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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포유제목:최강문의 영화이야기, 추석극장가, 자신을 찾는 영화 한편 혹은 두 편, 글:요술피리 대표 작가, 최강문

장애의 개념적 기초와 장애모형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


추석 명절의 극장가. 여차여차한 이유로 고향에 가지 않아 더욱 길기만 한 명절 연휴를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 하여 추석 바로 전날 가까운 복합 상영관을 찾았다. 예상했던 만큼 수많은 영화들과 그 영화를 보러 온 수많은 사람들…. 여름나절, 섬뜩한 공포영화 포스터로 도배되었던 그곳은 이제 코믹 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홍수로 넘쳐나고 있었다. 찰나에 바뀌는 전광안내판, 순식간에 사라지는 잔여 좌석의 와중에 어렵사리 표를 구했으니, 바로 『즐거운 인생』.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의 감독 이준익의 새로운 작품이다.

영화포스트, 즐거운인생중년의 남자들. 젊은 시절, 대학가요제 예선 탈락의 쓴 잔만 연거푸 세 번을 마시다 마침내 해체된 록밴드 활화산의 멤버들. 20년도 훌쩍 지난 지금, 밴드의 리더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남은 자들의 모습은 구질구질하기 그지없다.
직장에서 명예퇴직 당한 실업자이거나, 낮에는 퀵서비스, 밤에는 대리운전…. 그나마 번듯한 직업의 소유자는 중고차 매매업자. 그에게 모든 차는 “대학 교수님이 타시던 차”로 변한다. 그래야 잘 팔리니까. 국가의 안녕도 아니고 사회의 발전도 아니고, 오로지 가족의 행복만을 최고의 지상목표라 여기며 20여 년을 냅다 달려온 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위기가 닥친다. 그런데 그 위기의 근원은 국가나 사회로부터의 억압과 소외가 아니라, 가족 혹은 자신에 관한 회의다.
그리하여 이들은 고민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혹은 ‘내 인생은 무엇이었던가….’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앞서의 영화들처럼, 마치 비수와도 같이. 중년이 되면 알 수 있을까? 왜 인생은 즐겁지 않은지를. 극장의 수많은 젊은 관객들도 알 수 있을까? 왜 즐거운 인생이란 결국 블랙 코미디로 끝나고 마는지를. 추석 명절을 앞두고서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 이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니지….

정작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 또한 다른 것이다. 왜냐면 이번 추석 연휴는 유달리 길었으니까!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더라’는 주변의 관람 평을 믿고 추석 다음날 또 다시 복합 상영관을 찾았다. 하릴없이.
‘올 추석, 단 하나의 액션 블록버스터!’란 부제를 단 영화 『본 얼티메이텀』. 정보기관의 암살요원으로 활동하다가 그만 기억을 잃고 도망자가 되어버린 제이슨 본의 활약상을 다룬 『본 아이덴티티』(2002년 작), 역시 제이슨 본이 자신이 몸담았던 정보기관에 의해 살해된 연인을 위해 복수를 감행하는 『본 슈프리머시』(2004년 작)에 이어 마침내 주인공이 모든 기억과 진실을 되찾기 위해 돌아와 벌이는 액션무비이자 ‘본 시리즈’의 최종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할리우드 영화라는 기대치에 충분히 부응하기 위해 부수고 부서지고, 죽이고 죽는 엄청난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기 보다는 실사 촬영을 위주로 만들었다고 하니, 잘 알지는 못해도 제작비 꽤나 들었을 것이다. 숨 가쁘게 바뀌는 화면 전개에도 불구하고 줄거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답게.

영화포스트, 본얼티메이텀고도의 훈련을 받고서 암살병기로 다시 태어난 제이슨 본은 갑작스런 사고로 과거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 (전편작 『본 아이덴티티』와 『본 슈프리머시』에서는 자신의 기억을 단편적으로 되살려가고 있었다.) 자신을 암살병기로 만든 이들을 찾는 과정에서 마침내 ‘블랙브라이어’라는 프로젝트가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 영국의 진보적 주간지 『가디언』 기자가 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다 목숨을 잃게 되고, 이 와중에 제이슨 본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집단이 미국 CIA 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과감히 미국 뉴욕에 위치한 CIA 비밀본부 대테러대책팀으로 찾아가는데….(아무리 뻔한 할리우드 영화라도 결말을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영화의 평은 관객의 몫. 주인공 제이슨 본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의 멋진 연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최고의 암살요원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정보기관의 음모에 맞서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장면들로 인해 손에 땀을 쥔 채 영화에 빠져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우리의 심형래 감독이 만든 『디워』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8월의 미국 극장계를 주름잡은 흥행 성공작으로서의 뒷얘기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긴장감은 다른 부분에 있었다, 적어도 나로서는.

