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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포유제목:저 멀리 올려다보던 프라하의 성, 프라하행 비행기에 혼자 타다, 글:한국장애인인권포럼 대표, 이범재

저 멀리 올려다보던 프라하의 성 - 프라하행 비행기에 혼자 타다-    이범재(한국장애인인권포럼 대표)


열정은 있었지만 고통스러웠고 목표가 있었지만 결과는 항상 미완이었던, 그리하여 사실은 고립과 그에 따른 폐쇄로 이어지던 내 소중한 20대와 30대가 끝난 몇 년 전부터 나는 부지런히 기회를 찾아 여행을 다녔다. 내 딴에는 내 젊은 시절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겠으나 사실은 방향 상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몇 년간 내가 다녔던 여행은 나에게 적지 않은 위안을 주었다. 모두들 단풍은 내장산이라고 말하지만, 내 마음의 굴곡들을 보여주듯 한 모퉁이 돌아 설 때마다 온산을 뒤덮던 지리산 단풍을 보았고 두려움을 안고 찾았던 뉴욕에서 나는 상상은 했으나 충분히 느낄 수 없었던 거대한 물질의 위력을 보았다. 42번가에 앉아 지나다니는 온갖 차들과 마천루, 모든 종류의 인간들을 느긋하게 지켜 보면서 나는 내 존재도 내가 사고했던 세계도 모두 하나의 꿈임을 알았다. 나는 거기서 ‘장자의 꿈’의 의미를 내 식으로 되새겼다. 그것은 하찮음에 대한 깨달음이며 동시에 그러므로 이 하찮음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연민이었다.

나의 대부분의 여행은 누구와 함께하는 것들이었다. 여럿이던 두셋이던 타인들과의 여행은 항상 즐거움을 주지만 또한 항상 ‘나’이외의 존재에 대해 신경써야 하는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혼자 하는 여행을 꿈꾸었고 오늘 프라하행 비행기에 혼자 올랐다. 나는 벌써 가벼운 긴장과 외로움을 느낀다. 마딱뜨릴 모든 것들이 약간의 흥분과 함께 걱정을 주고 혼자 지낼 며칠에 대한 ‘상상 외로움’을 느낀다. 이것이 혼자하는 여행의 고유한 느낌일까?

항공사가 ‘장애인’을 태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 특별하지 않은 특별카운터의 설치, 특별좌석배정이나 에스코트 서비스에 따르는 얼마만큼의 추가비용? 비행기를 타면서 항상 어떤 불만을 느끼는데 그것은 ‘장애인탑승’에 대한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절차들 때문이다. 오늘은 ‘탑승 1시간 전에는 휠체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규정을 새롭게 들어야 했다. 보통 항공권 발권 수속은 2-3시간 전에 끝내는데 그럼 남은 시간을 그저 발권 카운터 앞에 앉아서 대기하라는 것인가? 공항이란 항상 ‘지나가야 하는 공간’이기에 무엇도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고 어떤 책임있는 대화도 불충분한 채 나는 분통을 터뜨리고 ‘지나간다’. 그러면서 내 자신에게 그냥 이런 일들과 타협하자, 혹은 이런 작은 불편에 성질을 내는 ‘너 자신을 보라’고 말하곤 한다.


광장

저녁 무렵에 도착한 프라하 시내의 구시청 광장은 적당한 규모의 전형적인 광장이다. 광장은 성당과 카페들, 자그마한 호텔로 둘러 싸여 있고 푸른 빛 조명으로 빛나는 틴성당의 첨탑은 놀라운 크기로 사람을 압도하는 대신 적당한 규모의 광장과 어우러진 ‘인간적인’ 크기로 여행자를 반긴다. 반대편에는 천문시계탑이 비슷한 높이로 서 있고 광장 가운데로는 얀후스의 동상이 서 있다. 노천 카페에는 유럽의 어딘가에서 온 관광객들이 난로가에 앉아 느긋이 어둠이 내리는 순간을 즐기고 있고 시가지를 도는 관광마차의 또각거리는 말발굽소리가 광장 전체로 퍼져나간다.

