 같이 사진이 필요한 경우 사진이 첨부된 다른 증명서만 확인하고 즉석에서 촬영한다. 뿐만 아니다. 197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완공된 학교건물임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의 접근이 완벽하게 보장된다. 물론 약간 돌아가는 불편이 있긴 하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못 가볼 곳이 거의 없을 만큼 건축물의 장애인 접근성이 좋다.

장비는 흔하지만 사람은 귀하다
미국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한 두 번째 사실은 장비는 흔하지만 사람은 귀하다는 것이다. 올해 미국의 연방최저임금은 시간당 약 6달러이다. 그리고 일리노이주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약 8달러 정도이다. 이렇게 인건비가 비싼 미국이다 보니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에도 특이한 면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 귀하다는 것이다. 반면 수백불에서부터 수천불에 이르는 보조공학장비는 상대적으로 흔하다. 또 장애를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별도의 비용없이 자유롭게 이용을 허가한다. 또 인건비가 비싼 이유에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장애인을 위한 인력은 최대한 많은 장애인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겨울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 중에 이런 일도 있다. 장애학생들은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무더기 지각사태가 발생한다. 그것은 핸디캡 벤을 탈 수 없기 때문이다. 핸디캡 벤은 우리 학교가 운영하는 장애인특별교통수단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학교 내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이용가능한 사람으로 등록하면 전화접수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모든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각장애인과 상지장애인, 기타 보행에 불편이 없는 장애학생은 특별한 이용사유가 있어야 한다. 특별한 이용사유에는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 눈이 온 뒤에 아직 눈이 완전히 길에서 제거되지 않은 날이거나 기존 교통수단(학교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등 학사일정참여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1년에 눈과 비가 적지 않은 우리 학교에서는 심심치 않게 장애학생의 무더기 지각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핸디캡 벤의 또 다른 특징은 학교 밖으로 타고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의 범위는 학교 메인캠퍼스, 특정학과의 외부교육장 그리고 학교가 운영하는 학생아파트단지이다. 이 외의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콜택시나 순환버스 같은 별도의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이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바로 택시이다. 그런데 카본데일의 장애인은 한 달에 20장의 쿠폰을 이용해서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이용방법은 우리나라의 콜택시와 유사하다. 그러나 장애인을 별도로 등록하지 않는 일리노이의 경우 이 쿠폰을 지급받으려면 미국시민권자의 경우 안과의사의 진단을 받고 시청에 신청하면 지급받을 수 있고 외국인 학생의 경우 학교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학과에서 학교병원에 외국인으로써 장애를 가진 학생의 검진을 의뢰하고 검진결과 장애가 있는 것으로 판정되면 지급받을 수 있다.
이렇게 사람 손 빌리기가 어려운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장애인들은 활동보조서비스를 통해 훌륭한 자립생활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이곳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으로 간주되는 필자는 자립생활서비스의 수혜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서비스가 어느 정도의 실질 비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용상의 제한과 장애인 당사자의 추가지원에 대한 욕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같다. 실제로 필자가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시절에 옆방에 살았던 저스틴의 경우 활동보조를 받는 시간과 자신의 욕구 사이에 생기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최대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스틴은 장애가 없는 배우자가 아니고서는 장애인을 완벽하게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도 말했다. 결국, 인건비가 비싼 미국이다 보니 보조공학장비는 남부럽지 않게 지원하지만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소요되는 활동보조서비스에는 지원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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