영화의 초반, 주인공 제이슨 본이 러시아 경찰의 추격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가던 그때, 미 CIA에서 제이슨 본을 처치하기 위한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을 바로 그때, 이태리 토리노에서는 『가디언』지의 기자가 한 제보자로부터 제이슨 본과 ‘블랙 브라이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다. 기자는 데스크에 ‘블랙 브라이어’에 대한 취재결과를 보고한다. 당연히 이 통화내용은 미 CIA의 통신감청을 피해가지 못한다. 이때 미 CIA 대테러대책팀장은 말한다.
“이것은 국가안보의 최고등급 위기 상황이다. 우리는 그의 전화, 이메일, 아파트, 차, 은행계좌, 신용카드, 여행 기록 등 모든 정보를 조사해야 한다.”
결국 기자는 런던의 워털루 역에서 미 CIA 암살요원의 총탄에 목숨을 잃고 만다. 그렇다고 국가안보위기는 해소되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영화의 후반, 제이슨 본이 몰래 미국에 입국해서 뉴욕의 비밀본부에 연락을 취했을 때 예의 팀장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잘 들어. 지금은 국가안보위기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블랙 브라이어’ 프로젝트를 수행한 연구소로 찾아간 주인공, 그곳에서 자신을 암살 병기로 만든 키워드를 기억해낸다.
‘너의 임무는 미국을 구하는 일이다.’
어딘지 익숙한 말들.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조국을 위기에서부터 구해내기 위하여… 이 한 몸 다 바쳐서… 충성을 다할 것을…

동화책, 병사와소녀두어 해 전 접한 한 동화책에서도 똑같이 머리가 멍해진 적이 있었다. 스페인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조르디 시에라 이 파브라가 쓴 『병사와 소녀』(문지아이들, 2005)의 첫 장을 넘기면 왼편 가운데에서 총알 하나가 날아간다. 폭탄 구덩이에 빠져 겨우 목숨을 건진 병사는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핀다. 바로 그때, 총성과 함께 나타난 총알. 그리고 소녀가 나타났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소녀가. 병사는 묻는다.
“누구......지?”
“죽음이에요.”
소녀와 죽음. 서양에서는 익숙한 개념이리라. 그리고 소녀는 말한다.
“이제 보셨지요. 당신은 역시 속았던 거예요.”
책장을 넘기면 총알이 드리운 검붉은 꼬리가 조금 더 길어진다.
소녀는 병사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간다.
“그들은 아저씨를 속였어요.”
소녀는 병사에게 전쟁의 진실을 안내한다. 병사를 향해 총을 쏜 적군 병사. 그 역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병사가 지키려고 했던 것들…. 시체가 널브러진 언덕-불과 몇 시간 전까지 그토록 중요한 고지라 했던 황량한 땅과, 아이들의 게임보드를 닮은 사령부의 전쟁 상황판, 그리고 양국의 높은 분들이 모여 벌이는 협상장, 전쟁의 지속 여부에 결정적인 돈과 그 돈을 빌려줘서 무기를 팔아치우는 또 다른 나라….
“그들은 아저씨를 속였어요.”
소녀가 되뇔 때마다 총알은 점점 더 불길한 꼬리를 드리우며 책장을 가로지른다. 병사와 소녀의 대화는 더욱 숨 가빠진다.
“우리는 명예를 위해 싸운다고 했어.”
“알아요.”
“하느님을 위해서…”
“그랬지요.”<
“그리고 조국을 위해서…”
“맞아요.”
“자유와…”
“그래요.”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그들은 아저씨를 속였어요.”
“전체주의에 대항한 민주주의와….”
병사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을까?”
마침내 총알이 책장 오른편으로 넘어가려 할 즈음, 병사는 말한다.
“지금 나에게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나는 죽을 거야. 어쩌면 몰랐던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
“모르는 게 진실보다 더 나을 수는 없어요.”
그리하여 병사와 소녀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모르는 게 진실보다 나을 수 없기 때문에!
『병사와 소녀』의 병사처럼, 『본 얼티메이텀』의 제이슨 본 또한 말한다.
“하지만 그건 미국을 위한 것이 아니었어. 당신들을 위한 일이었지.”


개봉만 하면 대박이 난다는 추석 영화 특수, 그저 그런 코믹영화와 그저 그런 멜로드라마 그리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세상사의 조그마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 그저 반가웠다. 자신의 기억을 되찾으면서, 아니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으면서 제이슨 본이 깨달았던 그 한 마디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절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의·다산·자이툰 그리고 한·미FTA… 어디 그 뿐이랴. 죽음을 목전에 둔 병사 혹은 자기 자신을 잃은 제이슨 본은 도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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