구시청광장에 서 있는 틴 성당과 후스동상 사진
-도착한 날 저녁의 구시청광장에 서 있는 틴 성당과 후스동상. 어둠속에 푸른 빛을 낸다.-


프라하에서 재즈를 듣다

프라하에서는 호텔 대신 한국 민박집에 묵었다. 바나나민박. 좋은 점이 있다면 여행자들의 집합소이니까 여행정보를 얻기가 쉽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말이 통하니까 참 좋았고 거기다 광장과도 가까워서 여행자에게는 그만이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광장근처를 헤매다 UNGELT 재즈바에서 체코식 저녁과 10,000원짜리 재즈공연 티켓을 샀다.

무슨 음식을 시킬까 고민하고 있는데 지나던 한국 관광객이 아는 체를 하면서 소혀를 훈제로 익혀서 겨자소스에 발라 먹는 음식을 권한다. 아주 독특한 맛이다. 식당 지하에 있는 재즈공연장은 건물의 지하창고를 개조해서인지 아주 비좁다. 한 30명이나 앉을까, 여기저기 여행자들이 맥주 한잔을 앞에 놓고 음악을 듣는다. 어디 거리에서 보았다면 청소부로나 여겼을 배가 나온 아저씨가 기타를 치며 블루스를 부른다. 컨트리 음악처럼 단순하나 경쾌하지는 않은 블루스만의 독특한 음색을 들려준다.
민박집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너무나 친절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무척이나 기다려 본적이 있음으로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절실히 느껴진다.
UNGELT 재즈바 공연사진첫날 만난 젊은 커플은 자신들의 프라하 안내지도를 아낌없이 주었고 40대의 동년배 여행자는 자신이 5일간 머물며 얻은 음식과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풀어 놓고는 비행기 시간에 쫒겨 일어섰다.
해외여행을 할 때는 어디에 숙소를 정할까가 항상 고민이다. 잠자리는 여행경비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므로 원하는 대로 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숙소가 단지 잠자는 곳만이 아니라 여행의 기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좋은 숙소는 여행의 성패와 밀접하다. 나는 거꾸로 내가 서울을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어떤 숙소를 원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공기나 경치나 시설이 좋은 워커힐, 한국의 성장을 한눈에 보여주는 강남의 호텔들, 물론 선택에는 여러 가지가 작동하지만 서울을 여행하려는 여행객이라면 명동이나 종로, 혹은 신촌 근처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프라하의 민박집은 그런 점에서 훌륭한 선택이었다. 프라하의 맛깔스러운 음식점이나 각종 연주회장, 주요한 관광지까지 걸어서 충분할 만큼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 내가 한국에서 먹는 음식보다 더 한국적인 민박집의 아침은 매력적이었다.


카프카의 성

프라하의 시내에서 강건너를 올려다보면 웅장한 성채를 볼 수 있다. 카프카는 그의 짧은 인생을 거의 프라하에서 보냈다고 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카프카의 ‘성’에서 느꼈던 낯설고 거대하며 접근을 거부하는 느낌은 어린시절 올려다 본 프라하의 성에서 얻은 것은 아니었을까?
프라하의 성은 저 멀리 프라하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커다란 성당과 몇 개의 부속 건물들이 어우러진 하나의 거대한 성채를 이루고 있다. 그 프라하의 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트램을 타거나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언덕길을 돌아서 올라가야 한다. 블타바강에서 올려다본 프라하성, 성비타성당 첨탑이 보인다
그러면 성은 문득문득 모습을 드러내 준다. 마침내 언덕의 꼭대기에서 성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성당은 그 규모가 유럽의 어느 대성당 못지 않게 웅장할 뿐만아니라 부속건물들과 그 높이로 인해 훨씬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성은 또 그 높이로 인해 양 옆으로 가파른 계단길을 내놓고 있는데 한 켠은 멀리 프라하를 내려다 보는 까마득한 내리막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반대편은 한 때 카프카가 살았다는, 이제는 황금소로라 불리는 작은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다.

그 길들은 지금은 조그마한 선물가게들과 노천 상가들로 여행객을 유혹한다. 나는 카프카가 살았던 그 골목의 어디쯤, 프란츠 카프카라고 쓰여져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 조그만 다락방에서 아마도 그는 거대한 성의 완강한 거부의 몸짓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 많은 계단들을 걸어서 내려왔다.
영화포스트, 본얼티메이텀
팔꿈치와 어깨의 통증이 뿌듯함과 함께 찾아왔다. 프라하에는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시설들을 찾기가 어렵다. 오래된 도시답게 대부분의 건물들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트램에도 단차가 있다. 박물관이나 프라하성 같은 곳에도 휠체어가 구비되어 있지않다.




    -성비타성당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황금소로의 카프카집 골목사진     황금소로의 카프카집 앞에서 필자모습
-황금소로의 카프카집 앞에서-

시내의 중심지는 차가 다닐 수없는 일종의 보행자거리라서 휠체어가 없으면 여행하기가 쉽지가 않다. 더욱이 다양한 크기의 벽돌을 박아서 만들어진 보도라 장애인에게는 걷기도 휠체어를 타기도 힘들었다.


카를 대교

블타바(몰다우라고도 한다는데)강을 건너는 카를 대교는 참으로 멋진 다리다. 1357년 카를 4세 때 목조 다리를 대신하는 새로운 다리를 착공하여 1402년에 완공하였는데 설계는 체코인이 아닌 독일인 건축가 피터 팔러(Peter Parler)가 하였다고 한다. 카를 대교는 석조 다리의 육중함과 견고함, 거기에 예술작품까지 결합되어 지금껏 본 어느 다리보다 아름다웠다. 다리 양쪽 끝에는 높은 보루를 세워 두었는데 보루들은 마치 절집을 지키는 일주문처럼 ‘여기서부터는 경건하라’는 경고를 들려 주는 듯하다.

다리의 길이와 폭이 그리 넓지 않지만 석조다리의 위용으로 본다면 그것은 충분히 커보인다. 차가 다니지 않는 다리 위로는 관광객들과 프라하의 시민들이 무리를 지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다리 난간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으며 그것들은 검은 빛으로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조각상의 군데군데는 사람들의 손길로 황금빛이 나는데 성스러운 것에 몸을 닿으려는 욕망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여러 조각상들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것이 1683년 세워진, 체코의 성인으로 불리는 성 네포묵의 동상이다. 카를교에서 가장 오래된 동상이기도 하다. 성 네포묵은 카를교에서 블타바 강으로 던져져서 순교하였는데 순교 당시 블타바강 위로 다섯 개의 별이 떠올랐음을 기려 머리위의 5개의 별이 성 네포묵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블타바강의 카를대교,  성 네포쿡의 동상,  카를대교 위의 악사들 모습

카를대교 위에는 여러 악사들이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가끔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CD에 담아서 팔기도 하는데 사고 싶은 마음이 썩 들지는 않았다. 벤조를 연주하는 컨추리 블루스에서부터 스메타나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까지 다양한 연주자들이 다리 곳곳에 자리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귀를 붙잡는다.
블타바 강을 유람하는 배에서는 비세흐라드 성이 올려다 보인다. 비세흐라드는 고지대에 세워진 성이라는 뜻으로 이 성은 체코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약 7세기경 체코 최조의 왕조가 이곳에 성을 세웠는데 프라하 사람들은 프라하 성보다도 이곳을 더 각별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체코가 낳은 작곡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1번이 비세흐라드이고 2번이 몰다우강(블타바강)인 것만 봐도 비세흐라드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비세흐라드 성채에는 조그마한 성당과 성곽 그리고 자그마한 공원묘지가 있는데 이곳에 다른 많은 유명한 체코인들과 함께 스메타나의 무덤이 있다.


바츨라프 광장

체코에서 우리나라의 세종로에 해당하는 곳이 바츨라프 광장이다. 세종로와 다른점이 있다면 세종로에서는 차가 중심이고 사람이 거기에 딸려 있다면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서는 사람을 위한 공간과 길이 주이고 차들에게는 양 옆으로 좁은 길만이 허락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장 한가운데는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서있는데 성 바츨라프는 10세기경 체코가 국난에 빠졌을 때 중부 보헤미아 지방의
바츨라프 기마상이 서있는 광장 모습 바츨라프 광장전경

그라니크 동굴에 잠들어 있는 기사들을 깨워 적들을 물리쳤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기마상 주변으로 3명의 수호성인인 성 루드밀라, 성 프로코피우스, 성 아그네스의 조각상이 있다. 광장에서는 다양한 길거리 공연과 조각들이 전시되고는 한다. 광장의 한 끝에는 다양한 동식물, 광석 등을 모아 놓은 커다란 박물관이 있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기념비
프라하의 봄!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들끓던 프라하의 꿈을 소련군의 탱크가 무참히도 짓밟았던 1968년 봄. 이듬해 1월 19일 프라하 대학 철학부의 21살 청년 얀 팔라흐Jan Palach는 국립 박물관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기고 그 계단을 뛰어 내려와 바츨라프 광장 한가운데, 바로 저 십자가가 박힌 자리에 쓰러지면서 민주화를 외쳤다. 이어 2월 25일에는 19살의 얀 자익Jan Zajic의 분신이 이어졌다. 나는 두사람의 자그마한 기념비 앞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김세진, 이재호 두 열사의 이름이 떠 올랐다.


다시 광장

월요일 아침부터 구시청 광장은 온갖 종류의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여기저기 단체 관광객들은 열명씩 스무명씩 무리지어 이런 저런 언어로 들려오는 가이드들의 이야기에 열중한다. 몇몇의 개별 여행자들은 광장을 둘러싼 틴성당, 성미클라쉬성당, 천문시계탑, 후스동상을 찾아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틴 성당의 1층에 있는 음반가게에서 프라하에서 연주된 째즈음반을 하나 샀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된다지만 이곳 프라하의 구시청 광장만큼 적당한 크기와 훌륭한 주변건물들, 그리고 무엇보다 광장에 생기를 불어 넣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곳은 찾기 쉽지 않을 듯하다. 광장의 한켠에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관광마차가 있고 광장으로 통하는 여러개의 길목 가운데 한 곳에서는 연세가 7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재즈를 연주한다.

유럽 관광객들의 상당수는 어쩌면 체코의 시골마을이나 아니면 독일이나 저멀리 스페인, 포르투칼에서 왔을 법한 나이든 아저씨 아주머니들이다. 옷차림도 수수하고 움직임도 조용하다.

틴 성당의 첨탑 모습
-프라하의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틴 성당의 첨탑-

서울에서라면 일본사람, 중국사람, 한국사람,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다 구별할 수 있었을텐데 여기서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구별하기도 어렵다. 이런 구별 불가능성은 한편으로는 거리감과 경계심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판단부재에 따른 편안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프라하는 중세의 유럽이 어떠했을까를 짐작하게 해준다. 구시가지 광장이나 프라하 성을 벗어나면 군데군데 현대식 건물도 보이고 프라하 강변에는 몇 개의 신식 특급호텔들도 보이지만 온 도시가 고딕, 바로크 양식의 3-4층짜리 건물들로 그득하다. 아마도 도시의 근간은 몇 백년간 한번도 파괴되지 않은 듯 네모 세모의 작은 광장들과 광장과 광장을 연결하는 때로는 곧게도 뻗고 때로는 좁은 굽이길로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의 도로는 크고 작은 돌들로 만들어진 마차용 도로이고 그 길 위를 전차나 자동차들이 드르럭 거리며 통과한다.

그래서 어쩌면 직선은, 곧게 뻗은 시간은 인간의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인간의 길들은 땅의 높낮이와 굴곡과 여백들을 받아들여 요리조리 굽이지고 계단과 언덕을 오르고 내리는 그런 공간과 길들로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직선과 인위를 요구하는 장애는 지극히 현대적인 특이성일지도 모른다.

와씸

프라하에서 어떻게 이동할까를 생각하다가 민박집 주인의 도움을 받았다. 여행사에서 자동차를 기사와 함께 빌리면 하루에 300유로를 달라고 하는데 혼자하는 여행의 경비로는 너무 많았다. 그래서 민박집 주인이 시리아인 와씸을 소개해 주었다. 프라하에 유학을 와서 체코 여인과 살고 있다는 와씸은 내가 처음 가까이 겪어본 아랍인이었다. 우리는 서로 서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3일 동안 성심껏 나를 도와주었고 여기저기 안내해 주었다.

시리아인 와씸의 모습

그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나의 질문에 미국도 알카에다도 미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더 이상의 깊이 있는 논의는 우리의 언어의 한계로 불가능했다. 그는 곧 아내를 데리고 시리아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육로를 이용하는 시리아까지의 여행은 대략 3500km에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의 여러 나라를 거치는 먼 길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와씸에게 알라신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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